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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나라
어비스와 카사르의 전쟁 준비는 피차 빠르게 전개되어갔다. 로드는 영토가 넓어지고 군의 규모 또한 커진 만큼, 어비스군의 편제를 9개 군으로 나누었다. 병력구성은 다음과 같다.
- 로드, 유니벨. 본군 (5000명).
- 베아트리체군 (3000명).
- 티아군 (3000명).
- 스노노군 (3000명).
- 비월군 (2500명).
- 로즈안느군 (2500명).
- 루키안군 (2500명).
- 피닉스군 (2500명).
- 스카파치노군 (2000명).
총합 2만 6천명.
물론 이 구성은 하나의 장군급 영웅이 지휘할 수 있는 최소단위 일뿐, 개별적으로 운용될 수도 있었고, 합쳐져서 통합군으로 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로드가 이끄는 본군에는 베아트리체 대신 유니벨이 포함되어 있었다. B+가 되며 최고 에이스가 된 베아트리체를 주력군으로 활용하고, 유니벨은 가장 덩치가 큰 본군에서 화력 담당을 하도록 한 것이다.
병력 편제는 어렵지 않게 끝마쳤지만 로드는 새로운 고민에 빠져있었다.
‘…치엘로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
공간을 초월하는 워프게이트의 활용도는 두 말하면 입이 아팠다. 최근엔 테라가 들어갈 일이 많아 한두 번 쓰는 것도 힘에 부쳤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수천금의 가치가 있었다. 굳이 이 강력한 동맹국 전력을 쓰지 않고 묵혀둘 이유는 없다.
‘……으으, 이번엔 또 뭐라고 부탁을 해야 하나?’
로드가 깍지 낀 손에 이마를 올리며 고민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자신만 믿고 말렉의 제안을 박차면서까지 넘어온 치엘로였지만, 도움을 주기는커녕 계속 도움만 받고 있는 꼴이었다. 그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지만 도움만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쩔수 없지. 딱 한번만 더, 얼굴에 철판 깔고 부탁해보자.’
로드는 머릿속으로 멘트를 고심한 뒤, 지휘관 창을 열었다.
- ‘치엘로 블랙노트’님이 ‘로드 폴렌티아’님께 1:1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
“어라?”
로드가 막 대화 신청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치엘로의 대화 수락을 묻는 창이 그 위로 떠올랐다. 로드는 무심코 수락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새로운 화면이 확 떠올랐다. 두 갈래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리본으로 묶어 가슴 위로 늘어뜨린 소녀가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와악!”
로드가 놀란 소리를 냈다. 기껏 예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토라진 듯 볼을 부풀렸다.
“……그 반응 뭐예요? 기분 나빠.”
로드가 재빨리 해명했다.
“하하하! 그, 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네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할 줄은…….”
“로드 오빠도 제게 연락하려 했어요?”
아차차. 치엘로 같은 여우가 포인트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아마 낯빛이 변한 것도 들켰으리라.
“무슨 이야기 하려고 했어요? 말해 봐요.”
“…아니, 뭐 별건 아니고 그냥 네 안부를 물을 겸 해서…….”
“거짓말이죠?”
그녀가 강아지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 손가락을 살랑 살랑 흔들었다.
“로드 오빠가 단순히 안부를 물으러 연락했다고요? 에에이,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요.”
‘……하여간에 눈치는 빨라요.’
로드는 딴청을 피우며 공세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에이이, 말 돌리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말 돌리고 있는 게 누군데.”
누가 먼저 말하느냐로 아옹다옹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는 두 명의 왕들이었다. 결국 먼저 연락한 치엘로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헤헤, 로드 오빠아.”
치엘로는 갑자기 청순한 척, 얼굴에 만연한 핑크빛 미소를 띠웠다.
‘아, 부담스럽다.’
로드는 저 미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여자가 뭔가를 부탁하려 할 때, 특히 개인적인 욕구로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려 할 때 등장하는 미소였다.
“제가 그쪽으로 넘어갈까요오?”
“워프게이트 함부로 쓰지 말랬지. 괜찮으니까 그냥 여기서 말해.”
“피이…….”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입을 열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엉?”
로드가 눈을 깜빡였다. 사실 그건 이쪽이 할 대사였다.
“하데스 측에서 저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오빠네 병력을 조금만 파견해 주시면…….”
‘망했군.’
로드도 결국 카사르와의 전쟁을 코앞에 둔 자신의 사정을 털어 놓았다.
“……흐응, 결국 서로의 적을 처치해야 하는 상황인거네요. 쳇.”
치엘로가 애교와 가식이 사라진 차가운 얼굴로 되돌아왔다.
