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66화 (16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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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의 나라

인간들이 위그드라실에 들어온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엘프들도 일과에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문제아 제레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언더하임 수용소 행까지 겨우 2벌점을 남겨놓은 제레미는 엘프들 사이에서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번 두들겨 팬 적이 있는 뾰족 머리 엘프가 그 원인이었다.

‘어이, 문제아.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내 몫도 다 해놔. 알았지?’

제레미가 화를 내자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올렸다.

‘오호, 또 한 대 치려고? 치고싶으면 얼마든지 쳐봐. 아, 그리고 만약 내가 일정을 소화 못하면 연대 책임제로 단체 벌점인거 알지? 너 2점 남았다며?’

‘크크크크!’

‘꼴좋다, 제레미!’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뭐.’

시시덕거리며 사리지는 뾰족 머리와 친구들을 생각하니 다시 열불이 났다. 제레미는 떨쳐내듯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는가, 그들은 점수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제레미는 2벌점이면 바로 수용소 행이었다. 그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만 손을 쓰면 바로 어머니 나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불합리한 짓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숲의 문제아 제레미였으니까.

“……지친다.”

홀로 남아 다른 조원의 몫까지 하고 있던 제레미의 얼굴은 수면 부족으로 초췌했다. 그가 키우는 고슴도치가 밤마다 우는 바람에 잠이 부족했다.

“후우우…….”

제레미는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농기구를 내려놓고 철퍼덕 흙바닥에 앉았다.

이곳도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곳곳에서 엘프와 인간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 눈앞에서 버젓이 펼쳐졌다. 공포의 대상인 간수들도 통제가 원활해지니 전처럼 집요하게 괴롭히거나 하지 않았다. 엘프들과 농담 따먹기를 주고받거나, 가끔은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물론 원로들을 비롯한 꼰대들은 여전히 ‘미천한 인간’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마 저들은 세상이 두쪽 나는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꺄르르!”

“호호호호!”

공터에서 한 엘프 가족이 인간 음유시인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유시인이 장난기가 들렸는지 갑자기 연주 속도를 빠르게 했고, 아이들의 춤사위도 덩달아 빨라지다가 서로 엉켜 넘어졌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으휴, 좋을 때다. 너희도 이십년만 있으면 노역이야. 이것들아.’

저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진 모르겠지만 기분이 울적해졌다. 제레미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때서 저녁 석양을 바라보았다.

‘슬슬 꼬솜이 먹이 줄 때구나.’

석양을 보니 반사적으로 집에 키우고 있는 고슴도치 수인의 밥시간부터 떠올랐다. 제레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더라?

이제 휴식시간에 꼬솜이 먹이 주러 가는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기다려졌다. 집에 들어가면 그 녀석이 소란법석을 떨며 반겨줬다. 먹이를 다 먹고 나면 고마운 것을 아는지 몸에 달라붙어 앙탈을 부렸다. 타종족과 접촉하는 건 여전히 찝찝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적응할 만 했다. 서로의 피부가 맞닿는 따뜻한 느낌, 나쁘지 않았다.

‘움직이자.’

더 늦어지기 전에 꼬솜이 먹이를 주러 가야했다. 제레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농기구를 들었다.

“빠아! 빠아!”

“……어?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통통하게 살이 찐 고슴도치 꼬솜이가 나타났다. 평소보다 늦게 와서 그런지 자신을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꼬솜이도 수인인지라 학습능력이 있어서 문을 열고 닫는 정도는 문제없었다.

“하여간 배고플 때는 잘 안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빠아!”

제레미가 다시 밭을 갈기 시작하고 있는 그때.

“……!”

제레미의 행동을 빤히 응시하던 꼬솜이가 옆으로 꼬물꼬물 다가왔다. 그리곤 갑자기 두 앞다리로 땅을 팍팍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 본 제레미는 그만 손에 든 농기구를 놓치고 말았다.

“…너…….”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날, 도와주려는 거냐?”

꼬솜이가 땅을 팍팍 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아!”

“……!”

