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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66화 (266/296)

00264 암흑국가 하데스 =========================

변화가 시작된 곳은 언데드 진형의 한 가운데, 전쟁이 시작된 후 키리안의 충전검에 의해 토사가 무너져 내렸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키릭!”

“케르르륵!”

토사위에 서 있던 언데드들의 몸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하급 언데드들은 지능이 없기에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쿠구구구구구구!

지반이 푹 꺼지며 발 디딤대가 통째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터널. 심연과도 같은 시커먼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었다.

이것의 정체는 허공이 아닌 지상에 소환된 초대형 워프게이트였다. 일반 워프게이트의 열배의 출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모르페만이 가능한 신기였다.

현재 좁은 협곡에 몰려있는 언데드들은 ‘인간을 죽이라.’는 총사령 질드레의 명령에 따라, 전방의 인간들을 향해 서로 밀고 부딪치며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허리 부근의 언데드들이 갑자기 쑥 사라지며 자리가 비어버리게 되자 뒤쪽의 언데드들이 마구잡이로 앞으로 내달렸고 그대로 워프게이트 안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어어어어어!”

“캬아악!”

인간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흥분한 후방의 언데드들이 속도를 붙이기 시작하자 이 흐름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시체의 폭포와도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카르륵! 저 멍청한 것들이…! 막아!”

“지배력. 사용하라.”

질드레나 루나를 비롯한 상위 언데드들은 격전지인 최전방에 있었다. 중간 중간 배치된 중급 언데드들이 지배력을 사용해 막으려 했지만, 그들의 권한으로 이 거대한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무리였다. 티아가 깔아둔 광기가 이 지역에 적용되어 언데드들의 본능을 부추기고 있었고, 무엇보다 게이트 앞의 언데드들을 멈춰 세워도 뒤쪽의 언데드들이 밀어서 게이트로 빠져버리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워프게이트는 마치 블랙홀처럼 언데드들을 빨아들여갔다.

“콜록!”

한편 지휘부에서는 시전자인 모르페가 검은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로드와 치엘로가 놀라서 다가왔다.

“모르페! 더 이상은 네 몸이 못 버텨!”

치엘로가 소리쳤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게이트를 닫아.”

로드도 말렸다. 그러나 모르페는 고개를 내저으며 캐스팅을 이어나갔다.

“…더, 할 수 있어……!”

그녀의 코와 입, 눈에서까지 검은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강렬했다.

“루나 언니의 복수……!”

“…모르페.”

치엘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기절을 시켜서라도 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무리하게 마력을 운용하고 있는 그녀의 몸을 잘못 건드렸다간 마력쇼크로 즉사할 위험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곁에서 그녀의 무사를 빌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엠파이어에서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카사르 측은 로드가 비월의 4천을 엠파이어에 남겨두었을 때 코웃음을 쳤다. 뒤를 지키기 위함이거나, 혹은 눈속임이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보호트의 지침대로 자신들은 엠파이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의외적인 일이 일어났다.

2만 대군으로도 뚫지 못했던 엠파이어를, 비월이 4천 단독으로 공성을 감행해온 것이었다.

‘또 헛짓거리 하는군.’

‘교활한 어비스 놈들이 하는 짓이야 뻔하지 않겠소? 병사들의 컨디션을 망가뜨리기 위한 술책일 것이오.’

그동안 어비스가 선보였던 기만책이 대체 몇 번이었던가. 카사르군은 대충 공성 시늉만 하다가 끝나겠거니 하며 조금은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비월의 4천 병력은 꽁꽁 감추어둔 송곳니를 드러내듯 초전부터 전력을 다한 총공세로 치고 들어왔다.

비월 본인부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제일 먼저 밧줄과 경공으로 성벽을 뛰어 올라갔다. 그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병사들을 지켰고, 그 과정에서 비월군의 핵심 전력인 비노쉬와 캠밸이 무사히 성벽 위로 합류했다.

