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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이미 돈을 냈으니 어쩌겠는가. 두 사람은 함께 동굴을 걸었다. 테라 광산으로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동굴 중 하나를 공포체험 코스로 개조한 듯 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동굴을 걷기만 했다.
이런 경우가 있다. 언제나 학교에서 같이 다니는 세 명의 단짝 친구가 있을 때,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한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중심 친구가 자리를 비우면 남겨진 두 사람은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 친구가 복귀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웃고 떠뜬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로드는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랬더라?”
일단 통성명부터 하기로 했다. 계속 비월 친구라고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닐 테니까.
“하연이라고 해요. 연이라고 불러주세요.”
“…응, 그래.”
“…….”
“…….”
다시금 어색한 정적이 일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지?’
평소에는 잘만 터져주던 입이 꼭 이렇게 어색함을 느낄 때에만 잠잠했다. 로드는 코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귀신이 나와 줄 때였다. 파트너인 그녀가 ‘무서워요!’ 하고 운을 때면 로드도 귀신 분장의 퀄리티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자연스럽게 공통된 대화 소재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동굴 한복판에 난데없이 우물 하나가 떡하니 나타났다. 이 무슨 부자연스러운 연출이란 말인가.
‘에이, 설마 여기서 귀신이 튀어나오는 뻔하디 뻔한 설계는 아니겠…….’
“우오아아아아아!”
정확했다. 귀신 분장을 한 남자가 우물에서 튀어나와 괴성을 질러댔다.
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귀신을 슥 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다 예상할 수 있는 위치에서 나와 봐야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여긴 글렀다.’
로드는 이 멍청한 귀신들에게 기대를 접기로 했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놀이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로드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지금 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 곳이잖아.”
“그렇죠.”
“계급장 때고 이야기 할래?”
“…네엣?”
표정 없이 걷던 하연이 귀를 쫑긋 세웠다.
“서로의 배경은 상관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내뱉는 거야. 서로 화내거나 뒤끝 없기.”
“우와아, 재밌겠네요! 먼저 해봐요.”
우연찮게 그녀의 취향을 저격한 놀이를 제시한 듯 했다. 로드는 흠흠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처음에 우리가 집무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네.”
“너 밖으로 나가면서 인상이 재수 없다고 한 거 다 들었다.”
뒤끝이 있는 로드였다.
“어머, 그 말 들렸었나 보네요.”
“지금 그때의 대답을 확실히 해줄게. 너도 인상은 만만치 않아.”
하연이 웃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그 뒤에 했던 말도 들어버리시면 마음에 상처 입으시겠다.”
“…뭐라고 했는데?”
“제 신원은 문제없겠죠? 여기서 나가면 모역죄로 체포당한다거나.”
“내 이름에 걸고 그럴 일 없을 테니 말해봐.”
“잘난 척이 좀 병적인 것 같아.”
로드가 휘청거렸다. 이 녀석 좀 보게? 로드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반격했다.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비월이랑 같이 다니면 얼마나 비교되는지 알아?”
“제 얼굴이 뭐 어때서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미녀 옆에 붙어 다니면 평생 덤 취급밖에 못 받을걸. 주근깨 괴물.”
“으휴, 폐하야 말로 왕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어디서 빵장사나 하게 생겼으면서.”
“…푸훗!”
“…아하핫!”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 귀신이 천장 위에서 내려와 겁을 줬지만 돌아오는 건 웃음뿐이었다. 제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한 귀신이 시무룩하게 위로 올라갔다.
로드는 배가 아플 때까지 웃었다. 속이 시원했다. 이 세계에 오자마자 막중한 자리를 맡았고, 신하들이 존중해주는 만큼 위엄과 체면을 강요받아왔다. 다 내려놓고 이런 유치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나름의 힐링이었다.
말꼬가 한번 트이니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 유치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아이처럼 낄낄댔다.
“…그래, 비월은 요즘 좀 어때?”
동굴이 끝나기 전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로드가 물음을 던졌다.
“처음보단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 바보. 정착한 지 며칠 동안은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멍하니 백제 쪽의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니까요.”
항상 발랄하던 하연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그래도 우리들이 으쌰 으쌰 기운 북돋아주고 이렇게 같이 놀러도 다니니까 얼굴에 죽을 상은 좀 사라졌어요.”
“……음.”
