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3 변절 =========================
아크는 자신의 최측근인 릴리를 가신 살인죄로 감옥에 가두었다. 국민들 모두가 릴리의 살인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베디베어 뿐만 아니라 엠파이어와 레드킵 곳곳에서 벌어졌던 의문의 독살 사건이 제1군사인 그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나라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아크는 그날 이후 정사를 멀리하고 왕궁에 처박혀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아크가 이 모양이니 엠파이어의 영지민들 사이에서는 전쟁에서의 패배로 왕이 미쳐버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폐하, 보호트 경이 만나 뵙기를 청하옵나이…….”
“내일 다시 오라고 해.”
다 듣지도 않고 문 밖의 시종에게 그렇게 대꾸한 아크는 독한 와인을 연거푸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창 밖에 보이는 어둠에 잠긴 도시의 모습을 멍한 눈으로 응시했다.
‘……어떻게 잊겠어.’
다른 차원이라서 그런 것일까,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신들이 뭔가 수작이라도 부리는 것일까, 주신전이 시작되고 나서 지구에서의 기억은 갈수록 희미해져갔다. 신경 써서 하루하루 머릿속에 떠올려 되새기지 않으면 불안정한 기억이 휘발되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크에게는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이곳에 와서도 또렷하게 남아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프로게이머 강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상현실 프로게이머. 스타 중의 스타. 뛰어난 실력과 수려한 외모, 담백한 입담까지 3툴. 남부러울 것 없이 완벽해보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권소은. 흔히 이야기하는 유년 시절부터 함께해온 사이로, 강율이 프로데뷔하기 전 어려운 때에 그를 격려해주고 든든히 떠받쳐준 여자였다. 함께 지낸 시간만큼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갈수록 조숙해지고 애틋해졌다.
그러나 강율이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밝게 빛나고 있는 반면, 그녀의 미래는 역으로 점점 어두워져갔다. 강율은 그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암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의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현대였지만, 그녀가 걸린 병은 근래 생겨난 바이러스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치료 기술이 전무했다.
병실에 누워 머리털이 모두 빠지고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강율은 도저히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기복 없이 프로생활 내내 우수한 플레이를 선보이던 강율의 심상치 않은 부진에 게임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가상현실게임은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적인 상태가 더 중요했다. 그녀가 몇 달을 못 넘긴다는 소식에 강율은 정상적인 플레이가 힘들어졌고, 결국 그는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는데까지 이르렀다.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강율. 그러던 어느 날 한 줄기 광명을 붙잡게 되었다. 병원을 바꿔가며 치료에 매달리고 있던 도중 한 미국계의 의사가 새로 개발된 나노 장비의 치료법을 소개해준 것이다. 모든 의사들이 그녀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가로 젓던 와중에 유일하게 ‘가능성’을 시사한 인물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치료의 비용은 어마어마했다.
강율은 짧은 프로생활동안 벌어들인 모든 돈과 가지고 있던 집까지 팔았지만 치료비를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은 고작 삼 개월, 그 이상 기일이 넘어버리면 병이 진전되어서 나노 장비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강율은 결심을 하게 된다.
‘3개월 내에 있는 모든 대회에 닥치는 대로 참전해서 우승 상금을 거머들인다.’
은퇴를 번복하고 한 달 만에 다시 대회 참전을 선언한 게이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삼개월동안, 강율은 게임계에 길이 남을 전설을 써내려가게 된다.
본래 자신의 주특기였던 전략게임 장르뿐만 아니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세계의 모든 가상현실대회에 참전했다. 아침에는 일본으로, 점심에는 싱가폴로, 말도 안 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잠은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쪽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율의 재능은 위기를 맞은 순간에 폭발했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든 완벽하게 룰에 적응하고 지배해나가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략게임 위주였던 그의 게임성이 종합적인 능력까지 갖추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율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어떤 사소한 변수라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승리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녀의 목숨이 걸린 일에 어떤 빈틈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모두들 강율의 지독한 완벽주의에 혀를 내둘렀다.
포텐이 폭발해 적수가 없던 당시 강율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언제나 내부의 적이었다. 10명의 동료 중 9명의 신뢰를 받는다면 그 중 1명은 반드시 강율의 적이 되어 결정적인 상황에 일을 터뜨렸다. 한 두 경기만 그런 게 아니라, 패배하거나 경기력이 좋지 않은 대부분의 게임은 내부 사정이 그 원인이 되었다. 마치 신이 강율의 괴물 같은 재능에 핸디캡이라도 가하는 것처럼, 그러한 그림들의 연속이었다.
당시의 강율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원인’은 있었다. 강율이 제시하는 길은 승리로 향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름길이었으나 그 방법이 언제나 모두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율과 함께 플레이 하게 되었던 주위 동료 게이머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승리에 미친 귀신.
‘왜 그때 네가 도망친 거야? 네가 거기서 희생했으면 팀은 승리할 수 있었어! 네 이기적인 플레이가 모든 걸 망친거야! 쓰레기 같은 자식!’
