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4 타락의 악마 =========================
“사격 준비!”
리리스가 영지 안으로 들어왔지만, 카사르 측 지휘관인 ‘멕케이’는 수성의 달인이라는 명성답게 대처가 신속했다. 그는 소란이 일어나자마자 병사들로 하여금 발리스타들을 꺼내 장전시키도록 했다.
카사르의 개척시대 특화병종인 ‘카사르 발리스타’는 궁병과 마법사가 부족한 카사르군을 보완하는 ‘대공 병기’이다. 지상군 타격이나 공성에 쓰이기보다는 공중 공격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 엠파이어의 내장되어 있는 발리스타는 백대가 넘어갔다.
“쏴라!”
투우우우웅! 영지 전역에서 굵직한 투창들이 밤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대공 특화 병기답게, 높은 고도에 있는 리리스에게 날아가면서도 속도가 줄지 않았고 정확도도 우수했다. 리리스는 왼손을 뻗어 대기를 쓰다듬었다.
- 수호의 진, 다중 소환 20개.
파아앗! 눈부시도록 새하얀 원형 마력진들이 그녀의 주위를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그리고 투창들의 머리가 마력진에 들이박혔다.
터엉! 터터터터터터텅!
동시 사방에서 투창들이 리리스의 몸을 덮치며 폭음과 같은 소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리리스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수호의 진을 펼치긴 했지만 병기의 화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검은 핏물이 입술을 비집고 흘려 내렸다. 천하의 말렉을 상대로도 상처하나 나지 않았던 그녀가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감히, 쓰레기들 따위가.”
인간들 따위에게 다치고 있다는 것은 그녀에겐 더없는 수치거리였다. 리리스의 오른손이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듯 유연하게 움직였다
- 증폭의 진, 다중 소환 30개.
파앗! 새로운 마력진이 허공에 빈틈없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 눈부신 백색광채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리리스의 뿔만은 검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끝에 검은 마력이 이슬처럼 맺혔다.
- 마의 징벌.
원형이었던 검은 마력이 무수히 많은 강선으로 뻗어나가 좌우사방 30개의 증폭의 진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통과했다. 그것은 지상에서 리리스를 공격하고 있던 발리스타 병들을 향해 내려갔다.
강선은 발리스타를 종잇장처럼 쪼개었고 바닥에 닿으면 폭발을 일으켰다. 지상이 폭격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갔다.
“큭! 발리스타 세 대가 파괴됐습니다!”
“…저 위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고 반격한 것인가?”
겉으로 보기엔 검은 마력을 사방으로 난사하는 것 같았지만, 틀림없이 그녀는 발리스타들을 조준 사격하고 있었다. 심지어 빗맞으면 ‘증폭의 진’의 기울기를 바꿔가며 영점을 다시 잡고 쐈다.
“사격 중지! 적에게 위치가 노출됐다! 발리스타를 이동시켜서 다시…… 크아악!”
카사르측 부관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검은 마력에 물들어 타락해버린 아군이 등을 찌른 것이다. 발리스타를 다루는 병사들끼리 검을 휘두르고 싸우게 되는 바람에 리리스에게로 날아오는 투창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늘에서 여유가 생긴 리리스는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리고 더욱 높은 고도로 올라가 영지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론 분노가 풀리지 않아. 끔찍한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많이 느껴지는구나.”
그녀가 팔을 지상을 향해 뻗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언니, 우리 너무 무리했어. 이제 슬슬…….”
“아직이야.”
그녀는 스스로의 말을 자르며 전방에 ‘증폭의 진’ 30개를 일 열로 쭉 깔았다. 그리곤 검지를 첫 번째 증폭의 진을 향해 겨누었다.
- 마탄(魔彈).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검은 탄환이 삼십 개의 진을 모두 통과해 지상으로 내려갔다. 병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동문 앞 지점으로,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반원 형태의 새까만 폭발이 퍼져나가며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검은 범위에 들어온 병사들은 깨끗하게 몸이 증발해버렸다.
“정말, 언니이!”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그 기술을 쓰면 인간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잖아!”
“괜찮아, 린. 그깟 잡졸 따위 없어도 충분해. 이곳을 잡초 하나 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어 주겠어.”
투툭.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에 리리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들어 보았다. 팔꿈치 윗부분이 깨진 조각상처럼 갈라져 파편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느끼지만 허약한 체질이구나. 이 몸뚱이 때문에 마음 놓고 힘을 쏟아 부울 수도 없다니.’
후우우우웅! 발리스타의 투창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리리스는 고개를 옆으로 꺾어 피했다.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쓰레기들이 정녕 화를 돋우는구나.”
그녀의 몸 주위로 검은 안개가 뭉실 거리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
한편 동문의 성벽 위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더럽게 안 죽네!”
카사르군 병사가 투덜거리며 타락한 아군의 몸에 검을 박아 넣고 있었다. 타락자들은 생명력이 끈질겨서 몇 번이고 찔러야 쓰러졌다.
끝내 마지막 타락자까지 끝장낸 병사는 쪼그려 앉아 숨을 골랐다. 같은 군복을 입은 자를 처치한다는 건 찝찝한 기분이었다. 걔 중에서는 아는 얼굴도 있었기에 착잡함이 더했다.
“어이! 그쪽은 다 끝냈어?”
저 멀리서 다른 소대원들이 횃불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가 팔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내려는데 갑자기 그들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또 뭐야!”
