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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10화 (210/296)

00209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가웨인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발트호른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한 마을로 향했다. 수인들을 피해 산골짜기로 모여든 인간들이 세운 마을이었다. 아직 자유 혁명단의 영향력이 미치지는 않은 것 같았고, 카사르군의 통치를 받아들여 식량을 바친 마을이기도 했다.

가웨인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 반역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마을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조사를 해야 하니 부디 협조해주시오. 혐의를 벗게 되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니.”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병사들은 마을 사람들을 창고와 마을회관 등 한 장소에 몰아넣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가웨인은 견디기 힘든 듯 입술을 꾹 깨물더니, 돌아보며 물음을 던졌다.

“……정녕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오?”

“왕명입니다, 장군.”

뒤에 서있던 감독관이 차갑게 대답했다.

“…다시 한 번 재고해주시오. 마을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이 곳의 풍족한 식량이 필요한 것이라면 강탈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곤란합니다. 통치자 측에서 민간인 마을의 식량을 강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자유 혁명단이 불어날 명분을 주는 셈입니다. 중립세력이라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처치해야 하는 상대니까요.”

“정보 유출이 걱정된다면 발트호른으로 압송토록 하시오! 전부 죽이는 건 너무 과하잖소!”

화를 참지 못한 가웨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왕명이라 했습니다, 장군.”

감독관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가웨인이 입술을 짓씹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보시오. 굳이 마을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있소?”

“…….”

“폐하께서는 직접 이 일을 소장에게 지시하셨소. 죄가 있다면 소장을 벌하면 되는 것이지, 왜 애꿎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어야 한단 말이오?”

“오해이십니다, 장군.”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이야기하던 감독관이 슬쩍 머리를 들었다. 그의 입가가 잔혹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건 순수하게 작전의 일환일 뿐입니다.”

“……!”

표정과 말이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다. 가웨인은 격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한 가지 조언을 드려도 될까요? 장군은 너무 생각이 많고 자기 주관이 강합니다. 분명히 말해두지요. 군인에게 그런 건 필요가 없습니다.”

감독관이 등을 돌리며 덧붙였다.

“이게 폐하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십시오. 장군이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잖습니까? 하하하!”

‘……빌어먹을.’

가웨인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 말은 뼈아팠다. 자신만 처벌받고 끝나는 일이었다면 얼마든지 저항했을 테지만, 그녀는 책임을 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역모죄에 몰리면 그녀를 따르던 다른 이들까지 숙청당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지위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의 부하들이 아크에게 어떻게 됐던가. 그런 일들은 결단코 피해야 했다.

날이 어두워졌다.

숲에 약초를 캐러 나갔던 마지막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다. 괜히 추적을 벌였다가 눈치 채고 도주해버리면 곤란했기에, 가웨인군은 잠자코 마을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마을 사람들은 모녀로, 젊은 여인과 어린 딸이었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죠? 마을에 병사들이…….”

여인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딸은 그녀의 뒤에 숨어 낮선 이들을 경계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당신 때문에 얼마나 지연된 줄 알아?”

“네?”

병사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며 다가와 그녀의 팔을 꽉 붙들었다.

“빨리 들어 오…….”

“무례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병사가 뒤를 돌아보자 은빛 갑주를 걸친 청발의 여기사가 떡하니 서 있었다. 병사는 기겁한 표정으로 시립한 후 도망치듯 자리를 비웠다.

“무례를 용서하시오, 부인.”

가웨인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밤이 다 되어 가는데 모녀가 이렇게 늦게까지 숲에 들어가도 괜찮은 것이오? 남편은?”

“병환을 이기지 못하여…….”

그 말에 가웨인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오. 괜한 걸 물었구려.”

“괜찮습니다. 기사님.”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고된 생활에도 친절함과 상냥함이 몸에 배여 있었다. 겁먹은 딸을 부드럽게 달랜 그녀는, 남편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밝게 웃는 얼굴로 낯선 외부인에게 도란도란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웨인은 저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검소하고 소탈한 산골짜기 마을의 삶에 문득 고향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말을 거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가웨인은 후회하고 있었다. 저 미소 띤 얼굴도 오늘 밤이 지나면 까맣게 그을린 재가 되어있을 터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을 걸었단 말인가? 죄책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럼…….”

“들어가시오.”

그녀는 병사들을 따라 멀어져갔다. 그때 그녀의 딸이 가웨인에게 쭈뼛쭈뼛 다가와 산딸기 하나를 내밀었다.

“내게 주는 것이냐?”

딸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자제하며 가웨인이 받아들였다. 소녀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엄마의 뒤를 따랐다. 가웨인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녀가 방긋 웃어보였다.

“…….”

가웨인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찌그러진 산딸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늦은 밤.

감독관의 명에 따라 횃불을 든 병사들이 마을 강당에 집결했다. 큰일을 앞두고 있는지라 모두들 표정이 조금 경직되어있었다.

“건물의 문은 모두 잠갔겠지?”

“예!”

“좋다, 이제 불을 질러라. 밖으로 뛰쳐나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 단 한명도 이 마을에서 빠져나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펴져 모든 병사들의 움직임을 얼어붙게 했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말거라.”

