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2 암흑국가 하데스 =========================
하늘의 천벌과도 같은 새빨간 강선들이 지상으로 쇄도하였다. 그 목표는 언데드 군단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괴기한 지붕들이었다.
콰콰콰콰콰콱!
무수한 광선다발이 지붕을 두들기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한 지점에 광선이 연달아 꽂혀 지붕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곧바로 쥬디스가 새로운 지붕을 만들어 복구시켰다. 유니벨의 폭격은 이능을 깰 수는 있었으나 마력소모 대비 효율이 너무나 나빴다.
“칫! 아직이야!”
마창을 꺼낸 유니벨이 본격적으로 날뛰려는데, 그녀의 마력 신호팔찌가 삑삑 소리를 내며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검은색 신호는 ‘정지’를 뜻했다.
“뭐야? 팬더! 자기가 퍼부으라고 해놓곤 이제 와서……!”
지휘관 창을 띄워놓고 있던 로드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에서 방방 날뛰며 짜증을 내는 유니벨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요?”
치엘로도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저래보여도 말은 잘 듣거든.”
“…아하하.”
유니벨이 뚫지 못하면 어비스의 그 누구도 뚫지 못할 것이다. 결국 광범위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읍.”
짧게 숨을 들이마신 로드가 깍지 낀 팔을 뒤집어 쭉 폈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그러게요.”
“모르페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됐어?”
로드의 물음에 치엘로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을 감고 있어서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 헷갈리는 모르페의 몸에서는 마력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금방이에요.”
“좋아, 단번에 전황을 뒤엎어 보자고.”
로드의 시선이 잠시 정면의 방패병들 쪽으로 향했다. 계획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전면의 방패병들이 무너지지 않을 것. 처음에 조금 위태로웠던 상황을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럼 이제 티아도 준비시킬게.”
“네에.”
로드가 티아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지휘관 창을 조작하는 중이었다.
“……어?”
로드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왜 그래요? 로드 오빠.”
“……쟤들 뭐야? 네가 보내 놓은 거야?”
치엘로의 시선이 로드가 보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오른편 협곡 언덕 쪽에서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보였다.
“아뇨, 그런 적 없는…….”
화아아아악!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녀들이 데스볼트를 아군 방향으로 발사한 것이다. 그것도 방패병들이 잔뜩 밀집해 있는 최전방으로.
“위, 위험해!”
“위에서 뭔가 떨어진다!”
방패병들은 전방의 언데드들을 신경 쓰느라 하늘의 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뒤늦게 커다란 방패를 들어 올리려 해도 앞뒤로 아군이 밀집해 있어 반응이 느렸다.
콰콰콰콰콰쾅!
데스볼트가 방패병들에게 일직선으로 내리 꽂히며 진형이 쑥대밭이 되었다. 이것은 치명타로 작용했다. 굳건했던 방어진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언데드들이 그 빈틈을 비집고 진형 내부로 파고든 것이다. 막힌 수도꼭지가 터지듯, 언데드들이 들이닥쳐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로드가 치엘로를 돌아보았다.
“치엘로! 이게 무슨 짓이야?”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제 부하들이 아니라구요!”
“……뭐라고?”
챙 넓은 모자와 마녀회 복장, 그리고 빗자루. 멀리서 봤을 때 켈타인의 마녀들과 똑같았다.
그때 로드의 머릿속에 다시 퍼뜩 떠오른 생각, 하데스는 망자의 나라라는 특성상 멸망보너스를 획득하더라도 타국의 특화병종을 쓰지 못한다.
그 대신, 타국 특화병종의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켜 쓰는 것이 가능하다.
치엘로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틀림없이 페로네트에서 마녀들의 시신은 태웠을 텐데…….”
“찾았다아.”
뒤통수 너머로 들린 목소리에 로드와 치엘로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
치엘로가 경악한 얼굴로 입을 턱 틀어막았다. 핏기 없이 창백한 푸른 빛 피부의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루, 루나?”
“…뭐라고? 저 녀석이?”
