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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94화 (19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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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나라

티아와 벤. 어비스 내에서 지략으로는 손꼽히는 두 사람이었다. 티아는 얼마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본녀는 기만전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노라.”

병력이 흩어져 있어 금방이라도 다른 영지들을 공격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병사들은 중앙의 언더하임을 겨냥하고 있으며, 언더하임에서 병력들이 빠져나가면 사방에서 들이닥칠 것이라고 티아는 예상했다.

“벤의 생각은 어때?”

“…….”

벤은 티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저는 상대의 전략보다는 지켜야 할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응?”

“지금의 언더하임에는 병력이 너무 많습니다.”

벤의 동문서답에 로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옆에 티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언더하임은 어비스의 핵심이고, 적이 언더하임을 노릴 가능성이 가장 높기에 병력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수도의 과잉 방위가 다른 영지들의 방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벤.”

로드가 입을 열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우리의 제1목표는 어디까지나 승리야. 언더하임을 지키는 건 승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예. 알겠습니다.”

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로드는 티아의 의견에 긍정을 표했다. 아크가 언더하임을 바로 치는 방법에 비해 다른 영지를 공격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다. 지금으로선 이것밖에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었기에, 로드는 언더하임에서 병력들을 대기시킨 채 기다려 보기로 했다.

*

그로부터 6일이 지난 후.

모든 출전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전쟁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어비스군의 장군들과 휘하 영웅들은 갑옷차림으로 지하 회의실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들 명령만 내려지면 언제든지 출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만히 가신들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로드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편제를 한 게 잘한 일일까 몰라.’

로드는 각 군의 개성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편제로 짰다.

로즈안느군을 예로 들자면 바탕이 되는 베이스는 어비스군이지만, 로즈안느를 보좌할 베틀린 출신 중심의 부관들과 병사들. 그리고 베틀린 특화 병종인 ‘바드’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처음부터 머릿수가 많은 수인군은 아예 어비스군을 베이스로 하지 않았고, 전원이 100% 수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게 각 군에 개성을 살려주는 것이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플레이어는 복속시킨 나라의 군대를 자기 나라 군대에 편입시키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바뀌도록 강제시킨다. 그 편이 관리에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로드의 이 같은 편제는 소속된 병사들의 사기와 의욕이 증진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문제점이 없지는 않았다. 다른 군과 갈등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제 안 사실이지만 다들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군.’

특히 원수관계였던 수인측과 베틀린측은 사이가 좋을 리 만무했다. 로즈안느야 워낙에 두루두루 잘 지내는 타입이었지만 그 밑에 휘하 영웅들은 대놓고 수인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수인 연합회 출신의 스노노 일파가 베틀린 측과 싸우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폐하! 보고입니다!”

애니록스가 회의실로 뛰어 들어와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카사르의 몇몇 군세가 경계를 넘었습니다! 발트호른, 베틀린시티, 위그드라실 등으로 흩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영웅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특히 각 영지 출신들이 더 그랬다. 그들 모두 영지의 방어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언더하임으로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큰일입니다!”

“언더하임으로 오는 게 아니라 후방을 먼저……!”

로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후방을 먼저 공격한다고? 이유가 뭐지? 혁명단을 감수하고서라도 다른 영지 먼저 차지할 생각인가?

“애니. 카사르 측 본토의 병력은?”

“변동 없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입니다.”

주력은 여전히 언더하임 방향으로 창끝을 겨누고 있었다. 언더하임은 여전히 위험했다.

“다들 유난 떨지 마.”

유니벨이 다리를 꼬고 앉아 소리쳤다.

“쟤들이 점령해봤자 혁명단에게 도로 빼앗길 영지야. 공격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냥 저렇게 시늉만 하고, 우리가 구원병을 보내면 바로 언더하임으로 올라올 생각일 거야.”

“……그, 그렇지만 유니벨 님.”

로즈안느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정말로 영지를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저희 영지민들의 목숨이 위험한데…….”

“그, 그렇습니다!”

“시급히 지원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로즈안느 휘하의 장수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럴 필요 없다잖수.”

군데군데 찢어진 불량스러운 재킷을 갑옷 위에 걸친 피닉스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가장 중요한 발트호른, 베틀린시티, 위그드라실 세 영지는 모두 혁명단이 지키고 있을 텐데 무엇이 두렵단 말요?”

“문제는 혁명단의 화력이 영지를 지키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형님.”

듣고 있던 키리안이 날 선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혁명은 영지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빼앗긴 영지를 탈환하는 힘이잖습니까? 지키는 것은 군대의 힘이죠. 영지를 빼앗긴 후 영지민들이 어떤 수모를 당할지는 생각 못하십니까?”

“……흐으, 이렇게나 겁이 많아서야. 그래서 네가 아란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거다.”

“거기서 왜 아란 님이 나오는 겁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몇몇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티아가 나서서 제장들을 자제시켰다.

두 가지가 쟁점이었다. 지금 당장 각 영지로 병력들을 보내 침입한 적들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지원군을 보내면 저들의 의도대로 끌려 다니는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고 언더하임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의견.

