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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나라
놀랍고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남쪽루트로 내려와 어비스를 칠 것처럼 행동하던 카사르군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하룻밤 새 어비스가 아닌, 그 옆의 알란드로 향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알란드는 오펙투스 공략을 위해 주력 병력들이 수도 ‘오즈’에 가있는 상황이었다. 로드는 즉시 이 정보를 올리버에게 1:1 대화로 알려 주었다.
“어쩌죠? 어쩌면 좋죠? 카사르라니! 왜 이런 타이밍에!”
이야기를 들은 올리버는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아쉽겠지만 오즈 공략을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드가 넌지시 공략 포기를 제안하자 올리버는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어요. 오즈는 성문을 뚫어놨으니 내일 하루면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사상자만 낸 채 돌아가면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거예요.”
“내일 하루라…….”
로드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조금 애매한데요.”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실버시타델까지 오려면 북부에 있는 우리 쪽 거점영지 ‘포지’를 넘어서 ‘강철의 협곡’을 지나야 합니다. 제 병력들이 하루 만에 오즈를 점령하고 귀환한다면 시간은 넉넉해요.”
‘그래, 그렇게 말로만 계산해 보면 넉넉할 것 같긴 하지만…….’
로드는 여전히 오즈 공략에 회의적이었다.
“이번 공략에 투입된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6천이요.”
로드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조용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데니스와 콘라드는요?”
이 두 사람은 알란드에서 그나마 에이스라고 불릴만한 영웅들인데 게노세르크 전쟁에서 말렉과 싸울 때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
“당연히 둘 다 오즈공략에 데려왔죠.”
‘…맙소사.’
카사르를 바로 위에 둔 나라가 겁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너무 위험천만한 공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어도 없는 토착세력 공략은 4천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고 에이스 중 한 사람은 수비를 위해 실버시타델에 남겨뒀어야 했다.
‘……아이고, 올리버 이 친구야. 너도 참 딱하다.’
하지만 로드는 그를 마냥 나무라지 못했다. 올리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오펙투스 공략은 올리버의 숙원이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그는 주신전을 시작한 이래로 멸망 보너스는커녕, 본인의 영토 외에 다른 땅은 넘보지도 못한 채 지내왔다. 새로운 영토에 한이 맺힐 만도 했다.
또한 알란드의 영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옥하고 기름진 오펙투스의 토지와, 오즈에 보관되어 있을 수많은 마력 무구들, 그리고 주인 없는 예쁘장한 에이스급 영웅인 멜로디까지 그곳에 있다. 만약 일이 잘 풀려서 멜로디를 구슬려 영웅으로 눌러 앉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가장 문제였던 영웅진과 내정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고 여기에 알란드가 문화시대까지 된다면 단번에 강대국의 대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어찌 욕심이 나지 않겠는가.
로드나 치엘로가 카사르의 공격 타이밍으로 예상한 때는 신 문화시대 특화병종이 등장하는 시점. 카사르는 이제 막 문화시대에 들어섰으니 시간이 조금 남아있는 셈이었다. 올리버는 더 늦어지기 전에 오펙투스를 취하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채팅방에서도 아크는 어비스의 1등 견제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동맹 플레이어인 올리버나 치엘로에게는 회유책을 쓸 뿐 별다른 견제는 없었다. 아마 이런 분위기들을 모두 고려하여, 올리버는 슬그머니 오펙투스 정벌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카사르가 그 뒤통수를 쳤다.
‘얼굴은 애써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 나겠지.’
아무튼, 동맹국이 남의 나라 일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올리버가 결심했다면 막을 수 없었다. 로드가 다시 물었다.
“오즈의 공성 상황은 어떤가요?”
“이제 막 내성의 성문을 무너뜨린 참입니다. 내일부터는 시가전이에요.”
성문은 뚫어냈고 시가전만 남았다라…… 다행히 공성은 잘되고 있는 듯 했다.
“최소한 내일 정오까지는 오즈를 손에 넣으셔야 할 겁니다.”
“하하, 물론이죠!”
