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99화 (19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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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략과 모략의 상관관계

한편, 어비스 요격군에 속한 세 군세 중에서 가장 뒤쳐져서 진군하고 있던 티아는 곧 로즈안느군이 카사르군과 교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군, 진군 속도를 높여라! 로즈안느군을 도우러 가겠노라.”

그렇게 행군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도중, 티아군의 발걸음은 다시 멈춰졌다. 정찰병의 보고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군사님! 카사르군의 야영지를 발견했습니다!”

백마에 타고 있던 티아가 말에서 내려와 헝클어진 황금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명화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정찰병은 잠시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군기가 든 모습으로 차렷 자세를 했다.

“로즈안느군이 상대하고 있던 군세와는 다른 자들인가?”

“예! 병사들의 얼굴엔 크게 지친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고, 기사들의 갑옷 또한 핏자국 하나 없이 새것 같았습니다. 전쟁을 겪은 자들 같지는 않았습니다.”

“적장은 누군지 알아냈느냐?”

“예! 장군기를 확인해 보았는데 ‘퍼시벌’이라는 자입니다.”

티아의 뒤에서 정보를 듣고 있던 세이지가드들이 웅성거렸다.

“퍼시벌? 아는 무장이야?”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인데. 첫 상대는 무명인가 봐.”

“가웨인이나 보호트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티아의 부관들은 대체적으로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군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로즈안느군을 도우러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후자다.”

티아가 뒷말은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적의 군세를 앞에 두고 어딜 가겠느냐. 지금부터 우리군은 전력으로 퍼시벌군을 상대하겠노라.”

“오오.”

“시작이로군!”

세이지가드들과 병사들이 흥분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지금부터 군략을 짜겠노라. 의견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세이지가드들은 티아의 곁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군략을 배웠던 만큼 문무겸장들이 많았다. 다들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대세는 야영지 급습 쪽으로 기울었다. 이쪽은 적을 발견했고, 적은 아직 우리군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으니 그 이점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음.”

세이지가드들의 이야기를 듣던 티아는 바스락거리며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펼쳤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 정보부에서 조사한 카사르 장군들의 프로필이니라.”

티아가 프로필을 세세히 읽고 있는데, 그 모습이 의아했던 여성 세이지가드가 물었다.

“군사님. 지금은 어떻게 적의 군세를 공략할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닌가요? 무슨 연유로 적장의 정보를 그리 꼼꼼히 보시는지요?”

티아가 쪽지에서 눈을 때서 그녀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본녀도 한때는 비슷한 의문을 가졌노라.”

“……예?”

“그대가 했던 물음 그대로 주공에게 던진 적이 있었지. 눈앞의 적국 군대를 어떻게 물리칠지 궁리해야 할 상황에 ‘인물’에 대해서만 너무 깊게 파고드는 주공을 이해하기 힘들었노라.”

“그렇다면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느니라.”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니, 굳이 군략과 모략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노라. 전쟁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특히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자가 지휘관이다. 지휘관의 스타일은 군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지. 따라서 인물에 집중하는 것은 적을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가르침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럼 이번 적장인 퍼시벌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티아가 다시 쪽지를 보았다.

“으음, 카사르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군. 아니, 검을 잡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노라. 나이는 10대 중후반. 부관 정도의 직위에서 한 참 배워야 할 시기에 한 나라의 장군이 되었다. 아크가 안에서 힘을 실어주는 모양이고, 본인도 승승장구하니 자신감이 가득 차 있을 터이다.”

그녀가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정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퍼시벌군을 상대할 책략 말이니라.”

“버, 벌써 말인가요?”

티아는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빛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세이지가드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

‘장군’으로서 첫 전투를 앞둔 퍼시벌은 어느 때 보다 들떠있었다. 현재 카사르 내에서 가장 핫한 남자를 꼽으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었다. 16세의 나이에 기사가 됐고, 17세에 군을 통솔하는 장군이 됐다. 마치 ‘빙하의 기사’의 소녀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아니 빙하의 기사보다 더 대단한 커리어를 걷고 있다고 퍼시벌은 생각했다.

