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77화 (277/296)

00275 <외전> 야식전쟁 =========================

첫 번째 심사를 받을 사람은 티아였다.

“자, 본녀가 만든 라면이니라.”

로드, 치엘로, 베아트리체가 둘러앉은 테이블 위로, 티아가 우아하게 한 손으로 받쳐 든 접시를 놓았다.

“오오, 이건…!”

“토마토소스 파스타네요?”

그런 코멘트를 던진 로드와 치엘로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런데 라면이라기보다는…….”

“아하하, 조금 다르네요.”

“아, 그대들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가? 허나 맛은 보장하니 먹어 보거라.”

티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치엘로가 슥 로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로드 오빠가 제일 어른이니까 먼저…….”

“…벌써 네 포크를 접시위에 올려뒀으면서 무슨…… 먹어봐.”

“헤헤, 그럴까요?”

치엘로가 기다렸다는 듯 포크로 파스타를 둘둘 말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살짝 머리카락을 받치며 우아하게 한 입 떠먹었다.

“어때?”

로드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치엘로가 찌르르 몸을 떨며 콧소리를 냈다.

“흐으응! 너무 맛있어요! 예전에 밖에서 사먹던 그 맛이에요!”

티아는 맛있는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선전에 나머지 가신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로드도 참지 못하고 포크를 들었다.

“우리도 먹어보자. 베아야.”

“네! 주인님!”

로드도 포크로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 맛이 일품이었다. 동시에 면 말고도 씹히는 뭔가도 있었다.

“고기가 들어있네. 미스볼 파스타로군?”

“그렇다, 주공.”

“무슨 고기예요?”

치엘로의 물음에 티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홉고블린의 고환이니라.”

“우웨에에엑!”

막 한입 더 떠먹고 있던 로드가 격한 발작을 일으키며 내용물을 바닥에 뿜었다. 치엘로도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포크를 내렸다.

“홉고블린의 고환은 조금 질기지만 쫄깃쫄깃한 식감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특등부위이니라. 응? 다들 왜 그러느냐?”

로드는 예전에 아로게쓰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우람한 덩치의 홉고블을 떠올렸다.

…그 덩치에 이렇게 작다니? 순간 저 고깃덩이가 가랑이 사이에 달려있는 홉고블린의 모습을 상상해 버리자 로드는 다시 구역질이 치밀었다.

두 사람은 식사 불가를 선언했지만, 유일하게 베아트리체만은 허겁지겁 파스타를 먹어치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녀가 뺨을 연신 오물거리며 물었다.

“냠냠. 쭈인늼! 꼬환이 머예요?”

“……넌 그냥 모르는 게 낫겠다.”

티아의 차례가 끝나고, 다음은 유니벨이었다. 그녀가 접시를 들고 다가오며 티아를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날렸다.

“바보야, 음식에 고환이 뭐야? 고환이! 맛에 집착해서 먹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이상한 식재료를 쓴 게 너의 패인이야!”

“……큭.”

그녀의 일침에 티아가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침음을 삼켰다.

“보기도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지! 받아라! 내 라면을!”

요란한 오프닝으로 시작한 유니벨의 접시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름하야 초코초코라면!”

“…….”

“…….”

로드는 눈을 의심했다. 일단 면 요리긴 한데, 적갈색의 질척한 뭔가에 면이 코팅되어 있었다.

이건 틀림없는 초콜릿이었다. 초코가 덧입힌 면 위로는 쿠키가 통째로 올라가 있었고, 그 외에도 아몬드, 블루베리, 알사탕 등 주방에서 구할 수 있는 각종 간식들을 그냥 막 때려 박은 느낌이었다.

“로드 오빠.”

“응.”

“이건 마치…….”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마.”

초콜릿 반죽의 걸쭉함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이 요리는 변에다가 소화 덜된 여러 내용물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유니벨은 보기도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고 자기 입으로 말 했지만, 이건 시각적으로도 최악의 작품이었다.

“……유니벨.”

“응! 어때? 어때?”

그녀가 기대어린 초롱초롱한 눈으로 로드를 보았다.

“밖에 나가 손들고 있어.”

“아, 왜!”

그녀가 꽥 소리 질렀다.

“…음식으로 장난을 치다니, 네가 그러고도 어비스 출신이냐! 굶주렸던 옛날 시절을 다 잊은 거야?”

“장난 친 거 아니거든! 진지하게 만들었거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팔짱을 꼈다.

“그, 그리고 먹어보고 말해! 맛은 확실하니까!”

“……끙.”

처음 티아의 파스타를 탐닉할 때와는 달리 로드와 치엘로는 다소 거리낌 있는 동작으로 포크를 끼적였다. 솔직히 말해 정말 먹기 싫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 베아트리체는 입가에 초코를 가득 묻히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맛있어요!”

