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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96화 (19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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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아이

다음날 아침이 밝자, 카사르군이 올라왔다. 멀리서부터 질서 있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제와 비교하여 상대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어보였고, 로즈안느군 병사들은 좌절감을 느꼈다. 앞으로 이런 것들과 몇 번을 더 부딪쳐야 하는 것일까.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 보였다.

“앗!”

그러나 어제와는 달리 한 가지 고무적인 점이 있다면, 바로 로즈안느와 바드들이 전쟁 시작 전부터 앞으로 나온 것이다.

“로즈안느 님!”

“로즈안느 님이다!”

병사들을 지나 전방으로 걸어 들어온 로즈안느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

시끌벅적하던 병사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정적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병사들은 숨 쉬는 것도 잊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든 소리가 가라앉고, 그녀는 류트줄을 튕겼다. 띠링. 단순한 선율이 흘러지나가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모두에게 전신의 가호를.”

“……오오!”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발랄한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새로운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부장은 뒤에서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힘내라. 로즈. 네겐 재능이 있어.’

카사르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둘째 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쳐라!”

“와아아아아아!”

이번에도 카사르 측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로즈안느군은 방패에 몸을 숨긴 채 창검을 내지르는 방진으로 맞수 했으나, 일검 일검에 전력을 퍼붓는 기사들의 공세에 방어진은 빠르게 깎여나갔다.

‘……코퍼의 말이 맞았어. 확실히 움직이고 있어.’

이때 로즈안느는 상대 진형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눈치 채기 어려웠겠지만, 마치 고요한 시냇물처럼 중간 중간 병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의 뼈에 사무치도록 훈련된 이 하나의 ‘규칙’이 이러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요소였다.

철저한 로테이션 운용. 뒤따라올 동료들을 믿고 온 힘을 쏟아 붓는 카사르 측과는 달리 로즈안느군 병사들은 뒤쪽의 아군병사들에 떠밀려 그저 살기위해 방패를 세우고 창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 각오의 차이가 달랐다.

‘시작이야.’

각오를 마친 그녀가 류트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피 튀기는 살벌한 전장 한복판에, 갑자기 감미롭고 우아한 멜로디가 흘러들었다.

“……전사들에게 검을 쥘 힘을.”

병사들은 그 실낱같은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멎어들었다. 그리고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두려움에 직면할 용기를!”

그녀가 류트 줄을 강하게 튕기자 감미로운 선율이 전자기타 같은 거친 소리로 바뀌었다. 음악에 집중하고 있던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 스펠뮤직, 버서커(Berserker).

키이이이잉! 이어서 거친 파도와 같은 음악이 류트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바드들이 뒤이어 연주를 시작했다.

- 스펠뮤직,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바드들의 연주가 로즈안느와 똑같은 음색으로 울려 퍼졌다. 버서커 연주가 증폭되어 전장으로 퍼져나갔다.

스펠뮤직은 음악과 마력의 결합. 바드들은 두 가지 효과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통제. 아군에게 이로운 음악을 연주할 시 주로 선택하며, 마력의 힘으로 음이 나아가는 범위를 제한해 오로지 아군에게만 이로운 버프 효과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

두 번째는 확성. 모든 마력을 ‘증폭’효과에만 집중해 그저 널리 퍼뜨리는 것. 이 경우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에게도 음악으로 인한 버프 효과가 적용된다.

그리고 지금은 후자인 ‘확성’이었다. 버서커 음악이 전장으로 퍼져나가며 전장은 광기의 각축장이 되었다. 양측 병사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방패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눈앞의 적을 죽이는 살육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야말로 공격밖에 없는 치열한 난전. 이 경우 기본기와 기초체력이 탄탄한 카사르군이 유리할 것 같았으나.

결과는 사뭇 달랐다.

“앞에 비켜! 다음은 우리조 차례야!”

“…우, 우리도 못 가고 있소! 앞에 나간 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뭐 하는 겁니까? 뒤에서 자꾸 밀잖아요!”

차륜진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버서커 마법에 걸린 최전방의 병사들은 광기에 빠져 로테이션을 까맣게 잊은 채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스펠 뮤직의 효과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버서커 마법에 덜 걸린 병사들은 로테이션을 유지하기 위해 복귀했다. 완전히 중구난방이었다.

최전방에서 나오지 않는 자들. 돌아가려는 자들. 로테이션을 채우기 위해 도착한자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여러 조들과 뒤섞여 버린 자들.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가든 진형에 혼선이 일어나더니 이내 대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일부 병사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만으로, 진형은 엉킨 실타래가 되었다.

“지금이라는!”

부관에서 참모로 승격된 코퍼가 지시를 내렸다. 기병들로 이루어진 별동대 두 팀이 로즈안느군에서 빠져나와 카사르군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제의 카사르 군이었다면 간단히 대처했을 공격이었지만 지금은 진형이 엉망으로 꼬인 상황이었다.

“다들 와! 적습이다! 막아야 해!”

“막긴 뭘 막아! 다음 순서에 맡기고 움직여! 그게 규칙이잖아!”

“아니, 지금 규칙을 따질 때가……!”

카사르의 부관들조차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 두 별동대의 공격은 카사르 진형을 더욱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후후, 성공이라는!”