아크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린 나이의 자신을 장군의 자리에 앉혔다. 아크가 보여준 신뢰, 죽을힘을 다해 반드시 보답하고 싶었다. 전쟁을 끝낸 후 왕도에 올라가 아크의 앞에서 당당히 로드 폴렌티아의 목을 바치면 그는 얼마나 기뻐해 줄까? 그리고 자신의 임용을 반대했던 신하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광경이었다.

장군 임명 이후, 아크는 퍼시벌에게 스스로 군을 꾸릴 자격을 주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젊고 유망한 기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부관자리를 자처했다. 한 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대단한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장군!’ ‘장군!’하며 자신을 따라다니니 퍼시벌은 하늘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힘이고, 이것이 권력이구나. 하지만 퍼시벌은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의 가장 큰 목표는 권력이 아닌, 아크의 인정이었으니까. 그는 언제나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야영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가자 한 부관이 말했다.

“장군. 제장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작은 연회를 여는 게 어떻습니까?”

퍼시벌은 이에 시원하게 동의했고. 곧이어 지휘관 천막에서 연회가 벌어졌다. 그의 주위에는 흔히 기성시대 기사들과 구분되는 젊은 기사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아크의 영향을 받아 기사도와 명예에 얽매여 있는 것을 거부하고, 격식 없이 자유롭게 지냈다.

제장들의 나이는 20대나 30대 정도로 젊었고,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본래 기사의 영혼을 상징한다며 꾸미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갑옷도 치장, 개조 등을 통해 자신만의 상징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안에서도 가장 나이 어린 기사인 퍼시벌이 이들을 다스리는 장군이었다.

“모두들 제게 힘을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

퍼시벌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카사르 내에서도 우리 젊은 기사들의 실패를 고대하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보란 듯이 큰 공을 세워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줍시다.”

“그럼! 그럼! 이를 말씀입니까!”

“로드 폴렌티아나 티아 그란디네의 목 정도가 되지 않으면 성에 안차지.”

“좋군요! 이렇게 젊고 활기 넘치는 군이 카사르 역사상 있었나 싶습니다. 모두 퍼시벌 장군 덕분입니다!”

“당연하지! 미래의 마스터 나이트가 되실 분이 아닌가.”

기사들이 한마디씩 덕담을 던졌다. 퍼시벌이 활짝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자, 건배합시다. 로드 폴렌티아의 목을 위하여!”

“위하여!”

“하하하하하!”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며 지휘관 천막이 시끌벅적해진 사이, 한 남자가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헛!”

모두의 표정이 굳어지며 천막 안이 급격히 조용해졌다. 40대 후반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한 이 남자는 현재 퍼시벌 군의 2인자인 부장 기사였다. 그의 등장에 ‘에라이. 술맛 떨어지게.’하고 대놓고 중얼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놈들!”

그가 윽박지르자 젊은 기사들이 움찔하며 눈치를 보았다.

“적의 영토 한복판에서 이게 무슨 짓거리들이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이놈들아! 이건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이지, 애들 마냥 캠핑이나 즐기러 온 게 아니란 말이다! 하여간 기사 개혁이후 개나 소나 기사라고 나서니 원!”

그는 장장 십분 간을 숨도 쉬지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분노에 찬 시선이 퍼시벌에게로 옮겨갔다. 부장이 쿵쾅거리며 다가오자 퍼시벌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옆자리에 앉은 기사가 코웃음을 치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휴, 무슨 장군이 힘도 없어. 부장 하나 제대로 못 다뤄서야.”

그 중얼거림을 들은 퍼시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장군!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부장이 소리쳤다.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야영을 명하질 않나! 병사들은 고생하며 야영지를 만들고 있는데 제장들을 모아 술판을 벌이질 않나! 장군, 제발 경각심을 좀 가지십시오!”

퍼시벌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 장군에게 조언을 하는데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닙니까.”

“…….”

부장이 씹어 먹을 표정으로 노려보자 퍼시벌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크가 보낸 사람이라 막 대할 수도 없었다. 왜 아크는 기껏 마음대로 군을 짜게 해줬으면서 2인자 자리는 이런 구 기사 따위를 보낸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장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똑바로 서서 경례자세를 취했다. 다른 기사들이 숨죽여 킥킥거렸다. 옆에서 구시렁거리던 그 기사도 미소를 지으며 퍼시벌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퍼시벌은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 여기선 내가 최고다. 다름 아닌 아크의 명으로 장군이 됐다. 누구도 나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걸로 만족하셨습니까? 하지만 이 노장, 할 이야기는 해야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입니다.”

