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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티나 윈슬렛
이브는 인파속으로 달려 나가며 상인과 멀어졌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났다. 표백제 수십 통을 동시에 입안으로 들이킨 듯한 끔찍한 기분이었다.
‘……폐하께서 위험해.’
그녀는 계속 달렸다.
이토록 총무라는 직책이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로드와 다른 가신들은 목숨을 걸고 밖에서 싸우고 있는데, 자신만 안전한 곳에서 축제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 축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수입이 늘어나고, 국격이 오르면 무엇 하겠는가? 로드가 죽으면 아무 의미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에게도 전쟁터에 있는 로드를 도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절대 실수할 수 없었다. 이브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점점 하얗게 변하던 시야가 이내 완전히 하얀 빛에 집어삼켰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도 삐- 하는 고장 난 라디오의 잡음처럼 들렸다. 이대로 완전히 빛에 삼켜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퍽!
갑자기 시야가 돌아왔다. 이브가 행인에게 부딪쳐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서 창화의 창을 놓쳐버린 것이다. 정신이 든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엉? 뭐야?”
사나운 인상의 용병들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동료들이 맨발에 스타킹에 구멍이 숭숭 난 이브를 보며 킥킥거렸다.
“오, 아가씨. 그런 차림으로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히히, 의도적으로 부딪친 거 봤냐? 봤어? 역시 언더하임 여자는 작업 기술도 보통이 아니라니까.”
“우리랑 같이 놀자고.”
이브가 남자들의 손을 뿌리치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그녀의 사고는 오로지 정화의 창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봐.”
손길을 거부당한 용병이 다시 손바닥을 뻗으려는데 이브가 서슬 퍼런 안광을 뿜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움찔. 용병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길거리 여자가 저런 지독한 살기를 풍긴단 말인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으로 먹고사는 용병들은 자존심이고 뭐고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이브는 다시 바닥을 더듬다가 정화의 창을 찾아내 손에 쥐었다.
그렇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 달리고 또 달린 이브의 시야에, 약속 장소인 상업지구 동문이 보였다. 치엘로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브 언니! 여기에요, 여기!”
마침내 도착한 이브는 치엘로의 앞에서 정화의 창을 내팽개치듯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허억, 허어어억. …미, 미천한 신의 종이 폐하를 뵙습… 허억.”
이 와중에도 예를 차리고 있는 이브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치엘로가 깜짝 놀라 몸을 숙였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침내 숨이 돌아온 이브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하버트 소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요?”
“네.”
치엘로가 대답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런데 발리스타라면 무척 큰 무기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여기까지 가져 온다는 거예요?”
“저도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버트 소장에게 연락해보니 그 정도는 몇 분 안 걸린다는 말밖엔…….”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었다. 갑자기 주위가 대화를 나누기 힘들 만큼 소란스러워졌던 것이다.
“비켜! 비켜! 거기 앞에 다 비켜요! 오호호호호홋!”
하버트가 오고 있었다. 발리스타는 바퀴 달린 수레 위에 실려 있었고, 그 수레에 연결된 두 개의 줄이 각각 두 메이드 소녀들의 목에 걸려 있었다. 말이 동원되어도 힘들어 보이는 저 수레를 두 명의 소녀가 사족 보행으로,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우아악! 뭐야! 미쳤어?”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는 발리스타 수레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주위 상가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해서 피해야만 했다. 수레위에 올라타 있는 하버트가 유쾌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동학대?”
치엘로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그리곤 슬쩍 이브의 눈치를 보았다.
“어, 음. 뭐랄까. 역시 로드 오빠의 나라는 수준이 다르네요.”
“……아동이 아니라 키메라입니다. 오해는 말아주시길.”
이브가 재빨리 말했다.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물러나며 발리스타 수레는 프리패스로 동문에 도착했다.
“오호호홋! 저, 하버트가 왔습니다! 과학은 위대하다아아아아아아!”
수레에서 뛰어 내려온 하버트가 등장하자마자 심취한 표정으로 만세를 불렀다.
“……흥! 결코 팬더 때문에 도와주는 건 아니니까.”
메이드 복을 입은 오른편의 키메라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으휴, 본인 서류 정리는 다 하고 이런 걸 시키는 건가요? 정말이지, 폐하는!”