이어지는 성벽 위 전투에서도 그들의 기세를 멈출 수 없었다. 비월은 군신이 강림한 듯 검을 휘둘렀고, 비노쉬는 비월을 노리는 궁병들을 정신계 고유능력으로 방해했다. 캠밸은 반대쪽 방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어비스군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예상치 못한 비월군의 총공세에 기사들이 헐레벌떡 외성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성벽위로 올라온 비월군의 수는 크게 불어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그 짧은 틈에……?”

“일이 이 지경이 되는 동안 뭘 했단 말이냐? 막아라!”

엠파이어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소식을 듣고 흥분한 카사르군의 거의 전 병력이 비월군에 함락당하기 직전인 외성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카사르 측의 모든 신경이 외성에 쏠리게 되었을 때, 로드의 노림수가 발동되었다.

이전에 수도 교환 전략으로 엠파이어에 있었을 당시, 로드는 언젠가 다시 엠파이어로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몇 가지 공략 플랜을 세워두었다. 기네비어가 카사르군의 장비를 빼돌린 것도 그 일환이었으며, 또 하나는 동맹국인 켈타인의 워프게이트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둔 방법이었다.

로드는 영지 전역을 꼼꼼히 조사하여 내성에서 가장 인적이 드물고 마력감지석의 범위에 떨어져 있는 포인트를 선정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 그 포인트에서 워프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워프게이트는 완전히 열리기 전에 강한 마력파동을 내뿜으며 특유의 소리가 난다. 그러나 카사르군의 전 병력이 비월군을 막기 위해 외성으로 몰려간 상태였고, 마력감지석의 사각에 있는 위치라 경보가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워프게이트가 방해 없이 열렸다.

“크르륵!”

“케에에에에!”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하데스의 언데드들이었다.

“괴, 괴물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게이트 안에서 징그러운 괴생명체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살아 있는 도시의 주민들을 본 언데드들이 미처 날뛰며 거리 곳곳으로 흩어져 학살극을 시작했다.

이것은 재앙이었다. 엠파이어의 주둔군보다 더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엠파이어 시내에 떨어진 것이다. 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가 생지옥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도시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이 소식은 외성에서 비월군을 막고 있던 보호트에게도 전해졌다.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하데스의 언데드들이!”

“……하데스? 그들은 관문 밖에서 어비스군과 싸우고 있질 않나?”

“아닙니다! 영지 한복판에 나타났습니다!”

자조지종을 들은 보호트는 전령의 보고에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판단을 마친 그는 냉정하게 지시를 내렸다.

“외성을 어비스에게 내줘라! 내성으로! 전 병력 내성으로 돌아간다! 내부의 공격부터 막아야 한다!”

카사르군은 내성으로 돌아가 언데드들을 상대했고 외성을 획득한 비월군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바로 내성공략까지 개시했다. 안에는 언데드, 밖에는 비월군, 카사르군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대로 엠파이어를 함락시켜라!”

“우오오오오!”

자신감에 차오른 비월군 병사들이 사다리를 걸고 씩씩하게 올라갔다. 그때 처음 보는 청색 갑주차림의 기사들이 성벽위에서 검을 하늘로 쳐들었다.

그들이 일제히 허공에 검을 휘두르자, 반달 모양의 파동이 날아가 사다리를 부수며 폭발했다.

“……원거리 공격이다!”

기사들이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족족 멀리 떨어진 비월군의 사다리가 잘리고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저들이 소문의 파동기사단입니다, 장군.”

“……그렇사옵니까.”

비노쉬는 비월을 위해 회의에서 들었던 정보들을 줄줄 읽어 내려갔다.

“일반 기사들은 검기를 방출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지만, 파동기사단은 마력 방출에 특화된 원거리 공격형 기사라고 합니다.”

“……까다롭군요.”

비월은 차분히 그들을 응시했다.

