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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의 나라
어비스군의 후방 야영지는 위그드라실로 올라가기 전의 밑동에 설치되어 있었다. 병량부대를 인도한 로드는 즐겨 입는 검정 로드를 뒤집어쓰고 안내병과 함께 위그드라실 쪽으로 향했다.
“……와.”
걸음을 멈춘 로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솟은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보니 전율이 일 정도로 웅장했다. 그리고 세계수의 중턱쯤에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우리 병사들도 저기 있는 거야?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간 거지?’
“폐하. 이쪽으로…….”
안내병이 세계수 앞으로 걸어갔다.
“사다리나 밧줄 같은 거 없어? 그냥 맨몸으로 올라가는 거야?”
“예.”
안내병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세계수의 몸체에 한쪽 다리를 툭 올려두더니 그대로 남은 한 다리도 올려 두 발로 나무를 밟았다. 단지 그뿐. 그리곤 허리를 천천히 펴며 위로 걸어갔다.
‘……헉!’
로드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나무 몸통에 두 다리를 붙인 안내병의 몸은 완전히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올라오시지요, 폐하.”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나무 위에 두 발을 붙이고 일자로 서 있는 그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로드도 다가가 병사처럼 한 다리를 세계수의 몸통에 댔다. 그리고 땅에 붙인 나머지 다리도 움직이려는데… 쉽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바로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질게 뻔하지 않는가? 안내병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처음엔 폐하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이 세계수에는 거대한 이능이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병사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더 위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상태에서 훌쩍 뛰어 보였다.
“……!”
로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대로 추락할 줄 알았던 병사는 다시 자석처럼 나무 몸체에 탁 하고 발이 떨어졌다.
‘……아하, 이제야 알 것 같군.’
미지의 두려움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감을 잡은 로드는 용기를 내어 지면에 둔 나머지 한 다리도 때어 나무에 올려두었다. 이제 두 다리 모두가 세계수에 붙어있는 것이다. 바로 떨어질 것 이라 생각했으나, 한 순간 공간이 빙그르르 도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오오!”
로드는 감탄성을 내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을 딛고 있는 나무 몸체가 바닥이 되어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나무를 딛고 똑바로 서 있었으며, 방금 자신이 있던 대지는 하늘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였다. 주위를 걸어 다녀보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도 정확한 사실은 모르지만, 세계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로드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장벽처럼 높게 솟은 지면에 발을 툭 디뎌보았다. 그러자 다시 시야가 뒤흔들리며, 세계수 앞에 서 있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거 엄청 신기한데?”
로드는 그 뒤로도 올라왔다 내려왔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안내병의 시선만 아니면 여기서 좀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침 로드를 데려오기 위한 마차가 세계수의 밑동까지 마중을 나왔다. 로드는 마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했다. 세계수로 올라가며 안내병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쟁은 거의 마무리 단계이며, 잔당 처리만 남겨둔 듯 했다.
중턱까지 올라가자 빼곡한 울타리와 경비병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이 어비스군의 최전방 기지였다. 로드는 마차에서 내렸다.
“우와아!”
다시 한 번 절로 감탄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지상의 경치가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쭈우욱 펼쳐져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반적인 경관과는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로드는 자신이 살아왔던 두 세계를 통틀어 이 세계수의 경치가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경치를 구경한 로드는 티아를 찾기 위해 기지를 돌아다녀 보았다. 워낙에 아름다운 외모 때문인지 그녀는 금방 눈에 띄었다. 지휘관 천막 앞에서 부관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금발의 엘프가 보였다.
“티아!”
로드가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이내 로드를 알아보고는 근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고오오오옹!”
그녀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두 사람은 상봉한 가족처럼 서로를 얼싸 안았다.
“잘 있었어요? 티아.”
“주공! 깜짝 놀랐다.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인가?”
“티아의 오랜 염원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인데 주공인 제가 빠질 수 있나요.”
“주고오오옹!”
티아가 로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본녀는 주공의 가신이라 행복하노라!”
로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멀리서 부관들의 씁쓸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래, 이해한다. 몰래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겠지. 로드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더욱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요?”
“괜찮다.”
그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대답했다.
“전쟁도 거의 끝나간다. 세계수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제 잔당만 해치우면 끝이니라. 베아트리체 단장과 유니벨 장군이 최전방에 나가있다.”
“그렇다면 곧 끝나겠군요. 수고 했어요. 티아.”
두 사람은 이제야 서로 떨어졌다.
“숙원을 이룬 기분은 어때요?”
“……음.”
그녀가 복잡 미묘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녀는 동족의 복수를 꿈꾸었다. 본녀와 페어리들을 고향에서 쫓아내고, 수백 년 동안 타지에서 고통 받게 한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다.”
“당연한 감정입니다.”
로드가 말했다. 처형장에서 죽을 뻔한 그녀를 구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했다. 그리고 언더하임에 도착해 왕궁에 뛰노는 페어리들을 보며 목 놓아 울었던 것도.
“하지만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잘 모르겠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복수라는 감정 때문에 마냥 달콤해지지는 않는구나.”
