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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04화 (204/296)

00203 군략과 모략의 상관관계 =========================

4일차 로즈안느군과 가웨인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양측 보병들이 전면에서 맞붙는 모습을 보며 부장과 코퍼는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었다.

“이번에도 저쪽에서 먼저 오는군. 언덕을 점한 우릴 상대로 무리할 필욘 없을 텐데.”

부장이 중얼거렸다.

“몸이 달아 있는 게 눈이 보인다는. 유난히 서두르고 있다는.”

코퍼의 말에 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럴 어떻게 아는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육감이라는.”

“……가끔 네놈과 대화하다 보면 언어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냥 개소리로 왈왈 대화하는 게 낫겠군.”

전투는 초반부터 총력전의 양상을 띠었다. 시작부터 장군 가웨인이 최전선으로 나와 병사들을 이끌었고, 이에 질세라 로즈안느와 바드들도 전면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다만 여기서 차이가 한 가지 드러났다. 가웨인은 패전의 영향 때문인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임팩트있는 사기증폭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스펠뮤직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로즈안느의 경우에는 차이가 없었다. 아니, 전보다 오히려 병사들의 사기가 더 올라갔다.

“로즈안느!”

“로즈안느!”

가웨인이 이미 전설로서 최정점을 찍었다면 로즈안느는 한 참 주가가 오르는 중인 젊은 장군이었다. 그리고 로즈안느군 내에서는 피점령국 출신의 젊은 여인이 지휘관이라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는데, 저번 전투의 활약으로 이제는 모두들 로즈안느의 실력을 인정하게 됐다. 그녀의 음악에 맞춰 폭발하는 병사들의 환호성은 전장이 아니라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신성한 전장에서 저게 무슨 짓거리들이지?”

“내버려둬. 천한 어비스놈들은 부끄러움을 모르잖아.”

노래하는 지휘관과 이에 환호하는 병사들. 품격을 중시하는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꼴사나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지금 기세에서 밀리는 쪽이 카사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사르 측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진형 내에 깃발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신호로, 진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면에서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가웨인의 최전선 부대를 제외한, 후열의 모든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여러 개의 소대로 나뉘어졌다. 좌우로 날개처럼 펼쳐진 이 소대들이 어비스군 진형을 향해 감싸듯 몰려들었다.

“나왔다는! 카사르군의 포위진!”

코퍼가 흥분하며 말했다.

최전선 정면의 가웨인과 정예병들이 든든히 버티고, 후열에 있던 병사들은 모조리 날개가 되어 적을 감싸는 극단적인 공세의 포위진이었다. 반면 어비스진형에서는 바드들의 연주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진형을 넓게 사용하는 것이 불리했다.

“하지만 우리가 대비를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부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어제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는!”

코퍼가 수신호로 지시를 내리자 로즈안느군에서도 신호를 위한 깃발이 올라왔다.

“승부를 낼 때입니다! 부탁합니다. 장군!”

“힘내라는! 로즈양!”

그녀는 쾌활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맡겨 주세요!’하고 외쳤다. 첫 곡 연주를 마친 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일종의 궁극기가 된 그녀의 ‘사중 연주’는 이제 막 올라선 경지라 여러 정신적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녀가 눈을 감은 그대로 몇 분이나 미동이 없자 뭔가 눈치 챈 코퍼가 자신의 확성구슬을 꺼내 외쳤다.

“로즈 장군께서 노래하신다는! 전군은 열렬한 환호를 부탁한다는!”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병사들은 싸우다 말고 약속이라도 한 듯 세찬 함성을 질러댔다. 사방에서 로즈안느의 이름을 연호했다.

“로즈안느!”

“로즈안느!”

요란법석한 분위기, 병사들의 뜨거운 숨결, 자신을 기다리는 시선들. 이제 무대가 완성됐다. 그녀는 충만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류트 줄을 튕겼다. 마력무구인 류트의 몸체가 푸른색으로 빛나며 연주 보정효과가 적용되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곡은 ‘비창’. 은은한 선율이 퍼져나가며 주위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어서 어깨가 절로 들썩거리는 격렬한 선율인 ‘열광’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병사들의 분위기를 과열시켰다. 그러다 비창과 열광의 음이 단순화되고 옅어져 배경음처럼 내리깔리고, ‘회한’이 전면으로 나와 특유의 웅장함으로 모두를 소름끼치게 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짝 더!’

로즈안느가 이를 악물었다. 이 회한마저 단순화 되어 비창과 열광에 섞였다. 배경으로 깔린 음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황홀한 선율이었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구슬픈 선율 ‘비통’이 들어섰다.

- 사중 연주.

- 스펠뮤직, 비창. 달밤의 우편마차.

- 스펠뮤직, 열광. 사냥꾼의 합창.

- 스펠뮤직, 회한. 초승달은 빛나고.

- 스펠뮤직, 비통. 설원의 검은 늑대.

