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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65화 (265/296)

00263 암흑국가 하데스 =========================

‘……뭐야, 이 녀석? 전 에이스 급과 호각이라니.’

로드는 몰래 치엘로의 스테이터스를 살펴보았다.

‘어쩐지, 무력 등급이 올랐구나.’

그간 하데스와의 격렬한 전투 때문인지 치엘로의 무력등급이 C+에서 B로 올라있었다. 여왕이지만 전투형 군주로서 선두에서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아끼는 동생이 성장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로드는 어쩐지 입맛이 썼다. 자신도 지략등급과 무력등급이 한 단계 성장하긴 했지만 무력등급은 아직도 C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최약체 포지션이 굳혀지기 전에 돌아가면 훈련에 매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로드였다.

“로드 오빠! 어딜 보시는 거예요? 좀 도와줘요!”

루나와 싸우고 있는 치엘로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그래도 손은 써놨어.”

로드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력 탄환들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루나 쪽으로 들이닥쳤다. 루나는 공격을 중단하고 회피 기동을 해야만 했다.

“…폭격 이후엔 송사리 사냥이야? 정말 제멋대로라니깐!”

유니벨이 투덜거리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손목 스냅으로 탄환을 던졌다 받았다 반복하며 루나를 올려다 보았다.

“화풀이 좀 해야겠다.”

유니벨의 손가락에서 뿌득 하는 소리가 났다.

*

“군사님! 어디 계십니까? 군사님!”

한 바탕 마녀들의 폭격이 쏟아진 뒤의 광경은 참혹했다. 수많은 어비스군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세이지가드들이 주변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쪽이야! 찾았다!”

“군사님!”

세이지가드 한 명이 쓰러진 여병사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머지 세이지가드들도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윽고 그녀가 서서히 눈을 떴다.

“저, 정신이 드십니까?”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니라. 괜찮다.”

몸을 일으킨 여병사가 투구를 벗자 눈부신 금빛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역시 이건 미친 짓입니다! 군사께서 이 위험천만한 곳에 일반병으로 위장해계시다니! 지금이라도 후방으로……!”

티아는 단호하게 고갯짓을 했다.

“본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니라. 이번 전략은 본녀의 이능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군사님……!”

티아는 안심하라는 듯 부하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본녀의 이능 범위가 넓은 것이 아니기에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느니라. 여기 있는 병사들 또한 자신의 역할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어찌 본녀가 물러날 수 있겠느냐?”

“……구, 군사님.”

그녀가 몸을 일으켜 정면을 응시했다. 수비진형은 뚫렸고 병사들은 언데드들의 무자비한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그보다 큰일이군. 주공으로부터 이능 사용의 명령이 내려왔다지만 지금 이 힘을 사용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티아가 결연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세이지가드 전원이 전면으로 나아가 언데드들을 막는 것을 도와라.”

“예? 하지만 저희가 가면 군사님은…….”

“본녀는 신경 쓸 것 없다.”

티아가 강경하게 나오자 세이지 가드들도 어쩔 도리 없이 앞으로 향했다.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최정예 세이지가드들이 위급한 방어진으로 달려갔고, 티아는 단 한 명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병사들을 재치며 최전방까지 나아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티아가 멈춰 섰다. 언데드들의 괴성이 바로 앞에서 들리는 지점이었다.

“……군사님. 정말 하실 건가요? 이건 짚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에요!”

“할 수 밖에 없느니라.”

티아가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바닥에 대었다.

- 의지의 영역.

우우우웅! 그녀의 머리색과도 같은 찬찬한 황금빛이 지면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 범위는 아군과 적군 진형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읊조렸다.

“본녀가 이 땅에 심는 것은 ‘광기’, 영역의 땅을 밟는 모든 만물이여, 규칙에 따르라.”

티아의 의지에 공명하듯 대지의 황금빛이 한 번 더 광채를 발했다. 그녀가 설정한 키워드는 병사들의 공격성을 증폭시키는 ‘광기’였다.

“구어어어어어어어!”

“캬르르륵!”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공격적이었던 언데드들이 더더욱 흉악해져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악!”

다리를 붙잡힌 병사 한 명이 언데드 무리로 끌려갔다. 쩝쩝대는 소리, 피와 살점이 튀는 실감나는 소리에 병사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끔찍한 공포에 등을 돌려 도망치는 자들이 속출했고, 그와 반대로 분노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 빌어먹을 언데드들이!”

“그냥 다 죽여!”