코퍼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지나치게 큰 볼륨에 옆에 서있던 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사르의 차륜진은 물 흐르듯 완벽했다는!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것일수록 한번 제동이 걸려 흐름이 꼬여버리면 손쓸 틈 없이 무너져 버리기 마련이라는! 역시 나는 대단하다는!”

“……거기서 왜 자네가 잘난 척 해? 다 장군이 떠올린 일이잖아.”

부장이 핀잔을 주었다.

“……하아, 하아.”

로즈안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서커 연주를 멈추었다. 대규모 영창이라 체력과 마력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부장이 달려와 물을 건네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아요. 오라버니. 이제 다음곡이에요.”

그녀는 몇 분 쉬지도 않고 다시 류트를 잡았다.

‘고난이도의 곡이지만,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만 해.’

그녀가 류트줄을 튕겼다.

- 이중 연주.

- 스펠뮤직, 비창. 다윗의 노래.

- 스펠뮤직, 열광. 풍차를 향해 돌진.

카앙! 카앙! 카앙!

그녀의 류트에서 푸른빛과 녹색빛 두 가지 색깔의 음표가 튀어나와 허공에 공기처럼 녹아 사라지며 음으로 변환 되었다.

“……!”

“……오오!”

병사들은 잠시 흠칫하는 듯 하더니 얼굴에 혈색이 돌며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온 몸에 힘이 넘쳐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로즈안느가 외쳤다. 입에서 내는 소리조차 음표로 반환되어 확장마법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망설일 필요 없어요. 이제 승리가 눈 앞 입니다. 부디.”

카아아아아앙! 음표가 대기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승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병사들이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승리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눈이 시뻘게진 병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반면 카사르의 기사들은 버서커의 효과로 체력 안배 없이 검을 휘두르다가 그 효과가 사라지며 힘이 빠진 상태였다. 차륜진 전술이 독이 되는 순간이었다.

“……크윽, 이놈들이 갑자기!”

콰직! 기사는 말을 잊지 못하고 액스워리어의 도끼에 얼굴이 찍혀 절명했다. 갑각스레 달라진 기세에 카사르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긴다! 우리가 이긴다!”

“승리의 여신이 우리 편이다!”

로즈안느가 류트를 연주하며 몸을 뒤틀 때마다 땀방울이 튀어 올랐다. 팔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바드들은 그녀의 테크닉을 따라올 수 없었기에 그저 마력으로 ‘확성 연주’를 펼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노래하는 지휘관이라, 훌륭하군. 그래, 무슨 재주든 극의에 달하면 하나의 진리에 닿는 법.”

저벅.

카사르 진형에 엄청난 크기의 장군기가 펄럭이며 올라왔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이번엔 카사르 병사들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어비스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일찍 나오는 건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나, 불쌍한 병사들이 눈에 밟히는구나.”

저벅.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 살얼음이 꼈다.

“……비, 빙하의 기사다!”

“가웨인이라고?”

“은퇴한 게 아니었나.”

그녀가 확성구슬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전사들이여, 무엇을 망설여서 주위를 살피는가.”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검을 뽑아 올려 태양광을 비추었다.

“소장이 여기 있다. 등을 쫒으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웨인이 선봉에 달려들고, 그녀의 측근들이 그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나머지 혼란에서 회복된 기사들 또한 이를 악물고 로즈안느군을 상대했다.

“……공기가 바뀌었다는.”

코퍼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저 존재감만으로 스펠 뮤직을 연주하는 로즈안느와 동급이었다.

“돌겠군! 정말!”

적장의 정체를 알아본 부장 또한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많고 많은 카사르군 중에서 왜 하필이면 우리 상대가 카사르 최강군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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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가웨인

소속 : 카사르

직위 : 기사

종족 : 인간

무력등급 : (B)

통솔등급 : (B+)*

지략등급 : (C)

정치등급 : (D)

B+급 통솔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빙하의 기사

카사르에서 수많은 전설을 써내려간 가웨인의 힘은 마력을 순수한 얼음 결정체로 바꾸는 권능입니다. 발락과의 전투에서 저주를 받아 권능의 힘이 일정부분 약해졌지만, 그녀는 한 사람의 기사보다 후임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의 업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투입하는 마력에 따라 얼음의 강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발락의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유물의 힘으로 이 저주를 해소할 경우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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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이번주도 즐겁게 시작해보자구욧! 바다로 떠나고 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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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dud7284 / ㅇ.ㅇ?

알테니아 / 비월군도 한차례 등장할 일이 있을터이니 그때까지 힘내십시오! ㅠㅠ

책모기 / 감사합니다!

기름맛에너지드링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명예롭지는 못한 별명이군요

T스톤 / 로즈안느 : 감성 크레센도!

팀원 : 아오 저

니알라토텝 / 그렇습니다. 로테이션에 혼선을 주는게 포인트지요!

dls4920 / 넵넵!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지리산의늑대 / 저격머리쾌감!

샤마신 / 우에스기가 누구죠?

로아리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필살기라 아껴두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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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후라이팬이 가슴미사일에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무기였군요 ㄷㄷ; 메테오도 튕겨는 갓아이템...! 둘리님은 알로사우르스에 이은 2인자...! 히익

@최카츄 / 사랑을 담아 로즈안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이 대사 좋네요. (메모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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