어둠속에서 가웨인이 나타났다. 감독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장군!”

“많은 고민을 해보았소.”

가웨인이 고개를 들어 감독관과 마주했다. 잠시 싸한 정적이 흘렀다가 그녀는 다시 운을 뗐다.

“역시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오.”

“……지금 폐하께 반기를 들겠다는 겁니까?”

“감독관, 전쟁은 수단일 뿐이오.”

가웨인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상충될 수 없는 사람간의 욕망이 부딪칠 때, 상대방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쓰는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하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희생하려 하고 있소. 전쟁은 수단일 뿐이지, 전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되오. 절대로.”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감독관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장군은 너무 생각이 많습니다. 검은 주인의 뜻에 따라 휘둘러져야지요. 스스로 움직이려 하면 어쩌잔 말입니까?”

가웨인이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키자, 감독관은 한숨을 쉬었다.

“장군, 폐하의 명을 따르시지요.”

“그럴 수는 없소.”

“이것이 마지막 권고입니다. 왕명을 따르시오. 장군.”

“그럴 수는 없다고 하였소.”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스릉! 감독관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어 겨누었다.

“이 자는 반역자다. 속히 체포하라!”

“……!”

급변한 상황에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감독관이 재차 외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반역자를 체포하라니까!”

“…….”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가웨인과 감독관의 눈치를 슬슬 번갈아가며 살폈다. 그때 가웨인이 움직였다.

“그리하도록 하시오.”

절그럭. 그녀는 허리춤의 검을 검집 째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장군!”

“감독관이 말이 맞소. 왕명을 거절한 소장은 죄인이오.”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가웨인, 그리고 그녀를 체포하라고 부르짖는 감독관. 일촉즉발의 상황에 병사들은 떨리는 팔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처억! 척!

그 모든 창끝은 감독관 쪽으로 향해 있었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이, 이, 이것들이! 단체로 미쳐버린 것이냐!”

격노한 감독관이 악을 질러댔으나, 병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우리가 우리의 상관을 체포해야 하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우리는 폐하의 검이기 이전에 가웨인 장군의 검이올시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왕명이다!’ ‘반역이다!’ 카사르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 말들을 아무리 부르짖어 보아도 병사들의 창끝은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감독관은 설득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두, 두고 보자! 너희들 모두 반역죄로 몰살…….”

촤아아악!

푸른섬광이 한 일자로 그어지며 감독관의 목을 깔끔하게 갈라놓았다. 가웨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뜨린 검을 뽑아 감독관을 벤 것이다.

“……자, 장군!”

“폐하께서 보낸 신하의 목은 나, 가웨인이 베었소.”

그렇게 말한 그녀가 다시 검을 땅에 떨어뜨렸다.

“다들 잘 들으시오! 반역을 저지른 사람은 소장 한 사람뿐이오. 이제 그대들은 소장을 붙잡아 폐하께 바치시오. 그리하면 그대들의 목숨과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소. 더 이상 소장의 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필요 없이, 온전히 카사르의 일원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오!”

“……자, 장군!”

“어서!”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관들과 병사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웨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우리 모두 기사의 도리를 쫓다가 아크의 시대에 낙오된 자들입니다. 장군이 없었으면 모두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미 한 번 죽은 목숨, 끝까지 장군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장군!”

소식을 듣고 온 가웨인의 부장이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네까지.”

“아크는 수백 년간 이어온 고결한 기사도 정신을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망쳤습니다. 그뿐입니까? 자신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기사들에게는 불합리한 명령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 지시에 못 이겨 자결한 기사들만 해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니, 왕의 의심과 불신은 가히 병이라 할 만합니다. 장군의 뜻은 틀린 게 아닙니다.”

부장을 시작으로, 후열의 다른 제장들까지 소리 높여 외쳤다.

“이제 카사르에 남은 진짜 기사는 장군뿐입니다!”

“전설이 가는 마지막 길을 우리가 함께 하게 해 주십시오!”

“장군!”

가웨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다른 병사들도 가웨인에게 한 마디씩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쏟아냈고, 그때마다 함성이 뒤덮었다. 기사들도, 병사들도, 하나같이 수십 년을 함께 싸워온 전우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던 그녀는 목을 젖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장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오.”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주먹이 꾹 쥐어졌다.

============================ 작품 후기 ============================

알테니아 / 에잇, 하는수 없군! 사딸라 + 비월!

니알라토텝 / 아뇨 그게 아니라 먼산 경치를 보니 갑자기 세속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 다시 한편 더 휴재를... (?)

루타르 / 에이급 키메라요...? 저 아이들은 영웅이 아니라 일반 특화병종 키메라인데, 어떤걸 말씀하시는지요?

프리워커 / 소김수?!

벌레 / 가까운 파출소 번호가 어딨더라아

리아레스 / 벤 ;ㅅ; 나중에 기대해주시길!

지리산의늑대 / ㅠㅠ

...(-1)... / 아두-유선급이라니... ㅠㅠㅠㅠ

재범 / 저도 다른 노블러 분들처럼 팍팍 쓰고 싶은데... 글 읽고 쓰는 속도가 느린게 한스럽네요 ㅠㅠ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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