로드는 혼란스러웠다. 루나는 틀림없이 죽었다고 치엘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기 빗자루를 타고 있는 그녀의 정체는…….
“……루, 루나? 살아… 있었어……?”
치엘로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느껴졌다. 로드가 그녀의 어깨를 짚으며 소리쳤다.
“야, 정신 차려! 저건 네가 알던 루나가 아니야!”
“어머머머. 우리 폐하도 여기 있었네.”
그녀가 픽 웃으며 말했다. 루나의 입에서 직접 나온 폐하라는 말에 치엘로의 동공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렇게 안쓰럽게 볼 필요 없어. 난 지금 내 몸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폐하도 똑같이…….”
그 순간 루나의 입이 괴물처럼 세 갈래로 쩍 벌어지며, 선홍색의 잇몸 안에서 뱀과 같은 기다란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튀어나왔다. ‘키에에에엑!’ 그녀의 입에서 괴기하게 변조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치엘로의 표정은 충격과 절망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죽여줄게!”
루나의 오른팔에서 데스볼트가 연달아 쏟아졌다. 생전 그녀의 특기였던 데스볼트의 무영창 연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치엘로! 피해!”
로드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악문 로드는 그녀를 안아 들고 몸을 날렸다. 퍼버버버버버벙! 보랏빛 구체가 떨어져 그들이 있던 지휘부를 폭격했다.
“하늘에 적이다!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쏴! 쏴라!”
궁병대의 화살 공격이 날아왔지만 루나는 현란한 빗자루 비행으로 피해냈다. 동시에 빗자루가 지나가는 방향마다 데스볼트가 생성되어 궁병들에게 날아갔다.
“도망칠 수 없어! 폐하! 호호호!”
폭격에 궁병들이 어수선해진 사이 루나는 빗자루의 속도를 높여 화살의 사정거리에서 빠져나갔다. 그녀의 목표는 로드와 치엘로였다.
한편 두 사람은 지휘부의 언덕 아래로 함께 굴러 떨어졌다. 마침내 몸이 멈추자 로드가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가 지끈거리고 입에서 흙 맛이 났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제정신이 박힌 플레이어라면 에이스급 영웅을 적진 한복판에 보낼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로드가 상대하는 것은 본능에 충실하는 언데드들이었다. 언데드들을 인간의 프레임에 가둬놓고 봤던 것이 실책이었다.
“로드 오빠…….”
아래에서 치엘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주물럭거리고 일어나 주실래요?”
그 말에 로드가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치엘로는 얼굴을 붉히긴 커녕 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로리콤…….”
“이런 경우는 좀 봐주라!”
로드는 평소처럼 그렇게 대꾸하며 슬쩍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정신은 차린 듯 했지만, 치엘로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으리라. 그동안 동고동락해오던 영웅이 끔찍한 언데드로 변해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것이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설 수 있겠어?”
“네.”
로드가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치엘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로드의 팔뚝을 툭 쳤다.
“저질.”
“……내 나름의 충격요법이었어.”
로드도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때 그녀가 몸을 움직여 무너지듯 로드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치엘로?”
로드가 그녀의 몸을 받으며 주춤거렸다.
“……잠시만.”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잠시만 기댈게요.”
“…….”
옷이 물기로 적셔지는 것을 느끼며 로드는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하데스.’
로드는 까득 하고 이를 갈아붙였다. 언데드라는 존재 자체에 혐오감이 생겼다. 죽은 고인을 움직이는 시체로 만들어 같은 편과 싸우도록 하는 족속들. 그것이 하데스라는 나라의 특징이겠지만, 구역질이 났다. 언젠가 반드시 하데스를 몰살시키겠다고 로드는 결심했다.
“끼야하하하하하!”
루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치엘로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치엘로, 그녀가 왔어.”
아쉽지만 다시 잔혹한 현실과 마주할 때가 왔다.
“죽자! 죽어서 다 같이 이승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거야!”
