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57화 (257/296)

00255 절정 =========================

“아크 더 라운드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폭압과 헛된 죽음을 끝내라!”

“끝내라!”

영지민들이 왕궁 앞으로 몰려와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기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이 시대에선 사실상 반역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크는 창가 앞에 앉아 영지민들이 들고 일어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있는 궁 안까지도 외침이 또렷하게 들렸다.

“…사태가 더 심각해졌어.”

함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던 보호트가 운을 뗐다.

“로드 폴렌티아가 전쟁을 미루고 영지민들의 혼란과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왕실과 백성이 분열된 상태론 전쟁을 치를만한 사기를 이끌어내기 힘들어. 뭔가 손을 써야 해, 아크.”

창밖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아크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봐, 봐. 내 이럴 줄 알았지.”

“……?

아크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며 소리쳤다.

“저 배신자 새끼들. 아무리 미친 듯이 노력하면 뭐해? 이쪽 세계는 뭔가 다를 줄 알았더니 항상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 결말이야! 이 지긋지긋한 굴레!”

“…아크! 언제까지 운명 타령이나 할 생각이냐?”

듣고 있던 보호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왜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야? 전부 네가 저지른 일들 때문이잖아!”

아크가 싸늘한 얼굴로 보호트를 돌아보았다.

“…보호트 군, 난 그저 힘껏 운명에 저항하려 했을 뿐이야. 배신당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왜 저항하면 할수록 점점 더 배신자들이 늘어나는 거지? 왜 항상 마지막은 이런 꼴이냐고!”

마치 역병에 걸린 듯, 증오에 잠식당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친구를 보며 보호트는 답답함을 느꼈다.

가신들을 입맛에 맞게 길들이고, 신분이 불명확한 영지민들은 전부 죽이고, 약혼자를 살해하는 등 그의 행동들은 틀림없이 배신자를 방지하거나 사전에 찾아내기 위함은 맞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만들고, 아크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든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왕의 덕목은 ‘의심’이 아니라 ‘신뢰’라는 것을 왜 저 똑똑한 녀석이 모르는 걸까?

이미 몇 번을 아크에게 설명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저 신세한탄을 할 뿐이었다. 보호트는 이 이상 무슨 말을 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크, 이게 뭔지 기억나?”

보호트가 빈 검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평소에 그가 쓰는 것이 아닌, 낡고 거뭇거뭇한 손때가 가득한 것이었다.

“뭐야? 이건.”

아크는 그 검집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잊었냐? 아크. 옛날에 내 목숨을 구했잖아. 어른들 몰래 숲에 들어갔다가 고블린에게 붙잡혀 죽을 뻔한 나를 네가 도왔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우린 이 검집에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어.”

“그랬던가.”

아크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휙휙 흔들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것들을 다 어떻게 잡아 죽이면 좋을까…….”

“아크.”

“왜 자꾸 불러. 귀찮게.”

“…아직도 배신이 네 운명이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그 놈의 망할 운명!”

아크가 기다렸다는 듯 버럭 소리 질렀다. 보호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동의한다.”

푸욱.

아크의 가슴에서 검이 솟아올랐다.

“……?”

번쩍 뜨인 아크의 두 눈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가 막 목 아래에서 끓어오른 무언가를 인지하였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입 밖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손으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보호트의 팔을 타고 핏물이 강줄기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널 배신할 사람은 나인 것 같다. 아크.”

아크의 동공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보호트 군……. 네가 날 배신…… 했어? 진짜 배신? 정말로 날…… 배신 한거야? 에이, 농담…… 설마…….”

아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보호트으으으으으으!”

번쩍 고개 든 아크의 얼굴은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화륵! 그의 오른손에 화염이 올라오는 순간 보호트가 다른 검을 뽑아 아크의 팔을 도려냈다.

“으, 으아아아아! 팔! 내팔!”

아크가 피를 흘리며 자신의 팔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 가라, 아크. 아니…….”

보호트의 검이 높이 들어 올려졌다.

“내 친구의 탈을 쓴 괴인.”

“아, 아, 안 돼!”

서걱! 검이 휘둘러지며, 아크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시끄럽던 비명이 멎었다.

“…….”

다리에 힘이 풀린 보호트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그의 눈동자에 아크의 머리가 담겼다. 매번 전장에 나가면 흔히 보는 것이지만, 저것은 평생을 함께해온 자신의 친구의 머리였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치한.