“도움이 못되어서 미안하다.”
“으휴, 별 기대도 안했어요. 간만에 좀 의지해보려 했는데 역시나…….”
짐짓 토라진 척하던 그녀는 로드의 쭈글한 표정을 보고 훗 하고 웃었다.
“농담이에요. 아무튼 이걸로 거의 확실해졌네요.”
“뭐가?”
“카사르와 하데스. 아무래도 동맹을 맺은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군.”
카사르와 하데스는 대륙 최북단에 영토를 맞대고 있는 이웃관계였고, 바로 아래엔 각각 어비스와 켈타인을 적으로 두고 있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타이밍에 하데스가 켈타인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카사르와 하데스 두 나라 간에 동맹이든 정전협정이든 이야기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것으로 어비스 vs 카사르, 켈타인 vs 하데스라는 각자의 적을 상대하는 양상의 전쟁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1:1전이지만,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에도 피해를 주게 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만약 켈타인이 하데스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 놓는데 성공한다면, 치엘로는 워프게이트 및 마녀 군단을 어비스 쪽으로 보낼 여유가 생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로드가 위험에 빠지면 치엘로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그럼 서로 힘내도록 해요. 괜히 제 발목 잡으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치엘로는 평상시의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후후, 그건 이쪽이 할 소리야. 꼬맹아.”
“꼬맹이? 고작 두 살 차이 가지고 그렇게 말하기에요?”
“그쪽 몸뚱이는 꼬맹이 맞잖아.”
“정신적 성숙함이 더 중요하죠.”
‘유니벨이나 베아한테는 언니라고 부르는 주제에…….’
두 사람은 서로의 분전을 기원하며 대화를 종료했다.
“결국 마녀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게 됐구나. 으음.”
로드가 지휘관 창으로 지도를 띄웠다. 이제 걱정되는 부분은 영토 최남단에 위치한 이카루스였다. 이카루스는 이미 루미너스의 영토를 접수한 만큼 대놓고 어비스에 적대하는 나라였다. 카사르와 싸우는 동안 그들이 후방을 공격한다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로드가 후방에 누구의 병력을 얼마나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데 정보부의 애니록스가 의외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카루스가 아르곤에게 개박살 났답니다.”
“……뭐어? 진짜야?”
정작 싸움을 붙인 장본인인 로드는 서로 적당히 피해를 입는 선에서 물러나는 정도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천공성이 난파 직전까지 갈 정도로 이카루스가 처참하게 패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애니록스는 정식 정보는 아니지만 소문이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파스칼이 아르곤의 미친개에게 한쪽 팔을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왕이 목숨이 오갈 정도로 위급한 순간이었다는 것이니 된통 당한 모양이었다.
“파스칼은 의식 불명상태이고 천공성은 붕괴직전, 그래서 당분간 이카루스는 본토에서 꼼짝도 못하고 피해복구에 주력할 것 같습니다.”
“……역시 대단한데, 세레스티나.”
대륙 국가의 주전력을 박살낼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아직도 섬에 박혀 있는 걸까? 로드는 그녀가 무척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은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야 했다.
의도치 않게 골칫덩이가 사라졌다. 도움도 없는 대신 방해도 없다. 온전히 모든 힘을 카사르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되었으니 속은 편했다.
‘……자아, 어떻게 해볼까나.’
혼자가 된 로드가 고민하고 있는데, 곧 문이 열리며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주고옹!”
“어서 오세요, 티아.”
로드가 티아에게 인사를 건넨 후 뒤따라 들어온 남자에게도 웃어 보였다.
“벤도 오랜만이야.”
뿔테 안경을 쓴 스마트한 이미지의 혁명단장 벤은 가슴에 주먹을 올리는 경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일인가? 주공. 전략의 검토는 거의 다 끝나지 않았는가.”
“상황에 조금 변화가 생겨서요.”
로드는 두 사람에게 자리에 앉도록 권하며 켈타인과 이카루스의 개입 불가능 사실을 알렸다.
“티아는 여전히 카사르가 병력을 집중해 언더하임으로 정면승부를 걸어올 것이라는 생각에 변화가 없죠?”
“그렇다. 주공은 변화가 있는가?”
로드도 소파에 앉아 팔을 등받이 뒤로 넘기며 대답했다.
“아직은 없습니다.”
벤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로드는 설명을 시작했다.
로드와 티아는 틈틈이 만나 전략을 가다듬었다. 수비자 입장인 만큼 상대 전략에 대한 분석과 예상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여러 토의 끝에 두 사람은 아크가 구사할 전략을 ‘일점돌파’로 꼽았다.
