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80화 (180/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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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티나 윈슬렛

제로스의 몸이 준비자세 없이 뻗어나가 대뜸 베아트리체의 검을 후려갈겼다. 까아아아앙! 머릿속이 하얗게 될 것만 같은 충격이 손바닥을 타고 뇌까지 전해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더 강해졌다.’

까아앙! 깡! 까앙! 두 무기가 엄청난 속도로 부딪치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제로스의 창술은 이제 ‘무예’의 경치를 초월해 있었다. 짜여진 전술이 아닌 모든 공격과 회피, 발동작과 허리의 각도, 손가락 마디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을 상황과 적의 반응에 맞춰 본능적인 임기응변을 발휘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제대로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밀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단순 공격력에서는 베아트리체가 밀린다. 역시 제로스인가…….’

다행히 제로스는 베아트리체를 상대하는 것 외에 다른 곳에는 신경을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그녀가 묶여있는 이상 세 사람 만으로 몰려오는 용기사들을 상대해야했다. 서서히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비월은 상처를 입었는지 허리 쪽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유니벨 또한 마력을 너무 많이 쏟아낸 반동으로 숨을 연신 헐떡이고 있었다.

‘오래 버티진 못해. 무슨 수라도 써야겠는데.’

화르륵! 드레이크가 쏘아낸 브레스가 로드에게 날아왔다. 다급히 몸을 공처럼 굴러서 피해낸 로드가 일어나며 단검을 던졌다. 태앵! 드레이크의 눈을 노렸으나 비늘에 맞고 튕겨나갔다.

로드가 다음 단검을 꺼내려 허리춤에 손을 댔으나 이미 전량 사용한 뒤였다. 바로 뒤에서 드레이크를 탄 용기사가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로드는 몸을 세우자마자 또 고개를 숙여 피해내야했다.

‘이거 정말 미치겠군! 아주 잠깐이라도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순간적으로 로드의 머릿속에 켈타인의 ‘워프게이트’가 떠올랐으나 이런 난전 상황에서 소환을 시도하면 바로 적의 공격에 의해 파괴당할 것이었다.

그때 로드의 눈에 전면을 가로막고 있는 세계수의 나무줄기가 들어왔다. 앞뒤 잴 때가 아니라 뭐든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로드는 즉시 지휘관 창을 열어 티아의 마력 신호 장치에 새로운 신호를 입력했다. 녹색 신호는 ‘이능의 사용’을 뜻했다. 이미 티아는 계속해서 이능을 사용해 도와주고 있었지만, 로드는 굳이 한 번 더 이 신호를 보낸 것이다.

‘티아가 이 의도를 알아차려 준다면…….’

쿠르릉! 마침 지면을 뚫고 나무줄기 하나가 높게 솟아올랐다. 그것은 몸을 눕혀 채찍처럼 휘둘러질것이라 생각했으니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로드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다들 이쪽으로 와! 빨리!”

로드의 외침에 세 가신들이 바로 상대하는 적을 뿌리치고 냅다 달려왔다. 베아트리체는 유체화를 써서 제로스의 공세에서 벗어났고 유니벨이 폭탄을 던져 연막을 일으켰다. 목숨이 초단위로 오고가는 전장에서 그녀들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이 세삼 느껴졌다.

“자, 왔어!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유니벨이 계속해서 폭발로 연막을 만들어내며 용기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다들 이쪽으로 와서 바짝 붙어!”

그렇게 말하며 로드가 양 옆에 있던 유니벨과 비월의 몸을 두 팔로 와락 껴안아 자신의 몸에 꼭 붙였다. 깜짝 놀란 유니벨이 반사적으로 가슴을 때려서 아팠지만 두 여인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채취는 황홀했다. 로드는 용기사들을 견제하며 가장 늦게 합류한 베아트리체를 전면에 배치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유니벨이 그렇게 묻기가 무섭게 나무줄기가 움직였다.

“꺄아아아악!”

후우웅! 나무줄기가 휘둘러지면서 줄기 끝에 있던 네 사람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베아트리체가 제일 앞에서 마력을 일으켜 쿠션역할을 해주었다.

네 사람은 그 지점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떨어졌다.

“다들 괜찮아?”

로드가 물었다. 가신들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용기사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들을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때 새로운 나무줄기가 그들의 앞으로 솟아 올랐다.

“자, 한 번 더 날아날게.”

“……탑승감 구려. 꼭 이 방법밖에 없는 거야?”

