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13화 (213/296)

00212 난민과 노예 =========================

아침이 밝아오며, 대망의 퍼들스퀘어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카사르전에서 언더하임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카사르군은 성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미리 이야기 된 대로 릴리군은 동문을, 슈네처군은 서문을 맡았다. 이 두 개의 성문을 틀어막는 것으로 성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었다.

첫 공격은 릴리군부터였다.

“첫날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서쪽 궁병 부대가 공격을 받고 있으니 더 뒤로 이동토록 하세요. 그리고 근방의 나무를 모두 베어서 사다리의 수를 늘리세요. 이쪽의 보병을 성벽 위에서 싸우게 하면 이길 수 있으니까.”

릴리는 어제 그렇게 난리를 피워 제장들을 불안하게 한 것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공성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역시 제1군사인가.’

‘공과 사는 구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제장들도 한숨 돌리고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릴리는 탐색전을 벌이는 것처럼 느긋하게 공성을 벌였다. 다소 진행이 느리더라도 병사들을 잃지 않는데 신경 썼으며, 퍼들스퀘어라는 성과 이곳을 지키는 비월군을 알아가는 데 집중했다.

반면 서문을 맡은 슈네처는 달랐다.

“공격! 계속 공격하라! 오늘 안에 이 성을 함락시켜 보일 것이다!”

초전부터 극단적인 공세로 가고 있었다.

슈네처는 지휘관 스타일의 통솔형 영웅이었다. 공성전의 대가이자, 공성 병기들을 직접 개발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카르프리 정글의 거대한 나무들을 통으로 깎아 만든 공성병기는 어마어마한 크기와 위용을 뽐냈다.

“날려라!”

후우우우웅!

슈네처군의 투석기들이 묵직한 바위를 성 안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바위가 영지나 성벽에 떨어질 때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전방에도 공성병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성문을 부수기 위한 ‘충차’는 슈네처의 작품인 만큼 일단 거대했으며, 내부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비월 측에서는 불화살을 날려 대응했지만 충차의 겉을 생 소가죽으로 감싸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성벽에는 사다리를 타는 병사들 외에도, 운제(雲梯)가 배치되어 있었다. 여섯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에 튼튼하고 무거운 사다리를 연결시켜 놓고, 병사들이 사다리에 올라타면 이것을 펼쳐 한 번에 성벽까지 닿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높은 망루에 바퀴를 달아 만든 병기도 있었는데, 성벽과 비슷한 높이에서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저 이상한 괴물머리 달린 건 또 뭐야?”

“……아주 작정하고 왔구만!”

비월군 측에서는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공성병기야 다른 카사르 군에도 몇 대 있었지만 슈네처 군처럼 공성병기의 물량과 크기로 밀어붙이는 적은 처음 상대해 보는 것이었다. 공성병기들이 워낙 뛰어나니 상대하는 비월군 병사들은 마치 수성의 이점이 없는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지상에서는 헐벗은 차림의 슈네처가 직접 공성을 감독하며 성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장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시군요.”

옆에 있던 부관이 말을 걸었다.

“어비스 놈들이 생각보다 끈끈하다.”

“……예?”

“정말로 성의 예비병들이 맞는 것이냐? 내가 공략했던 여태의 성과는 뭔가 틀려.”

슈네처는 성의 공략단계를 나누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에 따라 초반에 적이 적응할 틈도 없이 공성병기들로 총공세를 퍼부었고, 이쯤 되면 방어 체계 중 한 곳에 균열이 생겨야 했다. 하지만 퍼들스퀘어는 달랐다. 위압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공성병기가 다가옴에도 병사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병기를 파괴하려 들거나 역으로 성벽에서 뛰어 들어 병기를 빼앗으려는 시도까지 했다.

“……겉보기엔 그렇게 사기가 높아보이진 않아 보입니다만?”

부관이 말했다.

“어허, 마냥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병사들만 사기가 높은 게 아니야! 놈들의 눈빛과 전투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 틀림없이 사기의 중심이 되는 뭔가가 있을 거다.”

“걱정 마십시오, 장군. 아켈크 경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켈크 경이 성벽에 올라가면 전세는 단번에 이쪽으로 향하겠지요!”

“음!”

슈네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켈크라면 믿을만했다.

마침 아켈크가 올라탄 운제가 성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사다리에 매달렸고, 몸체가 성벽을 향해 펼쳐지기 시작했다.

“쏴라! 못 오게 막아!”·

성벽위의 어비스군이 화살을 날렸고, 몇몇 병사들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그러나 화살로는 운제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쿵! 기어코 사다리가 성벽에 부딪치며 카사르군 병사들이 방패를 앞세워 올라왔다. 어비스군 병사들도 신속하게 달려 나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려는 병사들을 밀어 떨어뜨렸다.