그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릉.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 단검이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병사가 절명하고, 이어서 성벽을 기어 올라와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어비스 어쌔신들 이백 명 전원이었다. 리리스가 혼란을 일으킨 사이 어쌔신들은 로프와 갈고리만으로 성벽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건 은빛 머리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가 팔뚝에 맨 마력 신호 장치를 확인하고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몸이 팟! 하고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두 팀으로 갈렸다. 베아트리체와 서른 명의 어쌔신들은 어둠을 틈타 성벽에 로프를 매달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어쌔신들의 스킬인 은폐와 인식차단효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동쪽 성벽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영지 내에서 쉬고 있던 전 카사르군 병사들이 일어나 동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리리스의 타락자들과 남은 170명의 어쌔신들이 성벽위에서 싸우며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켜 주고 있는 사이. 베아트리체 일행은 다른 병사들의 눈을 피해가며 남문 쪽으로 계속 뛰었다.
남쪽 성문에 도착하니 과연, 로드가 예상한대로 병사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개폐장치는?”
베아트리체가 어쌔신들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졌다.
“지하에 있습니다, 단장. 이쪽으로.”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에는 카사르군 병사들이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망설임 없이 제일 먼저 적진으로 몸을 던졌다.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화력차이는 명확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일반병들이 어비스 최강의 무인으로 손꼽히는 그녀를 붙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병사들을 전부 제압한 베아트리체와 어쌔신들은 성문 개폐장치를 가동시켰다.
드르르륵! 이윽고 남문이 스스로 열리며 해자 위에 다리가 놓였다. 그 앞에는 로드의 7천 병력이 떡하니 대기하고 있었다.
“좋아! 잘했어, 베아야!”
로드는 바로 병력들을 성으로 올려 보냈다. 자신 또한 영지 안으로 들어왔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폐하! 엠파이어의 성벽을 이렇게 쉽게 통과하다니요!”
키리안이 존경의 눈빛으로 로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되어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시가전으로 돌입하시죠!”
“아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로드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성문 개폐장치를 고장 내서 카사르군이 오더라도 성문을 닫지 못하도록 해. 그리고 나머지 병력들은 도시에 들어가지 않고 성문 주위에서 대기한다.”
“예? 어, 어째서…….”
로드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폭탄이 아군 적군 가리는 거 봤어?”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영지의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먹구름이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사르병들은 갑자기 이게 웬 비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적의 야습을 막으러 달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 비의 색깔이 검은색이라는 것을 보았다면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크으으!”
“쿨럭! 허억!”
동쪽 성벽으로 향하던 몇몇 병사들에게 이상 반응이 왔다.
“뭐야, 자네 왜 그래?”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고 있는 자에게 병사들이 다가갔다.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이 붉은색이었다.
콰직!
“크아아아악! 내, 내 다리를 찔렀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여, 여기도!”
사방에서 타락자가 출몰하며 아군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멕케이는 고개를 들어 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악마의 짓임이 틀림없군.”
리리스의 검은 비는 한 시간 동안 내리며 영지를 까맣게 물들였다. 그녀가 일으킨 비에는 검은 마력이 함유되어 있었고 피부에 닿으면 스며들어가 신체를 검은 마력으로 물들인다. 조금 닿는 정도로는 몸에 있는 기존의 마력이 항체가 되어주기 때문에 문제없지만, 병사들은 밖에서 성벽을 지키느라 뛰어다니고, 비를 맞으며 발리스타를 옮기는 등 계속해서 검은 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비를 맞으면 위험하다! 모두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라!”
능력에 대해 눈치 챈 멕케이가 병사들을 이동시키려 했지만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았다. 타락자가 너무 많이 불어나 영지 곳곳의 길을 막고 있던 것이다. 병사들이 타락자들을 쓰러트리고 도망칠 길을 만드는 동안 그 병사들이 타락자가 되었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렇게 타락자들과 카사르군 병사들의 전투는 날이 밝아올 때 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이다.”
날이 밝으며 성문을 점거하기만 한 채 대기하고 있던 어비스의 7천 대군이 우르르 성내로 들이닥쳤다. 밤사이 타락자들을 전멸시키느라 기진맥진한 카사르군 병사들은 제대로 된 상대가 되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새벽이 지나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 전황은 완전히 기울어져있었고,
결국 카사르군 측에서는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렇게 로드는 관문에 이어 두 번째 카사르의 영토, 그것도 ‘수도’를 손에 넣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이쯤되면 수도 킬러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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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 / 첫코시네요! 축하드립니다! 선물은 제 애정과 사랑입니다.
벌레 / 스킬 훔치기 개꿀;
할레데임 / 뱀파이어의 나라가 엄청나게 하드코어한 나라인데(국민들 피빨아 먹), 기회가 된다면 소개해 드리지요. 국가 생존 현황은 작중에서 다시 다뤄드리겠습니다.
로리콤MK / 애니록스 신용력이 ㅋㅋㅋㅋㅋ 원래는 임시부장이었는데 정보부장자리 굳혀야 겠어요. 그런데 아크가 로리발굴사업이라... 범국가적범죄행태인가요? ㅋㅋ
멸린 / 핡; 상상하니 카타르시스가!
니알라토텝 / ㅠ_ㅠ 소설도 노력하면 빨리 쓸 수 있을까요?
...(-1)... / 애니록스가 누구였더라?
삼관왕 / 히익 ㅋㅋㅋㅋㅋ
박성빈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핡
IQ01 / 저도 비축분 휴재를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네요 ㅠㅠ 비축분있는게 확실히 작품성에서 안정적이긴 해서..
왜이리들다재밌지 / 아크는 언더하임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ㄷㄷ
뿡뿡뽀옹 /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쓸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