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8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진실을 이용해 아크를 속이는 데 성공한 로드는 플레이어 스킬 ‘반데가스의 눈’을 통해 상공에서 레드킵의 상황을 확인했다. 로드는 추격대가 없다는 것을 체크하고, 전 병력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 8천의 보병들은 부관들에게 맡겨서 뒤따라오도록 하고, 로드 자신이 직접 기병2천을 이끌고 내달렸다.
중간에 거치는 성이나 구조물들은 모조리 무시했다. 이틀 여간 밤낮없이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낮이 밝아올 즈음에는 ‘관문’에 이르렀다.
엠파이어로 향하는 길목을 정면에서 차단하고 있는 이 6층 높이의 벽은 ‘구도의 길’이라는 고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카사르에서는 통칭 ‘관문’으로 불렸다. 일반 백성들은 살지 않았고 경비병들 몇몇이 수도로부터 파견되는 식이었으나, 딱 관문의 역할만 충실히 해내는 구조물이었다. 대군이 주둔하여 이 요새를 작정하고 지킨다면 공략 난이도는 한없이 까다로워 질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 까다로운 난이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비스의 침공소식이 알려져 관문의 방어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병력의 수가 너무 적었다. 최전선에 ‘레드킵’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대부분의 병력은 언더하임의 본토에 가 있었으니 이 후방요새까지 병력을 쓸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로드는 눈으로 가볍게 관문을 훑어보았다. 엠파이어에서 지원군이 오기 전에 이 요새를 기병 2000만으로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흐으음, 검 만능주의의 카사르라지만 방어 시설엔 궁병들과 병기들을 다수 채용했군.’
아크다운 실용주의가 이 요새에서 느껴졌다. 저 원거리 방어망을 무력화하지 않으면 기병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로드가 고개를 돌렸다.
“하버트.”
“예이! 폐하.”
키메라를 다수 운용하게 될 이번 전투에는 연구소장 하버트도 따라왔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과학자들이 전차에 짐짝처럼 실려 있던 관들을 꺼냈다. 딸칵. 관뚜껑이 열리며 머리에 뿔 달린 여인들이 기지개를 켰다.
“우우웅.”
“우으.”
몸에 착 달라붙어 신체 곡선을 강조하는 외설적인 복장의 그녀들이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났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하품하고 자기들끼리 끌어안고 장난치기 바쁜 모습이었다. 개중에는 유니벨과 이브의 성대모사를 하고 있는 키메라 둘도 있었지만 로드는 애써 못 본 척 외면했다.
“어비스의 기술력을 보여드리지요! 폐하!”
과학자들은 전처럼 키메라들을 유도하려고 장난감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사냥꾼들이 쓰는 장총 같이 생긴 무기를 꺼내 허공으로 쏴댔다. 투웅! 퉁! 총구에서 날아가던 탄환들이 하늘에서 가루처럼 분해되어 마력 자국 같은 것을 허공에 남겼다.
“웅?”
“…!”
그 빛을 본 키메라들이 고개를 돌려 반응하더니 스스로 입을 벌려 검은 마력을 쏘아 보냈다. 슈와아악! 새까만 구들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 빛의 자국들을 표적처럼 통과해 요새에 부딪쳤다. 콰콰콰쾅! 밀집해 있던 카사르 병사들이 폭발에 휘말려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영리하게도 궁병들과 수성 병기를 조준한 포격이었다.
“오, 괜찮은데?”
로드의 감상이었다. 저렇게 하면 키메라들의 타겟을 지정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옆에서 또 흥분한 하버트가 ‘과학은 위대하다!’를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로드는 포격 쪽은 하버트와 키메라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시선을 돌렸다.
“키리안,”
“예, 폐하.”
정렬해있는 기병들 중에서 가장 앞으로 나온 키리안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배틀액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돌격하라!”
확성구슬은 필요 없었다. 아로게쓰 출신의 전사다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마병들이 함성으로 화답하며 적 요새로 돌격해 들어갔다. 키리안은 그 사이 통솔등급이 한 단계 또 성장하며 무력과 통솔의 C/C를 달성했다. 고유능력의 보정효과를 감안해도 놀라운 성장 속도였다.
키메라들이 포격으로 요새를 두들겨 적의 신경을 분산시킨 사이, 기병들은 큰 피해 없이 요새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베아, 유니벨. 맡길게.”
“네, 주인님!”
“흥,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로드의 가장 강력한 전력인 두 소녀들은 관문 안으로 침투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장 관문에 저 두 사람을 막을 만한 무인은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호위를 위해 어쌔신들 오십 명 정도가 뒤따랐다.
‘……감회가 새로운 걸.’
어비스의 새로운, 아니 처음부터 로드의 곁에 있었지만 이제 연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양산이 가능해진 특화병종, 어비스 어쌔신.
로드가 막 어비스에 왔을 때엔 암살단원들이 서른 명 밖에 없었다. 한 명 한 명 잃을 때 마다 뼈가 깎이는 심정이었지만, 개척시대 후반기에 들어온 지금은 특화병종으로서 훈련이 가능해졌다. 이번 전투에 데려온 어쌔신만 해도 200명이었다.
어쌔신들은 스파이와 혁명단처럼 은폐와 인식차단 효과를 가진 채로 적의 도시에 파고든다. 그리고 스파이가 ‘정보 수집’, 혁명단이 ‘정보 왜곡’을 담당한다면 어쌔신들은 당연히 ‘암살’을 담당한다. 다만 주요 인사나 영웅급을 사살하려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고, ‘정보 특화’를 선택한 로드는 암살 쪽으론 노하우가 없었기에 주로 전쟁에서 정예병으로 활용해왔다. 이제 숫자가 늘어났으니 로드는 여러방면으로 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지시는 다 내렸다. 로드는 후방에서 관문이 함락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요새 곳곳에 불길이 올라왔다. 함락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리라.
