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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268화 (268/296)

00266 암흑국가 하데스 =========================

몇 시간 전.

“후욱, 후욱.”

바닥에 검을 박은 채 몸을 웅크린 보호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주위에는 언데드들과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보호트 외에 움직이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신음을 토해내며 허물어지듯 벽에 등을 툭 기대었다. 밝아오는 새벽을 바라보며 그는 쓰러진 자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를 떠올렸다.

언데드들과의 전투는 치열했고, 또 참혹했다.

주둔군보다 더 많은 언데드들이 도시 내부에서 터져 나온 대재앙. 이 절망적인 상황에 병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외부의 공격을 막느라 그렇지 않아도 적은 병력을 또 반으로 쪼개 언데드들 상대해야했다. 단순 섬멸이 아니라 언데드들에게 공격받는 영지민들의 보호 및 구조가 우선시 되어야 했으니 전투는 갈수록 힘들어졌다.

언데드들은 끝이 없고 사상자가 늘어나기만 하자 보호트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수천의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백 명도 채 되지 않은 결사대를 이끌고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결사대 전원의 목숨이 희생되었고, 보호트 본인도 중상을 입었지만 끝내 그곳의 우두머리 격인 언데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호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두었던 대 악마 무기 ‘성검’을 휘둘러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언데드들을 멸했다.

성검은 그 한 번의 휘두름으로 찬란했던 빛이 사라지며 흔해 빠진 철검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보호트 또한 힘이 다하고 말았다.

“……끝났군.”

복부 아래에 난 깊은 상처를 보며 보호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 두 쪽 모두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데스를 상대하느라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다. 이제 남은 병력으로는 하데스와 어비스 어느 쪽이든 막아내지 못하리라.

기사의 나라 카사르는 오늘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

막상 끝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분하고 비참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그냥 홀가분했다. 친구를 베고 얻은 왕의 자리는 자신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이제 죽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벅찬 짐으로부터 해방을 앞두고 있었다.

보호트는 멍한 눈으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았다.

“……여기 계셨사옵니까?”

사뿐한 발소리와 함께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골목에서 비월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 또한 격렬한 전투를 치른 듯 온 몸이 피범벅이었다.

“그대인가.”

보호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검에 죽는다면 나쁘지 않은 결말일 것이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언데드들은 완전 소멸되었사옵니다.”

“호, 그대들이 힘써준 것이오?”

“잔당을 처리했을 뿐이옵니다.”

“…고맙군.”

“우리는 폐허가 아닌, 통치할 영지를 원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옵니다.”

비월은 그렇게 말하며 보호트의 주위를 보았다. 무수히 많은 언데드들의 시체들이 쌓여있었고, 그의 옆에는 키가 4미터는 될법한 거인좀비가 죽어 있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을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미안하오.”

보호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못낸 승부를 마저 내고 싶으나, 난 지금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소.”

“신경 쓰지 마시옵기를.”

보호트에게 다가온 그녀는 검을 검집에 집어놓고,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보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소녀의 뜻은 아니었으나 망자들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죄 없는 백성들이 희생되었사옵니다. 그에 대한 사죄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사옵니다.”

“……푸흐흐.”

보호트가 실없는 미소를 흘렸다.

“고개를 드시오. 적장, 아니 비월.”

비월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호트와 눈을 마주했다.

“그대는 참으로 순진하군. 내가 사실은 검을 휘두를 힘이 남아있었더라면 어쩔 뻔 했소?”

“…그러실 분이 아닌 것을 소녀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하하!”

보호트는 유쾌하게 웃다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콜록거렸다. 손바닥에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다.

“우선 치료를…….”

“아니오, 구차하게 끌려가 처형장에서 죽고 싶지 않소. 내 마지막 소망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니 그대에게 일말의 자비심이 있다면, 내 목숨을 거두어가 주시오.”

비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트는 점점 몸에 감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내 말 상대가 되어 줄 수 있겠소?”

“…예. 누가 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번 로드 폴렌티아의 계획, 그대도 찬성했소?”

비월은 고개를 내저었다.

“소녀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사옵니다. 작은 사정이 있었던 지라……”

“그렇군.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비월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대답했다.

“…선한 방식은 아니라 생각하옵니다.”

“그대들의 입장에선 최고의 전략이었을 것이오. 적과 적을 싸우게 하여 괴멸시킨다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소? 우리도 켈타인을 대비하여 엠파이어 내에 마력감시석을 깔아뒀건만 귀신같이 피해갔더군. 하하! 정말 그대의 주군은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오. 허나…….”

보호트의 주먹에 꾹 힘이 들어갔다.

“나는 그가 증오스럽소.”

“…….”

“이곳 엠파이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소. 그러나 로드 폴렌티아는 엠파이어를 점령하기 위해 첫 번째에는 악마의 힘을, 두 번째에는 망자의 힘을 빌렸소. 모두 민간인의 피해를 수반했지. 전쟁은 왕실과 왕실, 군과 군의 싸움이 되어야 하거늘 우리의 전쟁에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소. 설령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오.”

보호트가 차가운 눈으로 비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방법이 효과적이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소. 허나, 어비스가 이대로 인륜을 버리고 효율만을 추구한다면, 제국을 세운 뒤에도 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오.”

비월은 보호트가 한 말을 생각해 보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하오나.”

“……?”

