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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아이
이틀 차 전투에서 로즈안느군은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중앙이 돌파 당했고 장군인 로즈안느가 있는 언덕까지 가웨인과 기사들이 도달했다. 사실상 체크메이트라고도 부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비키시오.”
가웨인이 경고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제자리를 지켰다.
“비키지 않겠다면 뚫고 가는 수밖에.”
탓! 가웨인이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 병사들의 방어진에 검을 휘둘렀다.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뒤따랐다.
‘……위험해.’
부장이 식은땀을 흘렸다. 코앞에서 쇠붙이 소리가 진동하고 있는데 로즈안느는 여전히 정신을 놓고 구슬픈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제길, 연주 중인데 함부로 건드렸다간 마력역류의 위험이…….’
“빠져나가지 못하오.”
가웨인이 어비스군 병사들의 어깨 사이 빈틈으로 오른팔을 뻗었다.
- 얼음 손길.
콰드드드득! 얼음으로 이루어진 손아귀가 병사들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로즈안느에게로 들이닥쳤다.
“헉! 로즈 양!”
코퍼가 비명을 질렀다. 손에 쥔 검을 내려놓은 부장이 서둘러 허리춤에 차고 있던 피리를 뽑아 올려 입에 댔다.
- 쇼크웨이브(Shockwave).
퍼어어어엉! 부장이 피리를 불자 소리 대신 맹렬한 충격파가 뿜어져 나가 다가오는 빙하를 산산조각냈다. 바드들의 몇 없는 필살기급 공격기술인 쇼크웨이브였다. 기술을 사용한 부장이 힘이 빠진 듯 비틀거렸다.
“오오오! 따까리 대장도 바드였냐는? 그냥 폼으로 부장자리를 꿰찬 건 아니었다는!”
“다, 당연하지. 허억, 헉.”
부장이 입에서 흐르는 침을 소매로 슥 닦으며 가웨인을 노려보았다. 가웨인은 아쉬운 얼굴로 팔을 거두고 주위로 달려드는 병사들을 다시 상대했다. 병사들에게 가려 가웨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부장은 못 버티겠다는 듯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히, 힘들어.”
그의 입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나왔다.
“뭐야? 약골이었잖냐는!”
“……로즈, 아니 장군이 비정상인 거야. 준비시간 없이 쇼크웨이브를 즉발하는 건 몸에 엄청난 부담이라고!”
“아무튼 수고했다는. 뒤는 내게 맡기라는!”
뭔가 준비한 게 있는 듯 분주히 아군 진형을 돌아보던 코퍼가 확성구슬을 입에 대고 소리쳤다.
“전 로사리움 형제들은 들으라는!”
“……그거 진짜로 있는 거였냐.”
부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의 로즈 양이 위기에 빠졌다는! 드디어 우리가 나서서 로즈 양을 지켜줄 때라는! 죽기 살기로 버티라는!”
“오오오오옷!”
“가자아아!”
후방에서 새로운 병사들이 언덕으로 튀어나왔다. 부장은 당혹스러웠다. 언제 준비한건지 투구에 장미꽃을 꽂은 병사들이 ‘로즈 양을 위해!’라는 구호를 외치며 살벌한 기세로 가웨인에게 달려갔다.
“비키시오.”
가웨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세찬 검격이 병사들의 몸을 갈랐다. 정면에 한 명. 우측에 한 명. 검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청백색 검기는 일검에 실린 마력과 힘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었다.
“우오오옹오오오! 로즈 양을 위해!”
까앙!
처음으로 일반병이 가웨인의 검을 튕겨냈다. 그녀의 동공이 확대되는 순간, 좌우로 돌아들어온 로사리움 병사들이 허리를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러왔다.
- 글레이셜 배리어(Glacial Barrier), 오토 모드(Auto Mode).
콰드드드득! 그녀 주위의 대기가 얼어붙더니 얼음폭풍의 형태로 방사되어 좌우사방의 병사들을 동시에 얼려버렸다. 가웨인의 인식 외 공격까지 스스로 발현해 차단해버리는 최강의 방어기술.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어준 기술이었다.