퍼시벌이 팔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다. 그리고 연회를 열기로 결심한 뒤로 계속 생각하고 있던 대사를 쏟아냈다.

“야영을 이른 시간에 잡은 건 이제 우리의 목표인 위그드라실까지 거리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찍 병사들을 쉬게 하고,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해 엘프들을 칠겁니다. 그리고 부장께서도 사기의 중요성에 대해 몇 번을 강조하셨지 않습니까. 푹 쉬고, 잘 먹이면 병사들은 다음날 더 잘 싸우겠죠. 이 모든 게 최고의 컨디션과 최고의 사기로 전투에 임하기 위함입니다.”

“……후우우.”

부장이 분노로 몸을 떨었다. 이렇게 뭣도 모르는 꼬맹이를 장군으로 모셔야 한다니. 자신을 여기로 보낸 아크가 원망스러웠다.

“알겠습니다.”

부장이 인정하자 퍼시벌과 기사들과 낯빛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가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흔들며 말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술을 퍼 마시는 건 정말로 사기 진작을 위해 섭니까? 그리고 여기 있는 몇몇 기사들만 사기를 진작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윽.”

퍼시벌과 기사들은 결국 잔소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장의 고함이 다시 폭발하고 있는데.

“장군! 장군!”

한 병사가 헐레벌떡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적습입니다!”

“뭐라고?”

퍼시벌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왔구나! 어비스!”

공을 세울 때가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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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바름 / 으음, 유리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걸 원하시는지요. 애초에 작품의 컨셉부터가 '게임폐인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입니다. 그리고 어비스의 위치는 주위 6개국이 둘러싸인 대륙 정중앙이죠. 지리적 조건부터가 공세보다는 버티는 포지션입니다. 아로게쓰같이 특수한 상황외엔 먼저 선공을 하기가 어렵지요. 뭐, 이런 배경 설정들을 떠나서 제 스타일이 그럴수도 있겠네요. 저는 널널하고 편안한 상황에서 적과 싸우는것 보단 주인공을 끊임없이 위기속에 던져놓고 극복하는 과정을 보는게 더 좋은것 같습니다.

알테니아 / 힉; 점점 의사소통이 어려워져!

아프게했어 / ㅋㅋㅋㅋㅋㅋㅋㅋ 사기 가능의 유무가 크지요.

도레미파솔솔 /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로드가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T스톤 / 두번째 B+!

니알라토텝 / 잠깐만, 로드가 로리콤이니까 로드가 유아화되면... 음음. 그런데 소재가 재밌네요! 외전으로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remedie / 면도날...?

Nothings / 음, 이득보는걸 못봤다구요? 초 중반부에선 정보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틴전, 아로게쓰전, 카사르전, 동맹전쟁 때까지 정보력이 활약하지 않은 적이 없고 수많은 적수의 뒤통수를 치며 로드는 지금까지왔죠. 다만 중후반부에 와서 정보부의 역할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상대가 세레나와 아크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어비스의 강점이 정보력인걸 알고 있고 정보를 차단하는게 어비스와 싸우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정보력를 차단하거나 피하는 수를 써서 상대적으로 정보가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겁니다.

박성빈 / 스파이액션어드밴쳐... 사실 스파이는 몹시 지루한 작업이라 (잠입, 잠복, 대기대기대기대기) 다루기가 힘들었는데 한 번 씬을 생각해봐야겠군요. 의견 감사합니다!

@로아리아

@하이든  /  4중 연주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네곡을 전부 연주하는 건 아닙니다. 기존곡들의 음율을 단순화시켜 배경으로 깔고 주요한 한곡 위주로 연주하는거죠. 이중:1+1, 삼중:0.5+0.5+1

(사실 이런 배경 설정을 다 떠나서 까놓고 말하면... 숙련된 검사가 적을 한번에 아홉번 베는 연출이 있는게 판타지의 세계니까요 ;ㅅ; 죄송합니다!)

@벌레 / ㅋㅋㅋㅋㅋㅋ 로즈안느 콘서트 한번 할때마다 친위대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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