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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58화 (258/296)

00256 절정 =========================

“에덴의 스물두명의 신관중 한 사람으로서 고합니다. 보호트 경이 바로 신들께서 선택하신 진정한 카사르의 왕입니다!”

경악과 충격이 귀족들의 머리를 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멍해있던 귀족들도 뒤늦게 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크가 신관을 가두고 카사르에 신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꾸몄던 이유, 바로 그가 적법한 왕이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분명히 말하겠소.”

보호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크같이 젊고 유능한 왕이 한 순간에 미쳐버려 자기 백성들을 학살했소. 대륙을 호령하던 강대국 카사르가 어비스를 이기지 못하고 멸국을 기다리는 운명이 되었소. 어째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시오? 그렇소.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가 어긋나 있었소. 신들의 계시를 받지 못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 그럴 수가!”

에덴의 대륙민들에게 ‘신’은 절대적인 의미였다. 신을 섬기지는 않더라도 그 존재는 믿었으며, 신이 정한 순리를 거스르는 것을 꺼려했다. 대륙민들의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영적 문화는 뿌리 깊게 내려와 있었기에, 신관이 보증한 왕은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정통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 아크가 미친것도 신의 저주를 받은 것인가?”

“……전혀 몰랐소! 그런 숨겨진 배경이 있었다니!”

귀족들이 수긍하듯 수군거렸다.

그리고 귀족들 중에서도 몇몇 머리가 잘 굴러가는 실세들은 ‘신’ 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직시했다. 아크의 죽음, 아크가 모함해 가두었던 신관의 출현, 그리고 그 신관이 보호트를 진짜 왕으로 인정했다.

훌륭하다.

‘신의 뜻.’ 이보다 백성들을 더 잘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이 귀족들에겐 신이 정말로 보호트를 선택했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상황을 안정화시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보호트가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재정관에게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참으로 당혹스러웠소. 하지만 나는 결단을 내렸소. 내가 저주받은 왕을 폐하고 왕좌에 오르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 운명을 피하지 않기로 했소. 가장 아끼는 친구를 베는 한이 있더라도!”

보호트가 좌중을 쭉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카사르는 외세의 침략과 미친왕의 폭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위기에 빠져 있소! 하지만 이제는 신의 가호가 우리에게 따를 것이오. 그 무엇이 두렵겠소? 우리는 카사르요!”

마지막 말이 귀족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렇다. 언제부터 최강대국 카사르가 근본 없는 떠돌이들의 국가인 어비스에게 휘둘리게 되었던가? 사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보호트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아직 늦지 않았소! 나와 함께 해주시오! 모두가 힘을 합쳐 대 카사르의 영광을 되찾아 옵시다!”

처억. 모든 귀족들과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가슴 앞에 두었다.

새로운 왕의 탄생이었다.

*

주둔지인 관문의 방에서 편안히 숙면을 취하고 있던 로드는 지휘관 창의 알림에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비비며 이불을 치웠다.

‘……이 밤중에 뭐야? 어디가 멸망당하기라도 한건가?’

누운 자세로 지휘관 창을 띄워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던 로드의 표정이 금세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아크가 죽었다고?’

로드의 눈동자가 아래로 움직였다.

‘…보호트라면 카사르의 마스터 나이트잖아! 뭐야? 이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로드가 창문을 벌컥 열었다. 어서 이 사실을 확인해 봐야 했다.

'반데가스의 눈을 발동한다.'

어비스 플레이어의 지휘관 창 스킬인 반데가스의 눈은 재사용시간이 길긴 했지만 대륙의 어떤 곳이든 원격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지휘관 창을 작동시키자 한쪽 안구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로드가 다시 눈을 떴다. 아찔함에 몸이 떨렸다.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니깐.’

마치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신의 시야처럼, 엠파이어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였다.

로드는 줌인 기능을 활용해 영지를 샅샅이 살폈다. 한밤중에 영지민들이 거리에 잔뜩 나와 있었다. 혼란에 빠진 영지민들과 왕궁 쪽에 잔뜩 몰려있는 무장한 병력들.

