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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략과 모략의 상관관계
카사르는 과연 강군다웠다. 예상치 못했을 어비스군의 기습이었지만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몇몇 부관들의 지휘아래 신속하게 대비태세를 마쳤고, 퍼시벌과 기사들이 밖으로 나올 즈음에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퍼시벌이 투구를 쓰며 부관에게 말을 걸었다.
“상황 보고해줘요.”
“예! 장군. 적은 500명의 기병부대입니다. 후방으로 침투해 우리 식량에 불을 붙이려 시도했지만 중간에 저지했습니다. 현재 수비병들이 그들과 전투 중입니다.”
“좋아. 기병이라고 했죠? 우리도 말을 타고 놈들을 치도록 하죠!”
카사르의 기사들은 ‘검술’에 치우쳐 있어 기마술과 마상전투 능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운송수단으로 말 한 마리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추세였다. 기사들은 빠른 이동을 위해 말에 올라탔고, 그 뒤를 준비된 보병들이 따랐다.
“이럇! 하하하!”
퍼시벌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말을 잡아타고 적과 교전중인 곳으로 향했다. 그의 말은 카사르 전력에서 손꼽히는 명마로, 아크가 직접 하사한 것이었다.
‘저기 있다!’
멀리서 티아군의 기병대가 목책 방어진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퍼시벌이 검을 뽑으며 단기필마로 기병대에 달려들었다.
“뭐야, 저 애송이는?”
“해치워 버려!”
퍼시벌은 한손엔 고삐를 쥐고 남은 한손은 검을 들어 올린 채 난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쩌억! 쩍!
“……!”
퍼시벌의 검이 괴이한 궤적으로 꺾이자 주위의 기마병들의 몸이 분쇄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검신이었지만 직접 닿지 않아도 상대방의 몸이 쩍쩍 갈라졌다. 퍼시벌이 중앙으로 돌파하는 과정에 벌써 기병 여섯이 당했다.
‘키야아, 오늘 컨디션 최곤데! 검이 손에 착착 감겨!’
말에서 뛰어내린 퍼시벌이 한 손으로 검을 잡고 눈앞으로 가져다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 파동검. 육망성(六芒星).
그의 몸이 잔상으로 분해되어 마치 좌우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는 듯한 잔상을 남겼다. 그러자 여섯 방향으로 백색검기가 바닥을 타고 뻗어나가 기마병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
“…미, 미친!”
그 장면을 본 기마대의 부관이 식은땀을 흘렸다.
“저자가 퍼시벌이란 놈이구나. 혼자서 대적할 생각하지 마라! 모두 도망……!”
지시를 내리고 있던 부관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그의 시야 앞으로 거꾸로 뒤집어진 퍼시벌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투쾅!
퍼시벌의 몸이 들썩이며 검 끝에서 백색 검기가 쏘아져 나가 부관의 머리를 박살냈다. 퍼시벌이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른 기병들은 즉시 말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잉?”
그대로 포위당할 줄 알았던 퍼시벌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이것들이! 먼저 공격할 땐 언제고 도망치기야?”
퍼시벌이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킨 채 달려가 두 명을 말에서 떨어트렸지만 전부 잡아내는 건 무리였다. 바닥에 떨어진 기병들의 숨통을 끊어 놓은 퍼시벌이 도망치는 적들을 보며 킥 웃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자마자 도망부터 치다니! 어비스 놈들은 순 겁쟁이들뿐이군!”
퍼시벌이 다시 자신의 말을 찾아 올라탄 사이, 잔당을 처치한 부장과 병사들이 도착했다.
“장군!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지휘관이 홀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보자마자 또 잔소리라니. 아크가 보낸 사람이고 뭐고 이쯤 되니 슬슬 짜증이 났다. 퍼시벌이 툭 내뱉듯 대꾸했다.
“보시다시피 멀쩡하잖아요! 저런 것들에게 겁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퍼시벌은 이번 전투로 완전히 자신감이 붙었다. 측근 기사들 또한 퍼시벌을 옹호했다.
“저도 봤습니다! 당당하게 적진으로 파고들어 적의 기병들을 분쇄하는 그 모습! 한 마리의 맹수 같았습니다!”
“장군이 우리 군에 있는 이상 이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퍼시벌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가 더욱 용기를 얻어 소리쳤다.
“자, 가죠. 지금 당장 저들을 추격해서 본대까지 박살내 버립시다!”
“와아아아!”
부장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냐며 말렸지만 불붙은 퍼시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퍼시벌은 즉시 병력들을 움직여 도망치는 어비스군을 쫓았다. 도망친 기병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의외의 곳에서 새로운 어비스군을 발견했다.
“아하! 여기들 모여 있었군!”
