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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43화 (243/296)

00241 변절 =========================

레드킵에 있다가 간만에 수도로 귀환한 마스터나이트 보호트는 갑자기 바뀐 아크와 가신들의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정례 회의로 모두들 모였으나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크! 왜 그렇게 멍한 거야? 언더하임에서 무슨 일 있었어?”

최측근이자 소꿉친구인 보호트의 물음에도, 아크는 퀭한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미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아크는 회의 시작부터 나가버렸다. 주관자가 떠나버리자 회의장의 분위기도 덩달아 어수선해졌다. 이상함을 느낀 보호트는 평소 아크와 가장 가깝게 붙어 다니던 릴리에게 갔다.

“릴리 군사. 아크가 왜 저러는 지……”

“아아아! 보호트 경! 찾고 있었어요!”

릴리가 먼저 용무가 있다는 듯 버럭 외쳤다.

“아크와 레드킵에 있었을 때 그가 시내에 간 적이 있나요?”

“……자, 잘 모르겠군. 워낙 제멋대로인 녀석이라, 가려 했었다면 갔겠지.”

보호트가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것 참.”

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벌써 가장 중요한 왕과 군사가 말도 없이 회의실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맞은편 테이블에는 그 모습을 고소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기네비어가 있었다. 그녀는 릴리를 공격한 것에 대해 징계를 받아 군사자리 및 실권을 모두 빼앗기고 보급 잡무만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임시조치일 뿐이고 전시 상황이 풀리면 재판이 또 열릴 예정이었다.

“기네비어 님.”

“어머, 보호트 경. 마스터나이트께서 죄인에겐 무슨 볼일인가요?”

고개 숙여 왕의 약혼자에게 예를 취한 보호트가 입을 열었다.

“언더하임에서 폐하와 함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폐하가 왜 저러시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온지…….”

기네비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보호트 경도 그만 내려놓는 것이 어때요?”

“……예?”

그녀는 와인으로 가볍게 목을 축인다음 말했다.

“저는 이제 편해졌어요. 내부에 속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니까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기분이랄까요? 아아, 내가 왜 이런 복잡한 틈바구니 속에서 아득바득 노력했을까요?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는데, 한심하긴.”

‘……뭔 소리야?’

보호트는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네비어 또한 이번 전쟁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보호트는 그녀와 헤어져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익숙한 적발의 소년을 보았다.

“아! 자네 오랜만일세. 퍼시…….”

“헤헤. 헤. 헤헤헤. 내 판단은 쓰레기! 쓰레기!”

“…….”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은 퍼시벌이었다. 사고뭉치였지만 생기발랄하고 열정 넘치던 천재소년은 이번 전쟁이후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시시덕거리고 있는 모습에 보호트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여기에 가웨인은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카사르를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더하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달라져 버린 동료들에 보호트는 당혹스럽기만 했다.

*

엠파이어에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다. 아크는 나라의 상황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수도 패널티로 인한 지지율 감소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아크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던 국민들이었지만, 영지에 귀환할 때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음을 아크 본인은 실감할 수 있었다.

몇몇 귀족 가문들은 대 카사르의 왕도를 외국에게 빼앗기게 된 치욕의 원인을 왕이 너무 쉽게 수도를 비웠기 때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 패널티는 주신전의 시스템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상대인 로드 쪽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절대적인 승리의 상징이었던 아크가 1패를 겪게 됨에 따라 무패를 써내려가고 있던 절대적인 이미지가 훼손되었다는 점이었다. ‘아크도 로드 폴렌티아에게는 안 되더라.’ ‘아크도 그냥 사람이었다.’ 왕에 대한 실망이 드러나는 소문들이 병사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세 번째는 어비스가 뿌려둔 혁명단에 의한 영향이었다. 어비스 통치기간 동안 혁명단원들은 아크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나쁜 소문들을 만들어 냈고, 가끔 혁명 사상에 빠진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명실상부 카사르의 전설, 빙하의 기사 가웨인이 배신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며 나라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수선해진 것이다.

아크는 안팎으로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유력 가문의 귀족들에게 왕궁 연회 초대장을 보냈다.

아직 어비스와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연회라니? 귀족들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특히 구기사를 칭하는 귀족 세력들은 여기서 또 아크에게 밉보이면 죽음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아크가 우리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군.’

‘어디 한두 번 있는 일이오? 살고 싶다면 가야지.’

귀족들은 아크에게 바칠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엠파이어로 넘어왔다.

연회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릴리나 아론다이트, 베디베어 같이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왕실 가신들도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잔뜩 긴장해있던 구기사 귀족들은 이제야 경계를 풀고 안심했다.

그러던 중 아크가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기립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크는 전쟁 중에 연회를 여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은 기사 가문들의 협조를 얻기 위함이라며,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카사르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간단히 기조연설을 끝낸 그가 손뼉을 치자, 시종들이 들어와서 귀족들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아크 본인도 시종에게 와인을 받아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연회장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따라서 잔을 들었다.

“자, 모두 건배합니다. 카사르와 기사들에 영광을!”

“영광을!”

이어서 연회장의 모두가 와인을 마셨다. 아크도 빈잔을 내려놓고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협조를 구하도록 하지요.”

아크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몇몇 귀족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 것이다. 귀족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테이블위로 쓰러지며 음식이 떨어지고 식기가 깨져나갔다.

“……큭!”

“갑자기 이게 무슨!”

모두가 같은 와인을 마셨는데 누구는 쓰러지고, 누구는 멀쩡했다.

“후훗.”

릴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알약을 입에 삼켰다.