“그치? 그치? 봐봐!”

‘너희 입맛엔 그렇겠지.’

로드는 한숨을 쉬며 초코초코 라면을 시식했다.

“……상상했던 맛 그대로네요.”

“그러게.”

한 마디로 그냥 초코맛 나는 면을 먹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과자로 추정되는 건더기도 씹혔다. 치엘로가 깨작깨작 면을 먹으며 울상을 지었다.

“흐아앙, 라면이라길래 기대했더니 이게 뭐야! 로드 오빠. 저 이제 집에 갈래요!”

“안 돼.”

로드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요! 로드 오빠를 위한 부하들의 라면이잖아요!”

“한 번 테이블에 앉은 이상 모든 라면을 시식하기 전까진 우린 공동 운명체다.”

“너무해!”

한마디로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라는 마인드였다.

다음은 로즈안느의 차례였다.

“드셔주세요! 제 혼신의 역작을!”

로즈안느가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요리는 겉모습만 보기엔 무척 심플했다. 그냥 흰 접시에 생면이 담겨있고, 월계수 잎 등으로 접시를 장식한 모습이었다.

“…이건 또 무슨 라면인데?”

로드가 수상쩍은 눈길로 로즈안느를 보며 물었다.

“요리의 이름은 소프라노 드라마티코 라면이라고 지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더 모르겠다.”

“일단 먹어보죠. 오빠. 적어도 초코초코 라면 보단 낫겠죠.”

뒤에서 ‘초코초코 라면이 뭐 어때서!’하는 유니벨의 항의가 들렸지만, 로드는 깔끔히 무시하며 포크로 면을 떴다. 그때. 디링링! 하는 음악이 들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로즈언니?”

두 사람이 로즈안느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류트를 들고 있지 않았다. 두 손을 배꼽아래에 포개어 모은 채 싱긋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서 난 소리……. 헉!”

로드가 면을 움직이자 다시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면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저는 뮤지션답게 귀를 즐겁게 하는 요리를 만들었어요! 제 이능으로 파스타 면에 음악을 입힌 거랍니다!”

그러고 보니 면발에 약간이지만 푸르스름한 마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면이 움직일 때마다 이 얇은 마력막이 진동하며 소리를 냈다.

“……뭔가 아이디어 자체는 좋아 보이는데 말이지.”

로드가 포크로 면을 감자, 면이 마구 얽히고 부딪치면서 여러 개의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와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로드가 면을 펴서 자신의 입까지 올리는 그 순간까지 소음이 끊임없이 귓가를 쿡쿡 찔렀다.

“으아악! 이게 뭐야! 시끄러워서 먹을 수가 없잖아!”

로드가 포크를 내리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옆에서 치엘로와 베아트리체도 요리를 끄적거리자 소름끼치는 괴음들이 뒤섞여 울려 퍼졌다.

“……아하하. 이, 이게 아닌데.”

로즈안느가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모두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 빨리 내려놔! 시끄러워 죽겠어!”

유니벨이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결국 로즈안느의 시식은 먹기도 전에 좌절되었다.

“하아아…….”

접시가 치워지는 사이 로드는 테이블에 엎드렸다. 라면을 만들어 주겠다는 가신들의 마음은 고맙고 기특했지만 오히려 라면 같지도 않은 라면을 먹느라 피로만 쌓이고 있었다. 치엘로는 옆에서 계속 집에 보내달라며 보챘다.

“이번엔 소녀의 차례이옵니다.”

‘…이제 마지막 한명이구나.’

로드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비스의 가신들은 요리를 못하는 것이 일종의 콘셉트인 듯한데, 비월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요리는 서툰 귀족 아가씨’라는 클리셰가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라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사오나, 소녀의 미약한 솜씨로 할 수 있는 면 요리는 이것뿐이기에…….”

“…응?”

“콩국수라 하옵니다.”

처음으로 국물이 있는 음식이었다. 정갈한 검은 국그릇에는 뽀얀 자태의 하얀 국물이, 면 위에는 오이채와 방울토마토가 소박하게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다. 단출하지만 제법 군침 도는 비주얼이었다.

“콩국수라면 내가 아는 그 콩국수야?”

“……라면은 아니지만 맛있어 보이네요!”

“배고파요!”

세 사람이 자발적으로 식기를 들었다. 비월이 테이블 옆으로 다가와 공손한 자세로 설명을 시작했다.

“콩을 갈아 만든 콩국에 국수를 삶아 말았사옵니다. 콩국에는 잣, 호두, 통깨가 들어갔고 우유도 조금 첨가했사옵니다. 소녀는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간을 싱겁게 하였사온데 입맛에 맞으실지…….”

“허억, 마, 맛있어!”

