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97화 (19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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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아이

전장에 ‘장군기’가 펄럭이기 시작하며 바람이 바뀌었다.

“가웨인 님이 오셨다!”

가웨인이 휘하 기사들을 이끌고 직접 최전선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가 향하는 곳 마다 병사들이 목청껏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부관들 또한 신이 나서 외쳤다.

“보아라! 장군께서 직접 올라오셨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평생을 돼지처럼 진흙탕에서 뒤뚱거리면서 살 텐가! 전설에 이름 한 줄 남기고 싶은 자는 장군을 따르라!”

“와아아아아아아!”

카사르군 전체 병사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가웨인은 사기를 돋우기 위한 장황한 연설도, 적장의 목을 베는 대단한 무위도 선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선의 가장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 했다.

“……골치 아프군. 전설은 달라도 뭔가 다른 건가.”

전장을 살피던 부장이 중얼거렸다.

장수 개인의 무력만으로는 전황 전체를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장수 개인의 존재감은 전황을 뒤바꾸고도 남는다. 이 사실을 가웨인이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장군기가 등장했을 때 카사르군이 내질렀던 웅장한 함성은 부장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로즈 양이 있다는!”

코퍼가 말했다.

“서로 사기는 최고조. 백중세라는!”

코퍼의 말처럼 양측 병사들 모두 사기가 최고조인 채로 난전에 돌입했다. 그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병사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팔 다리가 찔려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의 기세에 등을 돌려 도망치는 자 없이 용감히 창검을 맞댔다.

‘백중세라, 하지만…….’

부장의 생각은 코퍼처럼 낙관적이지 못했다. 연주중인 로즈안느의 숨이 점차 거칠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연주가 끝나도 당분간은 스펠뮤직의 이로운 효과가 적용되겠지만 그것마저 사라지면 가웨인을 필두로 한 카사르군을 막을 수가 없다. 로즈안느는 또 다시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할 것이다.

‘…그래봐야 가웨인이 끌어올린 사기를 간신히 따라잡을 뿐이겠지만.’

부장의 시선이 가웨인이 이끄는 중앙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기사들은 분신처럼 뒤에 착 붙어 그녀가 정면의 적에게만 신경 쓸 수 있도록 악착같이 싸웠고, 병사들 또한 그녀를 감싸듯 호위하며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었다.

‘아직 로즈가 상대하기엔 이른 건가.’

전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업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위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평판이 형성되어가는 것. 로즈안느는 재능이 있지만 병사들의 존경을 받는 지휘관으로서는 너무 어렸다.

연주를 끝낸 로즈안느가 고개를 쳐들고 류트를 고쳐 잡는 모습이 보였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지만 바로 다음 곡을 연주할 생각인 듯했다. 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장군! 조금만 쉬십시오. 체력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뇨, 오라버니. 여기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장이에요.”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가겠습니다.”

디링! 로즈안느는 바로 다음 곡을 연주했다. 아까와는 또 다른 곡. 같은 곡을 이어서 연주하면 효과가 줄어드니 당연한 것이었다.

- 이중 연주.

- 스펠뮤직, 비창. 달밤의 우편마차.

- 스펠뮤직, 열광. 사냥꾼의 합창.

그녀가 줄을 튕기자 류트에서 두 가지 색의 음표들이 하늘로 튀어나왔다.

“오오오! 좋아!”

“가자!”

“카사르 놈들에게 밀리지 마라!”

연주를 듣고 새로운 힘이 몸에 들어온 것을 느낀 어비스군 병사들이 더욱 사기 백배하여 전투를 이어나갔다.

새로운 스펠뮤직으로 전황은 좋아졌지만 부장은 로즈안느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한계에 임박한 듯 숨이 가빠졌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음악에서 티가 났다. 연주 중간 중간마다 필요 없는 이상한 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수로 인한 잡음이라고 부장은 생각했다.

‘아니, 잠깐. 이건…….’

잡음치고는 이상하게도 멜로디가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부장은 더 집중해서 들어 보았다.

