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53화 (253/296)

00251 혹한의 전투 =========================

“……아, 진짜!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투덜거리는 빨간 머리의 소녀가 성벽 끝에 무릎을 걸치며 올라왔다.

‘찬스!’

쉬쉭! 암살자처럼 은밀하게 다가온 아론다이트가 팔을 검으로 둔갑시켜 휘둘렀다. 그러나 그 표적은 순식간에 백덤블링을 하듯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채 아론다이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놀라운 반응속도였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촤아악. 소녀가 바닥에 미끄러져 착지하고는 말했다.

“저기 침입자다!”

병사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목격한 순간, 산탄처럼 흩뿌려진 빨간 탄환들은 이미 그들의 존재를 포착하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빠바바바박! 물결 같은 타격 이펙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병사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귀찮게.”

소녀가 양 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아론다이트를 돌아보았다. 아론다이트가 긴장한 표정으로  전투자세를 취했다.

“……당신이 바로 유니벨이군요.”

“오, 내 이름을 알아?”

빙긋 웃은 유니벨이 마창을 소환해 휘둘렀다. 까앙! 창과 검이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미안한데, 난 너 같은 찐따 이름은 몰라서.”

“아주 좋아요!”

“…응?”

아론다이트가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저를 더 매도해주세요! 더 거치고 심한 말로!”

“……뭐야, 이 등신은!”

서로 무기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 유니벨이 비어있는 왼 손으로 탄환을 소환해 흩뿌렸다. 퍼버벙! 새빨간 폭발이 아론다이트의 몸을 뒤덮었다.

“꺄아아앙! 아프지만 좋아아!”

“…이 미친년은 대체 어디서 튀어 나온 거야? 카사르 소속 맞아?”

마창을 하늘로 집어던진 유니벨이 양 손으로 탄환을 소환해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기관총을 연상케 하는 물량공세에, 검을 휘둘러 방어하는 아론다이트의 몸은 금세 폭발구름에 휩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론다이트가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는데 갑자기 유니벨의 난사가 멈췄다. 이제 끝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연기를 뚫고 들어온 마창이 날카로운 끝을 들이밀었다.

‘히익!’

퍼어어어어엉!

포격과도 같은 마력의 기둥이 일직선 방향의 모든 것을 박살내며 뻗어나갔다.

유니벨은 가볍게 손을 풀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었겠…… 와악!”

몸을 바짝 낮춰 등 뒤에서 휘둘러진 검을 피한 유니벨이 돌려차기로 기사를 성벽 밖으로 밀어 차버렸다.

“왜 죄다 기습질이야? 기사의 나라라더니 순 양아치들 밖에 없잖아!”

“저 여자가 유니벨 풀하우스다! 잡아라!”

카사르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녀는 주위에 폭발을 일으켜 신경을 분산시키고는 병사들의 다리사이로 슬라이딩하여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아씨, 놓쳤잖아.”

그녀가 마창이 폭발한 지점을 돌아보았지만, 아론다이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니벨이 추격하려고 했지만 카사르군 병사들이 검을 들어 올리며 앞을 가로막았다. 개중에는 기사들도 있었다.

“까분다.”

교차시킨 그녀의 양 손에 탄환들이 소환되었다. 베아트리체보다는 늦긴 했지만 유니벨 또한 여러 전투들을 거치며 역량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다. 현재는 B+의 무력등급으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거치적거리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

‘……정말이지 끝이 없군!’

관문 사령관인 보호트는 몸이 두 개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휘는 지휘대로, 전투는 전투대로 해야 했다. 지금은 성벽 위로 올라오는 어비스병을 베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혹한을 겪었음에도 놈들의 사기는 점점 오르고 있다. 저 바드들의 연주 때문인가?’

보호트의 시선이 지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바드들 쪽으로 향했다. 저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자는 역시 분홍색 머리카락의 로즈안느였다.

어비스 같은 나라에 바드 부대가 있다니, 적의 입장에선 반칙 같은 이야기였다. 내려가서 처치할까도 생각했지만 끊임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려는 어비스군 병사들 통에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병사들이 더 올라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보호트가 양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 바람 장벽(Wind Wall).

화아악! 거센 바람이 정면으로 휘몰아쳐 막 관문을 올라오고 있는 병사들을 통째로 밖으로 밀어버렸다. 그의 몸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스륵.

그때 바람의 벽 중앙에 푸르스름한 실선이 생기더니, 두 쪽으로 갈라지며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검을 내리그은 자세의 여성이 서있었다.

‘……호오, 저 자가 바로 비월인가? 퍼들스퀘어에서 릴리를 패퇴시켰다는.’

자세를 바로 잡은 비월이 보호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사옵니다. 카사르의 보호트 장군이시군요.”

