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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69화 (16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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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백제 소녀들과 헤어져 밖으로 나온 로드는 다시 축제의 인파속에 몸을 맡겼다.

한 식당 앞에서는 많이 먹기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역시 축제에서는 빠질 수 없는 종류의 이벤트였다. 거대한 덩치들이 테이블에 앉아 팬케이크를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었다.

‘흐음, 우리 베아가 여기 나왔다면 볼만 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딱 보였다. 정말로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귀퉁이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팬케이크를 두 손에 들고는 한 입에 쏙 넣었다. 그녀의 뺨이 몽실몽실 움직였다.

“꺄아아아아!”

“귀여워어어어!”

벌써부터 추종자들이 생겼는지 사방에서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들이 쏟아졌다. 역시 먹방계의 최강자. 먹는 속도는 다소 느릴지 몰라도 정말 야무지게 먹었다.

“하하하하! 역시 내 라이벌 답소! 베아 선배!”

그리고 그 옆의 테이블에는 뜬금없이 피닉스가 앉아 있었다. 그도 대화에 참가한 듯 했다.

‘……그러니까 대체 왜 베아가 네 선배냐니깐.’

“오늘 이 대회를 승리로 장식하여 황동파의 이름을 널리 떨치리라!”

두 사람의 기세는 무서웠다. 팬케이크를 굽는 요리사들이 쩔쩔 맬 정도로 접시가 빠르게 비워졌다.

“으으!”

“더, 더 이상은……!”

시간이 지나며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멈추지 않았다. 똑같은 속도로, 끊임없이, 입안으로 팬케이크를 집어넣고 있었다. 마치 한계 없이 음식을 삭제시키는 기계 같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피닉스와 베아트리체 두 사람. 피닉스도 나름 분발하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이었음에도 음식이 끝도 없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끄윽! 지, 질려……!”

그러나 곧 그에게도 한계가 왔다. 이제 그에게 밀가루는 세상 그 무엇보다 끔찍한 물질이었다. 밀가루 냄새를 맡고 고통스러워하던 그가 한입 먹은 팬케이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나자빠졌다. 그리곤 ‘우웨엑!’소리를 내며 구토를 해댔다. 사실상의 패배선언이었다.

“……?”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갸웃하며 먹던 팬케이크를 입안에 마저 넣었다. 사회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최종 우승자는 우리의 귀검 단장!”

“오오오오오오오!”

로드도 웃는 얼굴로 따라 박수를 쳤다. 환호성이 이는 와중에도 그녀는 팬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위장에 들어간 밀가루나 본인 몸무게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자이신 귀검 단장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10분 후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베아트리체 님!”

베아트리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무대였다.

‘잘 놀고 있네.’

그녀를 데리고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저 빽빽한 인파를 뚫고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피닉스도 곁에 있으니 로드는 인파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로드는 조금 더 걸어 상업지구로 넘어갔다. 역시 축제의 중심은 전통적인 번화가인 이곳이었다. 중앙 강당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상업지구의 각 클랜들은 자기들의 개성을 살려서 여러 점포를 열었다. 모험가 연합은 보물찾기, 수인 연합회는 동물 카페, 더 인텔리전스는 희귀 서적 박람회 등 각자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있었다. 로드가 수많은 볼거리들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저리 비켜! 비켜!”

한 사내가 사람들을 밀치며 달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척 봐도 값비싸 보이는 여성용 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로드는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듯 했다. 소매치기야 이곳에선 흔한 일상이었다.

“아, 비키란 말 안 들려?”

그의 한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무기를 본 주위 관광객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언더하임 사람은 아니군.’

힘으로 물건을 강탈한 후, 저렇게 요란하게 사람들을 위협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하수 중에 하수였다. 아마 저런 사람은 언더하임에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며 일직선으로 쇄도해온 투사체가 남자의 뒤통수를 퍽! 소리 나게 때렸다. 남자는 바닥에 엉망으로 엎어졌다. 그가 들고있던 가방도 떨어지며 값비싼 장신구들이 흘러나왔다.

“……끄으으! 누구야?”

그가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소리쳤다. 그때 그의 머리위로 가지런히 모인 두 발이 떨어졌다. 쿵! 남자는 그대로 지면에 이마를 부딪쳐 기절했다.

“으휴.”

한숨을 쉰 빨간 머리의 소녀가 남자의 머리위에서 내려왔다.

‘유, 유니벨?’

그녀는 이곳에서도 왕실 정복차림이었다. 한 팔에는 서류철을, 목에는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관리자로서 축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으, 짜증나아. 무슨 사고가 한 시간에 두 세 번씩 일어나?”

“내 가방! 내 가방!”

화려한 겉옷을 걸친 중년의 여인이 인파속에서 뛰쳐나왔다. 유니벨은 남자로부터 빼앗은 가방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아이고! 내 가방! 이게 얼마짜린데!”

그녀가 가방을 소중히 끌어안다가 날 선 시선을 유니벨에게로 돌렸다.

“당신, 축제 운영자죠? 질 낮은 평민들을 저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면 어떡해요? 가죽이 상했으면 어쩔 뻔 했어?”

“…….”

이 상황을 지켜보던 로드와 몇몇 언더하임 토박이들은 몸을 떨었다. 유니벨의 성질을 건드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부인.”

유니벨이 싱긋 웃었다.

“죄송해요, 다음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쯧쯧! 똑바로 하란 말이에요!”

그녀가 매몰차게 등을 돌리며 떠나갔다.

‘오오, 성장했구나. 유니벨!’

로드는 감탄했다. 그런데 그녀가 짓고 있는 음침한 미소가 심상치 않았다. 로드의 시선에 그녀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모습이 보였다.

