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5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전체 전황은 카사르측이 우세해졌다.
카사르군은 티아가 위그드라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세계수 밑동에 요새를 짓고, 수호의 기사 제레인트가 그곳의 방비를 맡았다. 그 외의 병력들은 다른 후방 영토들을 착실히 점령해나갔다.
로드 또한 전쟁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가 내린 새로운 지침 때문에 언더하임 전체가 며칠간 바쁘게 움직였다.
철저한 준비 후 로드는 출군명령을 내렸다. 피닉스군만을 언더하임에 남겨둔 채 본군, 베아트리체군, 키리안군까지 삼 개군을 이끌고 언더하임을 나섰다.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움직임이었다.
*
카사르 진형.
첫 번째 성 ‘레드킵.’
“……로드 군이 오고 있다고? 여기로?”
“네, 아크. 확실해요.”
“으음.”
방향성 없이 자유롭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과 쌍꺼풀, 마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이 남자가 카사르의 왕 아크였다. 그는 홀로 체스를 두고 있었다. 주위에 릴리와 보호트가 있었지만 체스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적의 규모는?”
“추정 1만 대군이라고 해요.”
“……뭐어? 진짜? 푸핫!”
체스를 하다 말고 아크가 자신의 이마를 짝 소리가 나게 때리며 낄낄거렸다.
“로드 폴렌티아는 언더하임의 방비는 생각지도 않는 건가? 대단한 배짱이군.”
보호트가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내 친구지만 진짜 골 때리는 녀석이라니깐!”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보호트가 아크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로드 폴렌티아와 친우 관계였나?”
“오래된 건 아니고, 동갑이라서 그냥 친구 먹었지.”
“어느 틈에…….”
아크는 싱글벙글 웃으며 흑의 폰을 움직여 백의 나이트를 잡았다.
“어비스같이 한계가 있는 나라가 이렇게까지 뜰 줄은 누가 알았겠어? 처음에 마틴인가 뭔가 하는 녀석으로 완전히 싹을 뽑았어야 했는데.”
보호트도 그때를 회상하는 듯 피식 웃었다.
“네가 로드 폴렌티아를 모함하는 친필 서신까지 써서 보냈었지. 결과는 마틴이란 자가 역으로 숙청당했다만.”
“로드 군은 살아남는 거 하난 기가 막히거든.”
“어비스를 건드리는 게 이번이 세 번째 인가?”
“아니.”
아크가 씩 웃었다.
“다섯 번째야.”
아로게쓰를 꼬드겨 언더하임을 치게 했고, 로드를 모함해 나라를 외세에 팔아넘기려한 반역자로 만들었다. 직접 병력을 이끌고 어비스의 영토를 공격하기도 했고, 왕들의 연회 때는 로드를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타국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아크는 주신전이 시작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어비스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드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현재는 그의 가장 거대한 숙적이 되어 버티고 있었다.
“잡담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갈까? 로드 군이 무슨 속셈인진 모르겠지만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해.”
아크가 백의 룩을 움직여 흑의 말을 잡아내며 말했다.
“언더하임을 버리면 게임자체가 안 돼.”
“……음.”
왕궁이 적국의 손에 넘어가면, 왕의 지명도가 떨어짐과 동시에 플레이어로서 누리는 ‘지휘관 창’의 효과가 함께 줄어든다. 즉, 어비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스파이들과 혁명단도 무력화된다는 것인데 이는 로드입장에선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로드가 언더하임을 버릴 리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응, 맞아.”
“…아크! 그렇다면 언더하임의 안위를 미끼로 우리의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게 아닐까요?”
릴리가 자연스럽게 아크의 무릎위에 앉아 팔을 둘렀다.
“예를 들면 레드킵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의 출성을 유도한다 나요.”
“……음.”
다들 로드의 전략에 대해 생각하느라 말이 없어졌다. 아크가 체스 말을 놓는 소리만 조용히 실내에 울려 퍼졌다.
“여담이다만, 아크.”
보호트가 말했다.
“혼자서 두는 체스는 무슨 재미로 하는 건가? 상대해준대도 거절하고.”
“일단 보호트 군은 내 상대가 안 되니까안.”
빠직! 보호트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자 아크가 재빨리 덧붙였다.
“이유를 들자면, 난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좋아해.”
아크가 흑의 비숍을 움직이자 무릎에 앉은 릴리가 장난으로 백의 나이트를 움직였다. 괜찮은 수였지만 아크는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며 굳이 백의 나이트를 원상 복구 시켰다. 릴리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토라진 시늉을 했다.
“아군과 적 모두가 내 말에 복종하고, 승리도 패배도 내가 내키는대로 결정할 수 있어.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라는 건 더없이 기분 좋은 일이지.”
타악. 전진해온 흑의 폰에게 백의 룩이 잡혔다.
“작은 세계의 신이 된 기분이랄까.”
“……또 뜻 모를 소릴 하는군.”
아크가 헤픈 웃음을 흘리며 백의 나이트를 움직였다.
“체크메이트! 흑의 킹이여,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
“……뭐라는 건지.”
체스를 한 판 끝낸 아크가 기지개를 켰다. 릴리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로드 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니 우리도 뭔가 준비를 해야겠지?”
“레드킵의 방어는 완전해요. 더 준비할 게 있을까요?”
“내가 말하려는 건 ‘공격 준비’야. 릴리 양.”
릴리와 보호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설마 공격을 공격으로 받아낼 셈인가?
“명령을 내리겠어. 릴리 양과 슈네처 군은 레드킵을 나가서 동쪽에 진을 치고 대기할 것.”
“네에에?”
릴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를 보내는 건가요? 아크.”
“그럼. 가장 신뢰하는 릴리 양이 나서줘야 하는 일이야.”