“나도 그대들의 소문은 들은 적이 있소. 동부에 검은 옷을 입고 독특한 검술을 구사하는 자들.”

전장에서의 대화였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사뭇 차분했다.

“……싸울아비라는 이름이었던가. 사라진 집단이라 들었는데 여기서 맞붙게 될 줄은 몰랐소.”

“소녀 또한 최고의 기사와 맞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싸울아비 비월이라 하옵니다.”

“마스터 나이트 보호트라 하오. 어비스에도 예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

그때였다. 쥐고 있던 검이 순간적으로 보호트 자신의 목을 노리고 움직였다. 보호트는 재빨리 마력을 일으켜 몸에 힘을 주었다. 검 끝이 목젖 앞에서 딱 멈췄다.

‘윽, 이게 무슨……?’

“아까워라.”

이번에 비월의 부관으로 새롭게 합류한 비노쉬가 보호트 쪽으로 오른팔을 뻗고 있었다.

“역시 철혈의 기사 때처럼 간단하지 않네요.”

“……비노쉬 님.”

비월이 눈치를 주자 비노쉬가 머쓱하게 웃으며 팔을 내렸다.

“끼어들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는 상대 적장을 노려보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예. 하지만 지금부터 이 분은 소녀가 맡도록 하겠사옵니다.”

저주를 완전히 떨쳐낸 보호트가 사나운 눈빛을 뿜었다.

“어비스에 명예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로구나!”

보호트가 지면을 박차고 달려왔다. 비월은 신중한 얼굴로 검을 기울이며 자세를 잡았다.

카앙! 곧이어 녹색과 청색의 검격이 중앙에서 격돌했다. 원형의 충격파가 주위로 그 기세를 찌르르 퍼뜨렸다.

“스읍!”

“하아!”

강한 힘의 충돌 이후 격렬한 연타전이 펼쳐졌다. 지켜보던 병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의 눈에는 녹광과 청광이 번뜩거리며 정신없이 맞부딪치는 광경만 보였다.

챙! 챙! 챙! 챙! 챙!

“스으읍!”

보호트가 숨을 들이마시며 더욱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검술은 가히 바람과 같다는 말이 걸맞았다. 정면베기 이후 좌올려베기, 반동을 살려 회전하며 우 수평베기. 모든 동작이 연결됐고 짜임새가 있었다.

그에 맞서는 비월은 속도는 다소 느렸지만 절제되고 정교한 수비를 보이고 있었다. 정면으로 오는 녹색 검광을 빗겨치기로 튕겨낸 다음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연결동작을 견제했다. 그리고 상대가 한 걸음 다가올 때 반격하여 상대의 방어 동작을 이끌어내는 노련함도 보였다.

병사들이 보기에, 허공에 두 세 개의 녹색 검광이 그어지면 가로막는 청색 검광은 한 줄기 뿐.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리 없이 막아내고 있었다. 비월의 얼굴 표정도 차분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호각이군요.’

자웅을 겨루는 두 영웅들을 보며 비노쉬는 그렇게 생각했다. 둘 다 실력도 엇비슷하고 신중한 타입이라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장군급들이 일기토에 열중하는 동안 부관이 할 일은 뻔했다. 비노쉬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병사들을 지휘했고 주위 카사르군 병사들을 견제하여 비월을 지켰다.

“보호트 겨어엉!”

“……?”

검을 맞대고 있던 보호트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아론다이트였다. 갑옷이 찢어진 모습이 폭발에 휘말린 듯 했다. 한가히 안부를 물을 틈은 없었기에 일단 지시부터 내렸다.

“비월은 내가 맡을 터이니 올라오는 어비스군을 저지해주게!”

“네엡!”

아론다이트가 달려오자 비노쉬는 눈을 찌푸리며 팔을 뻗었다.

화악!

죄책감을 매개로 자살 충동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정신계 고유능력이 발동되었다. 그런데 달려오는 아론다이트는 눈을 순진하게 깜빡거릴 뿐 다른 반응이 없었다.

‘……망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타입.’

비노쉬가 혀를 차며 단검을 뽑아들었다. 용병단장이긴 했지만 직접전투는 특기가 아니었다. 아론다이트가 검으로 변한 팔을 휘둘러왔다.

깡!

‘큭!’

검격을 받아낸 비노쉬가 식은땀을 흘렸다. 비리비리해 보이는 몸과는 달리 아론다이트의 완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세를 퍼붓던 아론다이트가 순간적으로 검으로 변신해 아래로 내리치는 검격을 가했다.

콰앙!

검끝이 닿은 자리에 땅이 움푹 파였다. 비노쉬는 옆으로 피했지만 아론다이트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허리를 틀었다. 빠악! 그녀의 발이 복부에 꽂혔다.