‘정말이구나.’

반데가스의 눈에서 빠져나온 로드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 창을 닫았다. 그리곤 침대에 다시 도로 누웠다.

‘……잘 가라, 아크.’

결국 이 세계에서의 최후도 배신이라니, 얄궂은 운명이었다.

로드는 손바닥을 펼쳐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적의 군주를 미치게 하여 그 부하로 하여금 죽이게 했다. 어떻게 본다면 모략가로서 최상의 성과였지만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때는 동경하던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적으로 만났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크 또한 모략으로 로드를 처형장에 올려 죽음까지 몰아넣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더 약한 쪽이 내려갈 뿐이었다.

‘…부디 그쪽 세계에선 잘 지내길…….’

로드는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한 뒤, 천천히 전략을 고민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변화를 줘야했다.

이제 주저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크가 살아있었다면 좀 더 기다려 보았겠지만, 보호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왕실이 들어선다. 결집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것이 정답이었다.

멸망 보너스가 아직 카사르에 있으니 지휘관 창의 효과와 국가고유능력 등은 여전히 적용되겠지만, 플레이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이제 카사르의 최종 관문, 엠파이어 공략을 시작할 때였다.

*

날이 밝자마자 보호트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자신이 신관의 계시를 받은 진정한 카사르의 왕임을 국민들과 대륙 전체에 공표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왕궁 밖으로 나가 수많은 영지민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했다. 아크에 폭정으로 공포에 떨고 있던 영지민들은 ‘신들의 선택’을 받은 왕이 따로 있었다는 말에 격한 환호를 보냈다. 마스터 나이트인 보호트의 평판 또한 아주 좋은 편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적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으리라.

보호트는 이 연설에서 왕이 된 본인의 정통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카사르의 찬란했던 역사를 힘 있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꼬마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큰 감명을 받아 소리 질렀다. 기사가 아니더라도 영지민들은 카사르의 국민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호트의 연설이 끝나자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팔을 높이 들었다.

“카사르를 위하여!”

“카사르를 위하여!”

암흑기 이후 새로운 발돋움이었다. 전 영지민들이 이전의 카사르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을 다해 싸우기로 맹세했다. 그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보호트는 신관을 다시 집정관 자리에 앉혔으며 차기 마스터 나이트는 아론다이트로 삼았다. 새로운 왕실이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젠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소.”

보호트가 중얼거렸다.

아크의 집무실이었던 곳을 이제는 보호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바닥을 바라보았다. 메이드들이 말끔히 치워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불과 며칠 전만해도 자신이 떨어뜨린 아크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던 곳이었다.

가신들은 왕의 집무실을 옮기자고 했지만 보호트는 계속 이곳을 쓰기로 결정했다. 자책감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폐하의 결단에 소인은 매우 감복하고 있사옵니다.”

맞은편에 앉은 집정관이 말했다.

“나라를 위하는 그 충정, 폐하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후우.”

보호트는 떨쳐내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난 결국 만백성들을 속인 것이오. 신의 선택을 받은 자는 아크였고 이 모든 명분이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거짓이었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신들께서도 보호트경의 결단에 고개를 끄덕여 주실 겁니다.”

보호트가 집정관을 바라보았다.

“그대야 말로 괜찮은 것이오? 신관이 거짓말을 해도.”

“저 또한 가슴이 아프나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입니다. 폐하.”

“……알겠소.”

그때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보호트가 들어오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폐하.”

“자네는 여전하군, 아론다이트 경.”

마스터 나이트가 된 아론다이트는 갑주 위에 멋들어진 망토까지 두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전력을 소개해 드리려고 왔어요.”

“아, 들어오도록 하게.”