왼편의 키메라 또한 숨을 헐떡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직도 그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는 건가요? 아,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어서 준비하세요!”
“예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 아가들아.”
하버트가 팔을 척 뻗자 키메라들이 대답했다.
“흥! 딱히 팬더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니니까! 기억해 두라고!”
“정말이지! 물자 보급책 1항은 다 외우고 야근시키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두 키메라가 입으로 연신 투덜거리면서 빠르게 발리스타의 부품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이니까 저 말투 좀 그만 쓰게 해주세요.”
이브가 한숨을 쉬며 치엘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워프게이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폐하.”
“맡겨주세요, 손님!”
지휘관 창으로 로드가 보내준 좌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치엘로가 지팡이를 소환해 빙글 휘둘렀다.
화아아아악! 보랏빛 마력이 모여들며 워프게이트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키메라 소녀 둘이 발리스타의 방향을 워프게이트 쪽으로 돌렸다.
‘……폐하를 위해.’
이브는 손을 걷어붙이며, 다시 한 번 정화의 창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끔찍한 기분을 맛보며 그녀는 힘겹게 발리스타위에 그것을 놓았다. 키메라가 도와주러 다가오자 이브가 손바닥을 뻗어 저지했다.
“잠깐! 만지지 말아요. 키메라는 닿는 것만으로 치명적이니까요.”
이브의 말에 키메라가 기겁하며 떨어졌다. ‘거, 겁먹은 거 아니거든!’ 이라고 중얼거리는 그녀는 마지막까지 콘셉트에 충실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발리스타 뒤에 선 이브가 결연한 얼굴로 워프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
한편 니드호그와 어비스군의 전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하하하! 버러지 같은 필멸자 놈들!”
니드호그의 포이즌 브레스가 연이어 떨어지며 지상의 인간들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위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세레스티나가 말을 걸었다.
“…잠깐만, 문제가 생겼어. 저길 봐.”
세레스티나가 손가락으로 허공 한 곳을 가리켰다. 허공에 구멍이 생긴 듯 움푹 들어가 있었고 그쪽으로 보랏빛 마력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지?”
“워프게이트야. 파괴해야만 해.”
세레스티나는 계속 주위를 집중해서 살피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로드가 지원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은 동맹국 켈타인의 워프게이트 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니드호그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니드호그?”
드래곤의 눈동자가 굴러 등 뒤에 올라탄 세레스티나 쪽으로 향했다.
“용왕이여. 저게 열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공간이 열리고 적의 지원군이 도착해.”
그 말을 들은 니드호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공간이 열린다고? 과연……!”
세레스티나는 니드호그의 표정을 살피며 얼굴을 굳혔다.
‘……설마, 로드가 워프게이트에서 꺼낼 자라는 게.’
퍼뜩 드는 생각, 고대의 존재끼리는 서로 적대한다.
“니드호그, 어서 게이트를 파괴해. 이건 용왕으로서의 명령이…….”
세레스티나는 말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니드호그는 눈이 돌아가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로드의 오른눈이 보랏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감정 증폭의 고유 능력을 쓴 것인가.’
“나와라!”
콰콰콰콰콰! 니드호그가 마력을 폭발시켰다.
“이 끔찍한 냄새……!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순순히 나와라! 증오스러운 악마여!”
워프게이트가 완성되면서 거대한 보랏빛 문 사이로 연결된 공간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백발과 흑발이 반반 뒤섞인 여인이 턱을 괸 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저 더러운 건.”
던전 안의 리리스가 탐탁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주위에는 워프게이트를 유도한 꼬마 마녀 두 명이 가엾게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 앞에 끌려온 작은 강아지들 같았다.
“…드, 드래곤입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마녀들 중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드래곤이라, ……그래.”
차원 너머 니드호그는 계속해서 ‘나와라!’하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정작 리리스는 별 감흥이 없다는 투였다.
한 때 악마 ‘사마엘’이 천상전쟁에 참전했을 때, 드래곤들은 천사들의 편을 들었었다. 그래서 악마와 드래곤은 서로 지독한 원수관계였다.