두 사람을 발견한 루나가 팔을 뻗었다. 마치 중기관총의 총구가 불을 뿜는 것처럼, 그녀의 손바닥에서 데스볼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가 두 사람의 몸을 뒤덮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벙!
마음 내킬 때까지 실컷 데스볼트를 쏟아 부은 루나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 속을 응시했다.
“어서 죽어서 나랑 놀자. ……응?”
폭발 연기 속을 바라보던 루나가 인상을 썼다.
로드 또한 통증을 느끼지 못해 눈을 떴다. 제일 처음 본 광경은 두 팔을 펼치고 있는 소녀의 가녀린 등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보랏빛의 방어 마력진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루나는 죽었어. 넌 그냥 껍데기일 뿐이야.”
팔을 내린 치엘로가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제정신이라면 내게 반항하는 일 따윈 있을 수가 없거든.”
“……!”
로드는 치엘로에게 순수하게 감탄했다. 충격에 빠졌지만 좌절하지는 않았고,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역시 그녀는 강하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호호홋! 제법이잖아! 폐하!”
루나가 깔깔 웃었다.
“남을 평가할 때가 아닐 텐데? 언데드.”
치엘로가 다음 흑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물어 뜯긴다?”
치엘로가 공세로 전환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마력진에서 보랏빛의 나비 떼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느린 걸로 날 맞출 수 있을 같아?”
루나는 현란한 비행으로 나비 떼를 피해 다녔다.
그때 루나를 지나쳐 날아간 나비의 몸통이 순식간에 보랏빛 광선으로 변해 뒤쪽으로 쏘아졌다.
‘이중 구조……!’
퍽! 루나의 어깨가 광선에 관통 당했다. 이어서 다른 나비들도 시간차 공격으로 보랏빛 광선으로 변해 루나에게 쏘아졌다. 보랏빛 선들이 정신없이 대기를 가르며 움직였고, 루나는 빗자루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인 회피비행을 펼쳤다. 치명상은 비해냈지만 몇 대를 더 허용하여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이게!”
루나가 데스볼트를 쏘아 반격했고 치엘로는 새로운 방어 마력진을 펼쳐 막아냈다. 두 사람의 흑마법 공방이 치열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며 로드는 잠시 넋을 놓았다.
‘……뭐야, 이 녀석? 전 에이스 급과 호각이라니.’
============================ 작품 후기 ============================
제가 주로 가는 편의점 앞에 고양이가 있는데요, 고양이가 이렇게 영리한 동물인가 싶네요. 손님이 편의점 들어갈때마다 다가와서 초롱초롱한 눈으로(ㅇㅅㅇ) 바라봐요. 그리고 나올때 다시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손님을 보면서 쫓아오죠. 이렇게 한 스무명 정도 반복하면 한 명 정도는 꽁치캔을 사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자기가 귀여운 걸 아는게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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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고래 / 나오기는 하겠죠? ㅇ_ㅇ
아프게했어 / 아뇨, 몇몇 독자분들이 저를 모함하는 것처럼, 치엘로가 로드를 모함하는 장면이지요!
Tntn12 / 그럼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은 아끼고 사랑하고 바르게 클수 있도록 지도해야 마땅합니다.
T스톤 / ....네?
overlord123 / 아닙니다. (단호)
벌레 / 회차가 거듭될수록 빵빵해지는 아이돌들
로리콤MK / 훌륭합니다. 짝짝! 역시 로리콤님!
최카츄 / ㅠㅠ 어비스가 현재1위, 2위로 대두되는게 아르곤이라 승부는 피할 수 없는...
니알라토텝 / 통수 대비가 시급합니다 ㄷㄷ
seacave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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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하늘 / ㄹㄹ가 뭐죠? 전혀 모르겠군요. 릴리? 룰루? 랄라?
@쿨레라군 / 멋진 전술이네요! 하데스의 약점은 지휘관이 없으면 하위 언데드들이 무뇌가 된다는 것이니 여러곳에서 동시 전투를 펼치면 각개격파 하기에 좋은 그림이 나오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