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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05화 (205/296)

00204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군사님.”

“그래.”

로즈안느군이 협공을 받고 있을 때, 티아는 새로운 군세와 맞닥뜨려 싸우고 있었다. 상대는 약 2천 명의 병력. 병사들의 대부분이 방패병으로 이루어졌으며 정교한 장창방진을 구성해 티아군을 상대하고 있었다.

“…작정하고 우리군의 발목을 붙드는 것에만 집중하는구나.”

티아군이 자랑하는 ‘포쳐’들의 화살 세례는 무수히 많은 방패에 막혔고, 전방으로 직접 나간 세이지가드들 또한 베어도 베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방패의 장벽에 지쳐가고 있었다.

부관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명색이 기사라는 것들까지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만 있습니다. 싸울 생각이 있긴 한 걸까요?”

“없겠지. 저건 전형적인 버티는 병력 구성이니라.”

티아가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걱정이 되는구나. 저들이 작정하고 우리군을 붙잡아 두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우리가 로즈안느군을 도우러 가는 걸 막으려는 거겠죠.”

“그렇다. 로즈안느군이나 수인군 둘 중 하나라도 무너져 균형이 깨졌다면…….”

“예?”

티아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일단은 눈앞의 싸움에 집중하자. 저들을 돌파해야 지원도 가능할테니. 로즈안느군이 수비로만 일관하면 두 배의 병력차라도 버티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니라.”

티아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방패 세 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큰, 거대한 라운드 쉴드에 몸을 숨기고 굳건히 버티는 여기사가 보였다. 그녀가 이 군세의 장군인 듯 했다.

“적장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티아가 물었다.

“수호의 기사라 불리는 제레인트입니다.”

*

언더하임, 로드의 집무실.

“후우우.”

로드는 세상 모든 번뇌와 고뇌를 홀로 짊어진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돌기도 했다.

“정신 사나워, 바보야! 가만히 좀 있어!”

보다 못한 유니벨이 빽 소리를 질렀다. 로드는 순순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지만 넋 나간 표정은 그대로였다.

“흥,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출전하시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본군이 움직이면 저쪽도 본군이 움직일 게 뻔하잖아.”

불안함을 이기지 못한 로드가 다시 벌떡 일어나 제자리를 돌다가 벽에 머리를 박았다. 유니벨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간은 콩알만 해가지곤.”

“……험담은 자제해 줘. 지금 내 멘탈은 여러모로 위태롭다고.”

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로드가 보낸 세 개의 군세 모두 거점 영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적과 마주쳐서 교전 중이라고 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못하는, 순수하게 휘하 영웅들의 판단으로만 이루어지는 전쟁. 기존에 로드가 해왔던 전쟁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영웅의 실력과 육성 상태.

아크는 휘하가 된 영웅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색깔로 물들이는 작업을 했다. 훈련과 교육, 필요하다면 체벌과 정신적인 충격까지. 정확히 말하자면 육성보다는 ‘길들이기’에 가까웠다.

반면 로드는 아크처럼 대대적으로 영웅 육성에 투자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자유방임이었지만, 당사자가 성장을 원한다면 자금이든 무구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으으, 불안해. 이대로는 반쯤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안정을 되찾아야겠어.’

로드는 소파에 앉아있는 베아트리체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간식으로 땅콩과 흡사한 견과류를 집어먹고 있었는데, 껍질 까는 것에 서툴렀다. 마구 먹고는 싶지만 껍질을 제거하지 못하면 먹을 수가 없으니 그녀 입장에선 무척 답답하리라. 명색이 한 나라의 에이스가 땅콩 하나 가지고 낑낑거리는 모습은…….

‘귀여워 죽겠다.’

로드가 베아트리체의 옆에 앉아 능숙하게 껍질을 까서 알맹이를 빼냈다. 껍질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그녀가 로드의 것을 보고 눈을 반짝 빛냈다. 자신에게 주려는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었지만 로드는 보란 듯이 자신의 입안으로 넣었다.

“……힝.”

그녀가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또 귀여워서 로드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장난이야.”

로드가 다시 껍질을 까서 먹음직스러운 알맹이를 베아트리체 쪽으로 돌렸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 사이에 낀 알맹이를 아기 새처럼 쏙 빼먹었다.

“맛있어?”

그녀가 티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맛있어요!”

아아, 절로 심신이 안정되어가기 시작했다. 세속의 숱한 고민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우주의 기준에서 들여다보면 티끌처럼 하찮은 것들임을. 무욕염담(無慾恬淡)이오, 무아무심(無我無心)이로다. 로드는 견과를 몇 개 더 까주며 무너진 멘탈을 회복했다. 유니벨이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화를 내는 이유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다 신경 쓰다간 머리가 터져버릴 것이다.

“폐하!”

벌컥, 집무실 문이 열리며 애니록스가 들어왔다. 세 사람이 동시에 확 고개를 돌렸다.

“애니! 어떻게 됐어?”

“……그, 그것이.”

입을 떼기 어려운 듯 머뭇거리던 애니록스는 모두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상황을 보고했다. 참담한 소식이었다. 수인군은 전멸, 로즈안느군은 패퇴, 그나마 티아군은 퍼시벌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으나 갑자기 난입한 새로운 군세에 발목이 묶였고, 이어지는 카사르군의 총공세에 위그드라실로 후퇴했다고 한다.

“…그, 그럼 티아는?”

“일단은 무사합니다. 위그드라실에서 농성할 태세를 갖추는 중이라 합니다.”

몸에 힘이 풀린 로드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떨리는 팔로 마지막 땅콩을 베아트리체의 입에 넣은 그가 재차 물었다.

“……패배한 다른 군에서 생존자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젠장.”