후웅! 얼음폭풍이 걷히자마자 누군가가 던진 검이 날아왔다. 가웨인이 자신의 검을 휘둘러 쳐내자, 아까 쓰러트렸던 병사가 가웨인의 뒷발을 붙잡았다. 가웨인은 당황하지 않고 병사의 머리를 반대쪽 다리로 뭉개며 정면으로 쇄도하는 창을 빗겨 쳐냈다.
“난잡하군. 그대들은 명예도 없는 것이오?”
가웨인이 짐짓 화난 투로 말했다. 뒤로 돌아온 병사가 허리에 매단 마력탄을 작동시키며 몸을 던졌다.
“로즈 양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명예다!”
콰드드드드! 마력탄이 폭발하기도 전에 가웨인이 그의 몸을 얼려버렸다. 서겅! 그녀의 검이 휘둘러지며 얼음 동상을 반토막 냈다.
“크으으!”
“물러서지마라!”
병사들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가웨인의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상대 지휘관을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일개 병졸들에게 발목이 잡히다니……. 지휘관의 정예병들인가? 정신력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우수하다.’
놀란 것은 지켜보고 있던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쟤들! 그냥 투구에 장미 꽂은 변태놈들이 아니라 진짜로 강하잖아!”
“그야 당연하다는!”
코퍼가 뽐내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들 로사리움은 로즈양의 무대에 완전히 푹 빠져서 그녀에게 영원을 맹세한 병사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역시 그냥 변태잖아!”
“아니라는.”
코퍼가 진지한 얼굴로 부장을 보았다.
“잊었냐는? 음악으로 발현되는 스펠뮤직은 그 어떤 마법보다 개인차가 크다는.”
“……아!”
부장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그렇다는! 우리 로사리움은 그녀의 음악에 푹 빠져서 완전히 매료된 자들로만 구성되어있다는. 그녀의 무대가 열리는 곳이라면 대륙 어디든지 한 걸음에 달려가고, 그녀가 부르는 한 소절에 눈물을 머금고 가슴 벅찬 감격을 느끼는 감성남들이라는!”
부장의 시선이 로사리움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장미꽃을 투구에 꽂은 병사들만 몸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광채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스펠뮤직으로 인한 버프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 눈에 잘 보일 정도였다.
그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변태 같은 병사들이 로즈안느의 스펠뮤직이 발동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강해지는, 그녀의 스펠뮤직에 가장 큰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정예병이었다.
“그러니까 눈을 떠 달라는! 로즈 양!”
코퍼가 로즈안느를 돌아보며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로즈 양의 첫무대를 잊을 수 없다는! 병에 걸려 다 죽어가던 내게 로즈안느의 무대는 광명이었다는! 살아갈 에너지를 주고 병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로즈 양이라는!”
“……너.”
부장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로즈양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눈이 부신다는! 앞으로도 계속 모두를 위해 노래해 달라는!”
코퍼의 외침에 기사들을 막고 있는 다른 로사리움 병사들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일어나라는! 로즈 양!”
“오빠가 격하게 아낀다!”
“힘내십쇼! 장군!”
“노래해줘!”
일반 병사들까지 로즈안느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탰다. 귓가에 환호성이 파고 들어오며 로즈안느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완전히 뜨자,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진심, 닿고 있었구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전장의 병사들이 로즈안느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다시 확인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있어야 할 장소.
‘앞으로.’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이제는 달릴 일만 남았다. 그녀는 연주하는 중인 ‘해질 무렵의 정서’를 중단하고 중간에 끊겼던 삼중 연주를 다시 재개했다. 깨달음을 얻은 직후인 지금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짝 더 앞으로!’
그리고 그 선율 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서글픈 선율이 얹혀졌다. 기존의 세 개의 음악이 단순해지며 배경으로 깔리고 메인으로 들어선 것은 마지막 ‘비통’이었다.
- 사중 연주.
- 스펠뮤직, 비창. 달밤의 우편마차.
- 스펠뮤직, 열광. 사냥꾼의 합창.
- 스펠뮤직, 회한. 초승달은 빛나고.
