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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67화 (16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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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시간이 흘러, 수도 언더하임에서는 영지 대통합을 기념하는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어비스 본토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발트호른, 베틀린시티, 위그드라실, 플랫랜치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사신단들과 관광객들이 대거 방문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며,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기고 어울리는 ‘화합’이 축제의 취지였다.

“으아아, 지겨워!”

하지만 화합이고 뭐고, 로드는 집무실에 틀어박혀 투덜거리고 있었다. 밖에선 한참 축제 중이었지만 그는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집무실과 회의실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벌써 회의만 몇 번째인가! 각 영지의 통치자급 인물들이 찾아와 통합 영지 운영에 관련된 의견과 입장들을 내고 있었고, 로드는 또 그것을 들어주느라 시간을 계속 빼앗기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좀 축제 뒤에 논의하면 안되나.’

아직 통합 회의를 하기도 전이건만, 각 영지의 수뇌부들은 벌써부터 서로를 견제하기에 바빴다. 각 영지마다 입장이 다르니 부딪칠 부분도 많았던 것이다. 특히 베틀린 문화 특구 측에서는 ‘케이론이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로즈안느를 속여 우리에게 불리한 생산품 할당을 마구 떠넘겼다.’라고 주장하며 들고 일어났다. 케이론 측은 또 ‘정당한 협상으로 결정된 사안이다.’라며 반박했다. 중간에 낀 로드의 입장에서는 참 골치가 아픈 사안들이었다.

해결책을 떠올려 보려던 로드는 금세 집중력이 떨어져 버려 포기했다. 역시 내정은 너무 힘들다.

“……그래, 결심했어.”

로드가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탈출하는 거야.”

이대로 있으면 축제 내내 땀내 나는 아저씨들과 밤을 세워가며 내정에 대해 토론해야할 것이라는, 그런 불길한 예감이 팍팍 들었다. 정말 사양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폐하께선 어디 계십니까?”

마침 밖에서 로드를 쫓아온 영지 대표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집무실로 들이닥치려는지 무척 소란스러웠다. 중간에 애니록스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로드는 옷걸이에 걸린 로브만 챙겨 창밖으로 뛰쳐나갔다.

벌컥! 그와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며 케이론을 비롯한 각 영지의 가신단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폐하! 긴히 드릴 말씀이 ……음?”

집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뒤늦게 모두의 시선이 애니록스에게로 향했다.

“정보 부장. 폐하도 계시지 아니한데 왜 막은 것이오?”

“폐하께선 어디에 계십니까?”

“……!”

갑자기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애니록스는 흥분에 몸서리쳐졌다.

‘모, 모두가 날 주목하고 있어!’

“뭐하는 거요? 시간 없으니 어서 말을 해 보시오!”

한 가신의 질책에 애니록스가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폐하께서는…!”

“폐하께서는?”

“폐하께서느으으은!”

아아, 행복했다.

이 관심을 계속 오롯이 유지하고 싶었다. 심취한 애니록스가 몸을 뒤틀면서 시간을 끌었다.

“폐하께서는으으으으은……! 사실으으으은……!”

애니록스가 그렇게 말하며 반응을 살피러 실눈을 뜬 순간 이미 모두가 집무실에서 사라진 뒤였다.

“크흑.”

오늘도 실패다. 이대로는 정말로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는게 아닐까.

*

‘해방이다!’

창밖으로 빠져나온 로드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본격적으로 언더하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축제 중이라 길목은 사람들로 발 디딜틈 없이 북적거렸다. 곳곳에서 퍼레이드나 연주 같은 볼거리들이 눈을 호강시켜 주었고, 길목의 양 끝은 노점상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세삼 느끼는 것이지만 언더하임도 참 많이 바뀌었다. 왕궁과 상업지구를 연결시켜주는 이곳 중앙 공터는 한때 너무 횅해서 로드가 화분 분수나 조각상을 사들여 비치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지금은 주거지가 가득 들어섰고, 물이 없어도 잘 버티는 사막 작물들을 심어 꽤나 푸르른 느낌이 났다.

‘막집에서 살던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구나.’

로드는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노점상 근처를 기웃거렸다.

“자, 자, 꿩 먹고 알 먹기! 일석이조! 일거양득!”

“5분후에 팔씨름 대결이 펼쳐집니다. 힘에 자신 있으신 분들은 등록하세요! 등수에 따라 푸짐한 상품을 드립니다!”

“마법사가 직접 봐주는 타로 카드 점! 보고 가세요!”

노점 상인들이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가던 로드는 인형을 맞춰 뽑는 다트 매장 쪽으로 시선이 갔다. 마침 한 엘프가 돈을 내고 장난감 다트를 받고 있었다.

“흥, 인간들 따위.”

라고 중얼 거리던 엘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인형을 향해 장난감 다트를 휙휙 던지기 시작했다.

‘…알브헤임에서 온 건가?’

로드는 엘프에 호기심이 생겨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4발은 허무하게 불발. 나머지 1발이 곰돌이 인형에 정확히 적중했다.

“예에에에에쓰!”

엘프가 포효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오오!’ 박수를 쳐주었다. 엘프는 흠칫 놀라더니 다급히 팔짱을 꼈다.

“흥, 인간들의 박수 따위.”

주인이 다가와 맞춘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말 가져도 되는 것이오?’하고 물어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는 ‘흥, 인간들이 만든 인형 따위.’라는 대사로 마무리하고는 품안에 소중히 넣었다.

그리고 다트 매장 바로 옆에 있는 국수집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비슷한 복장의 엘프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흥, 인간들이 만든 음식 따위! 후루룹! 쩝쩝쩝!”

