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76화 (276/296)

00274 <외전> 야식전쟁 =========================

“깜짝 놀랐잖아! 네가 왜 주방에 숨어있어?”

“사실은…….”

로즈안느가 부끄러운 듯 다리를 비비꼬았다.

“사실은 저도 로드 님께 라면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너, 너도?”

“어머, 그럼 유니벨 님도?”

“난 아니야!”

시뻘게진 얼굴의 유니벨이 전력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난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드는 거거든!”

로즈안느가 빤히 유니벨의 얼굴을 보았다.

“그, 그리고…….”

말을 더듬던 유니벨이 민망한 듯 시선을 피했다.

“마, 만들다가 남으면 조, 조금 나눠줄…… 지도…….”

“…….”

“그, 그래도 반드시 준다는 건 아니니까! 남으면 줄 거야 남으면!”

“한 밤중에 주방이 시끄럽구나.”

그녀들이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티아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주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든 가방에는 각종 식재료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머! 군사님은 왜 여기에……?”

“그대들과 비슷한 이유이니라.”

티아가 테이블에 한 귀퉁이에 식재료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야근으로 고생하는 주공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도 군사의 도리이지 않겠느냐?”

유니벨은 마음에 안드는 듯 입술을 삐쭉였다.

“흥, 놀고 있네! 군사의 도리를 다할 거면 대 아르곤전 전술이나……!”

“다들 여기 계셨사옵니까?”

그때 마지막 선수가 주방에 등장했다.

“……비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면 요리를 드시고 싶어 하신다기에, 소녀, 미력한 솜씨나마 폐하를 돕고 싶었사옵니다.”

결국 라면의 정체를 알게 된 네 사람 모두 주방에 모인 꼴이었다.

“주공을 생각하는 가신들이 이렇게 많으니 어비스의 미래는 밝구나!”

티아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치며, 다른 손으로는 불끈 주먹을 쥐어보였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각자의 개성으로 라면을 만들어 주공께 가져다 드리도록 하는 게 어떠한가?”

“…무슨 소리야! 그 녀석이 네 명이 만든 라면을 어떻게 다 먹어?”

“심사를 봐달라고 할 것이니라. 우린 라면이라는 음식의 정체를 모르지만, 네 명 모두가 만들어 가져가면 그중 하나는 라면에 가깝겠지. 그리고 주공이 누가 만든 라면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지도 궁금하지 않느냐?”

“……!”

모두가 한결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필찬스네요!”

“소녀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흐, 흥. 난 내가 먹으려고 한 거지만 너희들한테 질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 유니벨까지 동의하는 것으로 대결은 성립되었다.

“그럼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시작하자꾸나!”

야식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가신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달각달각 조리 준비를 했다. 제일 먼저 조리에 들어간 사람은 티아였다.

‘지난 수십 년간 페어리들을 홀로 키워오며 엄마노릇을 해온 본녀다. 요리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녀는 능숙하게 냄비의 끊는 물에 소금과 올리브유를 넣고 밀가루 면을 삶았다. 그 옆의 달군 팬에는 양파와 월계수 잎을 넣고 볶다가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으깬 토마토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주방에 확 퍼졌다.

“…어머나! 토마토 파스타로군요!”

좋은 냄새를 맡은 로즈안느가 기웃거리며 다가왔다. 티아는 으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면 요리라면 파스타말고 무엇이겠느냐? 라면은 바로 파스타의 한 종류를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군사님. 이건 뭐죠?”

로즈안느가 비닐에 든 고깃덩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돼지고기인가요? 아님 던전 쥐고기?”

“후후, 그건 본녀가 힘들게 구한 비장의 무기이니라. 시식 때 공개하도록 하마.”

“흥, 건방 떨지 마! 넌 내 비장의 라면으로 쳐부숴줄 테니까!”

유니벨도 조리에 들어갔다. 그녀 또한 끓는 물에 면을 삶아, 이제 막 채로 면을 건져내어 접시에 담고 있었다.

“아, 유니벨 님도 파스타인가요?”

“그런 촌스러운 요리 아니거든!”

그녀가 부스럭거리며 가져온 재료를 꺼냈다.

“……으, 응? 잠깐만요! 설마 그걸 넣을 면에 올리시는 건 아니…… 꺄아아악!”

로즈안느가 뺨을 감싸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유니벨이 걸쭉하게 녹은 초콜릿을 그대로 면 위에 때려 부은 것이다.

“라면은 면요리라며? 그리고 음식은 달콤한 게 최고지!”

초콜릿 중탕을 면에 끼얹어 맨손으로 버무리던 유니벨이 이제는 별모양 쿠키를 위에 올려 데코레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하하…! 수, 수고하세요.”

