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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15화 (215/296)

00214 두 개의 신념 =========================

야습을 성공시킨 비월과 정예병들은 카사르의 장군 중 한 사람인 슈네처와, 그의 제장들 다수를 베었다. 거기에 더해 공터에 배치된 주요 공성병기들까지 불태웠으니, 실로 엄청난 전공이었다.

“월아아아!”

비월이 퍼들스퀘어로 들어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하연이 눈물을 뿌리며 달려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응.”

“오셨습니까? 장군!”

“장군이 돌아왔다!”

야간수비를 담당하던 부관들과 주위의 병사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특히 가장 신이난 사람은 비월의 심복인 부장 해루였다.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장군! 성벽위에서 봤습니다. 낮에 그렇게 우릴 괴롭히던 병기들이 타 버리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녀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힘을 합친 덕분이옵니다. 그리고…….”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병사들이 땅에 난 구멍으로 하나 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영지민 분들의 노고 덕분이지요.”

퍼들스퀘어는 구조상으로는 평범한 영지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흑사회의 지배를 받던 지난 30년간, 영지민들이 탈출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땅굴’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지에서 내려가 두터운 성벽과 성문을 통과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상당한 길이의 땅굴이었다. 다만 땅굴이 완성되기 직전 흑사회에게 발각되어 버렸고, 수년간 막힌 채로 방치되었다.

그러다 로드의 명으로 퍼들스퀘어의 총사령관이 된 비월은 이 땅굴에 주목했다. 그녀는 땅굴의 복구를 명하는 것에 더하여, 적이 성문을 포위했을 때의 진형을 고려해 땅굴의 길이를 더 확장하도록 했다. 이 작업에는 스페셜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 수인연합회의 두더지 수인들이 파견되어 도와주었다. 덕분에 작업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그리고 공성전이 일어났다. 슈네처군은 비월 측의 예상대로 성문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야영지를 지었고, 그곳은 땅굴의 범위 안이었다. 비월군은 땅굴을 통해 보초들을 공략하지 않고도 바로 야영지 중앙으로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슈네처군이 성문을 틀어막고 다소 방심했던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작전으로 암살단원들을 몇몇 잃긴 했지만 올린 성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사옵니다. 들어가 쉬시고 내일 공성을 준비하지요.”

축제 분위기가 된 병사들이 입을 모아 환호했다.

*

반면 카사르 진형의 분위기는 극히 어두웠다.

“으휴.”

지휘관 천막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초록머리의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한심하네요. 슈네처군.”

그녀의 앞에는 부상을 입고 지휘관 천막에 남아있던 슈네처의 남은 제장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방심으로 야습의 방비가 허술했던 것도, 공성병기가 불탄답시고 총사령관이 직접 검을 들도 뛰쳐나가는 것도, 무엇보다 적을 그대로 놓쳐버린 것까지 모두……. 어쩜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죠?”

“…….”

“첫날부터 성급하게 굴 때부터 알아봤어요. 이래서 멍청한 타지인 군세를 쓸 필요가 없다니까.”

슈네처군의 부관들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공성병기를 공유하지 않더니, 이번 야습으로 병기의 8할이 파괴되었어요.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이 무능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소.”

중앙에 꿇어앉은 부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훗 하고 웃었다.

“좋아요, 그럼 달게 받으세요.”

촤아아악!

부관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뒤에 서있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다른 부관들의 목을 전부 쳐버린 것이다.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동료들의 시체를 본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신만은 살려드리죠.”

릴리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대신 제게 충성을 맹세하세요. 더 이상 카르프리의 무장이 아닌, 온전히 저의 ‘개’로서.”

그녀가 살려줄 여지를 보이자,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시 이마를 바닥에 댔다. 갑자기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공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릴리의 웃음소리가 서늘하게 깔렸다.

“좋아요. 이제부터 슈네처군은 우리군에 통폐합됩니다. 당신이 인계절차를 밟도록 하세요.”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터덜터덜 다른 기사를 따라 천막을 나갔다.

“한 놈은 살려주셨군요.”

옆에 서 있던 릴리의 부장 기사가 말했다.

“네, 전부 죽이면 카르프리 출신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이 우리에게 온전히 통합될 때까지는 잘 이용해 먹도록 하죠.”

“예.”