배경으로 사용되는 앞선 세 곡은 전과 동일, 주가 되는 마지막 곡만 달라졌다. 그것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곡이 되어 있었다.

“자아, 여러분!”

로즈안느가 외쳤다.

“반격이에요!”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중 연주가 발현되며 언덕위에서만 버티던 로즈안느군에서도 움직임이 일어났다.

좌우로 포위한 가웨인군 병사들이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는 타이밍에, 로즈안느군의 선택은 정면 돌파였다. 일직선 전진보다는 옆으로 살짝 기울어져 가웨인이 버티고 있는 진형의 옆구리를 일점 돌파하는 것을 노렸다.

진형의 ‘창끝’이 된 자들은 스펠뮤직의 효율이 최고로 뛰어난 로사리움의 정예들이었다. 전장 한복판에서 벅차오르는 감격에 눈물을 흩뿌리며 싸우는 병사들은 이질적이었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에는 사정이 없었다. 전보다 외견도 더 업그레이드되었는데 투구의 장미꽃에 더하여 갑주 곳곳에 로즈안느를 상징하는 분홍색 칠을 했다.

“로즈 양을 위해!”

“오오오오옷!”

콰콰쾅!

음악에 심취한 로사리움 병사들이 전면을 뚫어내고 들어가자 그 틈을 후속 병사들이 벌려놓았다. 이어서 어비스군의 몸뚱이 전체가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연주 중인 로즈안느도, 지휘부인 부장과 코퍼도 다 함께 병사들과 발을 맞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격류와 같은 흐름을 카사르병들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가웨인군이 구사한 포위진의 ‘전제조건’은 전면에 있는 가웨인과 기사들이 든든히 버텨준다는 것. 가웨인의 제장들은 로즈안느군이 기병을 잃었고, 수준급의 무장도 없으니 돌파력이 부족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로즈안느의 사중연주와 로사리움의 병사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진형을 뚫어낸 로즈안느군은 전면의 가웨인군을 감싸기 위해 움직였으며, 몇몇 별동대는 흩어져서 어비스 진형의 언덕을 오르고 있던 카사르군의 뒤를 역으로 쳤다.

“완벽하다는!”

코퍼가 신이 난 듯 소리쳤다.

“전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이지만, 현실적인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는! 저들은 천하의 가웨인이 뚫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라는!”

“방심하지 마. 코퍼.”

부장이 말했다.

“이 사중연주가 끝나면 카사르군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해져. 승부를 낼 수 있을 때는 지금 뿐이다.”

“물론이다는!”

진형의 옆구리가 터져나가 포위당하기 직전인 이 와중에도 가웨인은 꿋꿋이 중앙에서 버티고 있었다.

“장군!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가웨인의 부관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잠시 앞을 부탁하지.”

“…예?”

가웨인이 후열로 물러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을 오르고 있던 아군 병사들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녀가 확성구슬을 들었다.

“소장은 이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뼈를 뭍을 것을 선언하노라!”

“……!”

“이상이다.”

가웨인은 지휘는커녕 확성구슬을 꺼버리며 다시 묵묵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가웨인 장군을 구하라!”

“카사르의 전설을 지키자!”

구 기사들과 전설을 추종하는 병사들로 똘똘 뭉친 이 군의 중심은 당연히 가웨인이었다. 병사들은 서로 위기감을 공유했고, 흩어져 있던 자들도 온 에너지를 쏟으며 달려와 어비스군을 상대했다.

“역시 노련한걸.”

부장이 중얼거렸다. 가웨인은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진형이 분열되고 병사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가루처럼 허무하게 분해되어 가던 가웨인군에 끈적임이 생겼다.

“하지만 전세를 뒤집긴 어려울 거라는!”

“……장군!”

한 병사가 헐레벌떡 지휘부로 달려왔다. 부장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서쪽 방향에 정체불명의 군대가 접근중입니다!”

“뭐라고?”

부장이 고개를 홱 돌렸다.

‘……미친!’

흙먼지를 일으키며 전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군세가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바짝 집중되었다. ‘과연 저들은 어느 쪽일까?’, ‘제발 우리 편이기를!’ 모두의 간절한 시선이 닿았다.

“……아.”

“오오오오!”

한쪽에서는 격한 환호가, 다른 한쪽에서는 한숨과 좌절 섞인 탄성이 튀어나왔다.

“…카사르의 기네비어군이군.”

한숨은 로즈안느 진형 쪽에서 나왔다. 코퍼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이게 뭐냐는! 어느 군에서 마크를 못한 거냐는?”

“……티아 군사님께서 적을 놓칠 리는 없고, 아마도 스노노군이겠지. 하여간 멍청한 수인놈들! 인생에 도움이 된 적이 없어!”

열불이 뻗쳤다. 다 이긴 전투를 다른 군세의 잘못 때문에 전부 망쳐버리게 생겼다. 부장이 이를 빠드득 갈며 지시를 내렸다.

“서쪽에 적이다! 부관들은 방패병들을 앞세워 대비시켜라!”