“내색을 안 해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바보예요. 차라리 며칠 날 잡고 엉엉 울어버리면 좋을 텐데.”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마음이란 게 쉽지 않았다. 새로운 터전, 그리고 함께 지낼 사람이 생겼다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한 향수를 그리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더하임엔 놀러 온 것도 비월 때문에?”
“그렇죠, 뭐. 백제난민들 단체로 놀러왔어요.”
하연이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평생 검만 휘두르던 애가 뭘 놀 줄 알겠어요? 에휴. 역시 기운 좀 차리려면 연애가 최곤데.”
“하하…….”
두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동굴 마지막 부근까지 왔다.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공포 체험 코스는 끝까지 시시했다.
“폐하. 연아.”
나가는 길 앞에서 비월이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월이 이 바보! 왜 먼저 간 거야?”
로드도 해명을 요구하듯 바라보았다. 비월이 슬쩍 로드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소녀가 같이 동행하면, 폐하께서 지루하실 것 같아서 그랬사옵니다.”
“괜한 걱정이야.”
로드가 풋하고 웃었다. 귀여운 배려였다.
“그건 그렇고 첫 공포체험은 어땠어?”
“예. 종업원 분들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이 짠했사옵니다.”
로드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감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이 들어온 사람은?”
“소녀는 일행이 있으니, 먼저 나가라고 하였사옵니다.”
“그렇군. 자, 우리도 나가자.”
세 사람이 나란히 등을 돌려 출구로 빠져나가려는 그 순간, 그들의 등 뒤로 땅이 퍽! 하고 뚫리더니 온 얼굴에 피칠을 한 귀신이 튀어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악!”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세 사람은 비명을 내지르며 서로의 발에 엉켜 넘어졌다.
“……와, 미친.”
엎어져 엉덩방아를 찍은 로드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놀랐다. 동굴 내내 재미가 없었던 연출은 이 마지막 한방을 위해서였던 것인가.
‘……오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비월은 로드의 품안에 안착해 쓰러져 있었다. 두 손은 로드의 어깨를 꾹 쥐고 있었다. 그녀의 옅은 숨결이 목덜미 쪽에서 느껴지자 로드가 움찔하며 물었다.
“괜찮아?”
“…….”
그녀는 답이 없었다. 로드가 슬쩍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울어?”
비월은 움찔하더니 재빨리 로드의 몸에서 물러나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절대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다. 로드가 시선을 돌렸다.
“연이는 괜찮…… 헉!”
하연은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누운 채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으아아앙…… 무, 무서워어어어……!”
“…다른 사람 볼까 무섭다.”
로드가 먼저 일어나 이 겁쟁이 백제민들을 일으키려는데, 두 소녀 외에도 바닥에 엎어진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
“커헉…!”
귀신 분장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의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 몸을 꽈배기처럼 비틀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그는 분장이 아니라 정말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수, 숨이… 커어어어억!”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드가 비월을 돌아보았다.
“왜 저래……?”
“……송구하옵니다.”
비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녀가 너무 놀라서 그만 반격을…….”
“대체 언제! 내 눈엔 보이지도 않았다!”
“…아까 넘어지면서…….”
이 와중에 반격이라니, 역시 B급 영웅은 리액션도 대단했다.
결국 동굴 탐험은 비월이 에이스 아르바이트생을 격퇴함으로서 잠정 중단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들것에 실려 갔고 비월은 사장에게 혼이 났다.
“……내 이 장사 10년째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
자초지종을 들은 사장이 허탈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주 가끔 놀라서 뺨 싸대기를 날리는 경우는 있긴 해도 아르바이트생을 맨주먹으로 기절시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소! 그것도 저런 여자애가!”
“…나도 그렇습니다.”
로드가 말했다. 비월은 ‘송구하옵니다!’를 외치며 연신 용서를 빌고 있었다. 사장이 짜증스럽게 외쳤다.
“아, 송구고 자시고 장사 다 망쳤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소녀가 어떻게 하면 되겠사옵니까? 송구스럽지만 가진 돈은 없사옵니다.”
“헹,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사장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몸뚱이로 갚는 수밖에.”
“……!”
그리고 잠시 후.
“아하하하핫! 뭐야, 그게!”