‘형. 실력이 부족해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팀에 공헌할 수 있어요. 제가 그 방법을 제시해드렸잖습니까. 그런데 왜 따르지 않겠다는 거예요? 형이 우리 팀에서 제일 쓸모가 없다는 걸 안다면 양심적으로라도……!’
‘감독님, 까놓고 말씀드리죠! 왜 경기 마지막에 그녀를 기용해서 적에게 일말의 역전빌미를 준거죠? 그녀의 실력은 최악입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의 기용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 모두가 강율이 직접 내뱉었던 말들이었다.
아군 열 명 중 한명은 강율의 적이 된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나 강율의 가장 강대한 벽이 되어 앞을 가로 막았다.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효율만을 중시한 방식의 부작용이었다.
그럼에도 강율은, 마치 운영진의 밸런스 패치처럼 따라다니는 배신자들의 방해를 모두 이겨내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삼개월동안 28개의 대회에 참여, 22개의 대회에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팀을 우승시키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가상현실 게이머 모두가 강율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율은 게임 상금을 받아 그녀의 나노 치료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 시일은 맞췄습니다. 환자분은 내일 미국으로 갈 겁니다.’
그날 강율은 감격에 겨워 권소은의 품에서 펑펑 울었다.
‘이 모든 게 네 덕분이야! 너만 생각하면서 경기했어!’
‘율아, 나 살 수 있는 거지?’
‘그래. 내가 절대로 죽게 하지 않아.’
그녀는 미국으로 갔다. 가슴 졸이며 기다린 며칠 뒤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고 그녀가 통화로 알려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한국에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응. 앞으로 두 달 동안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대.’
‘내가 미국으로 갈게!’
‘아냐, 아냐, 외부인 통제 시설이라서 와도 못 만나. 연구시설이라 그런가봐. 조금만 더 기다려줘.’
강율은 곧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행복에 겨워 잠이 들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후,
권소은으로부터 모든 연락이 끊겼다.
두 달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권소은의 병은 진작 완화되었었다. 그 병을 치료한 미국계 의사와 권소은은 서로 눈이 맞아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작당하고 강율을 속여 고액의 치료비를 받아내 함께 미국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나노 수술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좌절. 절망. 공허. 그 어떤 단어로도 강율의 심정을 대변할 수 없었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수많은 배신을 딛고 뛰어올라 기적을 이루었지만 마지막에 돌아온 것은 강율의 목표자체였던 그녀의 배신이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배신당해야 할 운명인건가…….’
그때부터 강율, 아니 아크는 배신에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아군의 배신에 집착했고, 의심이 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끄는 아군들을 ‘길들이기’를 통해 충실한 말이 되도록 했다. 이 모든 행위들이 배신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상을 끝낸 아크는 다시 와인 한 병을 꺼내 병나발을 불었다.
“……소은아.”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너무나 한심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이 고장 나 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를 잊기 위해 이 세계에서 많은 여자들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음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줄 수 없었다. 다른 세계에 있어도 잊을 수가 없다.
만약.
만약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병원에 누워있고, 치료비를 가져오라고 요구한다면, 거절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승리에 미친 귀신 프로게이머 강율은 사실,
승리의 공식을 쥐어짜내기 위해 극도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아크의 내면은 사실,
모순되게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호구중의 호구였다.
============================ 작품 후기 ============================
주말내내 글만 썼지만 어림도 없네요 ㅠㅠ 결국 추석휴재는 피할수 없을것 같습니다만, (자살) 대신 추석에 외전이 몇편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연재 재개하면 연속 연참으로 올릴게요 ;ㅅ; 이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저의 최선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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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크리어스 / 무셔 무셔요 ㅠㅠ
Gneji / ㅋㅋㅋㅋ 그러합니다!
책읽는고래 / 언더하임에서 성과없이 퇴각한 것으로 사실상 기울어버린;
알테니아 / 비월 보여드렸잖아요! ;ㅅ; 보여드린지 얼마나 됐다고 또 찾으셩 ㅠㅠ 끄아앙
벌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스코트 베아트리체!
왜이리들다재밌지 / 빠빠이 ㅠㅠ
하찮은세상 / 이 코멘트를 로드가 좋아합니다
루타르 / 후후 누가 될까요!
dlstka / ㄷㄷㄷㄷ
로리콤MK / 이번편 한줄 요약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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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프로게이머 시절 버릇 못버린 ㄷㄷ
@쿨레라군 / 길고 지루하다뇨! 피가되고 살이됩니다. 확실히 이제 아크 진형은... 아직 무인들 쪽은 남아있지만 문인들은 거의 전멸위기네요
@spadel / 히익...! 또 비월이라뇨 ㅠㅠ 주인공을 비월로 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분량은 허허; 그보다 멋진 말이네요. '조조가 명분보다 실리를 챙긴 것은 패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길이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키야...
@...(-1)... / 비월아 작가 좀 살려줭 ㅠㅠ 엉앙; 출현 요구가 하늘에서 빗발친다
@사탕수수158 / 갸아아아악; 정말 무서운 분;;;; 글쓰는 기계가 됐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려하면 채찍질 해주신다닠ㅋㅋㅋㅋ
@최카츄 / 비월팬들이 점령한 이 리코멘판에 꿋꿋이 로즈안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