방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몇몇 어비스군 병사들이 흥분해서 덤벼들었다. 로드가 의도했던 방어 진형의 유지가 아니라 난전으로 흘러가 버리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난전은 지능 없는 하데스 언데드들이 가장 강점을 보이는 전투였다.

‘……큭!’

바닥에 손을 대고 있는 티아의 눈앞에서도 언데드들이 선명이 보였다. 병사들이 틀어막는 방패와 방패 사이로 낀 피 뭍은 좀비의 손들이 허공을 마구 휘젓는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군사니임! 이제 고집 그만 부리시고 제발 피하시라니까요!”

유일하게 호위로 남은 세이지가드가 검을 휘두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티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군사인 자신이 계획을 망칠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바로 그때, 티아의 간절한 바람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람을 타고 연주 선율이 들렸다.

“이 소리는……!”

언데드들과 싸우던 병사들도 귓가로 파고드는 음악을 알아차리고 웅성거렸다.

- 사중 연주.

- 스펠뮤직, 비통. 가을의 소리

- 스펠뮤직, 비통. 달밤의 섬

- 스펠뮤직, 비통. 강변풍경

- 스펠뮤직, 비통. 해질 무렵의 정서.

로즈안느의 최고 주특기인 사중연주가 시작됐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랐다. 비창과 열광, 회한 등을 섞어 쓰는 것이 아닌, 사용하는 배경음 모두 구슬픈 선율의 비통이었다.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이 구슬픈 선율은 또렷이 병사들의 귓가에 전해졌다. 병사들은 몸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격한 감정상태가 가라앉고 있었다.

몸을 불사를 기세로 타오르던 분노는 마음 한 구석 벽난로로 몰아넣어 활력의 원천으로 삼았으며, 머리는 차갑게 식어 주변과 전황을 살필 수 있는 냉정을 갖추게 되었다.

“어이, 거기! 뒤로 빠져!”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야! 방어진! 방어진을 구축해!”

병사들이 스스로 뒤로 물러나 내다 버렸던 방패를 다시 주워들었다. 무너졌던 수비 진형이 기적적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힘내 주세요!”

연주중인 선율 사이로 로즈안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은 격한 함성을 내지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가자아아아!”

“로즈양을 지키자!”

거기에 이어서 갑옷 한복판에 로즈안느의 얼굴을 박아 놓은 핑크빛 갑옷의 병사들이 우르르 전방으로 합류했다.

“히얍!”

꼼짝할 수 없는 티아의 앞으로 다가온 스켈레톤을, 통통한 병사 하나가 뛰어 올라 발차기로 두개골을 날려버렸다. 그리곤 착지와 동시에 검을 휘둘러 측면의 구울을 가뿐히 베어 넘겼다. 일개 병사 치고는 대단한 박력이었다. 그가 티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냐는?”

“고, 고맙다.”

티아가 감사를 표했다. 그 통통한 병사는 로즈안느군의 참모이자 로사리움의 단장인 코퍼였다. 전투 중에도 리듬을 타듯 어깨를 으쓱 거리는 그가 손가락 두개를 붙여 이마에 대고 튕기는 포즈를 취했다.

“티아 군사! 깜찍한 로즈양에 비해 내 취향은 아니지만은 도와주겠다는!”

“……?”

그때 티아의 옆에 있던 세이지 가드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군사님이 로즈안느 장군 보다는 열 배는 아름다우시다구욧!”

“취향 존중이라는 말 모르냐는? 그리고 로즈 양이 백 배는 더 깜찍하다는!”

“군사님이 천 배 더……!”

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전장에는 결국 어딘가 미친놈들만 남는다는데 그 말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대단하다. 전황을 한 번에 한해 확실히 바꿀 수 있다는 주공의 말이 사실이었군.’

바드들의 힘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없었던 티아는 조금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번 활약으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버틸 힘을 얻었다.

‘때는 무르익었노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다오, 주공.’

*

어비스 진형의 후방에서는 공중전이 한창이었다.

언데드 마녀들과 켈타인의 마녀들의 승부였다. 데스볼트가 오가고, 투사체를 피하기 위한 현란한 빗자루 무빙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투 결과, 승자는 치엘로의 마녀들 쪽이었다. 언데드 마녀들은 지상으로 격추되었다.

어떻게든 승리하긴 했지만, 끔찍한 모습이 된 이전 동료들과 싸운 뒤라 마녀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마음 약한 몇몇 마녀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뚝! 그만 울어!”