하연이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월은 귀신분장을 하고 있었다. 짙은 화장을 하고, 흑발을 머리 앞으로 길게 내려뜨려 유령 밴시의 흉내를 냈는데 로드가 보기엔 밴시보다는 처녀귀신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음. 그래서 네가 그 귀신 역할을 대신 하는 거지?”
로드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녀는 분장이 어색한 듯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그렇고 귀신 분장을 해도 저렇게 예쁘냐…….’
과연 저런 모습에 사람들이 겁을 먹을지 의문이었다.
“좋아, 비월. 연습 삼아 날 놀라게 해봐.”
“……예? 어, 어떻게 하면 되겠사옵니까?”
“그런 건 네가 정하는 거지.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어떻게 등장하면 가장 무서워할지 떠올려보는 거야.”
비월은 평생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역할은 처음이었기에 오랫동안 고민했다. 잠시 후 그녀가 결심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하는 거야?'
그녀가 두 팔을 머리 위로 엉거주춤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흥…….”
“푸, 푸훗!”
“푸하하하하하하하!”
진지해지려했던 로드도 결국 참지 못하고 하연의 옆에서 격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연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웃으며 등으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소녀는 진지하옵니다.”
비월이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오호호호홋! 월아 너 진짜 진짜 너무 웃겨! 하긴 평생 검만 잡은 검순이가 뭘 알겠니? 꺄르르르르륵!”
“……연아.”
로드도 애써 웃음을 멈추고 헐떡였다. 기껏 사람을 놀래는 방법을 떠올린 게 ‘어흥.’ 이라니,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두 시간 정도면 아르바이트생이 돌아온다니까, 그때까지만 힘내.”
“……예.”
*
“무슨 공포 체험이 이래? 하나도 재미없잖아.”
동굴 길을 걷고 있는 한 남자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게 된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 인간들의 공포 따위.”
라고 말하는 엘프의 허리춤에는 다트게임에서 딴 인형이 소중하게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마지막 지점까지 도착했다.
“에이, 벌써 끝이야?”
남자가 기도 안찬다는 듯 말했다.
“돈 아깝게! 완전 사기잖아?”
“흥, 역시 인간들 따위.”
“당장 사장에게 가서 따지죠. 엘프 형씨.”
“그러도록 하지. 인간.”
두 사람이 화가 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 순간, 이 공포체험의 하이라이트. 완전히 방심한 타이밍에 바닥이 열리며 귀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우와악!”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미모의 귀신은 어색하게 두 팔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 어흥.”
“…….”
“…….”
멍하니 비월을 바라보던 두 남자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비월이 깜짝 놀라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놀라게 해서 송구하옵니다.”
‘…미, 미친 듯이 귀엽다.’
‘…이, 인간 따위가 귀엽다니!’
체험을 마친 두 사람은 홀린 듯한 얼굴로 출구로 걸어 나왔다.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단 사장이 손을 비비적거리며 두 손님에게 다가왔다.
“어, 어떠셨습니까? 마지막 아이 잘하던가요?”
불안한 듯 묻는 사장의 물음에 두 남자는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실로 훌륭했소.”
“흥, 인간들은 싫지만 인간여자는 좋았다.”
“……그게 뭔 소리요? 형씨. 아무튼 좋았소!”
“다, 다행이군요.”
사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보기엔 연기가 형편없었는데 의외로 손님들에게는 먹히는 모양이었다.
남자와 엘프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그 깜찍한 ‘어흥’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형씨.”
남자가 엘프를 바라보았다.
“…인간.”
엘프 또한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 마주본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손을 착 맞잡았다.
남자들 사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는가. 그들은 다시 함께 지하던전 공포체험 줄을 서러 갔다.
============================ 작품 후기 ============================
T스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팬클럽 회장님 오셨네요
sppedcup / ㅠㅠㅠ
푸른물결2 / 여기 엘프분이 또 계시는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알테니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도치 않게 치명타를 가했다.
에프론 / 비월 ㅠㅠ
연리목 / 히익; 왜 제 소설을 드세요 엘프님
민트레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들;
쉐르나 / 아니에요 ^^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물주아자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들 단체로
아프게했어 / 사실상 회피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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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으아앙 ㅠㅠ 츤데레가 아니라니.. 그 대사 이후 추천을 눌려주시는게 답 아닌가요!
@니알라토텝 / 세상에
@로아리아 / 평범하게 생겼답니다. 특징은 주근깨
@天空意行劍 / 시공자가 둘이면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