“……큽!”

구역질이 치밀었다. 보호트는 참지 못하고 속에 담긴 것들을 게워냈다.

‘나도 참 한심하군.’

잠시 후 소매로 입가를 슥 닦은 그가 문 쪽을 향해 말했다.

“이제 다 끝났네. 들어오게.”

끼이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아론다이트와 왕실기사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목이 사라진 아크의 시체를 보았다.

“……저, 정말로 베셨군요.”

“…보호트 경. 괜찮아요?”

아론다이트가 다가와 보호트의 상태를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업이네. 지금부터는 아크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들은 내가 대신할 걸세.”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런 외침이 들렸다. 곧 기사들을 밀치고 외팔의 퍼시벌이 집무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울음을 터뜨리며 목만 남은 아크 앞에 주저앉았다.

“으아. 아. 아아아. 아아아아!”

절규하는 퍼시벌의 옆으로 보호트가 다가왔다.

“…미안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네.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간 카사르의 미래는 없을 것이었어.”

퍼시벌이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죽였어! 당신이!”

“그래.”

“폐하가! 폐하가 죽어서 이제 난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고!”

“언제까지 타인의 개로 살아갈 생각인가? 이제 자네도 자유일세. 자네의 판단으로…….”

“내 판단은 쓰레기야아아아아아아!”

퍼시벌이 외팔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유감이군.”

보호트가 팔을 뻗자 맹렬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달려들던 퍼시벌이 풍압을 뚫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아크의 물건들이 정신없이 방 안을 날아다니다 벽과 바닥에 부딪쳐 깨졌다.

“전부 죽여 버리겠어어어어!”

격노한 퍼시벌의 검에 방대한 파동의 힘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측면에서 날아온 검 끝이 소년의 목덜미를 베고 지나갔다.

“미안, 퍼시벌.”

어느새 팔을 검으로 변신시킨 아론다이트가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잘 가.”

“……커흑!”

퍼시벌이 피를 쏟으며 무너져 내렸다.

쓰러져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그를 아론다이트가 다시 팔을 휘둘러 깨끗하게 보내주었다.

카사르를 떠받들 미래의 재목이라 불리던 소년의 허무한 최후였다.

“……다시없을 우수한 젊은이였네. 안타깝게 됐군.”

“…네.”

두 사람은 말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 카사르의 '보호트'가 카사르의 플레이어 '아크 더 라운드'님을 처치했습니다.

- 반란 이벤트! 같은 국가의 국민이 플레이어를 사살했으므로, '보호트'에게 멸망 보너스가 이전됩니다.

*

엠파이어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미친왕 아크가 마스터 나이트 보호트의 손에 목이 떨어진 것이다. 왕을 경멸하던 영지민들 또한 막상 반역이 일어나니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왕의 시해라는 말은 그만큼 무게가 달랐다.

그리고 이 상황에 가장 크게 반발한 자들은 엠파이어의 귀족들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아무리 미쳤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국왕을……!”

“궁으로 갑시다!”

귀족들이 사병들을 이끌고 우르르 궁으로 몰려들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왕성 앞에서 아론다이트가 웃는 얼굴로 귀족들을 맞이했다.

“아론다이트 경!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경도 반역에 가담한 것인가!”

그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호트 경이 기다리고 계세요. 따라오세요.”

“허튼 소리! 안에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에에이, 전시 상황인데 마스터 나이트란 사람이 그렇게 상식이 없겠어요? 무기를 가지고 와도 좋아요. 각자의 호위를 대동해도 오케이. 보호트 경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그때 목을 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

귀족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최고의 기사들을 호위로 대동한 채 왕궁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실내는 귀족들과 기사들로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강단위로 보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잘 와주셨소.”

스릉! 스릉! 보호트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사들이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한 귀족이 외쳤다.

“보호트 경! 폐하를 시해하였다는 것이 사실이오?”

“제정신이 아니군! 그대도 기사라면 당장 무기를 버리고 죗값을 치르시오!”

귀족들이 성난 항의를 들으며 보호트는 강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아크는 나라를 책임지는 왕으로서 판단력이 사라진 상태였소.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단 말이오. 다들 아크를 처치해 줘서 마음 한 편으로는 기뻐하고 있지 않소?”

“……포, 폭언을 삼가시오!”