황급히 도망친 로즈안느가 이번엔 비월의 옆에 섰다.

“어머, 비월 님. 준비가 철저하시네요!”

비월의 주위에는 로즈안느가 처음 보는 다양한 동방의 식재료들로 가득했다. 비월도 끓는 물에 면을 불리는 것까지는 동일했다. 다만 한쪽 커다란 용기에 불린 콩을 가득 담고 우유를 부었다. 거기에 잣, 호두, 통깨까지 넣었다.

“자고로 요리는 손맛이라 하였사옵니다.”

비월이 비장한 표정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헉, 마력이 느껴져?’

무슨 요리를 만들려고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로즈안느가 놀라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하앗!”

기합과 함께 비월이 콩과 각종 재료들을 손바닥으로 꾸욱 눌렀다. 빠드득! 빠드득! 견과류들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힘으로 재료들을 으깨고 있어!’

로즈안느가 슬쩍 용기 안을 바라보니 재료들이 가루처럼 빻아져 있었다. 비월은 우유를 좀 더 넣고 다시 맨 손으로 누르기를 반복했다. 뽀드득 뽀드득 아직 건더기 형태의 콩들이 곱게 갈려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아, 이게 동방의 면요리인가요? 어떤 음식인지 짐작도 안가요!”

“야! 아이돌! 넌 뭘 만들기에 이리 태평해?”

유니벨이 정신 산만 했는지 쏘아 붙었다. 로즈안느가 ‘아 참!’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전 사실 면만 삶으면 90%는 완성이라.”

“……뭐?”

로즈안느가 삶은 면을 걸러내어 접시에 담았다.

“류트!”

와장창! 로즈안느의 악기가 주방 창문을 깨고 날아와 그녀의 손에 착 잡혔다.

“…야, 잠깐만! 요리 하는데 악기는 왜 소환한거야?”

“헤헤, 요리에 가장 중요한 건 맛도, 냄새도, 멋도 아니라구요. 바로……!”

디링링! 그녀가 류트줄을 튕겼다.

“소리!”

“뭔 개소리야아아!”

로즈안느가 고유능력을 발동시킨 채로 연주를 시작했다. 류트에서 튀어 나온 음표들이 접시에 담긴 생면으로 날아갔다.

“음악의 신이시여! 부디 깃들어 주세요! 저의 요리에!”

“대체 무슨 요린지 상상도 안 된다!”

메이드들이 사라지고 가신들이 자리한 주방은 총체적난국이었다.

*

오늘도 야근이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야근일 것이다.

로드는 슬라임처럼 흐물렁거리며 책상에 엎드렸다. 몇 십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앉아있으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남은 일이 줄어들면 작은 성취감이라도 가질 수 있을 텐데, 높다란 서류의 산은 도통 끝이 보이지 않았다.

“으으으, 영토 확장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냥 본토 내에서 우리들끼리 알콩달콩 지낼걸…….”

“또 맛탱이가 가셨네요.”

소파에 앉은 치엘로가 키득거렸다. 로드가 엎드린 자세로 그녀를 찌릿 노려보았다.

“…넌 또 사람 신경 긁으러 왔냐?”

“아닌데요, 응원하려고 왔죠! 우리 베아 언니랑요.”

치엘로가 옆 자리에 다소곳이 앉은 베아트리체를 보며 말했다.

“그럼 베아 언니! 로드 오빠를 위해 응원 부탁해요.”

“…응원?”

“네에! 제가 아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드렸잖아요. 기억나죠?”

베아트리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드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둘이서 계속 쫑알거리더니 저런 걸 가르치고 있었군. 근데 왜 이런 걸로 내가 긴장이 다 되냐.’

베아트리체가 앙증맞은 두 주먹을 고양이처럼 양 뺨에 붙였다.

“주, 주인니임. 히, 힘내세요오오.”

‘쿨럭!’

이건 미쳤다. 견딜 수가 없다. 로드는 심장 충격기의 효과를 받은 환자처럼 펄떡거리며 책상에 엎어졌다. 이 살인적인 귀여움이 정녕 이 세상의 것이란 말인가!

“꺄아아! 베아 언니 너무 좋아요!”

치엘로도 격한 비명을 지르며 베아트리체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야, 치엘로! 자꾸 우리 베아 못살게 굴지 마!”

“로드 오빠야 말로 헤벌레 한 얼굴로 그런 소리 하지 마시죠!”

음, 그래. 이 동작을 가르친 건 잘했다. 인정한다. 나중에 베아트리체와 단둘이서 있을 때 써먹어야겠다고 로드는 생각했다.