동시 연주되는 두 곡 사이에서 잡음처럼 생겨난 이 멜로디는 이내 두 곡을 내리깔며 완전히 전면에 몸통을 드러냈다. 로즈안느의 체리색 눈동자에 진지한 빛이 서렸다.

- 삼중 연주.

- 스펠뮤직, 비창. 달밤의 우편마차.

- 스펠뮤직, 열광. 사냥꾼의 합창.

- 스펠뮤직, 회한. 초승달은 빛나고.

류트를 연주하는 로즈안느의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한계를 붙잡고 끌어올리고 있었다.

‘……로, 로즈!’

연주를 듣던 부장은 전율했다. 기존에 병행 연주하던 두 개의 곡에서 새로운 곡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기존에 연주되던 두 개 곡의 음이 단순화 되어 배경처럼 깔렸고, 세 번째 곡이 올라와 힘껏 독주했다.

하나의 하모니가 더해지는 것으로, 경쾌하고 격렬한 음에서 마치 웅장한 오페라와 같은 음악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부장뿐만 아니라 스펠뮤직에 대해 알고 있는 바드들 모두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저 경지가 얼마나 엄청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어요!”

그녀가 쉰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길 수 있어요!”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비스군 병사들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일반병들이 카사르 나이트들의 검을 튕겨냈으며 후열의 병사들이 가슴에 창을 박아 넣었다. 가웨인이 직접 검을 휘두르고 있는 중앙을 제외한 좌측과 우측 진형은 어비스군이 사기의 우위를 바탕으로 밀고 내려가고 있었다. 가웨인의 부대만 중앙으로 삐쭉 솟은 형상이 되었다.

“…훌륭하오.”

가웨인이 적병을 베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무 병들의 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가웨인은 이미 부관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전달해 두었다. 지금부터 차륜진의 규칙은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총공세로 전환하도록 한 것이다. 언제나 우직하게 정면으로만 부딪치던 카사르군 진형에 한 쌍의 날개가 생겼다. 카사르의 부관들이 지휘하는 수 십 개의 작은 부대가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고 서서히 어비스 진형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마치 화려한 무대 예술을 보는 듯 신속하고 역동적이었다.

“뭐냐는! 중간에 보냈던 아군 기마대는 어디간거냐는!”

코퍼가 기겁하며 외쳤다.

“벌써 진압됐어.”

부장이 대답했다.

“…가웨인 혼자서 최전방을 맡고, 모든 부관급 장수들을 뒤로 보내 날개로 배치시켰다.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수완뿐만이 아니라 지휘의 수준도 한 차원 달라.”

적에 대해서는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가웨인이 이끄는 자들은 전부 그녀의 인망에 반해 들어온 자들이거나 여러 이유들로 아크에게 배제된 ‘구 기사’들이었다. 그녀는 이들 모두를 기꺼이 끌어안았고, 가웨인군에 속한 모두가 그녀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였다. 차륜진도, 변화무쌍한 진형의 변화도, 강도 높은 훈련 이전에 대장과 부하들의 유대가 밑바탕이 된 덕분이었다.

“……크윽!”

“빙하의 기사를 막아라!”

“이 이상 전진을 허용해선 안 된다!”

로즈안느가 가웨인에 비해 또 한 가지 부족한 것은 개인의 ‘무력’이었다. 버프 효과를 등에 업은 병사들이 가웨인을 잡기위해 사방에서 들이닥쳤으나 그녀의 일검을 버티지 못하고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쌓여갔다.

젊은 무장들처럼 화려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가웨인은 조금의 군더더기나 힘의 낭비가 없는 검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극히 절제되었기에 예리했다. 적의 목숨을 끊는 살인술로서는 최고의 효율을 보였다.

앞에서 울리는 병사들의 비명소리에, 로즈안느는 음악을 연주하는 도중 눈을 떴다.

약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몽롱했다. 스펠뮤직은 시전자에게 막대한 정신력 소모를 요구했다. 수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입히는 힘인 만큼 술사 본인에게도 영향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아.’

그런 그녀가 눈을 뜨며 처음으로 본 광경은, 중앙의 아군 병사들이 학살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웨인에게 한 번 뚫린 방어진은 봉합되지 못하고 계속 무너져갔다.