한입 먹어본 로드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국물이 너무 고소하면서 담백해요! 콩 비린내도 없이 깔끔한 뒷맛! 계속 입으로 들어가요!”

“맛있어요!”

치엘로와 베아트리체도 한마디 씩 했다.

세 사람은 허겁지겁 자기 몫의 콩국수를 해치웠다. 그리고는 여운을 남기듯 눈을 감으며 허리를 폈다. 건강한 맛에 정신이 다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입에는 맞으셨는지…….”

“최고였어, 비월!”

로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정도면 만장일치로 콩국수가 최고네요. 베아 언니는 어때요?”

“전 초코초코가 제일 맛있었어요!”

“……윽.”

그렇게 콩국수 2표, 초코초코라면 1표, 홉고블린 고환 파스타와 소프라노 드라마티코 라면은 한 표도 얻지 못하고 아웃이었다.

“승자는 비월이다!”

로드가 선언했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박수를 치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아무튼 모두들 고마웠어. 즐거운 야식이었다.”

“대접 감사드려요! 언니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이런저런 덕담이 오가고 있는데 유니벨이 슬쩍 미소를 띠우며 티아를 보았다.

“흥, 어때? 그래도 내가 이겼지?”

“……보, 본녀는 결과를 믿을 수가 없…… 크윽.”

티아는 구석에서 벽에 손을 짚고 서있었다. 설마 한 표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곧이어 메이드들이 들어와 요리들을 치우고 후식을 가져왔다. 가신들은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뒤풀이 겸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진짜 라면을 먹지 못한 건 조금 아쉽네요.”

치엘로가 말했다.

“야, 팬더! 설명해봐! 대체 그 라면이란 게 뭔데?”

“기름에 튀겨서 말린 밀가루 면을 매운 국물에 불려 먹는 음식이야.”

“뭐야, 달콤한 게 아니라 매콤한 거였어?”

“……초콜릿 범벅의 달콤한 면 요리는 우주를 통틀어 어디에도 없을 거다, 아마.”

그때 의기소침했던 티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매운 국물에 밀가루면? 어렵지 않군! 내일 본녀가 명예회복에 도전하겠노라!”

그 모습을 로드가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티아. 홉고블린 고환은 뺄 거죠?”

“무슨 소리를 하느냐? 고환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이니라, 주공.”

“아니! 왜 그렇게 고환에 집착하십니까!”

“팬더 이 미친놈아! 아까부터 계속 고환! 고환! 그놈의 고환 타령 좀 그만해! 부끄럽게!”

“유니! 고환이 뭐야?”

“…어어? 아, 앗! 그, 그러니까 그게… 남자의…….”

“거기까지, 검열 대상이다.”

“넌 또 뭔 소리야!”

- end.

============================ 작품 후기 ============================

T스톤 / 초코고기 ㅋㅋㅋㅋ 친구분 혹시 베아 입맛...?!

Schmerzs / 그렇죠. 점점 세력을 흡수하면서 대륙의 다양한 특성들이 갖춰지고 있네요.

니알라토텝 / 후덜덜

은아준 / ㅋㅋㅋㅋ 정답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콩국수로 조금 힐링했네요

Nearthals / 얶ㅋㅋ 코멘감사합니다.

dlstka / 총체적난국!

로리콤MK / 메모 잘 봤습니다! 답변 보내드렸구요, 그리고 로즈안느의 요리는 맛은 그냥 생면입니다(...) 단지 소리나는 생면일 뿐이죠 ㅠㅠ

아프게했어 / 라멘 졸맛이죠!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비월은 몸에좋고 깔끔한 콩국수를 만드는 걸로!

라이듄 / 잘가렴 로드!

Tntn12 / 네...? 누가 죽는다구요? 히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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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 상인팬들 ㅋㅋㅋ 가신돌 삼국지 아이디어 괜찮은데요?

@BLUE물고기 / ㅋㅋㅋㅋ 그런 포스팅이 있었나요? 초코라면은 있다면 정말 지옥이겠네요.

@알테니아 / 소재가 바닥나더라도 기승전 비월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알테님(...)

@Karla / 저도 정리하고 싶은데 설정 밀린게 많이 남아있는지라.. 기약은 없네요 ㅠㅠ 4단계 고유시대는 각 시대의 호칭 (음악의나라 xxx)과 밀접하게 관련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각 나라의 최종 테크트리에는 대륙을 뒤흔들 파격적인 기술들이 많이 있죠. 저도 한번 정리해보고 싶네요

@...(-1)... / 티아의 고환 라면이 맛있겠다니! 다시 말씀해 보시죳!

@노레롱 / 음악 반죽 실화인가요 ㅋㅋㅋ 그리고 토마토 파스타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ㅋㅋㅋ

@책읽는고래 / 열공!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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