엄청난 속도로 면발을 흡입하고 있는 엘프를 보며 로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엘프들은 저게 입버릇인건가?

‘그래도 정말 많이 나아졌다.’

일 때문에 온 건지 관광으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엘프가 인간의 축제를 즐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실로 엄청난 발전이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언제나 에너지와 활기가 넘쳐흘렀다. 우울하던 사람도 막상 축제에 오면 가만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 힘들 것이다. 로드도 간만에 축제 분위기에 흠뻑 취해 돌아다녔다.

‘일단 맥주로 목을 좀 축이고 싶은데…….’

로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더하임이야 워낙 맥주가 유명하다보니 맥주집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반가워요, 여러분!”

그때 확성구슬로 확대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드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로즈안느였다. 그녀는 강당 중앙에 크게 세워진 특설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그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로즈안느!”

“로즈안느!”

“로즈안느!”

굵직한 남자들의 똑같은 목소리들을 듣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눈이 돌아간 관중들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듯 했다.

로드도 로즈안느의 노래는 좋아하긴 했지만 저 땀내 가득한 인파의 바다에 들어가는 건 피하고 싶었다. 로드는 슬그머니 반대쪽으로 걸었다.

무대에서 좀 더 위로 걸어 올라가니 사람들이 많이 줄어있었다. 로즈안느의 무대가 사람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덕분이었다.

“휴우,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네. 그러면 맥주집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로드는 실수로 앞선 누군가와 툭 부딪쳤다.

“아, 미안합니다.”

로드가 중심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이쪽이야 말로.”

‘응?’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부딪친 사람은 검정 로브차림에 삿갓을 쓰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행인 듯 한 여자가 로드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만.’

로드도 이제 기억이 났다. 삿갓을 목 뒤로 넘겨 얼굴을 드러낸 여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뵙사옵니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다름아닌 백제의 영웅 비월이었다.

“아, 비월! 오랜만이야.”

로드가 방긋 웃었다.

“…예.”

“여기서 다 만나네. 언더하임은 어쩐 일이야?”

“그것이…….”

비월이 우물쭈물하자 친구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경쾌하게 말했다.

“축제 관광 왔어요!”

“오, 백제 난민들도 찾아와줄 줄은 몰랐네.”

“월이가 여기 오고 싶다고 계속 졸라서요!”

“……그런 적 없어.”

비월이 차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아, 물론 축제는 겸사겸사 들리는 거고요. 사실은 우리 월이가 폐하가 보고 싶다고 얼마나 노래를 부르던지…….”

“……연아.”

비월이 꾸짖는 투로 말하자 친구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등을 돌리게 하더니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바보야! 떠먹여 주면 좀 받아먹어!”

“……?”

“네가 잘 보여서 썸씽이라도 나야 앞으로 우리들도 편해 질 거 아니니!”

‘……다 들린다, 비월 친구야.’

로드가 속으로 웃었다. 저 친구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아이 같았다. 친구를 이용해 자신들의 편의를 유치하려 하다니……. 하긴, 아주 틀린 판단도 아니었다. 비월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 퍼들스퀘어를 내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때 비월 친구가 말했다.

“아, 폐하. 폐하께서도 저기 가시려고 줄 서신 거예요?”

“…무슨 말이야?”

어느새 로드의 등 뒤에도 사람이 서 있었다. 비월과 친구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면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다.

- 언더하임 지하던전 공포탐험.

‘……이런 것도 관광산업으로 팔아먹는 거냐. 하여간 대단한 상인들.’

그래도 비월과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로드는 두 소녀와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자, 자, 두 명씩. 두 명이 한 팀이에요.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딱 좋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장은 장사를 잘 아는 게 틀림없다. 비월에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로드 쪽을 건너보더니 몰래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아마 그녀는 적당히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생각일 것이다. 너 마음에 든다, 친구야. 로드도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것으로 화답했다.

“앗, 손님 한 분이십니까? 혹시 혼자 오신 분?”

1인 손님이 앞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말릴 새도 없이 비월이 손을 들며 앞으로 나갔다.

“……어어어?”

“자, 잠깐만!”

비월은 쌩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

“…….”

동굴 탐험의 입구에 들어온 두 사람은, 로드와 비월 친구였다.

참을 수 없는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흘렀다.

“……설마 월이가 먼저 가버릴 줄은 생각 못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가죠.”

“…응.”

============================ 작품 후기 ============================

T스톤 / 깨어 있는 코알라라니 ㅋㅋㅋㅋㅋㅋㅋ

다크프레셔 / 후후 등장을 기대해 주세용!

Xedrions / ㅠㅠ 고생하세요!

박성빈 / ㅎㅎㅎ!

니알라토텝 / 이번 에피소드에서 맞붙을듯 합니다. 허허

ZzeRoN / 코알라가 아닐지도 몰라요... (응?)

잘되기를 / 네에 ^^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랑엘베르 / 헉, 이정도면 많이 쉰 느낌이 아닌가요? 루즈해질까봐 걱정이었는데.

물주아자씨 / 전란의 시대라 전쟁의 명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작용합니다. 휴전중이거나 같은 동맹국 끼리의 전쟁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적대인 상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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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이런! 112가 아니라 119가 필요한 시점이었군요!

@...(-1)... / 허억, 꿰뚫어보시다닛! 사실 유력한 후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확정은 아니네요. 너무 커리어가 없어서 ㅠㅠ

@김가트 / 코알라가 가슴이 좋은 줄 알다니... 역시 코알라가 아닌게 틀림없습니다

@로리콤MK / 코알라 변태!

@붉은정의 / 정주행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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