“…으응?”

그런데 사다리 쪽이 아닌, 그와 조금 떨어진 성벽 쪽에서 사람의 손이 불쑥 올라왔다. 빠악! 누군가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앞의 병사를 차버리며 성벽으로 올라왔다.

“시싯! 올라왔다.”

그는 전형적인 정글 원주민 복장을 하고 있는 카르프리인이었다. 복장은 헐벗었고, 머리에는 적, 녹, 청이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깃발 모자를 썼다. 양 손에는 갈고리와 같은 검을 들고 있었다.

“어딜!”

가장 가까운 병사가 달려들어 창을 내질렀다. 아켈크는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댕강!

그리고 병사가 창을 내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병사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홀로 상대하지 마라! 놈은 카르프리의 장수다!”

주위의 검보병 세 명이 합을 맞추어 달려들었다. 터엉! 공중제비를 돌며 세 명의 병사를 가뿐히 넘어선 그가 허공에서 갈고리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목이 동시에 하늘로 날아갔다.

이어서 펼쳐지는 난전. 병사들 보다 배 이상 빠르게 움직이는 아켈크는 집요하게 상대의 머리만을 노려 날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무기를 움직이는 것과 목이 떨어지는 속도가 거의 동일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마다 병사들의 목이 당근 뽑히듯 휙휙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켈크의 존재는 화려한 눈속임일 뿐, 진짜 문제는 그가 시간을 끄는 동안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카사르군 보병들이었다. 특히 기사들이 성벽위로 올라와 진형을 갖추게 되면 골치 아팠다. 성벽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섣불리 달려들지 마라! 방패를 세워!”

방패를 앞세운 병사들은 목을 노리는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지만, 정작 아켈크는 방패병들은 철저하게 상대하지 않고 덤블링으로 넘어 다니거나 옆으로 빠져나가며 다른 병사들의 목을 쳤다. 난전에 휘말리지 않고 오히려 본인이 혼란을 유도하는 스피드 타입의 영웅.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잠시 비켜주시지요.”

검은 도복의 비월이 경공으로 성벽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소란을 본 그녀가 직접 지휘부에서 달려온 것이다. ‘오오오!’ 병사들이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시싯! 우두머리?”

아켈크가 갈고리 검을 척 세워들며 자세를 낮췄다. 비월도 병사들이 만들어준 길 사이로 걸어왔다. 이내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마주보게 되었다.

“소녀는 비월이라 하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적장에게 예를 취하려는 순간, 아켈크가 잔상을 남기며 몸을 뒤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에 뜬 채로 비월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널 먹을 자다.”

좌우의 갈고리 검이 그녀의 목 쪽으로 움직였다. 비월은 허리를 깊게 숙여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어찌 예를 표하는 중에 공격을 하시옵나이까.”

“싯싯! 네년은 아침 식사에게 예를 차리느냐!”

비월은 허리를 숙인 자세에서 오른발을 뻗고 검을 쥐었다. 아켈크도 공중에서 팽이처럼 몸을 몇 바퀴 더 돌렸다. 허공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이 각자의 동작을 취하는 듯하더니, 중앙에서 맹렬한 스파크와 함께 고막을 뒤흔드는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쩡!

격돌의 후폭풍이 주위에 휘몰아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으로 내려와 물러났다.

“먹이 주제에 반응 속도는 좋구나!”

아켈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말했다.

“귀공께서는 조금 느리신 듯 하옵니다.”

비월이 허리를 일으키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는 뒤늦게 우측 신체의 공허감을 느끼고 시선을 움직였다. 검을 쥔 한 팔이 바닥에 툭 떨어져 있었다.

“으아아아!”

그가 비틀거리며 남은 한 손으로 피가 솟구치는 부위를 붙잡았다.

펄럭!

어느새 아켈크의 등 뒤로 검은 도복이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었다. 철컥. 경공으로 뒤로 돌아온 비월의 검이 예리한 날을 드러냈다.

- 싸울아비류, 묵뢰(墨雷).

콰아아아앙! 검에서 천둥과 같은 울림이 터져 나왔다. 아켈크는 아슬아슬하게 한 손으로 무기를 들어 가드 했지만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성벽에 부딪쳤다.

쿠쿵! 그가 부딪친 성벽에 금이 가며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충격은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아켈크는 그대로 눈이 뒤집힌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비월이 검을 빙글 돌려 검집에 집어넣었다.

“아직 살아있을 것이옵니다. 포박해주십시오.”

“…아, 옛!”