“…지루하군.”
“엇, 나왔어?”
로드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인물이 로드의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맨발이었다.
“조금만 더 참아. 이제 다 왔어.”
“……빠르게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로브 안에서 소름끼치는 안광이 번쩍거렸다.
“늦으면 뒷감당은 고스란히 네 부하들이 받아내야 할 테니.”
“……하하.”
몸을 찌르는 듯한 으슬으슬한 살기에 로드의 어깨가 떨렸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었지만 생리적으로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서둘러야겠다.’
*
같은 시각, 발트호른.
“……자유 혁명군?”
책상에 앉아 문서를 끼적거리고 있던 가웨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캠니스를 치러 갔다가 된통 깨져서 돌아온 기사가 열중 쉬어 자세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예, 장군. 분명히 그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어비스의 혁명단장 벤 블래그덴까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소장도 막 관련 문서를 보고 있었소.”
그녀가 문서를 기사에게 넘겨 읽도록 하며 말을 이었다.
“아직 우리가 점령하지 않은 영지에서도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자유 혁명단’을 자처한다는 모양이오. 그리고 그들은 어비스에도, 카사르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 중립을 표방한다더군.”
“맞습니다! 저에게도 그리 말했습니다! 하지만 벤 블래그덴은 혁명단장이고 로드의 심복이 아닙니까?”
“……흐음.”
“가웨인군은 정보가 느리군요.”
가웨인이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문이 열리여 새로운 인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매부리코에 찢어진 눈, 그리고 값비싸 보이는 갑주를 걸친 기사였다. 가웨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감독관.”
그는 이번에 아크가 가웨인에게 보낸 ‘감독관’이었다. 형식적인 명목은 가웨인 장군의 작전 수행 능력에 의문이 생겼기에 이를 보완할 책략가를 붙여준다는 것이었지만, 저번 전투로 카사르 내 입지가 좁아진 그녀를 압박하기 위한 아크의 수단이었다. 물론 군의 지휘권은 여전히 가웨인에게 있었지만, 그녀가 고전할 때마다 하나 씩 중요한 권한이 감독관에게 넘어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감독관을 보냄으로서 아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호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게 복종하라.’
“벤 블래그덴은 더 이상 혁명단장이 아닙니다, 장군.”
감독관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근엄한 척, 말했다.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로드 폴렌티아와 크게 싸운 이후, 단장자리를 그만두고 뛰쳐나왔다고 하지요.”
“…의견차이라고 하셨소?”
“네. 로드 폴렌티아는 총공세를 지시했고 벤 블래그덴은 그에 맞서 백성들의 안위를 주장했습니다.”
감독관이 소파에 털썩 걸터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어비스의 주력이 본토에 들어왔으니, 우리 쪽에서도 하루 빨리 언더하임을 공략하길 원하십니다. 잡다한 것들엔 신경 끄고 언더하임 공략에나 집중하시지요.”
가웨인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허나, 자유 혁명단이라는 자들의 세력이 커지고 있소. 이들을 다 해산시키기 전 까지는 언더하임 공략은 미루어야하오. 지금 진압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오.”
“문제는 당신입니다, 장군!”
감독관이 소리를 높이며 삿대질을 했다.
“다름 아닌 폐하의 명입니다! 장군이 폐하보다 전략적 안목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책략에 관한 것이라면 소장은 폐하의 발끝도 따라가기 힘들 것이오. 하지만 현장에 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소.”
감독관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 자유 혁명단이란 놈들은 이만 신경 끄십시오. 그래봐야 민병이고, 자기들도 중립을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굳이 바쁜 때에 저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단 말단 말입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정복이 아니라 속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왜 장군이 발트호른과 게노세르크의 영지들을 통치하고 있냔 말입니다!”
드디어 감독관의 본론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아크는 이미 점령한 알란드와 오펙투스도 치안 외에는 방치해둔 채 어비스와의 전쟁에 주력하고 있었고, 이번 어비스의 영지 또한 동일한 지침이었다. 바쁜 와중이니 주요 거점만 무너뜨리고 식량만 수탈하면 되는 것을 가웨인은 왜 ‘정치’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아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튼 할 말은 전했습니다!”
통제관이 소파의 팔걸이를 탕! 치며 일어났다.
“자유 혁명단이든 정치든 때려치우고 속히 언더하임 공략을 준비하십시오. 릴리 군사가 퍼들스퀘어를 공략하러 갔고 폐하께서도 직접 언더하임으로 내려오실 것이오!”
“…….”
“그리고 하나 더.”
통제관이 다가와 서신을 툭 내려놓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특별 지령입니다. 조금의 실수 없이 완수해야 할 것이오.”
“……이건.”
지령을 펼쳐 읽어보는 가웨인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최카츄 / 오오오옷! 완성되면 저도! 저도 보여주세요! 으아아아앗 ㅠㅠ 그리고 쿠폰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알테니아 / 어떻게 1딸라 임금을 4배나 올린단 말이오? 1.5딸라 합시다.
니알라토텝 / 설정짜느라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먼산을 보니 경치가 좋네요)
리아레스 / 헤헷 감사합니다!
llSongOfBladell / C9? 무슨 말씀인가요?
하치만4세 /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다만 여러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지요.
...(-1)... / 아크인지 아크릴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신한 별명인데요 이거?;
지리산의늑대 / 로드호구라 죄송합니다.. 응앜 ㅠㅠ
재범 / 고육지책이라...! 스포라서 자세한 말씀은 못드리고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욧! 코멘트 감사합니다 ㅠㅠ 잘 보고 있어요
----
레이아니 / 과연! 그것도 로드의 노림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