베아트리체의 애교를 보니 잠은 달아났지만 동시에 일할 집중력도 깨졌다. 검토하던 서류를 옆으로 치운 로드가 기지개를 켰다.

“잠깐만 쉬어야겠다.”

“좋은 생각이에요! 밖에 놀러 갈래요?”

“…내가 이브한테 맞아죽는 꼴 보고 싶어?”

“그치만 배고프단 말이에요! 그쵸? 베아 언니.”

베아트리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안 돼, 베아야. 아까도 간식 먹었잖아. 뚱뚱한 암살자가 되고 싶어?”

로드가 식단관리를 위해 짐짓 엄한 목소리를 꾸며내자, 베아트리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로드 오빠!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욧!”

“…그런 적 없어. 그리고 베아는 내거거든!”

베아트리체를 사이에 두고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꼬르륵 하는 로드의 뱃속 소리에 싸움을 멈췄다.

“아, 안되겠어. 당직 메이드를 불러서 뭐라도 만들어 달라 해야겠어.”

“야호! 됐다!”

“…되긴 뭘 돼. 밤도 늦었는데 제발 집에나 좀 가라.”

“헤헤, 오늘 여기서 자고 갈건데요?”

“……젠장.”

로드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짜안!”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가신들이 서빙 카트를 몰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유니벨, 티아, 로즈안느, 비월까지 있었다.

“……잉?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주공이 라면을 먹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노라.”

티아가 대표로 말했다.

“우리 모두 라면이 뭔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았노라. 주공! 부디 우리의 라면을 맛보아다오!”

“…티, 티아! 너희들…!”

로드는 벅찬 감격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가신들을 보라! 라면 먹고 싶어 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라면? 진짜 라면이에요? 꺄아아!”

치엘로는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고 베아트리체는 음식이 왔다니 마냥 좋아서 침을 똑똑 떨어뜨렸다.

“마침 두 사람도 있으니 잘됐군. 함께 맛을 보아다오.”

“정말요? 그래도 돼요? 좋아라!”

“대신 누가 먹던 간에 확실히 정해!”

유니벨이 앞으로 나와 척 손가락을 뻗었다.

“누구의 라면이 가장 맛있는지!”

============================ 작품 후기 ============================

일단 네 라면은 맛없을것 같...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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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n12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wnsdlfh / (야식 시켜 드세요! 야식 시켜 드세요!)

아프게했어 / 가장 헌신적인 가신 ㅠㅠ

에프론 / 어멋! 너무 선정적이군요!

T스톤 / ㅋㅋㅋㅋ 한 명은 국수를 만들었군요!

니알라토텝 / ㅠㅠㅠ 라면만 드시지 말고 좋은 것도 챙겨드시길!

박성빈 / 완전 박탈은 아닙니다 ㅎㅎ; 개성을 크게 살려 발달한다는 것 뿐이에요.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는 대마법도 우주에 대한 이론과 증명이 없다면 시전할 수 없는것처럼요(그냥 갑자기 막 운석을 소환해 떨구는 게 아니니) 그리고 이와중에 멋지신말; + 이 여자들이 식문화 발전까지 갈 수준은 아니... 읍읍

로리콤MK / 저, 정답...! + 두분다 괜찮으시면 저도 궁금하네요! 제 작품에 대한 논의니까 알고 싶은...!

벌레 / 아이돌 별로 거느리고 있는 팬층이 세력을 형성하다니; 실로 아이돌 삼국지 ㄷㄷ

최카츄 / 건강은 좋습니다! 독한 감기이후 외투 두껍게 입고 다녀요 ㅠㅠ 오늘도 로즈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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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eji / ㅋㅋㅋㅋ 깔끔한 한줄요약

@쿨레라군 / 천만해요! 쿨레라군님이 이렇게 장문의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저는 그저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MK님과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저도 쿨레레라군님의 의견에 많은 감명을 받고 많은 아이디어와 자극을 받습니다. 어비스가 본래의 힘 외에 종합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르곤과의 대립 구도. 그리고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고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베틀린의 바드 등등)다양한 국가들의 힘에 대해 작중에 이런식으로 나마 언급하고 싶었던 제 욕심이었네요. 다만 그 때문에 어비스의 색채가 조금 연해졌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제가 더 노력할거고, 언제나 코멘트와 작품에 대한 애정 감사합니다.

@...(-1)... / 다른건 다 좋은데 + 잔혹한 폭력파가 무섭군요... 무서우신분.. 그리고 스타 준프로 ㄷㄷ 다재다능하시네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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