“……그렇군요.”
“그래도 고맙다. 주공.”
그녀가 활짝 웃어보였다.
“본녀는 온전히 주공의 힘으로 숙원을 이루었다. 더없이 후련하고 홀가분하노라. 이제는 본녀가 주공의 숙원을 이루어줄 차례다.”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대륙 정복. 마지막 나라의 깃발을 뽑아 주공에게 가져다 바치는 자는 바로 본녀, 티아 그란디네가 될 것이니라.”
“말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티아.”
두 사람은 함께 기지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회포를 풀었다.
“주공. 알브헤임을 정복한 뒤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통치를 시작해야죠. 티아는 위그드라실에 남아 상황을 수습하고 당분간 이곳을 다스려주세요.”
“알겠…….”
말을 잇던 티아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너무하다! 주고오옹!”
“앗, 깜짝이야.”
“본녀가 대륙정복을 돕겠다고 했는데! 왜 본녀를 유배 보내는 것인가? 본녀가 싫어졌는가? 아니면 질린 것인가?”
“……유, 유배라뇨!”
로드가 재빨리 부정했다.
“지금 어비스에서 세계수와 엘프들에 대해 티아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티아밖에 해줄 수 없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으음.”
그녀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감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주공. 명에 따르겠다.”
*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완전 정복되었다.
엘프들은 압도적인 전력차를 뒤집지 못하고 결국은 항복을 선언했다. 남은 엘프 병사들은 임시 수용소에 가두어 놓았고 영지 안정을 위해 병사들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세계수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알브헤임 왕궁에서는 소소한 파티가 벌어졌다.
“승전을 위하여!”
로드와 티아, 베아트리체, 유니벨이 집무실에 모여 축배를 들었다. 바닥에는 과실주와 주전부리,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과일들이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
로드가 말했다. 이것으로 통합 영지 운영의 중요한 피스인 알브헤임을 획득했다. 언제나 비싼 돈을 주고 수입해 와야 했던 목재나 약초 등도, 앞으로는 걱정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팬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핑크색 파자마 차림의 유니벨이 다리를 모으며 물었다. 일말의 기대감을 가진 눈치였다.
“그야 알브헤임 정벌은 티아의 오랜 소망이었으니까. 세계수를 되찾아주겠다고 서약해놓고선 정작 나만 빠진 것 같아서 신경 쓰였거든.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와봤어.”
“……아, 그러셔?”
그녀의 표정이 다시 싸늘해졌다. 유니벨은 홧김에 바구니에 놓인 과실을 크게 한입 씹어 먹었다.
“주군을 처음 봤을 때 본녀는 정말 감동했느니라. 너무 기뻤다.”
티아가 뺨을 감싸며 말했다. 유니벨이 퉷. 하고 씨앗을 뱉었다.
“에이씨! 무슨 나라에 고기가 없어? 전부 과일 뿐이야!”
“감사한 마음으로 먹도록 하거라, 장군. 어머니 나무의 과실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어머니 나무가 뭐야?”
“당연히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칭하는 말이지 않겠는가. 조금만 생각하면 답을 알 수 있을 터, 장군은 추론력을 키워야겠군.”
“뭐? 야! 왜 시비야?”
두 사람이 티격태격 싸우는 사이에도 베아트리체는 과실을 먹는데 정신이 없었다.
“……맛있어요!”
베아트리체가 입가에 과즙을 잔뜩 묻히며 행복한 듯 말했다. 로드는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며 ‘네가 맛없는 게 어디 있겠니.’ 하고 생각했다. 베아트리체는 혼자서 과일 한 바구니를 모두 해치운 후,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이야? 저 엘프 거유한테 알브헤임 영토를 줄 거라며?”
유니벨의 물음에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임시 영주지만 말야. 영지가 안정화되면 티아는 다시 언더하임으로 돌아올 거야.”
“……쳇.”
“왜 혀를 차? 너도 영주 자리에 관심 있어?”
유니벨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딴 거 시켰다간 봐. 난 언더하임에 쭉 있을 거야!”
“……아하하, 알았어.”
로드는 티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티아, 엘프들이 항복한 이후 장로들과 이야기해봤죠? 어때요?”
“…….”
그 물음에 그녀는 과실주 한 잔을 남김없이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엘프들이 항복한건지, 본녀가 항복한건지 모르겠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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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제대로 등장시킬게요 ㅠㅠ
할레데임 / 감사합니다 ^^!
로리콤MK / 보고싶었어요~!
아프게했어 / 로즈안느 강제 어선업 진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알라토텝 / 흐음, 일상이 더 필요한가용
Mr윤 / 반가워요오오오!
왜이리들다재밌지 / 넵! 반갑습니다!
이에프 / 타이밍 개굿!
바람색 / 감사합니다~!
책읽는고래 / 연참햇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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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어쩐지 제 아이디어가 자꾸 로드놈이 이야기한다 싶더라니..
@火炎無 / ㅋㅋㅋㅋㅋ 반가워요 화염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