올리버와의 연락을 끝낸 뒤 로드는 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알란드를 공격하는 병력의 규모는 4천정도. 카사르의 전 병력은 아니었다. 로드는 카사르와의 경계 쪽과 퍼들스퀘어에 ‘출동 가능한 병력’이 있긴 했지만 이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 병력들이 알란드로 가면 카사르의 본 병력이 그대로 어비스로 내려와 버릴것이다. 그러면 이곳 언더하임이 위험해진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알란드군이 본토로 돌아와 수비를 굳건히 하고, 언더하임에 병력이 충분히 모이면 알란드와 함께 카사르를 쫒아내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아크의 전략이 정말 이걸로 끝일까? 그냥 정면으로 6천을 밀어 넣는 정도로?’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로드는 바로 다음날 알게 되었다. 거점영지 포지로 보낸 4천 병력은 일종의 미끼. 사실은 하나 더 양동병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양동병력 정예 2천은 다른 곳도 아닌, 실버시타델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설마.’
스파이의 정보에 따르면 실버시타델로 들어오는 통로인 ‘강철의 협곡’은 멀쩡하다는 보고였다. 게다가 저 병력은 스파이들의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았다. 로드는 즉시 지도를 펼쳐 보았다.
군 개혁을 핑계로 병력들을 조금씩 편제에서 빼내 옮긴다면 병력의 흐름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그 병력들이 배를 타고 알란드 본토에 몰래 침투했다면? 그 리고 강철의 협곡으로 가는 게 아닌, 실버시타델을 둘러싸고 있는 험난한 바위산을 넘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나타난 저 병력들의 이동경로를 대강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 산은 완전 까마득한 낭떠러지일 텐데…… 군대가 통과할 수 있는 곳이긴 한가? 시킨 놈이나 실행한 놈이나 보통은 아니겠군.’
한편 오즈에 있는 올리버 또한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시가전에 돌입하여 난전중인 상황이었으니 병력을 후퇴시킬 수 없었다. 올리버는 오즈가 평정되고 돌아갈 때까지 실버시타델과 비앙카가 버텨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즈가 완전 정복되는 동안, 첫 번째 거점영지 ‘포지’는 카사르에 의해 함락당하고 말았다. 실버시타델도 마지막 방어선인 3차 내성을 남겨둔 채였다.
충격에 빠진 올리버는 오즈를 점령하자마자 지친 병력을 이끌고 본토로 돌아가려고 했다.
로드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다급히 올리버에게 1:1 대화를 걸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올리버 님. 이제 막 공성을 마친 병력들로 실버시타델까지 가서 카사르군을 상대하는 건 무립니다. 우리 쪽 병력이 모이는 대로 함께 가는 편이…….”
“로드님.”
올리버의 목소리는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비앙카가 실버시타델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합니다.”
로드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올리버 님의 군대가 올라가도 늦어요. 도착할 쯤엔 실버시타델은 이미 함락당해 있을 겁니다.”
“아직 함락 당할지 말지는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올리버가 버럭 소리 질렀다. 로드는 놀랐다. 올리버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아, 무례하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겠습니다.”
올리버는 끝끝내 로드의 공동출전 제안을 거절하고 병력을 움직이기로 했다.
*
올리버는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만 남겨둔 채 오즈를 떠났다. 그의 목표 중 하나였던 멜로디는 성의 함락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지금은 그녀를 찾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올리버에게 있어서 에이스 영웅보다 몇 배는 더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처해있었다.
알란드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했다. 전쟁 이후 제대로 된 휴식도 주어지지 않았기에 많은 병사들이 행군 도중 낙오되거나 탈진했다. 그럴수록 올리버는 이를 악물고 더더욱 악착같이 병사들을 재촉했다. 평소답지 않은 악랄한 카리스마에 부관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그들은 첫 번째 거점영지 ‘스톰홀’에 도착했다.
“…다행이다! 아직 여긴 무사하구나!”
올리버가 감격하며 스톰홀의 성채를 바라보았다.
그는 행군 중간 즈음에 실버시타델이 함락 당했다는 소식을 로드로부터 전해 들었다. 역시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올리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속도를 유지하면서 실버시타델까지 가면 늦지 않게 비앙카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이고오, 폐하! 오셨습니까!”
스톰홀의 성문이 열리며 영주 ‘에넥스’와 그의 가신들이 뛰쳐나와 올리버의 앞에 부복했다.
“천신이 폐하를 뵙습니다.”
“무사하셨군요. 영주.”