하지만 지금 리리스의 몸으로 악마의 권좌에 올라 있는 이 여인은 엘프 자매 르네와 린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생리적으로 역겹기는 했지만, 딱히 증오심이 든다거나 하지 않았다.
“설마 나더러 저기까지 가서 역한 괴물을 처리하라는 건 아니겠지? 흑마법의 노예들아.”
리리스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자, 잡아먹힐지도 몰라!’
마녀들은 황급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로드 폴렌티아 폐하께서는 그저 힘을 한번 써 주는 것으로 테라와 아이트라를 제공하시겠다고…….”
리리스가 코웃음 쳤다.
“재미있구나. 마치 물건을 받고 싶다면 내말대로 하라는 소리로 들리는군. 그 가소로움에 몸서리쳐지는구나. 저 괴물보다 언더하임을 먼저 무너뜨려야겠다.”
“히익!”
겁먹은 마녀들이 서로 껴안으며 울먹였다.
“잠깐만 언니이.”
그때 리리스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너무 삐딱하게 생각하진 마. 로드의 입장에선 나름 배려해 준 거잖아. 우리에게 공물을 가져다 바친다는데 그냥 앉은 자리에서 힘 한 번 정도는 써줘도 괜찮지 않을까? 칭찬의 의미에서.”
“…린, 넌 너무 순진해. 가소로운 폐기물에게 잘 해줄 필요 없어. 폐기물은 그냥 폐기 시켜야 할 뿐이야.”
“하지만 언니가 폐기물들에게 미움 받는 건 싫은걸. 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해. 그게 린의 소망이야.”
“……린.”
“……언니.”
리리스가 팔을 교차시켜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두 마녀가 겁먹은 얼굴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또 뭐하는 행동이란 말인가? 이 악마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쿠웅!
“꺅!”
“엄마야!”
마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리리스의 시선도 워프게이트쪽으로 움직였다. 독극물로 이루어진 질척거리는 두 팔이 워프게이트를 뚫고 나타나 그 겉면을 부여잡고 강제로 벌리고 있었다.
“당장 나와라! 악마! 죽여 버리겠다!”
니드호그의 목소리가 게이트 너머로 들렸다. 치이이이익! 팔에서 흐르는 독극물이 던전 바닥을 녹였다. 마녀들은 기겁하며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고 리리스의 뒤로 도망쳤다.
“……한심하군.”
왕좌에 앉아있는 리리스가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그 녀석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 같아 조금 짜증나긴 했지만… 일단은 저 오물을 집에서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리리스가 손바닥을 뻗자 악마를 상징하는 검은 마력이 솟구쳐 올랐다.
============================ 작품 후기 ============================
요즘 오디션 프로가 워낙 대세다 보니까 몇번 봤는데 (쇼미더읍읍, 읍읍돌학교) 참가하시는 분들마다 정말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저도 저렇게 전력을 다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금은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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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 너도 한방! 나도 한방!
알테니아 / 으아아; 이런 무시무시한 콤보가... 냉방병 무섭죠 ㅠㅠ 어서 어서 나으시길...!
아프게했어 / 그건 중증이라 정화가 안됩니다
Gneji / ㅠㅠㅠㅠ
T스톤 / 허허! 물론 리리스도 맞으면 치명적이긴 하겠지만... 누가 저걸 들고 리리스를 찌를 수 있을까요 ㄷㄷ 찔리기전에 사라질듯...
벌레 / 플래그가 넘쳐 흐른다!
seacave / 부디 재밌게 보셨기를... 감사합니다 ^^!
로리콤MK / 힘내라 힘!
니알라토텝 / 흐레스벨그를 아시다니! 물론 설정상엔 있습니다. 이카루스의 플레이어가 위그드라실에서 할 수 있는 퀘스트죠. 이 경우에는 거리가 가까운 대신, 퀘스트 자체의 난이도가 어렵죠.
왜이리들다재밌지 / 그러네요 ㅋㅋㅋㅋ 물론 여기서 신관은 신성마법을 쓰는 그 신관은 아닌지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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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고길동씨의 연탄집게 ㅋㅋㅋㅋ 물론 치엘로도 민트의 가족들에게 위로와 보험금(?)을 제공했겠죠?
@로아리아 / 핡핡!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