“…아무리 폭정을 일삼았다고는 하나 일국의 왕입니다! 이 죄는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보호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왕이기 이전에 내 소꿉친구의 목숨을 거둔 것이오. 오로지 이 나라를 위해서. 내 각오가 과연 간단한 것이라 생각하시오?”

“……보호트 경! 이번 사태는 각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잘 아시는 군. 물론 이유가 있어서 한 일이오.”

강단 위로 새로운 인물이 걸어왔다. 그를 본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저, 저 자는!”

“……집정관이 아니오? 감옥에 있었을 텐데!”

“다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집정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간 고생을 보여주듯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이었다.

“집정관 당신은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들었소!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그가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오.”

보호트가 대신 답했다.

“반역이라는 죄는 아크가 일방적으로 붙여놓은 것이고, 집정관이 반역자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소. 모두들 알고 계시지 않소?”

귀족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크는 그를 가두어놓은 다른 이유가 있었소.”

“……소인이 말씀드리지요.”

집정관이 걸어 나와 귀족들과 기사들 앞에 당당히 섰다. 그리고는 웃통을 감싼 로브를 벗었다. 갈비뼈가 다 보이는 비쩍 마른 맨몸에 푸르스름한 빛이 일더니 이내 몸에서 문신 같은 것이 나타났다.

“소인은 카사르 국의 신관입니다.”

“……!”

“…신관이라고?”

귀족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가운데, 집정관의 몸에 난 문신이 사라졌다.

“모든 신관들은 계시를 받았다는 증거로 빛의 문신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붙잡은 카르프리와 글레이시온의 신관들도 같은 것이 있을 테니 확인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거짓말! 그대가 정녕 신관이라면 폐하께서 그대를 가둘 이유가 조금도 없을……!”

“있지 않겠습니까?”

집정관이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귀족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악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예, 지금 생각하시는 그 이유입니다.”

집정관이 귀족들에게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처음 카사르의 왕이 된 자는 틀림없이 ‘아크 더 라운드’였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선택을 받아 진정으로 ‘황제’가 될 운명을 갖춘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집정관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보호트 경입니다.”

“……!”

“뭐라고?”

“에덴의 스물두명의 신관중 한 사람으로서 고합니다. 보호트 경이 바로 신들께서 선택하신 진정한 카사르의 왕입니다!”

============================ 작품 후기 ============================

으하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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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세상 / ㅋㅋㅋ 아크는 통제에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죠

책읽는고래 / 뒤통수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씁시다

so4542003 / 빠른 종결... 로드의 재발견

니알라토텝 / 여기서 우리는 NPC을 애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거군요

알테니아 / 컴온 유열!

사탕수수158 / 팡팡 펑펑! 휴재력이 오르고 있다! 머리가 막혀서 에피소드 구상이 안된다!

박성빈 / 해설해 드리자면 '지휘관 창'입니다. 신관들도 사용할 수 있죠. 그리고 집정관은 아크의 허락없이 지휘관 창을 사용했다가 그의 경계를 받게 된거구요.

spadel / 완결후 19외전 써드릴게요! (확답) 다만 독자님들이 씬을 보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ㅠㅠ 그리고 사실은 아크가 여캐만 골라 뽑은게 아니라 제가 여캐를 좋아하기 때문입... (퍽!) 이 아니라 아크 하렘이 컨셉이라 그렇게 했죠.

조이너 / 제대로 이해해주셨군요! 사실 그 서술을 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문장이 지저분해져서 뺐는데 이렇게 알아채신 분이 있으셔서 다행!

복지국가 / ....앞으로 운영진이 열심히 만든 듀토리얼을 꼭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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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데임 / ㅠㅠㅠ 아쉽게도 부활 기능은 없어서

@아쉐니트 / 으아아아... 아마도 힘들듯 한데 ㅠㅠㅠ 군대가시는군요

@쿨레라군 / 사실상 어비스도 지금은 왕권이 강력한 의외왕정식이 맞죠. 나중에 묘사가 나올진 모르겠지만, 초반부에는 클랜들이 참석하는 어비스 의회가 있었고, 후반부에는 대영주들이 참가하는 식으로 스케일이 커져갈거예요. 음음, 그리고 로드의 진형에 비판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캐릭터라. 고려해보겠습니다.

@...(-1)...  / 비밀이라니이이이!

@최카츄 / 넵, 다만 지휘관 창을 다루지는 못해 플레이어 스킬은 봉인되는 격이네요. 그래도 국가고유능력은 그대로 적용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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