나이 많은 고참 마녀가 버럭 소리쳤다.

“저들은 우리 자매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야! 마음 단단히 먹어!”

“……훌쩍! 그렇지만……! 그치만!”

“어리광 좀 작작 부려! 폐하께서는 루나랑 직접 싸우셨어!”

그제야 마녀들이 울음을 멈추었다.

“저길 봐, 전방의 진형이 뚫리고 있어. 먼저 비행 병력을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 탓이야.”

“쿨쩍…….”

“그러니까 어떻게든 만회해야 해.”

마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언데드 군단 쪽으로 날아갔다.

“사격 개시!”

마녀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데스볼트를 날려댔다. 쥬디스의 지붕에 막히지 않도록 낮게 비행한 상태에서 일직선으로 쏘아 보낸 것이다. 폭격은 유효했지만 마녀들 또한 하데스 측 화살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화살에 맞는 자들, 마력이 고갈되어 빗자루에서 떨어지는 자들이 속출했지만 그녀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마녀들의 분투는 자연스럽게 지상의 병사들을 자극했다.

“히야! 저 아가씨들 하는 거 보고 있냐? 가랑이 사이에 달렸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역겨운 시체 덩어리를 밀어내자!”

“오오오오!”

어비스군 병사들이 분투하며 무너지고 있던 방패병 진형이 서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방패로 언데드들을 밀어냈다.

“킬킬킬! 인간 놈들이 날뛰어봤자지!”

그때 거대한 해골마가 들이닥쳐 발굽으로 방패병들을 깔아뭉갰다.

“…지, 질드레가 왔다!”

인간들이 쓰는 클레이모어보다 훨씬 더 큰 장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둘러대는 질드레의 공격에 방패진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크윽! 어떻게든 버텨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가운데, 로드와 치엘로는 다시 지휘부로 돌아왔다. 꼬마 소녀가 여전히 빗자루에 눈을 감고 캐스팅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모르페는 무사하군.”

“네, 그녀가 우리를 쫓아와서 다행이에요.”

치엘로가 그렇게 말하며 전황을 살폈다.

공중 전투가 가능한 유니벨이 루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거기에 어비스 궁병대에서 날아오는 화살 때문에 루나는 거의 빗자루를 타고 도망만 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전방 부대는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다시 언데드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하네요, 어비스군.’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근성, 그리고 각 장군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개성 넘치는 병사들. 어비스군은 다소 난잡해 보였지만 설명하기 힘든 끈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전투의 키로 꼽혔던 모르페가 눈을 번쩍 떴다.

============================ 작품 후기 ============================

Tntn12 / 히익!

책읽는고래 / 고양이가 이리 영리한 동물일 줄이야 ㄷㄷ

알테니아 / 기승전 비월이다옹 ㅇㅅㅇ!

Gneji / ㅠㅠ 주인공 야캐요..

쿨레라군 / 우선 좋은 코멘트 감사하구요! 그동안 로드는 영악하게 전면전을 잘 피해왔지 않나요? 게노세르크를 상대로는 전면승부를 벌일것처럼 하다가 수도를 털어서 상황변화를 유도하고, 아크전에서도 끝까지 싸우지 않고 언더하임 근처에서 보급만 끊다가 결국 퇴각을 유도해내죠. 다만 마지막에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는 (동맹전쟁, 관문공성) 전쟁씬이 나왔구요. 이번 경우는 하데스가 어비스의 뒤통수를 치고 엠파이어를 꿀꺽 하러오기 때문에 그걸 막는 그림이죠. 물론 최대한 정면승부를 피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병력이 있고, 전력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해볼만 하다는 판단을 내린거죠. 그리고 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망만 치는 군주를 병사들이 좋게 볼리는 없기도 하구요. 로드는 기본적으로 영악하게 전투를 피하려고 노력은 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전투는 아니겠지만...

니알라토텝 / 시체를 부활시킨다는게 정말 상대하는 입장에선 멘붕하게 하는 요소죠 ㅠㅠ

로리콤MK / 정답! 로드는 모략가죠. 히익! 그리고 고양이 폭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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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했어 / ㅋㅋㅋㅋ 고양이 한번 키워본 적 없는 사람인데 ㅠㅠ 어쩔수가 없었...

@사탕수수158 / 꺄아아앙 ㅠㅠㅠ 원래 일일연재라구요!

@빛과하늘 / 그 애교를 볼 수 있으면 기꺼이 호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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