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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티나 윈슬렛
전투가 끝난 후, 어비스군은 휴식차원에서 며칠간 위그드라실에서 머물기로 했다.
물론 로드는 가만히 앉아있지만은 않았다. 아르곤의 예상 진행 루트를 계산해서 이카루스의 파스칼에게 알려주었다. 그에게 한 번 더 아르곤의 멸망 보너스를 노릴 기회를 준다는 명목이었다. 어차피 바다로 나가면 해군전력이 전무한 어비스에서는 손쓸 도리가 없으니 기회를 이카루스에 넘긴 것이다.
“그 여자는 내를 만만히 봤데이. 박살을 내주겠구마.”
자초지종을 들은 파스칼은 격분했다. 사실 본인도 배신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러한 부분까지 간파당해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무척 분하고 자존심 상했던 모양이었다.
‘별 기대는 안하지만 말야.’
정보를 주긴 했어도 로드는 파스칼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세레스티나가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졌는지 확인했다. 파스칼에게 잡힐 인물이었다면 진작 위그드라실에서 잡아냈을 것이다. 두 나라의 전력이 서로 훼손되는 선에서 끝나는 정도만 해도 만족이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로드는 의외의 소식들을 접했다.
“어머니 나무께서 회복되고 있으시다!”
“오오오오!”
세계수에 회복의 전조가 보였다는 것이다. 세계수를 끔찍이 아끼는 엘프들은 어떤 부위가 얼마나 썩었는지 날마다 꾸준히 체크해왔다. 그런데 아르곤이 물러난 기점으로 세계수가 썩는 증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로드는 이것이 니드호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수의 뿌리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니드호그의 독성이 세계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나, 아르곤이 니드호그를 데리고 가며 증상도 완화됐다고 생각하면 대충 아귀가 들어맞았다. 엘프들이 타종족들을 내쫒아 버린 계기가 된 이 문제가 사실은 아르곤의 ‘고대 퀘스트’와 관련되어 있었다니, 아이러니 했다.
이번 일로 로드는 엘프들의 신망을 얻게 되었다. 아르곤이라는 외부인들이 쳐들어오자 왕궁에서 벌 벗고 나서준 책임감, 그리고 어머니 나무가 썩어 들어가는 것이 멈췄다는 사실이 로드의 공으로 돌아간 것이다.
케이지의 통제 정책에도 끝까지 인간들을 경멸하던 엘프들조차 이번 일로 적대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타종족들이 더 이상 어머니 나무의 건강에 해롭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엘프들은 이제야 온전히 어비스의 일원이 되었고, 또한 로드는 비로소 티아를 언더하임으로 데려가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내정이 일단락되자 로드는 지휘관 창의 지도를 펼쳐 외부 상황을 살펴보았다.
동맹전쟁이 일어난 서부가 유별났을 뿐이지, 다른 지점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국가는 다음과 같다.
- 기사의나라 카사르.
- 암흑국가 하데스.
- 신성국가 가이아.
- 기마의나라 에브게니아.
- 마녀의나라 켈타인.
- 과학의나라 알란드.
- 무법자의나라 어비스.
- 창공의나라 이카루스.
- 용의나라 아르곤.
- 고대신의나라 울타‘울터스.
현재까지 22개 국가 중에서 10개국이 생존했다. 주신전 전체가 중후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나라가 살아남은 편이었다.
이 중에서 다소 상황이 복잡하게 된 건 어비스의 우측 상단에 위치한 나라인 ‘상인의 나라 유나이티드’였다. 멸망보너스를 획득한 나라는 카사르, 수도를 차지한 나라는 하데스, 나머지 거점 영지 두개를 점유한 나라는 켈타인이다. 이빨을 드러낸 세 강대국에 의해 영지가 갈기갈기 찢겨져나간 꼴이 된 것이다.
유나이티드의 패착은 플레이어의 다소 안일한 운영 때문이었다. 그는 돈의 힘으로 나라의 ‘완전 중립국화’를 꾀하고 있었고, 그만큼 외교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러나 국제 정세에서는 약하면 잡아먹힐 뿐, 강대국의 탐욕은 돈이나 외교만으로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로드도 한때는 정보를 팔아가며 ‘중립국’으로 남는 상황을 노렸으나 ‘이상’일 뿐이었다는 것이 이번 상황으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어비스 북쪽에 위치한 카사르는 점점 그 세력을 부풀리고 있었다.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오랜 적이었던 글레이시온을 멸망시킴으로서 현재 세 개의 멸망 보너스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대륙의 정세는 카사르가 강성한 가운데, 동맹전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어비스가 최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게노세르크의 멸망보너스를 획득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어비스를 거스를 수 있는 나라는 없어 보였다. 아크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까지는.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1등국가가 굳어져버리면서 어비스가 무난히 주신전에서 승리하겠죠.”
아크가 속칭 ‘1등 견제’를 시작했다. 한 세력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나머지 세력들끼리 힘을 합쳐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시 파스칼 또한 아크의 이 말에 넘어가 로드가 차지할 예정이었던 루미너스 땅을 빼앗았다. 아크는 다른 국가들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알란드와 켈타인에도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어비스에게 힘을 실어줄 때가 아니라, 어비스를 견제해야할 때 아닙니까? 두 분도 언젠간 어비스를 상대해야 할 테니까요.”