“소녀는 주군과 조국을 한 번 잃으며 크게 느꼈사옵니다. 이 시대는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는 시대이옵니다. 소녀는 주군을 죽인 원수를 평생의 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사오나, 그 사람 또한 난세를 사는 일개 개인일 뿐이었습니다.”

비월이 고개를 들어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과 악이 뒤엉킨 혼란의 시대. 무엇이 악인지 규정할 수 없는 시대. 개인은 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고, 이 시대가 끝난 뒤에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녀가 섬기고 있는 주군께서는 그러한 역할에 가장 가까우신 분, 기꺼이 소녀의 검을 빌려드릴 생각이옵니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사옵니다. 지금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잠시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죽은 선광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치이기에.”

보호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순진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며 나름의 기둥은 세운 것인가.”

“…….”

“개인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긴 힘든 법이지.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하오.”

왜냐하면 나도 친구를 죽였으니까. 보호트는 그 말까지는 내뱉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켰다.

죄책감에 목이 말랐다. 만약 이 시대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아크와 자신은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묻겠소, 비월. 만약 그대가 섬기는 로드 폴렌티아가 이 난세를 끝내겠다는 명목아래 광기에 빠져, 무분별하고 무의미한 학살을 일삼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소?”

사실 이 물음은 보호트 본인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비월이 쓴 미소를 지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소녀는 이미 한 번 구해진 목숨, 소녀의 죽음으로 간청드릴 것이옵니다.”

보호트는 시간이 멈춘 듯 우뚝 있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 콜록거리며 피를 토했다.

“하아, 후욱. 마지막 대화로는 아주 유쾌했소.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군. 이만 갑시다.”

“…예.”

비월이 검을 뽑았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길 말은.”

“소인배가 남길 말은 무슨, 다만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

보호트가 눈을 감은채로 말했다.

“우리 카사르의 국민들을, 잘 부탁하오.”

“그 고매한 뜻, 이 비월이 받들겠나이다.”

보호트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다른 신호는 필요 없었다.

눈을 감으니 죽음이 다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최후의 순간에는 주마등이라도 보일 줄 알았건만, 그 대신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크였다.

‘야, 보호트! 그만 울고 이걸 봐! 이 검집에 걸고 우리의 우정을 맹세하는 거야! 우린 영원히 함께야!’

‘역시 내 맘을 잘 아는 건 보호트 군 뿐이라니까! 뒤처리 땡큐!’

보호트는 뒤늦게 깨달았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결국 양쪽 다 소중한 친구였음을.

‘나도 곧 간다. 멍청아.’

보호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그머니 실눈을 떴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항상 부적으로 차고 다니던 바로 그 낡은 검집이었다.

그리고 검광이 일었다.

“편안히 가시옵기를.”

철컥. 검을 집어넣은 그녀가 두 손바닥을 모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장군! 비월 장군!”

타닥. 멀리서 캠밸과 병사들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적진 한복판인데 혼자서 말도 없이 어디 가셨습니까? 아, 아니 이건……!”

캠밸이 보호트의 시체를 보고 눈을 번쩍 떴다.

“비, 비월 장군이 적 왕의 목을 베었다!”

“오오오오……!”

병사들이 환호하려는데 비월이 한쪽 눈을 뜬 채로 검지를 입술위에 올렸다. 캠밸과 병사들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전쟁은 이미 끝났사옵니다. 그러니 적장의 사망 소식을 떠들썩하게 알려 사기를 올릴 필요도 없사옵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장군?”

“하오나 저 자는 보호…….”

“지금 여러분의 앞에 있는 건 온몸을 바쳐 엠파이어와 영지민들을 구해낸 영웅의 시신일 뿐이옵니다. 부디 예를.”

그녀가 다시 손바닥을 마주하며 고개를 숙였다. 캠밸과 병사들도 쭈뼛쭈뼛 그녀를 따라했다.

“죽어도 좋은 사람이란 없사옵니다.”

============================ 작품 후기 ============================

길고 길었던 카사르편도 끝이 났습니다. 중간보스 격이라 그런지 많은 분량을 소모했네요. 카사르전이지만 중간중간 글레이시온, 카르프리, 하데스 맛보기도 있었고, 이제 주신전도 거의 다 왔습니다! 완결까지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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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그 성검은... 이미 써버렸... ㅠㅠ

이즈니임 / ㅠㅠ 베아는 곧 나올거예용

MoriyaSuwako / 이걸 비월이가 해냅니다!

사탕수수158 / 굥찰아죠씨마저...!

벌레 / 성검이 없으니 달리 고성능 검이라도...

아프게했어 / 저는 로드같은 로리콤 대리충과는 다릅니다!

Tntn12 / 비월버스라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고래 / 정말로 비월이 컸네요 ㅋㅋ

헬크랩 / 이렇게 갑니다 ㅠㅠ

알테니아 / 자! 이젠 만족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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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레라군 / 그걸 극복하는 부분이 로드의 과제로 남겠죠! 우선은 카사르 멸망보너스가 워낙 좋으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점차 국민들도 설득시켜나가야겠죠.

@로리콤MK / 이걸 비월의 딱밤이 해냅니다..?;

@...(-1)... / 공식 마이클 밥 로드 ㅠㅠ

@박성빈 / 마법사의 나라 멸망보너스는 먹었지만, 카사르랑 싸운다고 아직 영토는 차지 못했죠 ㅠㅠ 아마조네스 국가도 원래 버전 50개국짜리에는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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