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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81화 (18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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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티나 윈슬렛

세레스티나가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의 승산은 거의 없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야.”

이번 전투에서 결코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이렇게 확정패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다. 로드가 팔을 일자로 척 펼치는 것을 신호로 궁병들의 화살이 하늘을 타고 날아갔다.

퍼버버벅! 화살들이 니드호그의 몸에 꽂혔지만, 이내 역한 연기를 내며 화살촉이 녹아버렸다.

“크크, 그래!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피차 승부는 내야 하지 않겠냐?”

아르곤 진형의 제로스가 창을 빙빙 돌리며 선두로 걸어 나왔다. 레온과 이리아도 그 뒤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그때 세레스티나가 확성구슬을 들고 말했다.

“이미 우리의 목표는 달성했고, 소모전을 할 이유는 없어. 과인이 호위할 것이니 위그드라실 꼭대기로 후퇴하라.”

“……쳇!”

제로스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지만 순순히 등을 돌렸다. 나머지 영웅들도 등을 돌려 자신의 드레이크에 올라탔다.

“…폐하! 놈들이 도망칩니다!”

부관이 재빨리 로드에게 보고했다. 로드는 덤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버려 둬.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저쪽이야.”

“키아아아아악!”

니드호그가 뒤로 목을 크게 젖히더니 다시 한 번 포이즌 브레스를 토해냈다. 녹색 독극물이 원뿔형으로 방사되었다.

“저걸 잡지 못하면 못 쫓아가.”

독극물을 뒤집어쓴 병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아예 산성에 신체가 녹아들어가는 병사들도 있었다.

- 맹약의 폭주, 대공 폭격.

이번엔 어비스 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상에서 유니벨의 새빨간 강선들이 미사일처럼 뻗어나갔다. 니드호그는 두 팔을 엑스자로 감싸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퍼버버버버버벙! 붉은 장미가 드래곤의 몸 위에서 맹렬한 폭음을 일으키며 개화했다.

- 싸울아비류 오의, 청월(靑月).

니드호그가 폭발을 가드하고 있는 사이, 푸른 섬광이 니드호그의 날개 한쪽을 번쩍이며 지나갔다. 지상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월이 딸칵. 하고 검을 집어넣자, 푸른 섬광이 다시 빛을 발하며 날개 한쪽이 찢어졌다. 공중에 떠있는 니드호그의 균형이 기우뚱했다.

- 귀곡성(鬼哭聲).

“끼야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으로 베아트리체의 비명을 지르는 잿빛검기가 중심을 잃은 니드호그에게로 날아갔다.

‘잡았다.’

로드가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물리공격은 어떻게든 회복할지 몰라도 저런류의 저주 덩어리는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 과중력.

꾸우웅! 한 순간 잿빛검기의 끝이 아래쪽으로 틀어지며 니드호그의 발밑을 통과해 지나갔다. 위에 올라탄 세레스티나가 손바닥을 뻗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

세레스티나가 손을 내리며 물었다.

“괜한 도움이군. 필멸자에게 당할 정도로 어수룩하지는 않다. 용왕.”

니드호그가 대륙어로 말했다. 잘려나간 날개 단면에 물방울이 튀어 오르더니 액체화되어 원래의 날개 형태로 회복되었다.

“저자들을 오늘 한 놈도 남김없이 멸하리라.”

두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며 날아오른 니드호그가 포이즌 브레스를 연사하기 시작했다. 퍼벙! 퍼벙! 지면에서 녹색 물기둥이 솟구칠 때 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나갔다. 궁병들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역시 니드호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저 정도인데 A급이라고?’

A급이지만 로드는 말렉보다도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화력만 A급 정도이지. 공중을 날아다니는 기동성과 회복능력 때문에 잡기 까다로운 것을 고려한다면 거의 A+에 근접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유니벨을 비롯한 영웅들이 원거리 공격으로 견제하고 있었지만, 일반 병사들의 화력이 먹히지 않는 이상 상대하는 게 힘들었다.