제레미는 뒤늦게 자신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것을 알아차렸다. 수도꼭지마냥 흘러나오는 눈물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문제아 제레미. 엘프들 사이에서도 문제아였고, 인간 간수들 사이에서도 문제아. 이제는 돌이키기 힘든 그러한 낙인. 부모란 것들은 일찍 병으로 죽었고 홀로 남겨진 그에게 애정이나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머나먼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끄흡! 꼬솜아아아!”

“아빠아!”

제레미가 달려들어 꼬솜이를 감싸 안았다. 타종족이든 뭐든 상관없다. 가시에 몸이 따끔해도 괜찮았다. 제레미는 오열했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나도 이제는 가족이 생겼다.

*

알브헤임 왕궁. 왕의 집무실.

“……티아의 문화 정책은 다 좋은데요, 고아 수인들을 엘프들에게 맡긴 건 잘한 일일까요?”

서류작성을 마친 로드가 깃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티아는 아기 코알라 수인을 무릎에 앉혀놓고 놀아주고 있었다.

“물론이다, 주공. 통제관 덕분에 엘프들의 자종족 우월주의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생리적인 타종족 혐오는 여전하다. 특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벌점에 허덕이는 엘프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니라. 그런 그들에게 귀여운 아기 수인들을 기르게 하여 타종족에 대한 혐오감을 없애는 것이지.”

“……으으음.”

로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진 눈으로 턱을 괴었다.

“생명은 위대하다, 주공. 따뜻한 체온을 가진 생명끼리는 서로 끌리기 마련이니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도 많이 들고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엘프들의 반응도 좋은 것 같노라. 최근엔 일반 엘프들까지 아기 수인들을 분양받기를 원하고 있…… 아하하! 그렇게 만지면 간지럽노라.”

티아의 품에 안겨있는 코알라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놀고 있었다. 로드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 코알라 아닐지도 몰라.”

“응? 뭐라고 했나? 주공.”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드는 몸을 일으켰다.

“슬슬 알브헤임도 안정화 되어가고 있네요. 엘프들은 말썽 피우는 일이 없어졌고, 문화의 힘으로 조금씩 다른 종족들에게도 마음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응, 그렇다.”

“상황이 더 괜찮아지면, 엘프들에게 알브헤임 자치권을 일정부분 돌려줄 생각입니다. 저도 너무 오래 왕궁을 비웠으니 내일쯤 언더하임으로 돌아가려구요. 케이지도 곧 수용소로 복귀해야 하겠네요.”

“그래야겠지. 아, 그러고 보니 언더하임에서는 축제 준비가 한참이라고 들었다.”

“네, 들어가면 일이 산더미겠네요. 하아…….”

어비스에 새롭게 합류한 각 영지의 모든 이들을 초대해, 영지 대통합을 기념하는 축제가 언더하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언더하임에서 처음 여는 축제인 만큼 유니벨을 비롯한 모두가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었다. 로드도 축제를 여는 것에 동의했다. 이런 행사 이벤트는 나라 발전을 위한 '문화력'이 팍팍 오르니까. 아마 이것이 대륙 정벌 전에 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축제가 될 듯 했다.

“아, 혹시 티아를 대신할 영주감은 찾으셨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와서 계속 업무에만 시달렸으니, 아직 인재를 진지하게 살펴볼 시간은 없었느니라. 그래도 젊은 엘프들 중에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그들 위주로 눈 여겨 볼 생각이다.”

“……그런가요. 어서 티아도 언더하임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요.”

“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로드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슬쩍 운을 땠다.

“……여기 엘프들을 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이 세계수를 소중히 여기는지 알 것 같습니다. 티아도 그토록 원하던 고향에 왔지 않습니까? 사실 언더하임같이 먼지 날리는 타지는… 돌아가기 싫지 않나요?”

그 물음을 들은 티아가 생긋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오로지 주공의 곁이니라.”

“티, 티아!”

가슴이 울컥해진 로드는 이쯤이면 그녀의 가슴에 안겨도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빼애애애애!”

그때 코알라 수인이 울음소리를 냈다. 안아달라며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응, 그래. 그래. 착하지?”