‘못… 이기는 거야?’

자신의 음악에 고양되어 기꺼이 목숨 바쳐 싸우는 병사들. 그들이 흘리는 피,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 음악을 연주하는 이 와중에 선명히 보이고 들렸다. 이게 정말 잘하는 일일까? 이기지도 못할 전투에서 저들을 사지로 내몰기만 할 뿐인 것이 아닐까?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태였기에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잠시 후 그녀의 류트를 연주하는 손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리고는 삼중 연주가 중단되었다. 로즈안느의 눈에는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장군! 무슨 일입니까?”

부장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달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몽 같은 가웨인이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장군!”

“장군, 이제 여긴 위험합니다! 후방으로!”

부관들 또한 로즈안느를 지키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해요? 눈 좀 떠보십쇼! 야, 로즈!”

부장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실 끊어진 인형처럼 미동이 없었다. 뒤따라온 코퍼가 외쳤다.

“따까리 대장! 어서 로즈 양을 데리고 도망치라는! 여긴 우리가 맡겠다는!”

“……부탁한다.”

부장이 그녀를 안아들려고 몸을 굽히려는데 갑자기 로즈안느가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쳤다.

명백한 거부 의사였다.

“……장군?”

스윽. 그녀가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거칠게 아래로 내리며 다시 류트 줄을 튕겼다. 새로운 곡이 연주되었다.

- 스펠뮤직, 비통. 해질 무렵의 정서.

“뭐, 뭐야?”

그동안 연주했던 것은 병사들의 사기와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빠른 템포의 곡들. 그러나 이번에는 처량하고 구슬픈 멜로디였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다. 바드들이 만든 정식 스펠뮤직이 아니야. 저런 막곡에 마력을 실어봐야 제대로 효율이 나올 리 없잖아!’

콰콰콰콰콰콰콰콰! 전방의 병사들이 얼음 폭풍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그 앞으로 살기를 뿌리며 다가오는 여기사가 있었다.

“슬픈 선율이군.”

마침내 언덕을 다 올라온 가웨인이 로즈안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어렸다니. 요즘 젊은이들의 기세가 무섭소. 난세인 만큼 인물들이 튀어나오는 가보오.”

“……빙하의 기사!”

병사들과 부관들이 로즈안느의 앞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

“재능은 아깝지만 중대한 적.”

가웨인이 검을 뻗는 동작만으로도 병사들이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싹을 잘라내야겠소.”

============================ 작품 후기 ============================

lupian / 정화의 창은 아르곤에 있습니다~

알테니아 / 흠 ㅠㅠ

T스톤 / 더블 B!

모두의칭구 / 카사르의 에이스급 영웅이죠

니알라토텝 / 벌써 사로잡을 궁리를 ㅋㅋㅋㅋ

ZzeRoN / 로드의 여성 캐릭터 컬렉션...

아프게했어 / ㅠㅠㅠ 꿈깩아니에요!

llSongOfBladell / 으음. 너무한건가요... ;ㅅ; 이제 후반부이고 A+~A급 이상의 영웅이나 고대의 존재도 등장하는 상황이라 카사르의 전설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최카츄 / 로즈안느 부모님이 등장하셨군요 ㅠㅠ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련이 있어야 성장도 있는 법이니 계속 믿고 맡겨주시길...!

돌핀임 / 으음, 그런가요...? 저는 현재 로드의 영웅진 정도면 대단히 우수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는게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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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리아 / 필살기는 다음편에...

@로리콤MK / ㅠㅠ 치열한 전쟁이라... 승기가 이쪽갔다가 저쪽갔다가 하면서 그렇게 느끼시는듯 합니다. 나머지 두 편은 스피디하게 전개할 생각입니다.

@dls4920 / 응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요즘 여러모로 지치지만 이런 응원때문에 또 버팁니다!

@할레데임 /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워낙 주인공 굴리는걸 좋아해서.. (퍽! 왠지 주인공이 편하면 글이 심심해 보이잖.. (퍽!

@...(-1)... / 그 대마법을 이 세계관에 쓰면 앙대요 ㅠㅠㅠ 다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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