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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침투
로드는 보병 편제는 언더하임의 피닉스에게 맡기고, 기병만으로 이루어진 소수 정예만 이끌고 내려갔다. 두 주력 영웅인 유니벨과 베아트리체를 대동한 채였다.
“……야, 팬더.”
로드의 뒤에서 말을 몰고 있는 유니벨은 출발부터 기분이 그다지 안 좋은 듯 했다.
“왜 그래?”
“저 여자는 또 뭐야?”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니벨, 베아트리체 외에도 새로운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비월이라 하옵니다. 잘 부탁드리겠사옵니다.”
간만에 동양풍의 싸울아비 제복을 빼입고 검을 찬 그녀는 고고한 매력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흥, 네가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이번 일은 우리만으로도 충분하거든!”
“사실은 내가 부탁했어.”
로드가 말했다.
적은 소수 정예였고 세레스티나가 직접 나섰다면 틀림없이 아르곤의 이름 높은 영웅들도 대거 참전했을 터, 기존의 어비스 멤버들로는 다소 화력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이 얹혀사는 입장이온지라, 소녀의 미천한 칼놀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합류하였사옵니다.”
“흥, 밥값이나 해주면 다행이야.”
로드는 우선 진행방향을 알브헤임의 ‘엘프의 숲’으로 설정했다. 아직 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 세레스티나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을 기점으로 다른 방향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베틀린에서 도하했으면 게노세르크든 알브헤임이든 어느 쪽으로도 들어올 수 있겠지.’
목표가 무엇인지, 어디로 움직였는지, 규모는 얼마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적. 로드는 조금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여태까지는 어떤 국가가 상대든 풍부한 정보량으로 적의 상황을 보면서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아르곤전은 상황이 달랐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사실 이게 정상이야. 다른 플레이어들 모두 이런 중압감 속에서 싸워왔겠지.’
스파이들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각지에 퍼트려 둔 스파이들이 어비스 본토에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실상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힘들 것이다. 정보가 부족한 전투. 로드는 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자, 생각하자. 평상시보다 몇 배는 더 머리를 굴려야 해.’
로드는 한 손으로는 애룡 드레이크의 고삐를 쥐고 남은 한 손으로는 지휘관 창을 열었다. 에덴의 지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대륙의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섬나라 아르곤은 여태껏 대륙의 주목을 받을만한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상 처음으로 병력을 대륙에 보낸 것이 아르곤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는 어비스인 것이다. 로드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이나 영토 확장 같은 평범한 이유가 아닌, 틀림없이 다른 목적이 있을 거야.’
로드의 시선이 어비스의 영토로 쪽으로 움직였다.
베틀린은 수도인 언더하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그리고 그곳에서도 완전히 끄트머리에 위치한 별 볼일 없는 어촌이 습격당한 것이라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 공백의 시간동안 아르곤군이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면 꽤 먼 거리 까지 이동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쯤 있는 걸까?
로드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지휘관 창에 새로운 알림이 나타났다.
- ‘파스칼 아틀루스’님이 ‘로드 폴렌티아’님께 1:1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
‘……이카루스의 파스칼? 이 녀석이 왜 또?’
세레스티나에 이어 파스칼이라니. 로드가 급히 팔을 들어올렸다.
“다들 멈춰. 여기서 15분 정도 휴식한다.”
“…어? 벌써?”
휴식을 선언한 로드는 가신들에겐 적당한 핑계를 대고 혼자 몰래 빠져나갔다. 인적이 드문 곳에 들어온 로드는 커다란 나무 뒤에 등을 기대고 앉아 대화 승낙버튼을 눌렀다.
“로드! 오랜만이데이.”
새로운 화면이 떠오르며 깃털 망토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괴이한 차림의 남자, 파스칼이 팔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아예 존대는 생략하는 듯 했다.
“무슨 용무죠?”
“아따, 표정 한 번 앵간히 살벌하네. 제안할 게 있어서 연락했구마.”
“…제안?”
적대국인 나라가 갑자기 제안이라니. 로드는 호기심이 생겼다.
“말씀해보시지요. 설마 휴전이나 정전협정 같은 걸 기대하고 계셨다면…….”
“마, 그런 거랑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파스칼이 중요한 이야기인 마냥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하게 말했다.
“니 지금 밖인 것 같은데, 아르곤 잡으러 가는 거 맞제?”
파스칼의 물음에 로드의 몸이 일순간 바짝 굳어졌다.