과연 아크의 애인다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깔끔한 판단력과, 아군의 목도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잔혹한 결단력. 그녀가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군사님. 상황은 좀 곤란하게 됐습니다. 공성병기의 팔 할을 잃다니요. 게다가 슈네처 장군 본인도 능력만 놓고 본다면 공성전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인재였습니다.”

“괜찮아요.”

릴리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올려둔 홍차를 홀짝였다.

“어차피 퍼들스퀘어는 공성만으론 점령하기 힘든 성이에요. 슈네처가 그렇게 퍼부어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거 봤잖아요.”

부장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지금 공성전을 하고 있으면서 공성만으로는 점령하기 힘들다니?

“……그럼 다른 계책이 있으신 겁니까?”

그녀는 말없이 제장들을 보았다.

“명을 내리겠습니다.”

“옛!”

제장들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커져있었다. 이번 숙청으로, 릴리의 출신 때문에 은연중에 무시하던 몇몇 기사들까지 완전히 그녀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경들은 퍼들스퀘어의 영지에 있는 모든 마을들을 조사하도록 하세요. 작은 시골 마을 하나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인구는 얼마인지, 그 중에 무기를 잡을 수 있는 자들은 얼마인지, 식량 상황이나 본성인 퍼들스퀘와의 연관성까지 사소한 것 하나 하나 전부 기록해 오세요.”

“예, 군사!”

첫째 날은 탐색전, 둘째 날은 주변 조사라니……. 공성을 하는 도중에 뚱딴지같은 지시였지만, 부관들은 토를 달지 않고 신속하게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야습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죠?”

릴리가 부장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 예. 군사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야간 경비를 서던 병사들은 하나같이 적병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경비를 서던 병사들 중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도 없었죠. 사망한 건 전부 진형 내부에 있던 병사들이었습니다.”

“어머, 재밌네요. 보초들을 뚫지 않고 진형 내부로 침투할 수는 없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르기라도 했는지.”

이번 야습은 여러모로 미스터리였다. 꽤나 많은 수의 적병이 진형 한가운데에 들어올 때까지 보초들은 멀쩡했고, 당하기 전까지 그 침투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대응 또한 느려진 것이다.

그때 릴리가 팔을 팍 뻗었다. 보고를 하던 부장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지만, 그녀는 테이블에 둔 찻잔을 집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뜨거운 홍차를 입으로 남김없이 털어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제가 직접 가보도록 하죠. 따라오세요.”

그녀가 말을 말고 잔뜩 움츠러져 있는 부장을 보았다.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장이 재빨리 둘러댔다.

그녀의 뒤를 따르며 부장은 안도했다. 능력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다만 히스테리만 좀 줄여주었으면.

*

둘째 날 공성은 다소 늦게 시작되었고, 또 첫째 날처럼 여유가 있는 느낌의 공성전이 진행되었다. 슈네처군의 통합에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릴리의 전략이 이런 것인지는 비월군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둘째 날도 무사히 카사르군을 막아낼 것으로 확정되자 비월군은 회의를 위해 일찌감치 모였다. 주요한 쟁점은 오늘 야간에도 땅굴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무엇을 망설인단 말이오? 어제 같은 대단한 성과를 또 낼 수 있는 기회잖소! 만약 이번 야습에서 릴리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우리의 공성전뿐만 아니라 전쟁 전체를 뒤집을 수도 있소. 그 키를 지금 우리군이 가지고 있는 것이오!”

“저도 동의합니다. 릴리군은 슈네처군을 흡수한 뒤 병력 배치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그런데 릴리 본인과 그녀의 주력들은 모두 서문으로 옮겨왔다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저들은 아직 땅굴의 정체를 모르는 겁니다!”

“이 기회를 통해 릴리의 목을 칩시다, 장군!”

제장들은 대부분 땅굴을 이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월은 제장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을 뿐, 직접 의사표명은 하지 않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잠시만요!”

제장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임시참모인 하연이 벌떡 일어나 있었다.

“저는 반대에요!”

제장들이 썩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어째서 반대하냐고 물었다.

“병법에서도 같은 전략을 두 번 쓰는 것에 대해서는 극히 경계하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상대는 카사르군 내에서도 최고의 지략가인 릴리군이에요. 그녀가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았을 리 없어요!”

“이봐, 아가씨.”

아로게쓰 출신인 근육질의 부장이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병법 조금 읽었다고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녀가 땅굴에 대해 알았다면 자기 진형을 땅굴이 있는 서문 쪽으로 옮기진 않았겠지.”