‘……저게 바로 리리스와 같은 고대의 존재. 세레스티나가 목숨을 걸고 들어 올만 하네.’

로드는 고민했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쓰러트려야 하나? 온 몸이 액체화되어 있어 공격당해도 금세 신체를 회복해버린다. 독, 온 몸이 독인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때 로드의 머릿속을 한줄기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언더하임 축제에서 이브와 함께 시찰하다가 본 ‘정화의 창’.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특유의 정화의 기운 때문에 끔찍한 기분이 들던 무기였다. 만약 그걸 저 지독한 맹독 덩어리 몸체에 꽂아 넣을 수만 있다면…….

‘해보자. 어차피 지금 워프게이트는 세 네 번 정도밖에 못쓰니까 대규모 병력을 부를 수도 없어.’

망설일 시간에 움직이는 편이 낫다. 로드는 치엘로에게 1:1 대화를 거는 동시에, 주머니에서 꺼낸 통신 수정구로는 이브에게 연결했다. 잠시 후 지휘관창에서 대화를 수락했다는 알림창이 떠오르며, 마녀 모자를 쓴 보랏빛 머리의 소녀가 활짝 웃으며 양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안녕!”

“치엘로.”

“오빠네 나라 축제 재밌네요!”

그녀는 이미 잔뜩 쇼핑을 한 듯 양손에 가방이 한가득 있었다.

“……놀기 바쁘시구만. 그건 그렇고, 내가 전에 말한 건 어떻게 됐어?”

“아, 리리스랑 협상하라고 하신거 말이죠? 방금 던전에 들어간 우리 아이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역겨운 폐기물이 건방지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내가 왜 나가야하지? 라는 데요.”

“……역시나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지.”

그냥 공짜로 부려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녀들의 신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테라와 아이트라를 제공하는 조건인데도 거부당했다.

‘…이런 써먹기 힘든 전력이 어디 있어!’

누구의 고대 영웅은 플레이어를 등에 태우고 날아다니기까지 하는데 누구의 고대 영웅은 던전에 콕 처박힌 채 막무가내로 나오니… 조금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대신 좋은 소식도 있어요! 로드 오빠가 다음으로 내민 조건 정도는 생각해 보겠다네요.”

“워프게이트가 열리면 능력 한번 써주는 것 말이지? 하아…….”

사실 리리스를 꼬드겨 워프게이트로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이 로드의 베스트 플랜이었다. 고대의 존재는 고대의 존재가 상대하도록 하는 것. 물론 예상했다시피 실패했다. 그나마 워프게이트 너머로 리리스가 이능을 사용해주는 것은 허락받았지만, 니드호그는 리리스가 힘 한번 써주는 정도로 잡을 수 있는 수준의 괴물이 아니었다.

그때 로드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통신 수정구에 연결음이 들렸다.

“……폐하?”

통신구에서 이브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오, 연결됐구나. 이브!”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전투는요?”

“아직 진행 중이야. 그보다 두 사람에게 급히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로드가 통신 수정구와 지휘관 창을 서로 마주보게 한 다음 계획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어차피 리리스를 쓸 수 없다면 답은 이것밖에 없어.”

“알겠어요. 해볼게요!”

이브가 열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로드는 조금 의외여서 눈을 끔뻑였다. 그녀가 이토록 열의를 가지고 큰소리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헤헤, 저는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고객님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죠.”

치엘로도 동의했다. 그때 로드가 갑자기 바짝 고개를 숙였다. 곳곳에서 녹색 액체가 펑! 펑! 소리와 함께 분수처럼 튀어 오르고 있었다. 로드의 옷깃에도 녹색 물방울이 살짝 튀었는데 순식간에 녹아들어갔다.

“……흐응,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요. 로드 오빠.”

치엘로가 말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서둘러줘.”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브가 그렇게 말하며 치엘로 쪽을 보았다.

“치엘로 폐하. 상업지구의 동문 쪽으로 와주시겠어요? 저도 정화의 창을 얻는 데로 그쪽으로 갈게요.”