“마, 마, 그리 경계 안 해도 된다카이. 내는 제안을 하려고 하는기다.”
“…….”
로드는 경계심을 거두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제안입니까?”
“내가 아르곤의 침공을 막아낼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겠데이.”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랑 협력하자. 아르곤이 대륙 진출을 하기 전에 여기서 끝장을 보는 기다. 그때까지만 공동전선을 펼치는 거지.”
‘……하나의 적을 처치하기 위한 임시동맹.’
로드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파스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직 너무 제안이 두루뭉술한데요? 제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에헤이, 그런 말에 넘어갈 줄 아나?”
그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선수들끼리 이라기가? 내야 말로 니가 정보만 먹고 내빼면 손해아이가?”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배경도 모르고 하겠다고 덥석 제안을 수락했다가, 사실은 당신의 함정이면 어쩌죠? 아르곤과 짜고 치는 속임수일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파스칼 쪽에서 먼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기사 그것도 그렇제. 사실은 아르곤 측에서 내한테 제안이 왔었데이.”
아르곤이 이카루스에게? 로드는 크게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내는 아르곤의 그 제안을 역으로 이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니가 협력해준다면 아르곤을 말살 할 수 있데이.”
“제게 그 제안을 함으로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요?”
“솔직히 말하면, 이 계획은 내 쪽이 더 유리하다.”
파스칼이 막힘없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대출혈 서비스를 해주자면, 세레스티나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있는 것 같데이.”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는 그녀의 멸망 보너스를 노리고 있구마. 물론 공동전선이니까 니가 먹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서로를 이용하는 거지. 그리고 로드 니는 꼭 멸망 보너스가 아니어도 아르곤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한숨 돌리는 거 아이가?”
그건 맞는 말이다. 이미 멸망 보너스는 분에 넘칠 만큼 충분히 획득했고, 이 혜택들을 완전히 제 것으로 발휘하기 위한 평화, 그리고 시간을 로드는 원하고 있었다. 로드는 파스칼의 얼굴을 보았다. 거짓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의 얼굴에는 철저한 탐욕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로드는 판단이 섰다.
“……좋습니다. 아르곤을 잡을 때까지만, 공동전선을 펼치죠.”
파스칼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하하! 잘 생각했데이.”
“그럼 이제 모든 상황을 말씀해 주시죠.”
파스칼이 와인 한잔으로 가볍게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아르곤은 베틀린에서 오고 있는 게 아이다.”
“…예?”
“아르곤은 내 본토에서 올라올 끼라.”
“……!”
파스칼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세레스티나가 자신에게 긴밀하게 1:1대화로 연락을 했다는 취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제안은 하나. ‘어비스를 칠 테니 길을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거부할 이유는 없었데이. 로드 니랑은 적대관계니까 다른 나라끼리 한바탕 해주면 좋은 거 아이겠나? 대가로 군량곡도 나눠준다니까 냉큼 수락했다, 마.”
“그런데 왜 제게 다시 이 사실을?”
“사람은 말이제, 자연스럽게 더 큰 떡고물에 욕심이 생기는 기다.”
파스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니네 둘이 싸우면 내가 얻는 건 간접적인 이득이데이. 하지만 내가 여기서 아르곤을 잡으면 멸망 보너스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거 아이겠나?”
오호, 이렇게 나온 건가.
“그녀는 직접 군세를 이끌고 넘어왔지. 그리고 내 영토를 거쳐 바로 알브헤임으로 갈끼라. 베틀린에서 출발해서 게노세르크를 거치는 것 보다야 내 영토를 가로질러 가는 게 최단루트아이겠나?”
“네, 그렇죠.”
로드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어비스군이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어촌과 수비대 괴멸 이후로는 완전히 영토 내에서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발각되지 않았다.
사실은 그들이 어비스의 영토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배를 타고 베틀린에서 내려 공격한 것은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페이크, 만약 다시 배에 올라타 이카루스의 영토에 내려서 바로 알브헤임 영토로 넘어가 버린다면? 게노세르크 영토와 그 길목을 방비하는 병력들을 농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로드는 속으로 안도했다. 파스칼이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 했다.
‘……의도치 않게 중요한 정보들을 얻었군.’
“잘 봐라.”
파스칼이 자신의 지휘관 창을 움직여 로드가 볼 수 있도록 했다.