전자는 영지민들의 안위를 무엇보다 우선시 하고, 후자는 전략적 움직임에 근거한 승리를 우선시한다. 두 의견 모두 타당한 부분이 있었기에 로드도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이제 아크가 의도한 바를 알겠군.’

어비스는 타영지를 통합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즉 결속력이 부족했다. 영웅들은 서로의 입장과 우선시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에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아크는 그러한 점을 노렸으리라.

‘그래. 아크라면 이런 모략 쯤이야 가뿐하겠지.’

내 가신들이 두 파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직접 모략이란 것에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폐하.”

“폐하,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말싸움으로는 결판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모두의 시선이 로드에게로 모아졌다. 그들끼리 백날 싸워도 결국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람은 군주였다.

로드는 이제 판단력을 시험받게 되었다.

‘…나도 카사르가 굳이 후방을 먼저 공격한 데에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타영지 가신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어.’

통합 어비스의 초장기 시점이었고, 이때 내리는 첫 결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여러 생각들이 로드의 머릿속을 오고갔다.

만약 타영지 사람들이 ‘통합’이라는 건 말뿐이고, 결국 어비스도 귀족들처럼 자신들의 안위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생기기 시작하면 돌이키기 힘들었다.

‘……카사르 측도 병력을 소모해 후방을 치게 한 건 사실이다. 우리가 그 병력들을 상대할 군을 내보는 것이 마냥 손해를 보는 건 아니야.’

로드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여기서 딱 3개 군만 내려간다.”

“오오오!”

타영지 가신들은 환호했고 언더하임 가신들은 혀를 찼다.

로드는 의견들을 종합하여 적 군세를 요격할 세 군을 편성했다. 티아군, 로즈안느군, 스노노군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요격군의 총사령관은 티아로 임명했다.

티아가 정렬해 있는 요격군 영웅들에게 말했다.

“요격군은 거리의 문제 상 본부와 통신이 힘들 것이니라. 따라서 각 군 사령관의 판단과 재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더하임의 위험을 담보로 움직이는 것인 만큼, 절대 과하거나 섣부른 판단으로 전력을 훼손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니라.”

“네! 군사님.”

“스노노! 알아들었다!”

“그럼 해산해서 출전 준비를 하도록.”

요격군에 편성된 영웅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

카사르의 군세를 잡기 위한 요격군이 언더하임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편제는 다음과 같다.

- 티아군 3000명. 주력 : 포쳐.

- 로즈안느군 2500명. 주력 : 바드.

- 스노노군 3000명. 주력 : 낭인병.

티아군의 제1 수비목표는 위그드라실이었다.

위그드라실은 그나마 언더하임과 거리가 가까워 통신 수정구로 연락이 자유로운 곳이었다. 티아는 위그드라실이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세이지가드’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군은 위그드라실로 가지 않는다.”

“……예?”

“거리를 두고 로즈안느군과 스스노군을 뒤따라가며 백업하겠노라.”

세이지가드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사님. 위그드라실을 비우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은 안전하다지만 언제 카사르에게 공격당할지 모르잖습니까?”

“그렇다면 그 뒤를 쳐서 포위해 괴멸시키면 그만이다. 위그드라실의 방어체계는 그리 약하지 않노라. 본녀가 직접 설계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티아였다. 세이지가드들은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웃었다.

“문제는 앞서 가고 있는 두 개 군이다.”

그녀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본녀가 보기엔 두 지휘관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노라. 주공과 상의해서 위그드라실이 안전하면 두 군세를 서포트하는 역을 맡겠다고 했다.”

세이지가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님 앞에서 누가 어리지 않겠습니까.’하고 중얼거리던 한명은 티아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적들이 우리 영토로 들어온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기습을 당할 우려가 있노라. 모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따라오도록.”

“예!”

티아는 계속해서 로즈안느군과 스노노군에 전서구를 보내 연락 체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렇게 세 개의 군세 중에서 처음으로 적과 맞닥뜨린 쪽은 ‘로즈안느군’이었다.

============================ 작품 후기 ============================

알테니아 / 로드는 아크에게 철투구 유무를 확인하며 왜 제 뚝빼기를 깬다는거죠?;!

T스톤 / 자기네들 워프게이트 쓰는것도 바쁠듯 ㅠㅠ

왜이리들다재밌지 / 아크 안티가 어엄청 많군요 ㅠㅠ

...(-1)... / 겉모습은 동안로리 맞아요! 카사르는 보병이 주력이긴 한데, 이 보병이 기병이고 궁병이고 다 때려잡는 괴물들이라 ... ㅠㅠ

로아리아 / 서로 상대 군사와 싸우는 상황이 됐네요. 그런데 세리가 누구..?!

박성빈 /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한고급검 / 저래보여도 현재 1~2위 전력입니다 ㅠㅠ 아직 병력이 불기 전이라 병력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요

마스터칼솔럼 / 프라이팬이 탄환도 튕긴다는데 정...말... 인가요? 아니겠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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