올리버가 영주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이들 모두 조그마한 덩치의 난장이들이었는데, 다 큰 성인도 아이들과 키가 비슷했다. 드워프의 사촌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노움족’들이었다.
알란드는 인간, 드워프, 노움 이 세 종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였다. 다만 역대 왕들을 배출하며 쭉 권력을 잡고 있는 인간들과, 선천적으로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드워프들과는 달리 노움은 이렇다 할 장점이 없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그나마 오랜 고향인 스톰홀과 그 부근만이 노움의 구역으로 남아있었다.
“이 먼 곳까지 바로 달려와 주시니 천신은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저희들끼리 카사르군을 상대해야 할까봐 얼마나 가슴 졸였던지…….”
“이렇게 다시 뭉쳤으니 카사르도 이길 수 있어요. 노움들도 우리와 힘을 합쳐 실버시타델을 탈환합시다.”
“물론입지요. 자, 자, 밖에서 이러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따뜻한 수프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본토로 귀환하는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알란드군은 거의 처음으로 실내에 들어가서 따뜻한 수프로 배를 채우고 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다들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올리버 또한 실버시타델 탈환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을 청했다. 무척 피곤했지만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다.
‘……전부 내 욕심 때문이야.’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북쪽에 카사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기어코 병사들을 움직였다. 눈앞의 떡에 정신이 팔려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 했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내 영토와 내 가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왜 남의 것을 탐하려 했을까.
‘기다려, 비앙카.’
올리버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폐하! 폐하! 어서 일어나십시오!”
다급한 목소리에 올리버가 눈을 떴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등에는 기계팔 장치를 짊어지고 과학자 가운을 걸친 그는 에이스 영웅인 ‘데니스’였다. 올리버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키자 데니스가 움찔했다.
“앗, 저 같은 것이 깨워서…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위가 후끈했고 등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깨지 않았다니…….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성이! 성이 불타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올리버가 허겁지겁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와 보았다. 사방이 불바다였다. 스톰홀은 자연암벽과 목책으로 이루어진 성채였고 그 목책이 전부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주거지까지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을 길러와 꺼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프—하하핫! 무사하셨군요. 폐하!”
화포를 어깨에 짊어진 드워프 영웅 콘라드가 몇몇 병사들과 함께 올리버에게 다가왔다. 그의 든든한 모습을 보니 올리버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콘라드가 말했다.
“동문이 열려있다고 하니 어서 그리로 가시지요!”
“네, 갑시다.”
올리버와 부하들은 전속력으로 성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와 작은 횃불에 기대어 어둠속을 정신없이 해매고 있던 중, 올리버는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뒤쪽의 병사들 또한 인기척을 느꼈는지 멈춰 섰다. 어둠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들켜도 상관없는건지 발소리와 함께 함께 덜그럭 거리는 쇳소리 또한 함께 들렸다. 이내 횃불로 주위가 밝아지며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완벽히 포위당해 있었다.
“안녕?”
어둠속에서 들린 그 목소리에 돌아본 올리버는 심장이 멎는 공포를 느꼈다.
“……아크!”
아크가 미소 띈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알테니아 / 정신차려요오오!
T스톤 / 첫등장때 로드앞에서 노래부른것만 해도...
◎별◎아귀! / 백제의 멸망보너스는 켈타인에...
벌레 / 하워드가 이 코멘트를 좋아합니다.
EMVER / 제가 생각해도 알란드 먼저 먹고 시작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도 좋을듯해용
ZzeRoN / 쌀내놓지 않으면 전쟁건다는 그분;
남호들 / 알란드 선공!
왜이리들다재밌지 / 앞으로도 즐겁게 봐주세요~
dls4920 / 감사감사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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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SongOfBladell / 많습니다. 그렇게 잠복해서 이동루트를 파악하는 거구요. 애니록스가 막혔다고 한 말은 군사조직에 들어가서 군사정보를 빼오지 못하게 되었다는거죠
@...(-1)... / 그러니까 보상으로 로드의 복부에 복두신권을 쳐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이유는 민트 죽는거 방치 ㅠㅠㅠ
@Mr윤 / 아크는 기사들을 다 자기 스타일대로 배려놨죠... ㅠㅠ
@니알라토텝 / 합리적인 선택이지요
@로아리아 / 힐러는 가이아에 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성직자가 아닌 그냥 회복 마법사는 귀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