“커헉!”

폐부에 대못을 때려 박는 듯한 격통이 몰아쳤다. 비노쉬가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아론다이트가 재차 팔을 검으로 둔갑시켜 휘둘렀다.

‘치잇!’

수세에 몰린 비노쉬가 다시 한 번 고유능력을 발동했다. 저주가 적중했음을 뜻하는 회색 마력이 휙 하고 스쳐갔지만 아론다이트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까아앙! 그녀가 힘껏 휘두른 겸격에 비노쉬는 그만 단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상하네.”

비노쉬를 몰아넣으며 아론다이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내가 약해진 거 아니지?”

맨손이 된 비노쉬가 갑자기 팔을 확 뻗었다. 아론다이트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자, 병사 두 명이 동시에 검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이상하네. 내 능력도 약해진 게 아닌데.”

비노쉬가 중얼거렸다.

“피차 상대가 안 맞았나보죠!”

아론다이트가 그렇게 대꾸하며 달려들었다. 상대는 맨손, 승리를 확신한 그녀의 칼날이 비노쉬의 목덜미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태앵!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황갈색 검광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용사 캠밸 등장이오! 후아압!”

막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사자 머리의 캠밸이 전투를 이어받았다. 그는 레이피어를 연속해서 내지르며 아론다이트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마력무구?’

캠밸은 한 손을 뒷짐을 쥔 채 레이피어를 이용한 현란한 찌르기 기술을 사용했다. 검의 사거리와 회피만으로 싸우는 독특한 공격형 검술. 아론다이트는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애를 먹으며 거리를 벌렸다. 캠밸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핫하! 쓸모없는 용병단장 아줌마는 저리 물러나시지!”

“……이 몰락귀족 나부랭이가 잘난 척은!”

이 와중에도 비월의 새로운 부관들은 사이가 나빴다.

‘……좋지 않군.’

비월과 검을 맞대고 있던 보호트는 고민이 많아졌다. 세 명이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자신들과는 달리, 어비스 측의 인재풀은 너무나 넓었다. 부끄럽지만 비월이 이끄는 군세 하나를 막는 것도 벅찬 게 현실이었다.

‘별 수 없지. 일단 여기선 물러난다.’

보호트가 몸을 뒤로 빼며 바람을 일으켰다. 비월이 풍압에 밀려 주춤하는 사이 준비해 두었던 그의 마력이 폭발했다.

- 강화된 바람 장벽(Strengthened Wind Wall).

휘오오오오! 정면으로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다. 모든 어비스군의 병사들과 영웅들이 공격을 멈추고 풍압에 밀려 떨어지지 않도록 뭔가를 붙잡아야 했다. 그 사이 아론다이트 또한 캠밸에게서 벗어나 도망쳤다.

‘좋아, 이대로.’

보호트는 관문에 들어온 전원을 요새에서 떨어뜨릴 기세로 마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허공에서 청색 검광이 수직으로 내달려 바람의 벽을 허물어뜨리고는 그 안의 보호트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젠장, 비월인가!’

보호트가 마력 사용을 중지하고 검을 마주 휘둘렀다.

깡!

손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에 보호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비월의 검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게 소문의 내공이라는 것이군.’

오히려 순간적으로 휘둘러지는 완력에 있어서는 자신이 밀릴 정도였다. 부드러운 방어 자세와 동작들, 그러나 공세로 전환할 때는 강렬함. 검사로서 밸런스가 완벽하게 잡혀있었다.

결코 빠르게 승부를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나,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관문 전체가 위험했다.

“집결하라!”

보호트가 외치자 곳곳에서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동원해 난전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미안하오, 비월. 느긋이 그대를 상대할 여력이 되지 못하니.”

“알고 있사옵니다. 다만.”

비월의 청색 검광이 공세로 전환되어 휘몰아쳤다. 카카캉! 검광이 지나간 후 보호트는 예리한 것이 피부 위를 쓸어내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의 뺨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소녀를 뿌리치고 가시는 건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큭.”

보호트가 긴장한 얼굴로 검을 고쳐 잡았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연참 갑니당!

-------------

로리콤MK / 여기 복채있습니다. (짤랑짤랑) 제 내년 연애운은 어떻게 되나요?

책읽는고래 / 검이지만, 정확히는 검으로 변신하는 사람이라 많이 맞으면 죽는답니다. ;ㅅ;

◎별◎아귀! / 호모나 섹상에 게이뭐야!

T스톤 / S와 M의 만남?;

니알라토텝 / 베아랑 가웨인은 아이와 엄마의 구도인가요? ㄷㄷ

벌레 / 팡팡팡!

spadel / 플랫폼 연재가 끝나면 봉인을 풀어야죠! 다음작품 씬 준비를 위해서라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