“옛!”

부장과 마찬가지로 지원군을 바라보고 있던 가웨인은 기쁜 기색대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분의 도움을 받게 되다니, 면목이 없구나.”

다른 제장들도 그리 표정이 밝진 않았지만 아무튼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 했다.

서쪽의 병사들이 로즈안느군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고, 흩어져 오던 카사르군의 날개는 사방에서 어비스군을 찌르고 있었다. 가웨인군을 포위하려던 로즈안느군은 또 다시 포위당한 형국이 되었다.

“카사르의 전사들이여, 검을 굳게 쥐어라!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라!”

가웨인은 사기를 올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전쟁, 우리가 이겼노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지원군의 등장으로 전황은 기울어졌다.

로즈안느의 사중 연주도 끝이 났다. 체력 문제 때문에 바로 다음 사중 연주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해 일부로 방어하기 좋은 언덕을 내려와 난전을 건 것이 상황이 더 악화되는 원인이 됐다. 가웨인군과 기네비어군의 총공세가 펼쳐지며 진형이 점점 붕괴되어갔다.

‘아직 아니야.’

로즈안느가 숨을 헐떡였다. 급한 대로 이중연주를 하고는 있었지만 상황은 어려웠다. 바드들이 화살에 노출되어 죽어갔고 스펠뮤직의 범위도 크게 줄어들었다.

‘할 수 있어. 어떻게든 베틀린 시티로……!’

“장군.”

부장이 다가와 덤덤한 어조로 고했다.

“이만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부장의 그 말에 로즈안느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패배를 자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진건가요?”

“장군께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폐하께 떼를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베틀린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이 섞였다. 부장이 달래듯 말했다.

“어비스의 어떤 장군이라도 가웨인을 상대로 이 정도로 해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분해요. 정말…….”

그녀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왜 그동안 더 노력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동안 시간을 허투루 낭비했을까요? ……저는!”

부장은 위로의 말을 던지지 못했다. 이 철부지가 이렇게 진심으로 괴로운 감정을 드러내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로즈 양.”

코퍼가 다가왔다.

“로즈 양은 살아야 한다는. 우리가 혈로를 뚫겠다는.”

“……코퍼.”

그녀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코퍼를 바라보다가 덥석 껴안았다.

“아니에요. 저도 여기 남아 끝까지 싸우겠어요!”

코퍼의 몸이 감격으로 떨렸다. 이 순간 코퍼는 확실히 자각했다. 이 작고 사소한 한 순간 때문에 사내는 목숨조차 걸 수 있다는 것을.

코퍼가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옆으로 다가온 부장이 로즈안느의 귀에 대고 피리를 불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코퍼는 로즈안느를 부장에게 인도한 뒤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미가 달린 헬멧을 깊게 눌러썼다. 각오를 마친 그가 소리쳤다.

“로사리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즈 양을 지킬 것이라는!”

주위의 로사리움 병사들이 검을 하늘로 쳐들었다.

“로즈 양을 위해!”

“자, 돌격이라는!”

로사리움의 병사들이 포위망을 부수며 혈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너무 너무 너무 덥네요! 이러다가 또 잠깐 더위가 멎었다가 갑자기 확 추워지겠죠. ㅠㅠ 수십년 후에 옷장에는 딱 반팔과 코트만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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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영문을 모를 말씀을 하시지만 꾸준히 코멘 1~2위는 유지하시는 감사한 알테님!

T스톤 / 안팎으로 고통스럽게 하니, 전쟁에만 순수하게 집중할 수 없네요 ㅠㅠ

로아리아 / 그 가웨인을 연주할 특이한 스킬은 매혹연주? 아, 안되겠네요. 둘다 여자분이라. 아, 되나?

할레데임 / ㅠㅠ 그건 좀 그런 경향이 있네요. 비월이 추가되긴 했지만 전력이 유니벨, 베아트리체에게 편중되어 있긴 합니다. 이번 에피소드가 끝나면 한명 더 추가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니알라토텝 / 언제나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어렵지요!

야타로 / 여기있습니다!

llSongOfBladell / 정말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최근 어비스가 워낙 여러 국가들이 뒤섞이다보니 어비스의 원래의 색깔을 조금 잊은 경향이 있네요. 더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로리콤MK / 정보쪽도 정말 고생하죠 ㅠㅠ 로드는 이제 애니록스나 정보부원이 보고해주면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게 일상이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선 아이고 이런 정보를! 하는 수준이죠.

...(-1)... / 흥선대원군의 쇄국이 강한 경향이 있긴 있었지만 좀 과도하게 욕을 먹는 경향도 있지요 ㅠㅠ

벌레 / 통솔형 영웅 조합! 무시무시하겠네요. 가웨인이 등장하면서 로즈안느가 웅장한 곡 연주!

리브란 / 아닙니다 ㅠㅠ

ArSeN_Ru / 전멸이죠. 살아남은 아조씨들은 얼마 안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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