화려한 청색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집무실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창설한 파동기사단이에요”

국왕 직속의 파동기사단은 아크가 준비해놓은 비장의 문화시대 특화병종이었다. 이들 전원이 차세대 검술로 손꼽히는 ‘파동검’을 익혔다. 단순 검술보다 마력방출에 더 치중하는 형태의 파동검은 기존 기사들의 체계를 뒤엎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검술의 발전 덕분에 퍼시벌과 같은 천재들만 익힌다는 파동검 사용자를 양성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

파동기사단은 카사르가 막 문화시대에 오른 어비스전 초반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최근의 관문전에는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아크의 직속이라 엠파이어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제는 보호트의 직속이 된 것이다.

‘본래는 퍼시벌의 개인 기사단으로 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파동기사단의 든든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보호트는 기분이 조금 풀렸다. 아론다이트 또한 들뜬 얼굴로 설명했다.

“이들의 합류로 정예병의 질은 우리가 압도적이에요. 관문에서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군. 나도 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보호트는 파동기사단과 몇 마디 더 나눈 후 물러나게 했다.

자리에 보호트와 집정관, 아론다이트 이렇게 세 사람만 남게 되자 보호트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릴리에게는 가 보았나?”

“네, 폐하. 지금 지하감옥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뭐라던가?”

아론다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크가 죽었다는 소식에 완전히 넋을 놓아 버렸어요. 멍해져서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보호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군.”

그녀가 새로운 카사르를 위해 힘을 빌려준다면 든든했을 터였다. 내정에 집정관, 전투에 아론다이트, 그리고 군무에 릴리가 있다면 어느 정도 왕실의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네. 이전 왕실도 처음에는 나와 아크 둘이서 시작했다네. 차근차근 나라를 꾸려가다 보면 퍼시벌 같은 우수한 인재들도 나와 줄 것이야.”

“네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의 방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물론이죠!”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딱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되네. 다른 지방의 귀족들과 글레이시온, 카르프리의 영지민들 또한 우리를 지켜보고 있네. 만약 여기서 어비스의 공격을 막아낸다면 다시 한 번 카사르의 깃발 아래 뭉칠 수 있을 걸세.”

보호트의 시선이 창 너머 관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내린 결정이다. 카사르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저승에서 그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반드시 지켜 내리라.

============================ 작품 후기 ============================

리코멘을 쓰는 이 순간 모기한테 세 방 물렸네요 ㅠㅠ 겨울이 다되어가서 그런지 모기들이 최후의 발악을... 독하다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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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색 / 음!

은아준 / 자나깨나 통수조심

복지국가 / 넵, 신관 인증을 이용한 정당성 확보!

알테니아 / 뭐죠? 왠지 모르게 무색큐브를 소모할 것 같은 저 팀은

최카츄 / ㅋㅋㅋㅋㅋㅋ 로즈안느는 순수합니다! 표리부동하지 않은 긍정적이고 순수한 성격이야만이 저런 대사들이 가능한 겁니다!

spadel / 기승전 비월내놔! 신관의 권력남용의 결과는 어찌 될지

헬크랩 / 헉 ㅋㅋㅋ

banana22 / 카사르 진형의 간접 고구마 체험!

아프게했어 / 보호트가 쭉정이라닛! 주신전 탑안에 드는 고생캐인데 ㅠㅠ 겨룰만한 상대로는 이브가 있죠

Muspel / 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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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 백치미 추가까지; 점점 어비스걸그룹의 완성도가 ㅋㅋㅋ

@니알라토텝 /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ㅋㅋㅋ 왕이 아니라 반란자가 주인공

@쿨레라군 / 아하, 그랬군요. 저도 반드시 넣는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설득력이 있게 들려서 고려보겠다는 거였어요! 작중에서는 보호트의 정통성이 대륙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신관의 인증에 의해 갖춰지게 되네요. 더욱이 아크가 엄청난 폭군이어서 비교가 되기도 하고, 어비스가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안정을 원하는 귀족들과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다만 신관의 인증외에는 정통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네요. 만약 전쟁이 끝나고 카사르가 살아남는다면 왕 보호트에 대한 검증이 시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1)... / 보호트 암살설! 아크도 어찌보면 암살당했으니 보호트도 같은 운명이려나요 ㅠㅠ

@빛과하늘 / 오오옷! 빛의하늘님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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