500명 정도 되어 보이는 보병부대가 구덩이를 파고 울타리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근방을 요새화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퍼시벌의 군대를 본 병사들은 깜짝 놀라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작업 중에 급습을 당해 전혀 방비가 안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올 생각은 못했나봅니다, 장군!”
“구석구석 돌아다닌 보람이 있군요. 이럇!”
퍼시벌군은 그대로 작업현장을 덮쳤다. 울타리를 짓던 병사들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네가 적장이로구나!”
적병을 베며 나아가던 퍼시벌은 일반 병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번쩍거리는 화려한 갑주의 남자를 보았다. 퍼시벌은 즉시 말머리를 돌려 그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카사르의 장군 퍼시벌이다! 붙어보자!”
“……큭!”
말을 타고 도망가던 적장이 속도로 따돌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퍼시벌의 검이 번뜩이며 그의 몸을 지나쳤다. 남자의 목이 하늘높이 떠올랐다
‘해, 해냈어!’
짜릿한 쾌감에 퍼시벌의 몸이 찌르르 떨렸다. 병사들을 뚫고 들어가 단칼에 적장의 목을 베는 무인의 로망. 상상만 했었던 일을 자신의 손으로 현실로 만들어 냈다.
“퍼시벌 장군께서 적장의 목을 베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부관들이 바로 이 사실을 병사들에게 알렸고 병사들의 우렁찬 환호가 쏟아졌다. 퍼시벌이 검을 번쩍 들어 올리는 포즈를 취하자 다시 한 번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 이것이 장군이 보는 광경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얕보지 마라!”
주위의 어비스군 병사들이 울컥해서 달려들었지만 퍼시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가 사용하는 파동검은 말을 타고 있어도 자유자재로 주위의 병들을 베어 넘길 수 있었다. 결국 장수를 잃고 패잔병이 된 병사들은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퍼시벌은 계속해서 추격을 명령했다. 그리곤 그가 제일 앞장서서 후퇴하는 병사들의 목을 베어나갔다. 그때 간신히 퍼시벌의 말을 따라잡은 부장이 소리쳤다.
“장군! 잠시 멈추십시오!”
“또 뭡니까!”
퍼시벌이 고개를 홱 돌려 소리쳤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있는데 자꾸만 이 늙은이가 초를 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위를 좀 둘러보십시오! 숲이 우거지고 수풀이 많습니다. 좌우는 경사져있지요. 적이 매복하기 딱 좋은 지형이 아닙니까! 틀림없이 유인책입니다!”
“흥. 매복이요?”
퍼시벌이 코웃음을 쳤다.
“지형의 이점을 이용한 기습은 군의 화력이 비슷할 때나 통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부장도 보셨지 않습니까? 우리군은 모든 면에서 우위예요! 매복 따위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단 말입니다. 이럇!”
“자, 장군!”
퍼시벌군은 계속해서 후퇴하는 보병들을 뒤쫓아 처치해나갔다. 바로 그때.
“와아아아아!”
좌우의 숲에서 어비스군 병사들이 내려왔다. 좌측과 우측 모두 500명 이상의 병력이었다. 그들은 일 열로 쭉 나열되어 있는 카사르군의 허리를 노리고 내려오고 있었다.
“매, 매복이다!”
양측에서 적병이 불쑥 나타나자 퍼시벌군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주춤거렸다.
“보십시오, 장군! 매복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부장이 책망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퍼시벌은 가소롭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아웬 경!”
퍼시벌이 돌아보며 외치자 기사들 중 한 사람이 ‘예! 장군!’ 하고 대답했다.
“좌군 500명을 데리고 우회하여 좌측의 어비스군을 맡아 박살내십시오.”
“명에 따르겠습니다!”
“나머지 우군은 저를 따라오세요.”
“예! 장군!”
병사들이나 기사들마저 척척 명령에 따라주니 퍼시벌의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그는 내친김에 확성구슬을 켜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우리 퍼시벌군은 카사르 최강이다! 어비스가 매복을 했다고는 하나 힘없는 양 떼로는 뭘 해도 늑대를 이길 수 없는 법! 매복이 통할 상대라고 생각한 여긴 저들의 머리통에 검을 박아줘라!”
“와아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의 환호성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퍼시벌이 마지막으로 굳은 얼굴의 부장을 바라보았다.
“부장은 본대를 지휘하며 버티십시오. 그리고 지켜나 보세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후방 본대는 그대로 정지, 전방의 정예병들은 두 갈래로 갈라져 허리를 찌르고 있는 양 어비스군의 허리를 다시 찌르도록 했다.
“하하하하! 내가 퍼시벌이다!”