덕분에 타 플레이어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로드는 최근엔 공용 채팅창에도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들어가면 사람들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일일이 상대할수록 입장이 불리해져 갔다. 외교적 기반이 탄탄한 아크의 영향력이 깊게 뿌리 내린 뒤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중반부에 너무 확 떠버리긴 했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동맹전쟁 때 게노세르크를 비롯한 3개국이 한 번에 사라져 버리며 국가 간 균형이 깨져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각 나라마다 1~2개국의 멸망보너스를 가지는 게 평균인데, 지금은 그 혜택이 어비스에 치우쳐 있었다.
동맹전쟁 당시에는 이런 뒷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전쟁에서 패하면 멸망하는 상황이었다. 로드는 이를 악물고 싸웠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멸망 보너스도 얻었다. 하지만 2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모든 관심과 시선을 1위인 어비스에게 돌릴 수 있는 아크의 현 포지션이 이 상황에선 가장 유리했다.
게다가 어비스의 국가 고유 능력으로 카사르의 현황을 살펴본 결과, 카사르는 아르곤과 마찬가지로 이제 막 ‘문화시대’에 돌입해 있었다.
반면 어비스는 아직 문화시대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멸망보너스를 획득하고 영토가 늘어나면서 시대 발전을 위해 달성해야 하는 ‘시대 게이지’의 최대치가 더 늘어난 것이다. 영토 확장에 대한 일종의 리스크라고 할 수 있는데, 중간에 새로운 문화가 섞이면 시대 발전에 필요한 ‘문화력’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
어비스가 문화시대로 진입할 시점에 카사르에서는 이미 완성된 새로운 특화병종을 이끌고 싸움을 걸어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비스가 병력의 수로는 우세하겠지만, 승부는 알 수 없었다.
‘하아, 뭐. 아크의 계획을 벗어 던지고 말렉과 싸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이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지.’
로드는 지휘관 창을 닫으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말렉과 싸우지 않고 카사르의 비호를 받게 되는 전략을 선택했었더라면, 로드는 여전히 중부에서 타국들의 눈치를 살피며 영토 내에 박혀 있는 꼴이 됐었을 것이다. 그러다 유나이티드처럼 카사르에게 무난히 멸망당하는 결말을 맞이했으리라. 로드는 영토를 늘려 카사르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또한 하나 더 긍정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어비스는 타국들의 합동 공세를 받기에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었다. 어비스가 직접 영토를 맞대고 있는 국가는 동맹국을 제외하면 카사르와 이카루스 정도였다. 어비스의 오른편에 딱 달라붙어있는 아르게쓰와 유나이티드의 영토를 동맹국인 켈타인이 가졌기 때문에 타국의 공격을 차단해주는 우산처럼 되었다. 그리고 치엘로는 아크의 1등 견제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로드와 꾸준히 교류하는 플레이어였다. 로드는 이에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른 플레이어들에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카사르인데…….’
아직까지 어비스의 힘이 그리 압도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크는 계속 어비스를 몰아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어비스 공략을 위한 대규모 합동군 창설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래서 로드는 카사르가 '문화시대'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맞불을 놓았다. 카사르가 '1등 견제'를 바락바락 주장할 정도로 약한 국가가 아니라는 어필이었다.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머리가 있다면 알아들으리라. 어비스가 사라지면 카사르는 감당하지 못할만큼 강성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이런 외교적 어필을 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그렇게 로드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전령이 위그드라실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폐하! 스카파치노 장군이 오펙투스 공략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음, 그래?”
드디어 내정의 마지막 남은 피스인 오펙투스 공략이 시작됐다. 그동안의 전쟁으로 무너진 내정을 복구한 올리버가 오펙투스 토착 세력 공략을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알란드는 즉시 거점영지와 오펙투스의 수도 ‘오즈’를 공략할 것이다. 로드는 이 틈에 협공으로 하나 남은 거점 영지인 ‘멀린타운’을 공략하기로 했다.
저번 전쟁의 공으로 스카파치노는 장군으로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스카파치노는 꽤 오랜 시간 오펙투스 공략을 준비했다. 멜로디가 어디를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있더라도 스카파치노의 병력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리라.
“좋아, 다른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알려줘.”
“예! 폐하!”
외정은 뒤숭숭하지만, 내정은 분위기가 좋았다. 축제 이후 통합 영지 체계가 운영되기 시작하며 각 영지는 왕궁을 중심으로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고, 서로를 견제하게 되었다. 로드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물론 카사르와의 전쟁이 일어나 어느 한 영토가 유실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로드는 당초 계획보다 특화 작물 비율을 조금 낮추고, 고립되더라도 영지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기본 자원들에 대한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할 수 있는건 다 했다. 당분간 아무 일 없길 바라는 수밖에.’
로드는 내일 언더하임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관 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날 새로운 에피소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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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각..성?;
Nothings / 응? 그런데 그 부분이 왜 밸런스 망겜이라는 건지요...?
하이든 / ㅠㅠ
T스톤 / 로드도 중타 이상이라구요! 흑흑
벌레 / 굥찰아저씨의 코멘 진압이 시급하다!
남호들 / 이정도는 되야 상대할맛이 날... (퍽!
아프게했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똥이 아닐텐데요!
박성빈 / 오늘도 빛나는 미소 감사합니다.
지리산의늑대 / 후무룩 주인공이라 죄송합니다 ㅠㅠ
도레미파솔솔 / 표지를 알아보셨군요!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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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신은 요르문간드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신보다 더 센 뱀!
@...(-1)... / 못난 주인공이라 작무룩합니다 ㅠㅠ 문짝이는 언더하임에 있어서 출현이 드물군요. 문짝이 외전이라도 써야하나
@로아리아 / 후후 또 저의 큰 그림을 알아보시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