이미 짜여진 상황이었다. 아크에게 명령을 받은 릴리와 가신들이 건배사를 전에 신기사 가문의 귀족들에게 접촉하여 몰래 수면 해독제를 건넨 것이다. 해독제를 미리 먹어둔 귀족들은 무사했다.

“폐, 폐하!”

“어째서!”

수면제에 취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기사 가문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곤 부르짖었다.

“주인공들을 위해 방해꾼들은 이만 물러나도록 해요.”

릴리가 말했다. 아직까지 멀쩡히 서 있는 귀족들은 모두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병사들이 검을 뽑아들고 연회장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폐하!”

“대체 이게 무슨!”

“부디 설명을 해 주십시오! 폐하!”

아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역자들을 처치하라.”

연회장은 한 순간 핏빛으로 물들었다.

*

“야, 아크!”

다음날, 보호트가 아크의 집무실의 문을 쾅! 소리 나게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뭐가 이렇게 막무가내냐고!”

아크는 표정 없는 얼굴로 보호트를 보았다.

“……가웨인이 배신하고 나서 몇몇 구기사들이 어비스로 넘어갔어.”

보호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탁 막혔다. 설마 그 이유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남아있는 구기사들을 전부 죽였던 말이야? 게다가 내게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들은 잠재적 배신자였어.”

아크의 대답에 보호트가 왈칵 분노를 표출했다.

“구기사들도 우리와 사상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이지, 모두 이 나라에 충성하는 자들이었어!”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보호트 군, 그 청렴결백한 가웨인이 조국을 배신했어. 가웨인이 그런 마당에 다른 구기사들은 어떻겠어? 그들이 그녀의 반만큼이라도 신의가 있던가? 적이 되기 전에 미리 제거한 것뿐이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호트는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등을 돌려 집무실을 떠났다.

아크의 병적인 증세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틀림없이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아크는 본능적으로 내부의 배신자가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로드 쪽에서 모든 도주 루트와 보급로들을 완벽히 꿰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극비였던 발트라켄 식수 확보 전략까지 알고 대처했기 때문에 그러한 의심은 더 커졌다. 스파이를 퍼뜨렸다는 것만으로는 이 모든 경우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뒤통수가 근질거려서 아크는 도저히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을 하려해도 내부 배신자가 정보를 흘리거나 교활한 수작을 부릴 것만 같았다.

아크는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집안청소부터 해야겠어.’

구기사들을 처단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크는 엠파이어의 ‘혁명단 색출지시’를 내렸다. 골자는 엠파이어 영지민 전원의 신분 재확인으로, 예전에 아크가 강행했던 군 개혁을 영지민 전체 규모로 넓힌 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 처벌과 죄목은 오히려 더 커졌다.

조금이라도 신분이 명확하지 않는 자는 영외로 방출되었다. 영지민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살아오던 터전을 읽고 성 밖으로 내쫓기게 되었다. 내쫓기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들은 즉결 처형이었다.

시행령 첫날. 아크는 직접 처형장으로 나갔다.

하루아침에 혁명단, 스파이, 반역자 등으로 몰려 처형을 앞두게 된 영지민들은 두 손이 묶인 채 처형장 앞에 기다란 줄을 서고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단두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폐, 폐하!”

“아이고오, 폐하!”

입장하는 아크를 본 죄인들이 소리쳤다.

“소인은 어비스의 스파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요! 혁명단도 더더욱 아닙니다요! 제발 살려 주십시오!”

“엠파이어에서만 60년을 산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억울하오!”

“살려주세요!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

처형장에는 억울함을 부르짖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아크는 냉정하게 말했다.

“형을 집행하라.”

영지민들의 집단반발에도 아크는 색출 계획을 계속 진행해나갔다.

마침 엠파이어의 분위기 자체도 뒤숭숭한 상태였다. 의문의 독살사건에 이어 혁명사상에 물든 자들의 집회 시도, 그리고 로드가 도시 창고의 자원을 강탈해감으로서 자원 부족 상황까지 겹쳤지만, 아크는 민생을 돌보는 것 보다는 배신자 탐색에 초점을 두었다.

“벌써 몇 명이 죽은 거야?”

“이 나라가 어떻게 될는지…….”

“곧 다시 어비스에서 쳐들어온다는데.”

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였던 엠파이어는 어느 때보다 깊은 혼란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지금 문제가, 15편도 문제지만 당장 담주 월요일에 추석에 연재될 분량을 보내야 한다는 거죠 ㅠㅠ 저는 하루 하루 연재도 벅찬데 말이지요 ;ㅅ; (하루살이 자살각)

그래서 추석에는 추석 기념(?) 외전을 몇편 올릴까 합니다. 어비스 친구들의 유쾌한 일상 같은것들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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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핡핡! 당근이다아!

니알라토텝 / ㅠㅠ 아르곤 큰다

재범 / 앞으로 남은 편들 팝콘이 제대로일겁니닷

T스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라멜 팝콘!

책읽는고래 / 아니오. 불가능해요 저는 ㅠㅠ

사탕수수158 / 으앙앙 ;ㅅ; 총알은 살살맞으면 안아퍼요!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죽을듯!

풍령화객 / 주사? 스팀팩인가요? 글 다 쓰고나면 제 몸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하늘바라기17 / 가, 감사합니다 ㅠㅠ

벌레 / 마스코트 베아트리체! 충성충성!

로리콤MK / ...ㅠㅠ 아니 정말정말 노력하고 있는데 안써져요 엉앙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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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del / 히이익;

@데노니프 / 헉! 부디 즐감해주시길...!

@...(-1)... / 문짝이도 외전으로 한 번 등장시켜야 겠군요! 나름 왕인데 코멘에서는 극딜당하는 로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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