촤아아아악! 퍼시벌이 검을 휘두르는 족족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퍼시벌은 싸우고 있는 도중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본대 쪽을 힐긋 보았다.
‘매복에 당황한 병사들이 아직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사기를 더 끌어올려야 해!’
퍼시벌은 어비스군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적장을 찾았다. 과연, 이번에도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자가 보였다. 화려한 갑옷과 장수임을 상징하는 깃발이 마치 죽여 달라고 조르는 듯 했다. 퍼시벌은 망설이지 않고 말을 달렸다.
“하하하! 적장은 나와 승부하자!”
적진을 뚫고 가는 사이 적병의 창이 말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 충격으로 낙마하던 퍼시벌이 아슬아슬하게 낙법자세로 착지했다.
‘큭! 감히 아크 님이 주신 말을!’
퍼시벌은 입술을 짓씹으며 분노의 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말 위에 있는 것 보단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싸우기엔 더 편했다. 퍼시벌은 순식간에 적장이 있는 곳까지 뚫고 나갔다.
“허, 허어억! 자, 잠깐만! 나는……!
촤악! 적장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퍼시벌의 검격에 목이 달아났다.
‘됐어!’
퍼시벌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나 퍼시벌이 두 번째 적장을 베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장군급일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벌써 장수급만 두 명 째 잡아냈다. 퍼시벌의 소식에 병사들은 환호했고, 반면 지휘자를 잃은 어비스의 매복병들은 공세를 포기하고 뿔뿔이 흩어져 숲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후퇴 진형을 갖추지도 못하고 살기위해 막 뛰어가는 모습이 보기 우스웠다.
“하하하하! 역시 어버스군은 겁쟁이들 뿐이라니까!”
퍼시벌은 적 기병의 말을 잡아타고 아직 진압되지 않은 반대편으로 달렸다. 좌측 어비스군도 퍼시벌군의 저항에 애를 먹는 중이었고, 퍼시벌이 나타나 검을 휘두르자 얼마 안 되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 아웬! 세 번째 적장을 베었다!”
“오오오오오!”
좋은 소식까지 들렸다. 퍼시벌 자신이 임명한 장수가 적장을 베었다는 소식이었다. 퍼시벌 또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병사들과 함께 환호했다. 전투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웠다니!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틈이 없었다.
“장군! 전면에 새로운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또?”
새로운 병력이라 함은, 퍼시벌에게 쫓겨 도망치고 있던 그 전방의 병력들 쪽이었다. 후속 지원군이 더해져 수는 불어난 듯 하지만 그들은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아하, 좌우의 매복군과 함께 덮치려고 했나보군! 하지만 매복군이 모두 파훼됐으니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겠지!’
퍼시벌이 검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놈들을 쫓아라! 네 번째 적장을 베는 자에겐 황금을 내리겠다!”
“오오오오오오오!”
병사들도 사기에 취해 전면의 적을 쫓았다. 퍼시벌은 달려 나가다 병사들을 통제하고 있던 부장을 보았다.
“보셨지요? 부장! 우리 퍼시벌군이 이정도입니다! 약소군의 매복 따윈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하오나, 장군!”
“그만!”
퍼시벌이 기세 좋게 소리쳤다.
“더 이상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분하겠습니다.”
“…….”
“부장은 여기서 부상병들과 대기하세요.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적을 뒤쫓아 완전히 섬멸한다!”
퍼시벌이 말의 배를 차며 나아갔다. 사기가 오른 카사르군 병사들의 함성이 전장을 뒤덮었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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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ㅠㅠ 요즘 눅눅했던 마음을 풀어주시는 코멘이네요. 하아. 제 멘탈이 요즘 유리라서... 그래도 이런 의견이 있을수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분명 불만은 제 글을 읽다가 파생된거고 수정할 여지가 있다면 수정해야겠죠.
알테니아 / 송퐁송퐁!
루타르 / 음음.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T스톤 / 세기는 겁나 셉니다.
니알라토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필승전략을 캐치하셨어;
eojsgsdf / 감사합니다!
아프게했어 / 아*발꿈 결말을 절대 놓치 않으셬ㅋㅋㅋㅋㅋㅋㅋ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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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좀그만먹여 / 으음, 저도 이 대사를 쓰면서 여러모로 고민했는데 콕 꼬집어주시네요. 조금 말의 늬향스를 바꿔보겠습니다. 지적 감사해요
@로아리아 / 허엇?!
@...(-1)... / 주인공은 책략가인만큼 뒤에서 이런저런 일들만 하고, 싸우는건 여자들이니 그렇게 느끼실수도 있겠네요 ㅠㅠ 그래도 주인공이 없으면 아예 이기지 못했을 싸움이 대부분이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