네 사람은 같은 방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용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티아가 몇 개의 줄기를 더 소환해 앞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고작 몇 분 더 버는 정도네!”

유니벨이 칭얼거렸다.

“하지만 그대로 갔다면 우린 일분 안에 다 죽었을 걸.”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옵서 구해주셨습니다.”

비월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녀는 옷깃을 찢어 허리 쪽에 난 상처를 묶어 지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로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두두두두두두! 뒤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타이밍 맞게 아군 기병대가 도착해 온 것이다.

“폐하와 장군들을 지켜라!”

아르곤의 용기사들이 움직이는 줄기들을 피해 이리저리 돌아가는 사이, 아군 기마대는 일직선으로 쭉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쟤, 쟤네들 뭐야? 너무 빠르잖아!”

유니벨이 슬슬 로드의 뒤로 기어들어오며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딱 서있어.”

아군 기마대 무리가 로드 일행들을 앞에서 확 갈라지며 그들을 지나쳐갔다. 기마들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한복판에 서있는 것은 꽤 스릴 있었다. 한편, 상대하는 용기사들도 돌격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기병들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콰콰콰콰콰쾅!

그리고 두 나라의 기병들이 중앙에서 충돌했다. 기병들끼리의 충돌은 보병들의 충돌과는 그 박력부터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용족 몬스터인 드레이크들의 돌파력이 더 강했으나, 먼 거리에서 달려드는 차지 공격은 드레이크나 기마나 두 쪽 모두 충격에 박살이 나는 것은 동일했다. 군세가 뒤엉키며 전황은 난전으로 접어들었다. 로드와 가신들은 간신히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와, 정말 죽을 뻔했다.’

목숨이 코앞에서 노려진 것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방금 상황에서는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르곤측에서는 상대 기병들의 난입으로 로드를 잡는 것이 힘들어지자 서서히 위쪽으로 후퇴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티아의 보병들까지 올라오면 곤란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확성구슬 있는 사람?”

물론 로드는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밀어붙여. 지금 우리가 공세를 멈추면 놈들은 바로 위그드라실로 향한다. 그 사태만은 막아야 해.”

로드의 지시에 부관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계속 공격하라!”

“물고 늘어져! 보병들이 올 때까지 버텨라!”

기병들끼리의 전투가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언제나 적의 선두에서 아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제로스 또한 체력 안배를 위해서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로드의 세 가신들도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순수한 힘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 전력을 다해 다해 싸우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지?”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천지를 뒤흔들 듯한 맹렬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어어어어어어!”

로드가 재빨리 귀를 막았다.

‘……뭐야? 드래곤 피어?’

그의 시야 아래에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공포 상태이상에 걸렸다는 알림창들이 정신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 드래곤 피어 다음엔 하늘에서 녹색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아르곤군과 붙어 싸우던 어비스 병사들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녹색 액체는 희뿌연 연기를 내뿜는 지독한 독극물이었다. 세계수의 몸체를 녹이며 들어가 아르곤과 어비스 병사들 사이에 독의 호수를 만들어냈다.

역한 산성의 냄새를 맡으며 로드가 고개를 들었다. 상공에 있는 것은 무려 ‘드래곤’이었다. 드레이크 같은 용족 몬스터가 아닌, 로드가 상상했던 순수한 드래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익룡을 연상케 하는 한 쌍의 거대한 날개는 전부 펼쳤을 때 몸보다 거대했고, 피부는 타액이 뚝뚝 흐르는 녹색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등에는 가시 같은 갈기가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그리그 그 위에는 놀랍게도 세레스티나가 타고 있었다. 아르곤의 세 번째 명장 이리아 또한 함께였다. 그는 용에서 떨어져 아군 진형으로 돌아갔다.

‘……세레스티나가 왜 저기에?’

로드의 동공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재빨리 아르곤 진형쪽으로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둘이나 있었다. 드래곤에 타고 있는 세레스티나와 병사들을 지휘하는 세레스티나.

마침 지휘하는 쪽의 세레스티나가 로브 후드를 벗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머리카락은 동일했지만 후드를 드러내니 얼굴이 조금 달랐다. 마침내 그녀가 모자와 가발까지 벗었다. 흰색 머리카락 아래로 물결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그녀는 아르곤의 군사 로엔이었다.

‘……제기랄, 대역이었군.’

마침 세레나의 1:1대화 신청이 들어왔다. 로드는 수락했다.

“또 보네, 로드.”