로드는 게이머답게 카사르의 군사적 특성에 먼저 주목했다. 카사르는 ‘보병 특화’의 나라였다. 말을 타는 기병이나 활을 다루는 궁병, 그 외에 각종 지원병과의 비율은 낮고 발전도 거의 없었지만 대륙 전체에서 손꼽히는 보병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 단점들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군대에서 가장 주력을 이루는 ‘검보병’대신 ‘카사르 솔져’라는 특화병종이 있을 정도로 군의 보병들이 전부 다 강력했다. 또한 지휘관 창의 특화 연구들 또한 보병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사르에서 ‘기사’는 기병이 아닌 정예보병을 뜻했다. 기사들은 그 문화적 특징상 말을 타고 적 진형의 등을 치는 것 보단, 방패와 검을 든든히 앞세우고 전면에서 정정당당히 적에게 부딪치는 것을 선호했다. 또한 마력이라는 이능 때문에 그 기동성은 일반 보병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카사르의 전투는 보병특화인 만큼 정면에서 우직하게 적을 밀어붙이며 대세를 굳히는 스타일이 되었다. 만약 아크가 가장 카사르의 특징을 살리는 방식으로 나온다면 다른 잔머리 굴릴 것 없이 전 병력을 이끌고 경계, 퍼들스퀘어, 언더하임 순으로 차례대로 무너뜨릴 것이라고 로드는 예상했다.
반면 티아는 혁명단에 주목했다.
카사르군이 후방을 노려 영지를 점령하다고 해도, 혁명이 일어나 영지를 수복해버리면 그만이다. 카사르의 입장에선 괜히 혁명단이 있는 다른 영지를 건드려 골치가 아파지는 것보단 정면승부로 언더하임부터 차지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왕궁이 있는 언더하임을 점령한 채로 시간을 끌면 로드의 영향력과 혁명단의 힘 모두 약화되는 효과도 있었다.
“상황은 알겠습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분의 이 전제에 변화가 생길만한 일이 터졌다는 것이겠지요?”
“역시 이해가 빠르네, 벤.”
마침 메이드들이 들어와 회의실에서 사용했던 지도를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로드는 애니록스가 이야기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적군을 상징하는 말들을 지도위에 배치했다.
말을 하나씩 올려놓을 때 마다 티아와 벤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마침내 마지막 말까지 올려놓은 로드가 말했다.
“우리는 일점돌파를 생각했죠. 하지만 카사르는 병력을 하나의 군세로 집결시키는 게 아닌, 분할 배치했습니다.”
아크는 뒤탈이 없도록 알란드가 차지해뒀던 오펙투스의 거점영지들까지 점령했다. 그리고 본토에서 바로 내려오는 북쪽 루트뿐만 아니라, 알란드에서 내려오는 루트, 오펙투스에서 움직이는 루트, 유나이티드에서 들어오는 루트까지. 장군급 영웅들을 이곳저곳에 뿌려둔 모습이었다. 마치 언더하임을 중앙에 놓고 전역에서 포위한 듯한 그림이 되었다.
모든 말을 놓은 로드가 입을 열었다.
“아크의 이 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세요. 티아, 벤.”
============================ 작품 후기 ============================
kui8905 / 그렇죠. 영웅 운영에 있어서 차이를 보입니다.
알테니아 / ○ □ ○;
Croness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T스톤 / 뚝배기 보호를 위해 여분의 오토바이 헬멧이 필요합니다
EMVER / 벌써 가웨인 섭외각?!
벌레 / 독재자는 말렉이었고, 아크는 독재자와는 살짝 타입이 다릅니다. 작품을 통해 슬슬 보여드리겠지만요~
샤마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하! 가웨인 이야기였군요!
ZzeRoN / 다들 가웨인에 주목하시네요 흠
박성빈 / ㅎㅎㅎ
seacave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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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lSongOfBladell / 저도 로드가 치고나가는 씬이 좋긴하지만... 지리적 상황이나 내정적 상황이나 도저히 선공으로 나갈 타이밍이 못되더군요 ㅠㅠ 워낙 주위에 강대국들이 득실거리는 정중앙 위치라서...
@로리콤MK / 그 빈틈을 캐치하는게 또 중요하겠죠
@니알라토텝 /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단 나라가 정중앙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크지요. 베틀린처럼 끄트머리에 있었다면 한 두 나라만 상대해도 됐었겠지만 정중앙에 떡하니 있는 로드는 수많은 나라와 부딪칠수밖에 없었답니다
@...(-1)... / 아크 처벌을 위한 둘리투입이라니;
@로아리아 / 맛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