“……그, 그렇지만 저는 아크랑 함께 싸우고 싶은데.”
아크가 몸을 일으켜 릴리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가줄 수 있지? 나를 위해.”
“……알았어요.”
릴리가 못이기는 척 수락했다.
“좋아! 다함께 로드 군의 속셈을 까발려보자고.”
*
로드가 레드킵으로 향하는 사이, 후방에 있는 카사르군의 정복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성인 발트호른을 공성전을 걸어 함락시켰고, 이 외에도 거점영지급 성들과, 근처의 작은 도시들까지 카사르의 깃발아래에 두었다. 그 후에는 본격적으로 근방의 모든 영지들에게 카사르의 ‘통치’를 선언했다.
어비스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혁명군과 끊임없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특히 발트호른 같은 거점영지에서는 ‘혁명의 바람’이 장전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어비스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찝찝하게 생각했고, ‘어비스의 땅은 줘도 안 먹는다.’라는 말도 나왔다. 로드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핵심인 언더하임을 지키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오랜 시간 어비스 공략에 공을 들인 만큼, 혁명군에도 대비책을 세워두었다.
첫 번째는 명분이다.
“어비스의 왕 로드 폴렌티아는 그대들을 저버렸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영지를 지켜야 할 병사들을 모두 언더하임으로 거두어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그대들이 공격받을 때 어비스의 왕은 무엇을 했나? 방관했다! 지원군 하나 보내지 않았다! 영지의 통치자로서 책임감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도다!”
카사르에서는 점령지 주민들을 상대로 어비스를 깎아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로드는 틀림없이 지원군을 보냈지만, 지원군은 아드리아 강을 넘어오기 전에 무너졌고 카사르에서는 이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다.
물론 진실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믿었다. 로드의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았고, 카사르가 영지를 점령했다. 그것이 일단 영지민들이 두 눈으로 직면한 현실이었다.
아크가 포인트로 삼은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게노세르크, 알브헤임, 베틀린. 모두 어비스가 통치한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이었다. 각 영지의 수뇌부들은 로드에게 충성했지만 일반 영지민들이 언더하임 같이 먼 곳에 있는 군주에게 충성심을 가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혁명단을 막기위한 두 번째 방법은, 카사르가 멸망시킨 곤충의나라 ‘카르프리’의 특화병종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카르프리는 대륙의 서북쪽 끝단에 위치한 나라로, 영지 전역이 ‘거신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정글로 이루어져있다. 이 정글은 에덴 내에서도 가장 신비한 장소로 손꼽히는데, 나무든 꽃이든 풀이든 하나같이 거대했다. 그래서 정글에 처음 들어온 자들은 마치 자신이 작아져버린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정글엔 동물은 살고 있지 않지만 사람보다 더 큰 초대형 곤충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카르프리에서는 이 곤충 몬스터들을 데리고 싸우는 독특한 전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크는 카르프리의 멸망보너스를 획득했기에 그 힘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카르프리 핸들러’라는 특화병종은 곤충 몬스터를 사역마로 부리는 자들인데, 곤충의 페로몬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페로몬 스킬의 효과는 곤충의 종류에 따라 가지각색이지만 그중에서는 ‘진정’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아크는 이 진정효과에 주목했다.
그리고 카사르군에서는 핸들러들을 거점영지에 투입하여 진정 효과의 페로몬을 영지 구석구석 뿌려놓도록 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영지민들은 적국에 대한 적대감과 저항감이 둔해졌고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혁명은 억압받는 백성들의 분노를 장작으로 삼기에, 페로몬 스킬은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아크는 똑똑하게도 혁명단의 해법을 다름 아닌 카르프리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효과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발트호른과 같은 대도시들이 혁명단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자, 카사르측에서는 중소규모의 마을에도 병력을 파견했다. 보내는 이들은 100명 남짓의 무장한 사내들, 한 마을을 점령하는데 문제없는 수였다.
“이번 마을은 어디랬나?”
일행 중 대장을 맡은 유일한 기사가 지도를 보며 말했다. 옆에 붙어있는 똘똘하게 생긴 병사가 대답했다.
“캠니츠라고 하는뎁쇼.”
“아, 그래. 캠니츠. 남의 나라라 그런지 지명 외우기가 어렵군.”
“나으리. 이번 마을엔 재미 좀 봐도 됩니까?”
그 물음에 기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난 가웨인님의 기사라네. 그딴 짓을 허용했다간 목이 몇번이고 날아갈 거야.”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마을의 우두머리나 장로들을 불러서 무릎 꿇리고 이 도시의 소유권이 ‘카사르’에 있음을 선언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은 카사르의 새로운 거점인 발트호른으로 와서 신고해야하고, 식량과 자원을 가져다 바쳐야 했다. 거절하면 반란죄로 즉시 처형된다. 목숨을 걸고 카사르군의 명령을 거부하는 곳은 별로 없었기에 일은 수월했다.
“……어?”
그런데 캠니츠에 도착하자 의외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마을엔 울타리로 장벽이 쳐져 있었고 무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장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설마.”
옆에 있던 병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것들, 혁명군 아닙니까?”
============================ 작품 후기 ============================
하치만4세 / 이번화도 감사합니다!
니알라토텝 / 힘으로!
알테니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죠? 이 치명적인 귀여우심은!
로리콤MK / 어서 사다주세요! 먹이는건 제가 하도록 하죠(?)
루타르 / 한번 적극적으로 나가보네요
허이짜닷2 / 수비로 가려고 했는데 안된다 싶으니 바로!
리아레스 /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한 캐릭터라...
llSongOfBladell / 언젠가 또 활약하겠...죠?
지리산의늑대 / 그저 웁니다
박성빈 / ㅎㅎㅎ 코멘 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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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넵넵 다음편 또 기대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