“내 본토에서 알브헤임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는 몇 군데 있데이. 아르곤에서 어느 루트로 가겠다고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가장 주요한 포인트는 이 두 곳.”
파스칼이 손가락으로 직접 두 곳을 탁 탁 가리켰다.
“험한 산길을 거치지 않고 기마대가 바로 달려 나갈 수 있는 곳이데이. 니가 이 두 지점에 병력을 매복시키고, 내도 후방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거구마. 니네 쪽에서 매복을 걸어 전투를 시작하면 내 병력들이 올라가서 놈들의 등을 치는 기다. 아르곤 애들 숫자도 얼마 안 될테니, 양동에 당하면 그대로 끔살아이겠나.”
그가 씨익 웃었다.
“전,후방을 틀어막고 아르곤을 아웃시키는 거데이. 물론 아르곤의 멸망보너스는 난전 중에 먼저 잡는 쪽이 임자고. 깔끔하지 않나?”
“……으음.”
확실히 파스칼에게 유리한 전략이었다. 매복을 취할 것이긴 하나 전면의 쌩쌩한 아르곤병들을 상대하는 건 어비스군이다. 그리고 아르곤군이 퇴각한다면 후방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즉 파스칼이 도망치는 세레스티나를 붙잡아 멸망보너스를 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이긴 했지만 파스칼의 탐욕이 직접 드러나는 부분이라 오히려 신뢰성이 있었다.
‘……어쩐다?’
장단이 명확했다. 다만 파스칼의 말처럼 어느 쪽으로 결판이 나도, 이쪽은 이쪽대로 아르곤을 막아냈으니 좋다. 또한 이카루스가 아르곤의 멸망 보너스를 취하더라도, 특화병종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아르곤의 영토가 필요하다. 아르곤 섬은 바다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으니 이카루스가 갑자기 위협적으로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로드는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요소들은 제쳐두더라도, 역시 이 계획을 포기하기엔 떡밥이 너무 컸다. 세레스티나가 어떤 전략을 쓸지, 아르곤의 화력이 어느 정도로 강성할지는 모르지만 잭팟이 터지면 그녀를 여기서 끝장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드가 마침내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말이 통하는구마.”
파스칼이 씩 웃었다.
“빠르면 이틀에서 삼일 안에 아르곤 군이 넘어갈끼다. 내가 말한 위치에 매복병을 배치하레이. 내도 몰래 움직이고 있을 테니.”
대화가 끝나자마자 로드는 즉시 통신 수정구로 정보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게노세르크와 알브헤임 근방을 커버하는 키리안군의 병력 배치에 변화를 주도록 했다. 기존의 병력 체계는 게노세르크 영토 전반에 넓게 퍼져있어서 각개 격파 당하기 쉬웠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병력을 기습 포인트에 집중 배치시키도록 했다.
‘결국 이번 전투는 키리안이 얼마나 잘해주느냐에 달렸구나.’
아마 전투는 주력 병력의 지원 없이 키리안군으로만 준비될 것이었다. 그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자신과 이 세 명의 에이스들이 도착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파스칼의 배신이라, 전투 시작도 전에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군.’
로드는 여러 생각들을 하며 다시 드레이크에 올라탔다.
============================ 작품 후기 ============================
와아; 오늘 날씨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덥고 습하니 길 가는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어깨라도 부딪치면 바로 주먹부터 날아갈 표정들 ㅠㅠ 무섭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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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시키이로하스 / 팩트라서 반박할수가 없군요... 지구의 인간들에 비하면 에덴에 사는 인간들은 귀엽고 착한 수준 ㅠㅠ
ZzeRoN / 흐뭇X100!!!
알테니아 / 으으음, 몹시 불순한 단어가 연상됩니다만 하하... 그리고 EX는 뭡니까! 비월에게 대륙파괴범 역할을 맡기시려고..
잘되기를 / 감사합니다!
왜이리들다재밌지 / ㅠㅠ 지구 최고 정상인은 고인 자무카인듯;
니알라토텝 / ㅋㅋㅋㅋㅋㅋ 위험하신 분입니다
로리콤MK / 무시무시하군요. 어서 로리파도 분발해야 할 (퍽!
지리산의늑대 / 히이익...
붉은정의 /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자꾸 처형을...
마스터칼솔럼 / 어휴 아닙니다! 제 돈으로 사먹어봐야죠! 좋은 제품 추천해주신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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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리아 / 허허, 휴재후 보는거라 조금 뜬금없을수도 있겠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