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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40화 (240/296)

00238 쥐덫 =========================

기절한 로즈안느를 지켜야 했다. 무기를 잃은 부장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어 퍼시벌에게 덤벼들었다. 주위의 병사들까지 합세하였으나 모두 소년의 일검을 견디지 못하고 간단히 나가떨어졌다.

“헤헤. 헤헤헤헤.”

퍼시벌이 싸울 때 펼치는 검술은 세련되었지만, 그 모습은 전투를 벌일 때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눈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동공이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뭉그적거리는 걸음걸이는 술 취한 행인 같았다.

“……죽여야 해. 폐하께서 죽이라고 하셨으니 죽여야 해.”

로즈안느에게 다가가며 퍼시벌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그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백색의 검광이 그녀를 내려치려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달려온 인형이 도끼를 휘둘렀다.

까앙!

맹렬한 쇳소리와 함께 퍼시벌이 튕겨나가 뒷걸음질쳤다. 지면에 착지하여 도끼자루를 어깨에 툭 올려둔 남자는 키리안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키리안이 쓰러진 로즈안느를 돌아보았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버럭 소리쳤다.

“다들 뭐하는가? 장군을 모셔라!”

“아, 옛!”

고개를 되돌린 키리안의 눈빛에는 한 움큼의 분노가 서려있었다.

“네놈의 짓이냐?”

“방해하지 마. 폐하가 죽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죽여야 해.”

타앗! 소년이 먼저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키리안은 배틀액스를 양 손으로 틀어쥐고는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까아아앙! 두 사람의 무기가 격돌하며 대지가 떨렸다. 충격 이후 퍼시벌이 힘에 밀려났다.

‘완력은 내가 우위!’

키리안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온 몸의 긴장감을 덧씌웠다. 몸에서 푸른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아아아압!”

준비를 마친 그가 뛰어들었다. 마력에 휩싸인 배틀액스가 퍼시벌의 두개골을 조각내기 위해 일직선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퍼시벌은 능숙하게 검을 움직였다. 측면으로 우회해온 백색검광이 배틀액스의 몸체를 때리자 궤적이 옆으로 틀어지며 텅 빈 허공을 갈랐다.

‘이, 이렇게 쉽게……?’

당황한 키리안의 시야 앞이 새까매졌다. 빠악! 코가 찡하며 강렬한 통증이 일었다. 발차기에 안면을 가격당한 것이다.

“크으!”

키리안의 두 다리가 부츠 자국을 그리며 밀려나갔다.

- 파동검, 군마락(群魔落).

퍼시벌의 몸이 여러 개의 잔상으로 갈라졌다. 잔상이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일한 개수의 검기 다발이 날아갔다.

“흐랴아아아앗!”

이에 맞서는 키리안은 제자리에서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카앙! 도끼에 맞은 검기가 파편이 유리조각처럼 갈라져 그의 살갗을 찢고 지나갔다. 고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렸지만 팔은 전방으로 몰아쳐오는 공격을 부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모든 검기를 깨트린 키리안이 돌격을 위해 자세를 낮췄지만 이미 상대는 다음 공격 준비를 마쳐있었다.

- 파동검. 무형극(無形極).

슈콰아아아아악! 검기가 아닌 일직선으로 쇄도해오는 백색의 창이 키리안을 덮쳤다. 쾅!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파동이 충격파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키리안의 신형이 반대쪽으로 거칠게 튕겨져 나갔다.

“끄으으으!”

배틀액스를 바닥에 박은 키리안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방금 공격으로 사실상 승부는 났다. 실력차이는 극명했다.

‘나이는 기껏해야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힘을!’

“너.”

퍼시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약하구나?”

“……크윽!”

키리안이 분함에 몸을 떨었다.

“비켜. 분홍머리 죽여야 해.”

“우쭐대지 마라!”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음에도 키리안은 억지로 배틀액스를 들어 올려 돌진자세를 취했다.

“후욱. 우욱.”

몸에 힘이 없고 머리가 몽롱했다. 정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의식이 과거의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가르침을 주십시오!”

카사르와의 전쟁 전, 열병식이 끝나고 키리안은 냅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아, 귀찮게 진짜! 왜 하필 나야!”

유니벨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비스 최강이시니까요.”

“흐응, 뭐 그렇긴 하지.”

화를 내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칭찬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아란님의 유력한 부인 후보로 지목되기도 하셨…….”

쾅! 새빨간 탄환이 키리안의 무릎 앞에 박혔다.

“시발 새끼야! 방금한 말 다시 지껄여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키리안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쌀쌀맞게 고개를 휙 돌렸다.

“너네 아로게쓰 새끼들 말이야. 괜히 이상한 소문 나불거리다가 내 시집길에 지장 생기면 싹 다 뒤질 각오해라?”

키리안이 의외인 듯 눈을 깜박였다.