- 스펠뮤직, 비통. 해질 무렵의 정서.
부장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가 보아왔던 그 어떤 바드도 해내지 못한 경지, 사중 연주가 눈앞에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로즈안느의 통솔등급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류트 위를 춤추는 로즈안느의 손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슬프게 우는 것 같은 멜로디가 전장을 뒤덮었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병사들의 표정이 급격히 상기되었다. 흥분, 쾌감, 분노, 공포 등의 감정이 가라앉고 모든 감성이 명상을 마친 것처럼 차분해졌다. 다만 가슴만은 불을 지핀 듯 뜨거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병사들은 함성 없이 달려들었다. 호흡에 열기가 섞였다.
이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병사들은 두 눈으로 냉정하게 전황을 응시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이놈들!”
기사 하나가 단칼에 어비스 병사의 목을 날렸다. 동료의 머리가 날아가면 병졸들은 무언가 반응이나 빈틈이 나와야 하는데, 상대하는 이들에게서는 조금의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병사들은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대처했다.
퍼억! 몸만 남은 동료의 시체가 기사의 몸에 강하게 부딪쳤다. 기사가 움찔한 틈을 탄 창격이 기사의 머리를 뚫고 뇌수를 뿌렸다.
사중 연주의 스펠뮤직으로 가장 강력해진 건 누가 뭐래도 로사리움의 병사들이었다. 눈에서는 끊임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온 몸에서는 푸른 마력이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그들이 보여주는 무위는 한 명 한 명이 가히 영웅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크윽!”
심지어 가웨인조자 로사리움의 병사들을 상대하다가 어깨에 검상을 입었다. 한 발짝 물러나며 가웨인은 오한을 느꼈다.
‘……병사들을 극한까지 강화시키는 지휘관이라.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구나.’
그녀가 내뿜는 냉기의 권능에도 병사들은 침착하면서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일반 병졸들이 이렇게 침착하니 가웨인조차 1:1로 적을 상대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가 되었다.
‘이대론 안 되겠어.’
기껏 포위망을 구성해서 포위했지만, 지금의 어비스군 병사들은 진영의 이점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초각성 상태였다. 그녀가 팔을 뻗어 수신호를 부관들에게 보냈다.
‘인정하지. 오늘은 우리의 완패다.’
후퇴의 기가 카사르 진형 곳곳에 올라왔다.
============================ 작품 후기 ============================
로즈안느도 이제 한 사람 몫을 해내네요! 베아트리체에 이은 어비스의 두번째 B+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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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오늘도 첫코 첫코!
니알라토텝 / 로즈 쟁탈전 히로인 경쟁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낮선자여. (?)
인류의멸망 / 역시 죽이자! 라는 분도 계시는군요.
할레데임 / 히익 ㅋㅋㅋㅋㅋ 사, 살려주세요.
돌핀임 / 지하던전에 한분 계십니다. 마왕이라고...
벌레 / 으음; 하긴 여기사 포지션이 없지는 하지만...
llSongOfBladell / 네. 사실 어비스가 문화시대 넘어오면서 클리어할 고대 퀘스트는 키메라 한명을 '리리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하던전 공략을 해야했죠. 하지만 우연히 마왕 적격자인 르네를 잡았고, 인공적으로 마왕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그 퀘스트는 깨졌죠. 고대의 존재는 언더하임 말고 다른 지역에 또 한명 계획하고 있기는 한데 작중에 등장할지 말지는 미정이네요.
지리산의늑대 / 주인공 강제 교체...
도레미파솔솔 / 으음, 불리한 상황의 스토리는 안 좋아하시나 보군요 ㅠㅠ. 이미 계획된 스토리는 바꿀 수 없지만 로드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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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사실은 재능파였죠! 바드 출신에 고유능력도 음악에 관련된 거라 그 시너지가 대단하죠
@로아리아 / 넵, 멸망한 나라의 고대의 영웅들은 얻지 못합니다. 반드시 해당 국가의 플레이어가 필요합니다.
@...(-1)... / 잠깐만, 기가슬레이브가 안전한 마법이 아니라 그 세계가 몹시 단단한 세계인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 무시무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