“하오나 수가 그리 많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체력 안배는 생각하지 않고 파동을 쓰는 모습을 보아하니, 무력시위인 듯 하옵니다. 아마 대부분의 파동기사단은 언데드들을 제압하러 갔을 것이옵니다.”

그녀가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들고 빙빙 돌렸다.

“이번에도 소녀가 앞장설 테니 따라와 주시옵기를.”

비월이 성벽으로 걸어 나가자 캠밸이 비노쉬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이보쇼, 아줌마. 요즘 따라 장군이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뭐랄까, 좀 더 터프해졌다고나 할까.”

비노쉬가 캠밸의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괜히 입만 산 바보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뭐요? 대귀족에게 바보라니! 그리고 이유를 알고 있으면 말 좀 해줘! 이봐!”

*

마침내 언데드들을 무수히 빨아들인 워프게이트의 입구가 닫혔다. 모르페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치엘로가 황급히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 괜찮은 거야?”

로드가 물었다.

“흑마법 과다 사용으로 잠들었을 뿐이에요. 다만 이번엔 너무 강한 흑마법을 사용해서 얼마나 잠들어 있을지…….”

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하데스 병력이 확 줄어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곧바로 전령이 다가와서 로드에게 현황을 보고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었지만 하데스군 전체의 30%, 즉 6천 명 정도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하다. 그럼 그 6천이 엠파이어에 떨어졌다는 거지?”

“네, 엠파이어 수비병보다 많은 수에요.”

“…그럼 이제 하데스의 남은 병력은 1만 4천 이하. 서로 줄어든 병력까지 감안해도 머릿수는 우리가 더 많아.”

로드가 주먹을 꾹 쥐었다. 이쪽의 전투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에 더하여, 하데스와 엠파이어를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이번 전략의 골자였다.

“해볼 만해.”

날은 어두워졌고, 협곡의 뒤로 베아트리체가 이끄는 4천의 기병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이제 사령관 교체다. 치엘로.”

“……네?”

그녀가 당황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계획대로 진행하는 건데 왜 그렇게 멍 때리는 얼굴이야?”

“굳이 지휘권을 주실 필요는…….”

“이다음부터는 나보단 네가 더 잘하는 영역이니까.”

로드가 총사령 전용 통신구를 그녀의 손바닥 위에 툭 건넸다.

“너만 괜찮다면, 내 힘을 써서 하데스에게 복수해버려.”

통신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로드와 시선을 맞추며 강아지 같은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속국이라고 더럽게 부려먹으시네요.”

“……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통신구를 받아든 치엘로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빠 올때까지 이번판 다 깨놔라 (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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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lina / 카사르가 가지고 있어요. 대 악마용 무기!

책읽는고래 / ㅠㅠㅠㅠ 벌써 10월말,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힘내시고, 마음도 다잡으시기를!

Tntn12 / 삼국지나 역사서적 같은걸 좋아해서 많이 읽고 있어요. 인물 전쟁 정세 모두 얻을 수 있는 희대의 명작!

니알라토텝 / 넵넵, 기사가 가지고 있죠!

사탕수수158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무슨 언어의 마술사;

알테니아 / 이번편에 비월 활약!

hunz / 모르페는 졸라 짱쎄서 마녀들중에서도 최강이엇다! 그런 모르페가 울부짓었다!

복지국가 / 수능 으으으!

아프게했어 / 아 시.밤꿈 결말 ㅋㅋㅋㅋ

쿨레라군 / 네,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쿨레라군님은 전투를 하지 않고 자기 성에 앉아 흑막으로서 적을 제거하는 그러한 씬을 기준으로 생각하셨다면 로드는 영약한 스타일은 아니게 되겠네요. 보호트가 아크를 제거하긴 했지만 그건 로드가 다 계획했다기 보단 보호트의 결심이 컸으니까요

빛과하늘 / 졸귀졸귀!

...(-1)... / ㅋㅋㅋㅋㅋㅋㅋ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죠

벌레 / 어비스 걸그룹은 대륙 최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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