“아, 보기와는 달리 그쪽 장래도 신경 쓰고 계셨…….”

쾅! 탄환이 이번엔 꿇고 있는 키리안의 무릎 사이로 들어왔다. 새파랗게 질린 그가 연신 ‘알겠습니다!’를 외쳤다.

유니벨은 혀를 차며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내게 무슨 가르침을 받겠다는 건데? 너랑 나는 전투 스타일이 완전 다르잖아.”

“유니벨 님의 이능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이거 말야?”

유니벨이 앉은 자세로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붉은 마력이 일직선을 뻗어나가더니 창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그녀는 한손으로 능숙하게 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하늘로 휙 던졌다.

퍼어어어엉!

높이 올라간 마창이 하늘에서 폭죽처럼 폭발하여 새빨간 적장미의 이펙트를 펼쳤다. 하늘의 화려한 불꽃을 배경으로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유니벨은 시크한 표정으로 다리를 바꿔 꼬았다.

‘……거, 겁나 멋있다.’

소년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광경이었다. 어떤 전사가 그녀의 모습에 홀딱 반하지 않으리. 역시 여자는 강한 여자가 최고다.

“야, 애송이.”

유니벨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넷!”

“선배님이 시범을 보였으면 인마. 너도 뭔가 보여야 할 거 아냐?”

“……예?”

“마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 해봐.”

키리안은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배틀액스를 쥐고 걸어 나간 그가 몸에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격렬한 기합과 함께 근처에 있는 바위에 도끼를 휘둘렀다.

쩌억! 거대한 바위가 반 토막났다.

“하하! 어떻습니까!”

유니벨은 별 감흥 없는 듯 ‘흐응’하고 턱을 괼 뿐이었다.

“마력이 뭐라고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마력이요? 그야 태어날 때부터 육체에 잠재되어있는 힘. 아닌가요?”

“넌 어떻게 쓰는데?”

“신체 강화입니다.”

“어휴. 등신.”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넌 아직 내 밑에서 배울 단계가 아닌 것 같다.”

“……!”

유니벨이 매몰차게 등을 돌리자 키리안이 다급히 외쳤다.

“…힌트! 뭐라도 좋으니 힌트라도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마법사 학교 다녔을 때 들은 말인데, 마력이란 건 본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창조의 힘이라고 하더라.”

“……예? 마법사 출신이셨습니까?”

“어릴 때 쪼금. 아빠가 보내서 다녔을 뿐이야.”

그녀가 손바닥을 뻗자 붉은 마력이 올라왔다가 펑! 소리를 내며 스스로 발화했다.

“내 마력이 이딴 식으로 꼬여버리는 바람에 마법과는 영 거리가 멀어졌지만.”

“……아.”

“아무튼, ‘마력’은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닌 신의 권능에 가깝다는 것이 정론이야. 이것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말입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했다.

“마법사가 되어 마법을 배울 수도 있고, 초능력을 펑펑 쏴댈 수도 있고, 정신적 트라우마가 정신계열의 이능으로 변이해 세상에 괴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지. 그 망할 공주처럼 음악에 효과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해.”

로즈안느를 떠올린 키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굴욕적인 패배를 어찌 잊겠는가? 그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유니벨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감이 잘 안 옵니다.”

“흥, 그렇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력을 잘 느끼지도 못해. 마력을 느낀다고 해도 거기서 만족하고 신체강화에서 멈추지. 하지만 그건 마력의 가장 기본적인 쓰임새일 뿐이야. 네가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면, 생각해.”

유니벨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네 방향성을.”

*

“……후우욱.”

키리안이 도끼를 머리 옆으로 치켜드는 자세로 바꾸었다.

‘방향성을 생각하라.’

유니벨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고 했다. 신의 힘으로 어떤 기적을 구현하고 싶은가? 키리안이 근래 받은 가장 큰 충격은 1:1로 로즈안느에게 패했을 때였다. 그때 그녀가 썼던 그 버서커 음악.

‘그 강대한 힘을 재현한다.’

생을 걸고 눈앞의 상대를 분쇄하는 공격 일변도.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패도였다.

각오를 굳히고, 이미지를 떠올리고, 몸에 흥분을 끌어올렸다. 완벽하진 않지만 유니벨의 힌트가 도움이 되어서 수백 수천 번 연습했다. 신체 강화에 사용된 마력이 키리안의 몸에서 희미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으나, 그가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색깔이 점점 탁해져갔다.

정신이 고양되어갔다. 눈앞의 강적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전장에서 냉정을 잃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흔히 배웠으나, 키리안은 지금 온 몸을 내던져서라도 눈앞의 적을 무너뜨려야 했다. 모든 정신을 오롯이 적 한명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간다.’