곧바로 펑! 하는 작은 폭음이 들렸다.

“끼야아아아아악! 뭐야, 이거! 내 가방이!”

아까 그 아줌마의 꽥꽥거리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유니벨은 음침하게 웃으며 뒤늦게 달려온 병사들에게 기절시킨 사내의 신병을 인도했다.

‘……성질 머리는 여전하군.’

로드가 피식 웃었다. 아마 몰래 가방에 약한 출력의 폭탄을 만들어 넣어뒀을 것이다.

“너희 진짜 일 제대로 안 할래? 우리가 어디 소매치기 한 두 번 상대해?”

일이 정리되자 유니벨은 늦게 도착한 병사들을 열심히 털기 시작했다. 관중 속에 있던 로드는 슬쩍 물러났다. 그럼 계속 수고하렴. 유니벨.

“……어?”

그때 유니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거기 너, 스톱!”

로드가 설마 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유니벨이 이쪽을 딱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훗.”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 성큼 다가왔다. 로드가 못들은 척 등을 돌리려는데.

“거기서, 까만 로브! 지금 등 돌리고 있는 너!”

이번에도 지목당해 버렸다. 로드가 포기한 듯 몸을 되돌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유니벨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너 팬더지?”

“……어떻게 알았어? 로브를 입고 있는데.”

로드가 후드를 걷어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관중들 사이에서 도망치려는 그 어눌한 꼴을 보니까 딱 너 같더라.”

“……음.”

로드가 우울한 침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유니벨이 볼을 부풀리며 옆구리를 꼬집었다.

“야!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내가 찾아낸 게 그렇게 불만이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면 됐네.”

그녀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특별히 레이디를 에스코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너 일하는 중 아니었어?”

유니벨은 잠시 기다려 보라는 듯 눈을 찡긋하며 팔에 끼고 있던 서류판을 병사들에게 던졌다.

“나 지금부터 휴식이니까 찾지 마.”

“재, 재정관 님? 이 바쁜 와중에 갑자기……!”

유니벨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 이 썩을 것들이 상관한테 말 하는 본새 봐. 나는 허구한 날 일만 하는 기계야? 응? 나도 좀 쉬자고오!”

병사들도 그 이상 말리지는 못했다. 유니벨이 지금까지 남들 보다 배로 고생한 것도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그녀를 더 자극하는 건 무서웠다.

“됐지? 출발!”

유니벨은 사뿐한 걸음걸이로 로드의 옷깃을 잡고 이끌었다.

‘크흑, 간만에 느긋하게 혼자 다니려고 했는데.’

집무실에서 탈출한 자유인이었던 로드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주도권을 잃은 짐꾼으로 전락해 있었다. 쇼핑본능이 발동한 유니벨이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온갖 물건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이건 어때? 어울려?”

그녀가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채 깜찍한 포즈를 취했다. 로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할머니 같아.”

“야!”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아니, 네가 할머니 같다는 게 아니라 네 패션 센스 말이야. 너 예전에 머리 풀고 원피스입고 왔을 때, 네가 고른 옷 아니었지?”

유니벨이 ‘윽.’ 하며 찔리는 표정을 지었다.

“……내, 내 센스가 뭐 어때서!”

“휴우, 봐봐.”

로드가 진열대를 뒤적거리다가 치렁거리는 게 아닌 짧고 심플한 외형에 붉은빛이 감도는 파스톤 칼라의 스카프를 꺼냈다. 그리곤 유니벨의 목에 직접 둘러주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유니벨은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스카프를 다 매준 로드가 한 발짝 물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네. 넌 머리색이 워낙 튀니까 웬만하면 색상 매치가 되는 걸 고르는 게 좋을 거야. 애초에 정복에 스카프 자체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나중에 사복 입을 때 두르면 되겠지.”

“……아, 응.”

그녀는 바로 매장 상인에게 가서 값을 치렀다.

“거울 안 봐도 돼?”

“응.”

그녀가 수줍게 대답하며 스카프를 만지작거렸다.

“어울린다고 해줬으니까.”

‘……헉!’

순간 유니벨의 뒤로 꽃밭이 피어오르는 배경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로드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친놈아. 진정해라. 키가 좀 컸다지만 아직은 위험해.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어. 조금만 더 키워서…… 가 아니라!’

“팬더 뭐해? 빨리 와.”

“그, 그래.”

두 사람은 다시 거리를 걸었다. 그러던 중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니벨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나 저거 갖고 싶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트 인형 뽑기 매장에 있는 인형이었다. 로드가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왜 하필 팬더 인형이냐?’

============================ 작품 후기 ============================

snow12 / ㅋㅋㅋㅋ 정말이네요

왜이리들다재밌지 / 비월양!

Gneji / 이번편의 최대 시무룩은 애니록스가아닌 사실은 귀신 알바...

김가트 / 어흐으응!

알테니아 / 좋아, 암살성공!

에레크 라이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oyanEl / 공포의 포효가 아닌 심쿵의 포효죠

물주아자씨 / 흥! 인간의 코멘은 별로였지만 추천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로리콤MK / 그러고보니 비월의 펀치를 맞고도 살아남은 아르바이트생은 뭐죠? 영입이 시급합니다

남호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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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엘베르 / 대형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ㅠㅠ 자꾸 오타가 제 3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T스톤 / 비월이 놀라는 모습을 본 모에사였군요 'X'

@라퓨테르 / 비월이 이걸 또 해냅니다 (응?

@니알라토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으세요?

@...(-1)... / 샌드백 ㅠㅠㅠ 게다가 부정은 안하신다니 은근히 진실되신 분이시군요!

@로아리아 / 이시스에게 에덴으로 데려가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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