“네엡! 알겠습니다.”

치엘로가 깜찍한 경례 자세를 취하며 연락을 종료했다.

언더하임에 남겨져 있던 이브는 축제를 시찰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로드와 함께 가서 1골드를 지불하고 만져보았던 그 이상한 백색 창. 다행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남은 통신 수정구의 마력으로 하버트에게 연락해 장거리 무기인 ‘발리스타’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하버트는 몇 분 안 걸리니 내가 맡기라며 큰소리를 떵떵 쳤다.

그렇게 믿음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어비스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큰 역할을 해낸 인물이라 이브는 믿어보기로 했다.

‘서둘러야 해.’

이브는 거추장스러운 구두를 휙휙 벗어던지고 맨발이 되었다. 그리곤 온 힘을 다해 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을 불태우기 위함인지 거리에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북적거렸다.

“미안합니다!”

그녀가 소리치며 사람들 사이를 마구 뚫고 들어갔다. 곳곳에서 놀라고 짜증스러운 외침들이 들렸지만 그녀는 계속 사과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인파를 뚫고 나온 뒤에. 저 멀리서 이브가 찾고 있던 그 상인의 모습이 보였다.

“자, 자, 특별 서비스! 대륙 최고 최강의 무구! ‘정화의 창’을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한 번 만지는데 단돈 1골드에 모시겠습니다! 앗, 어서 오세요 손님…… 헉!”

상인이 이브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어떻게 잊겠는가? 축제 첫날부터 그에게 벌금 딱지를 먹인 곰돌이 귀 공무원이었다.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같은 장소에서 계속 장사하는 게 아니었는데!

“……살게요.”

이브가 벽을 짚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예?”

“산다구요. 정화의 창. 당신이 예전에 말한 2천 골드에.”

그녀가 성큼성큼 정화의 창 쪽으로 다가갔다. 상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지, 진심이십니까? 후, 훔쳐 가시는 거 아니죠?”

“저는 어비스의 왕실 총무에요. 신용은 충분하지 않나요? 대금은 오늘밤 내로 왕궁으로 가서 수령하면…… 큭!”

이브가 땅에서 뽑은 정화의 창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몸이 강제로 새하얗게 표백되어 버리는 듯 한 이 끔찍한 기분은 여전했다. 상인이 기겁하며 말했다.

“맨손으로 들고 가는 건 무립니다요!”

그 말을 들은 이브가 망설임 없이 스타킹을 북북 찢자 상인이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 쳤다.

“옷으로 묶어서 끌고 가도 소용없어요! 신체가 직접 닿지 않아도 정화의 힘이 전달되니까요. 차라리 마차를 불러서 운반을…….”

“그럴 시간 없어요!”

이브가 버럭 소리쳤다. 그 박력에 상인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둘러야해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맨손으로 정화의 창을 집어 들었다. 절로 이빨사이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어어어? 미쳤어요? 그걸 계속 만지면……! 초, 총무님!”

============================ 작품 후기 ============================

35도! 폭염주의보! 왜 올여름에 모기가 없는지 알겠습니다. 잠깐 편의점 들리는데 등에 땀 범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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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스톤 / 드래곤 뚝배기 ㅋㅋㅋㅋ

복지국가 / 맞습니당!

난누군가 / 감사합니다~!

지리산의늑대 / 해물 뚝배기가 먹고싶은 밤이네요

벌레 / 조교라인 합류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니알라토텝 / ...그분은 몸통박치기 한다고 할 분이 아닌듯

아프게했어 / 여자를 안으면 일단 냄새부터 맡는 냄새패치 로드

박성빈 / ㅎㅎㅎ;

루나케 / 히익...! 잘 아시는군!

火炎無 / 확실히 리스크가 더 많죠 ㅋㅋㅋㅋㅋ 무슨 게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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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정화의 창을 사용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시길!

@...(-1)...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제로스와 드래곤은 한편 아닌가요? 싸움 붙이실 각

@켄케루 / 굥찰 아조씨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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