로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노노의 수인군이 너무 빨리 무너져 버린 게 주요한 패인인 듯 했다. 게다가 티아의 병력을 가로막은 미확인 군세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란 말인가? 인정하기 싫지만, 역시 전략의 디테일에 있어서는 아크가 한 수 위였다.

“팬더. 어쩔 거야? 우리가 내려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유니벨의 물음에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크가 바라는 바야. 녀석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언더하임이니까. 아래 지역에 병력을 보낸 이유도 언더하임을 흔들기 위함이고.”

“아, 그럼 어쩔 건데! 이대로 손 놓고 있을 거야?”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

마침 이브가 집무실로 들어와 폐하를 방해하지 말자며 가신들을 데리고 나갔다. 혼자가 된 로드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방 안에서 고민에 빠졌다.

개전 초반부터 그리고 있던 그림이 어긋나 버렸다. 다른 영웅들의 걱정 때문에 온전히 책략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로드는 환기나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휘이잉!

신선한 바람 대신 언더하임의 모래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방심하고 있던 로드는 안면에 모래 알갱이를 맞으며 재빨리 문을 닫았다.

“아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로드가 머리를 털자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곧 모래바람 철이었던가.”

다시 자리에 앉아 고민하던 로드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지휘관 창 지도를 열었다.

“……그래. 그 방법밖에 없어.”

*

그날 밤, 로드는 자신의 전략을 몇몇 중심 가신들에게만 알렸다. 그것만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보부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애니록스가 집무실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집무실 밖에 유니벨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이브와 베아트리체도 함께였다.

“왔냐?”

유니벨이 인사를 툭 내뱉었다.

“……왜 다들 밖에서 그러고 계십니까?”

유니벨은 대답대신 집무실 문을 가리켰다. 안에서 두 남자의 고함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서, 설마 폐하인가요? 와, 폐하께서 저렇게 언성을 높이시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럼 다른 한 명은?”

“벤 단장입니다.”

이브가 대신 대답했다.

“벤 님이요?”

“우리도 당황스럽다고. 평소엔 차분하던 녀석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저러니까.”

유니벨이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유니벨의 뒤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로드가 성을 내는 모습은 그녀에겐 무척 낯설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애니록스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거야, 그거.”

유니벨이 검지를 휘휘 흔들며 말했다.

“팬더는 자기가 세운 전략의 강행을, 벤은 국민들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며 수비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생각.”

“그렇다면 폐하의 전략은 역시…….”

“그래.”

유니벨이 한숨을 쉬었다.

“이 와중에 팬더는 카사르를 선제공격할 셈이야.”

“……!”

그때 집무실 문이 쾅 열리며 벤이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 차갑고 냉정하던 그는 온 얼굴에 분노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이브가 말했다.

“…벤 단장.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 언성을 높이는 건…….”

“무례에 대한 책임은 지겠습니다.”

그가 가슴에 달고 있던 단장 배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벤 단장!”

“폐하께선 다른 왕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지배자였군요.”

벤은 성큼 성큼 복도를 걸어서 빠져나갔다.

“저 새끼, 저거.”

유니벨의 진홍빛 눈동자가 번질거렸다.

“싸가지 없이 구는 게 쭉 마음에 안 들었어. 따라가서 손 좀 보고 올까?”

“……그만! 그만해요, 유니벨. 들어가죠.”

이브가 유니벨을 몸으로 감싸 안아 막으며 집무실로 데리고 갔다. 베아트리체와 애니록스도 뒤따라 들어갔다. 로드는 이마를 감싼 자세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아, 다들왔어?”

그가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가신들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에요? 폐하.”

“그냥 흔한 의견충돌이지 뭐.”

로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흔한 의견충돌 같은 소리하네. 저 녀석 단장일 그만둔 거 알아?”

유니벨의 그 말에 로드의 눈썹이 들썩였다.

“……나름의 방식으로 싸우겠다고 했는데, 이런 의미였나.”

“깜짝 놀랐어요. 폐하. 벤 단장은 폐하가 아끼시는 인재였잖아요.”

로드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통하는 게 많은 녀석이긴 했지만 목표와 입장은 서로 달랐으니까. 언젠간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 몰라.”

“아 씨, 됐어!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해! 그건 그렇고 팬더. 정말로 선제공격 할 거야?”

유니벨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우리가 기존에 짜두었던 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법이잖아. 위험부담이 너무 너무 커.”

“리스크를 감수해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야.”

로드가 태연히 답했다.

“이번 패배로 확실히 깨달았어. 서로 하나 씩 패를 주고받으면서 겨루는 수동적인 방식으로는 아크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까.”

로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이 먼저 치고 들어가서 전황을 리드한다.”

============================ 작품 후기 ============================

하치만4세 / 옙! 감사합니다!

T스톤 / C급 입니다. 부관으로서는 썩 괜찮은 인재죠.

알테니아 / 음.. 으음... 그러니까 비월 분량을 더 늘려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자살중독자 / 으읔 ㅠㅠ

리아레스 / ㅠㅠㅠㅠ 좋은 십덕...

벌레 / 아하, 성격이군요. 가웨인과 로즈안느. 고고한 여기사와 발랄한 아이돌이라... 저도 궁합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바람색 / 코퍼ㅠㅠ

zzima / 아쉽게도 막혔습니다

할레데임 / 알겠습니다. 반영할게요. 좋은 의견 감사해요!

박성빈 /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옷이 문제가 아니었군요. 여기서 땅값이 더 오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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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그런셈이군요

@...(-1)... / 황전걱 이하는 이미 숱하게 상대해왔고 (아로게쓰 등등) 지금 상대하는 적은 아크이고 최강대국 급입니다 ㅠㅠ 조금만 더 버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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