“서문 쪽이 공성 진행 상황이 더 좋으니까요! 그리고 땅굴을 알게 된 그녀가 우리들을 유인하려고 하는 계책일수도 있잖아요!”

“끼워 맞추는 망상도 작작해라!”

그가 벌떡 일어나 하연을 사납게 내려다보았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 전쟁이다! 상대가 우수한 것이 전략을 포기하라는 이유란 말이냐? 장군의 친구라서 이 자리에 나온 주제에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는구나!”

하연은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가 아픈 곳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부관이 씩 웃었다.

“애초에 뭣도 모르는 계집 따위와 전략을 논하는 것부터가…….”

“……부관.”

비월이 그의 말을 잘랐다. 부관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장군인 비월 또한 여자이지 않는가! 바보 같은 말실수를 해버렸다.

“전략을 논하는 자리에 타인에 대한 비방은 하지 말자고들.”

부장인 해루도 끼어들었다.

백제시절부터 비월을 따르는 무장이었던 해루는 그녀를 대신해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군기를 잡고 쓴 소리를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해루가 나서자 부관은 더욱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말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겠는데, 여자라서 뭐니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지 않나? 우리 어비스만 봐도 문무 최고의 자리 모두 여자가 앉아 있지. 오히려 우리 사내놈들이 더 분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소장이 실언을 했습니다.”

부관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다른 부관 한 사람이 끌끌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미 자네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키리안 장군도 여자한테 깨졌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뭐라고? 이 자식이 지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해루가 짐짓 화난 표정을 하며 말리려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비월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략을 논하는 것 외에, 타인에 대한 비방은 엄금하옵니다.”

나긋한 그 한마디에 부관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며 소리쳤다.

“예! 장군!”

하연은 그런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한마디에 철저히 복종하는 장수들. 발언력이 약한 자신과는 완전히 달랐다. 비월과의 거리가 더욱 멀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오기도 생겼다.

‘어떻게든 네 옆에 당당히 서고 말거야, 월아.’

회의가 재개되었다. 비월은 제장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 들은 후 입을 열었다.

“소녀는 하연 참모의 조언을 택하겠사옵니다.”

‘어?’

하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비월을 바라보았다. 그때 해루가 팔꿈치로 툭 치자 하연이 퍼뜩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장군!”

고개를 드니 비월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하연은 나중에 방에 같이 들어가면 이 사랑스러운 소꿉친구를 꽉 안고 놔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소녀의 생각도 참모와 동일하옵니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소녀는 우연에 기대어 적을 쓰러트릴 안일한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예, 장군!”

비월의 명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땅굴은 포기하고 수성에 더 신경 쓰는 것으로 결정 났다.

‘소녀의 역할은 이 자리에서 굳건히 버티는 것. 공격은 부탁드리옵니다. 폐하.’

============================ 작품 후기 ============================

쨍쩅 -> 폭우 -> 쩅쩅 -> 폭우. 날씨도 점점 미쳐돌아가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올거면 내일 예비군 할때나 좀 내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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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ㅋㅋㅋㅋㅋㅋㅋ 알테님을 위한 편!

토노와나나야 / ㅠㅠㅠ 내년부터 고생하시겠군요! 전역했는데도 1년에 5일이라니!

루타르 / 릴리쪽은 동문에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답니다.

에프론 / 으으아으! 어차피 가야한다면 소재나 잔뜩 생각해놔야겠네요!

니알라토텝 / + 뻥튀기 고유능력급인가요 ㄷㄷ 다만 비월은 홈그라운드에 강한 스타일이니 베아트리체에 비해 범용성은 떨어질듯 합니다

dls4920 / 즐거운 시간되셨기를, 감사합니다!

왜이리들다재밌지 / 로즈안느 소식도 곧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리산의늑대 / ㅋㅋㅋㅋㅋ...

할레데임 / 가웨인이 로드의 성향을 안다면 매력을 느끼겠지요. 다만 아직 두 사람이 만나진 못한터라... 그리고 수인친구들은 전멸이긴 하지만 몰살까지는 아니에요. 나중에 또 본편에서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박성빈 / 오오, 넓게 보시는 큰그림!

벌레 / 가웨이이이인!

...(-1)... / 신부님, 고해성사할게 있습니다. 마이너스님께 드린 리코멘, 거짓말이었습니다. 제발 둘리행만은

Epic[에픽] / 흠흠, 역시 검든 여자는 최고!

아프게했어 / 이런 세상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ㅇ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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