티아의 커다란 가슴에 안긴 코알라가 편안한 듯 미소 지었다. 로드가 주먹을 꾹 쥐었다.

‘……역시 저 새끼 코알라가 아닌 게 틀림없어.’

*

어느 늦은 밤, 베틀린 문화 특구의 한적한 해안가.

새까만 어둠이 주위를 가득 매운 야심한 시각에 어부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갑자기 폭풍우라도 불어올 듯 거세진 바람 때문에 배를 안전한 곳에 정박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부들의 손에 든 랜턴의 흔들거리는 불빛은 먹물처럼 새까만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집어 삼킬 것처럼 사납게 파도쳤다. 쏴아아아아아!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낮에는 바다가 잔잔했는데…… 갑자기 왜 이러나 모르겠군.”

“바다신께서 노하신 게지. 다들 마무리하고 얼른 들어가자고.”

“그려, 그려.”

어부들이 장비를 챙기고 하나둘씩 돌아가고 있는데, 한 중년 어부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 또, 저런다.”

그 모습을 본 동료 어부가 다가와 퉁명스럽게 말을 걸었다.

“또 왜 그래? 밤바다를 보니 감성에 젖으셨나?”

“……뭔가 이상한 게 보여서.”

동료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혀를 한 번 차더니 자신의 랜턴으로 바다를 비추었다. 검은 바다가 ‘쏴아아아’ 소리를 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뭐가 있단 말인가? 물귀신이라도 본 겐가?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와.”

“……그래. …응?”

그 어부가 갑자기 동료의 랜턴을 빼앗더니 다시 바다를 비추었다.

“……!”

어부가 눈을 부릅떴다. 해안가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저것이 뭣이여?”

“자꾸 왜 그러는…… 허, 허어어어억!”

‘그것’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검은 바다로부터 빠져나온 수십 마리들의 괴물들이 해안가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비늘로 몸이 뒤덮인 바다 파충류 같은 끔찍한 외형이었다.

“도, 도망……!”

“끄아아아아아악!”

도망치라고 채 외치기도 전에, 앞서 집으로 걸어가던 어부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어느새 괴물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아 포위하고 있었다.

“…모, 몬스터?”

“이런 어촌에 갑자기 웬 몬스터야!”

그때 바다쪽을 밝히고 있던 랜턴이 새로운 모습을 비추었다. 새까만 바다 사이로 커다란 배들이 거친 파도를 가르며 나타났다.

넋을 놓고 지켜보던 어부의 눈에 돛에 붙어 있는 문양이 어른거렸다.

‘큰일 났다. 어서 이 사실을……!’

콰직!

시야가 새까매졌다. 그것이 어부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 작품 후기 ============================

짤막한 알브헤임 편이 끝났네요~ 다음엔 또 새로운 에피소드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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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eji / 저런 분들이 몸이 고생하는 타입 ㅠㅠ

Xedrions / 오옹오오오! 반가워요 ㅠㅠ 군생활 잘하고 계신가요? 힘내시길! 화이팅!

니알라토텝 / 저도 친구집에서 한 번 봤는데 진짜 한시간 가까이 보고만 있어도 귀엽던

난누군가 / 감사합니다아아!

초봄 / 영상 보시면 무척 귀엽습니다.

박성빈 / 더 즐거운 글로 보답할게요! 고맙습니다

아프게했어 / 사실상 애완동물 무료분양급...

알테니아 / 저는 언제든지 112를 누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지리산의늑대 / 헉, 벌써 그 두 자원이 떨어질 때가 됐군요

royanEl / ㅠㅠ 그런데 정말 그런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은근히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더라고요. 극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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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ㅈㅂㅇㅂ / 네. 거의 소리는 안내는데 가끔 내는거 들어보면 약간 병아리같은 소리나요.

@...(-1)... / ㅋㅋㅋㅋㅋ 육아는 정말 고생입니다. 더군다나 타인의 육아를 맡아 해주시는 유치원 선생님들 고생... 응?

@로아리아 / 와, 그러보고니 유니벨을 먼저 언더하임에 보낸것은 로드의 신의 한수였습니다. 남아있었으면 철벽치느라 주위에서 안 떨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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