병사들이 홀린 듯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다가 크게 소리쳤다.

“비월 장군이 적장을 쓰러트렸다!”

“와아아아아아!”

성벽 쪽이 떠들썩해진 모습을 보며 지상의 슈네처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 당했나본데요?”

부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할 것 없다. 진짜는 이 다음이니까.”

비월이 흐트러진 진형을 바로잡으러 지시를 내리고 있는 그때였다.

“……!”

“저건 또 뭐야아!”

성벽 위로 무언가 펄쩍하고 튀어 올랐다.

그것은 믿기지 않지만 메뚜기였다. 정확히는 ‘거신의 정원’에 사는 거대한 곤충형 몬스터들. 그 위로는 곤충술사 ‘카르프리 핸들러’들이 올라타 있었다. 뛰어오른 괴물 메뚜기들이 밀집한 병사들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비월은 병사들 사이에 껴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켜!”

중년 병사가 비월의 앞으로 비집고 들어와 한 팔로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나머지 한 팔로는 방패를 앞세웠다. 쿠웅! 이어서 스물이 넘는 괴물 메뚜기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다리가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괜찮나?”

“……아.”

비월은 밀려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앞을 병사가 방패를 단단히 세우고 있었다. 메뚜기의 다리가 훑고 갔는지 방패에 일자로 금이 가 있었다.

“……도움에 감사드리옵니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와하하! 자네가 여기서 다치면 곤란해! 우리의 희망이니까!”

병사가 그렇게 말하며 방패로 거대 메뚜기의 머리를 가격했다. 쩌억! 파란 피가 터져 나오며 메뚜기가 무릎을 꿇었다.

“잔챙이 따위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핸들러가 창을 내질렀다. 그러나 비월이 번개처럼 다가와 창을 쳐내고 핸들러의 목을 날렸다.

“크, 잘하는구먼!”

“아저씨도 훌륭하옵니다.”

“아, 아저씨라니……!”

근방의 병사들은 대부분 저 괴물 메뚜기들에게 정리당해 있었다. 밀집 지형이라 손쓸 틈 없이 떨어지는 공격에 당한 것이다. 일종의 ‘기병’에 속했지만, 공성전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카르프리만의 새로운 유형의 기병부대였다.

“……위기인가?”

“괜찮습니다.”

비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의 괴물 메뚜기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성벽 전선에 합류한 어쌔신들이 후방에서부터 공격해 들어온 것이다. 거대 메뚜기들이 뾰족한 다리로 공격했지만 어쌔신들은 특유의 몸놀림으로 요리조리 피하며 다리의 관절을 자르고 기수의 목을 쳤다.

다른 병사들까지 몰려오기 시작하자 결국 무리라고 판단한 핸들러들이 후퇴를 결심했다. 메뚜기들이 펄쩍 성벽 밖으로 뛰어올랐다.

- 싸울아비류 오의, 청월(靑月).

스르릉. 도망치던 메뚜기들의 몸을 푸른 검광이 번뜩이며 지나갔다. 성벽위의 비월이 딸칵. 하고 검을 집어넣자 다섯 기의 메뚜기들의 몸이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푸른 피를 흩뿌렸다.

“다 잡지는 못했군요.”

“……하하하.”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병사가 진땀을 흘렸다. 이런 괴물인데 사실 아까의 도움, 필요 없지 않았을까.

“장군. 무사하십니까?”

암살단원들이 그림자처럼 몰려들었다.

“소녀는 괜찮사옵니다. 다만 아군의 피해가 커서, 이곳 수비병 편성을 다시 해야 하옵니다. 그때까지 수비를 부탁드리옵니다.”

“예!”

암살단원들이 샤샤샥 흩어져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카사르군 병사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알테니아 / 1딸라 올라주셨군요! 감사합니다!

T스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알라토텝 / 하긴 아직 로드의 플래그가 꽃히지 않았던가요

셉셉이 / 외쳣 비월!

할레데임 / ㅠㅠ 저도 요즘 그 부분 관련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노블에 있으니 계속 선작 떨어지고 어른의 사정에서도 생활비 벌기도 벅찬 수준이네요. 으음. 프리미엄쪽은 어떤가요? 77이후 프리미엄 가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던데.

...(-1)... / 먼치킨 주인공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ㅠㅠㅠ

왜이리들다재밌지 / 로드도 곧 활약이 나올겁니다!

벌레 / 모래폭풍?! 가웨인은 아직 로드가 만나지도 못한터라...

루타르 / 와우; 정확히 독자님 입장에서 딱 상황을 정리한 내용이네요. 감탄했습니다! 다만 가웨인이 바로 어비스에 넘어가기에는 여러 고민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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