터어엉! 발끝에 힘을 집중 시켜 허공으로 도약한 키리안이 일도양단의 기세로 힘껏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능숙하게 도끼의 진행방향 옆으로 이동한 퍼시벌이 찌르기를 준비했다. 훈련된 전사의 본능이 애타게 ‘가드’를 외쳤지만…….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후우우웅!

퍼시벌의 검이 목덜미를 꿰뚫으려 찔러 들어오는 것 보다, 키리안의 다음 공격이 훨씬 더 빨랐다. 퍼시벌은 동작을 캔슬하고 억지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배틀액스의 궤적에 스친 퍼시벌의 어깨에 핏물이 튀었다.

‘된다!’

온 몸에 힘이 넘쳤다. 확실히 이런 효과는 마력의 신체강화로만은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키리안은 상대에게 모든 투기와 분노를 투영했다. 반드시 죽인다. 그의 그러한 각오를 이루기 위해 점점 마력의 성질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유니벨의 말이 떠올랐다.

‘마력을 도구처럼 휘두르려고 하면 딱 거기까지가 한계야. 네가 일으키고자 하는 기적을 마력이 자연스럽게 돕도록 유도해야 해. 머릿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거야.’

키리안이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원하는 것은 적의 말살. 그 것을 위한 더 강한 힘을. 더 빠른 속도를. 더 과한 흥분을.

키리안의 몸에 흐르는 마력이 완전한 붉은빛으로 변했다.

“끄하아아아아아아아!”

선을 그리며 휘둘러지던 배틀액스의 붉은 격류가 점점 가속이 붙으며 빨라지더니 이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퍼시벌의 가슴에 큰 상처가 생겨났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강해졌다.’

============================ 작품 후기 ============================

바야흐로 혼밥의 시대가 왔습니다, 여러분! 동네 김밥천국에 테이블이 10개쯤 있는데 그중 8개 테이블이 혼밥러들 분께서 차지하고 계시더라요. 딱 하나 있는 커플이 어색한 느낌! 아아, 혼밥천국! 커플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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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스톤 / ㅋㅋㅋㅋ 적절한 쓰임의 속담이네요!

박성빈 / 역시 데스매치가 깔끔!

최카츄 / 네, 로리콘은 물러나야합니다. 네, 로리콘은 범죄입니다. 다만 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죠. 헤헿

로리콤MK / 승패는 바뀌지 않겠지만요 ㅋㅋㅋ 로리콤님 돌직구 ㅋㅋㅋ

할레데임 / 오해입니다. 자아,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제가 로리콤 취향이었다면 로리들을 괴롭히면서 즐거워 했겠죠. 로즈안느를 괴롭히겠습니까?

Gneji / 그런듯합니다

알테니아 / 꺄아아앙 ㅠㅠ 지금 쓰고 있는데 짧지만 넣어드렸어요! 넣었다구요! 그만 떄려욧!

왜이리들다재밌지 / 로즈안느에게 위기가 닥치니 극딜당하고 있습니다. ㅠㅠ 흑흑

학교만12년째 / 아크를 떠나기로 한 것이 중립 선언은 아니지요.

아프게했어 / ㅋㅋㅋㅋㅋ 이게 또 데드플래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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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진0 / 패널티는 지휘관 창의 효과가 서서히 점진적으로 약화되는거랍니다. 아직까지는 특화병종이나 기타 활용에 문제가 없는 정도에요. 수도가 점령당했다고 바로 못 쓰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아크가 언더하임을 먹은채로 시간을 끌려고 했죠. 도중에 금방 뛰쳐나왔지만요.

@쿨레라군 / 퍼들스퀘어에서의 릴리 전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봤을때, 청년/노약자 둘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진 버려야 한다면 당연히 노약자들을 상대방에 집어넣고 병사가 될수있는 청년을 챙기는게 맞지 않을까요? 노약자들을 인질로 잡더라도 테러가 아닌 전쟁에서 민간인 인질은 큰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질을 어떻게 한다고해서 성을 내주고 항복하는 영주는 없을테니까요. 적에게 젊은이들을 줘서 전력을 늘려줄 바엔 쓸모없는 노약자들을 성으로 보내서 식량을 축내게 하는게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보아요.

@spadel / 0시진0님 리코멘에 설명 드렸지만, 효과를 못쓰는게 아니라 효과가 약화되는 거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기승전 비월! 비월 인기가 너무 많아 고민이네요. 으아앙 ㅠㅠ

@...(-1)... / 고길동씨와 연탄집게의 조합은 훌륭하죠

@니알라토텝 / 아크군은 퇴각전이라 최소한의 식량만 몸에 챙기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족한건 식량이 아니라 물이니까요 ;ㅅ; 사실 전력이 어중간하면 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게 정답이긴 하네요 ㅋㅋㅋ

@벌레 / 기사돌?;;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란 말인가!

@데노니프 / 키햐! 4일만에 정주행! 고생많으셨습니다 ㅠㅠ 새로운 독자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엉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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