드래곤 위의 세레스티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드가 피식 웃으며 통신구를 들고 연락하는 척 대꾸했다.

“그 드래곤은 뭐지? 고대 퀘스트?”

“맞아.”

그녀는 순순히 수긍했다.

‘에이션트 클래스 퀘스트’.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줄여서 ‘고대 퀘스트’라고 부르는 이것은 문화시대 이후 플레이어들이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보상으로는 A급 수준의 고대 영웅들이나 마력 무구들을 획득할 수 있지만, 호화로운 보상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어려운 난이도로 악명 높았다.

“……이제야 알겠군. 너는 호위만 대동한 채 고대 퀘스트를 진행하고, 네 안전을 위해 대역과 나머지 병력들은 전부 위그드라실에 올려 보내 전쟁을 벌이도록 한거야. 눈속임 치고는 너무 거창한 거 아냐?”

“…그렇게 안 했으면 네가 속지 않았을 테니까.”

세레스티나의 복장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축제당일 그녀가 1:1 대화를 통해 로드에게 자신의 옷차림을 노출한 것 역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때부터 로드를 속이기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이었던 것이다.

전 병력을 위그드라실로 올려 보내 싸움 붙여 로드의 시선을 끈다. 이 모든 전투와 죽어나간 목숨들이 다 눈속임일 뿐이었다. 위그드라실의 중력 역전은 겸사겸사 로드의 목숨을 한 번 노려보는 시도를 했을 뿐, 정말 전력을 다해 이 작전만을 관철시킬 작정이었다면 대역이 아닌 세레스티나 본인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진짜 목적은 저 고대 퀘스트였다.

로드는 드래곤의 정보를 확인했다. 공중에 있더라도 이정도 거리라면 스테이터스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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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니드호그

소속 : 아르곤

직위 : 없음

종족 : 드래곤

무력등급 : (A)*

통솔등급 : (D)

지략등급 : (E)

정치등급 : (E)

A급 무력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독을 뒤집어 쓴 자.

니드호그는 그린드래곤들 중에서도 독에 대한 친화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돌연변이로, 온 몸이 액성독 그 자체입니다. 몸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독을 자연 생성하며, 해독 또한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체가 잘려나가도 독을 생성하는 것만으로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특별한 공격이 아니면 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입에서 극독을 내뿜는 포이즌 브레스입니다.

<세계수의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유물의 힘으로 이 저주를 해소할 경우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영웅은 고대의 존재입니다. 플레이어와는 용의 계약을 맺었으나 맹목적으로 충성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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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이다. 그리고 리리스와 같은 고대의 존재로군.’

그녀는 바로 이 드래곤을 얻기 위해 위그드라실까지 온 것이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로드는 생각했다.

“로드. 계속 싸울 생각이야?”

세레스티나가 물었다.

“더 이상의 전투는 서로 의미 없을 텐데.”

“아니.”

로드가 손가락을 허공에 뻗어 지휘관 창을 움직였다.

“덕분에 온갖 수모는 다 겪었으니, 이쪽도 응당 보답을 해야겠지.”

============================ 작품 후기 ============================

T스톤 / 아뇨, 아뇨. 아이템입니다. 정화의 창이라고... 만지면 기분이 몹시 나빠지는

알테니아 / 넵! 아직 한분만 활약하고 있지 않지만(?) 그분도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활약하실 겁니다.

니알라토텝 / ㅠㅠㅠㅠ 전작은 그렇게 로크미읍읍으로 갔지만... 적어도 주신전은 조아라에서 완결을 내야겠지요

지리산의늑대 / 그렇군요. 컨셉자체가 정예병들의 대결이다 보니 ㅜㅜ 다음 전쟁 에피소드에서는 또 대규모 전투가 이어질테니 기대해주세요! 그건 그렇고 마지막에 깨알같은 비월디스 ㅋㅋㅋㅋㅋ

etb08222 / 집에 있어용

클로얀느 / 전작은 '왕들의게임'으로 검색하시면 나와요~

ZzeRoN / M!!

하루의하루 / 히이익...

로아리아 / 무슨 말씀을! 남캐들이 저래도 저는 무척 건전한, 맞는것과 때리는것 둘다 좋아하는... 이 아니라 건전한 사람입니다.

로리콤MK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도레미파솔솔 / 하앍! 비월!

아프게했어 / 오오, 오래간만이네요! 코멘트 감사합니다^^

켄케루 / 그, 그렇군요.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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