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2 진압 작전 =========================
전 오펙투스의 수도 오즈.
“교활한 술수로 폐하와 전 마도사를 끔찍하게 살해한 어비스는 이 땅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
“어비스에선 마법사의 심장을 척출하여 끔찍한 생체 실험을 감행한다고 한다! 이대로 순순히 놈들의 노예와 실험체로 전락할 것인가?”
“모두 일어나라! 우리의 땅과 마법을 우리의 손으로 지키자!”
어비스 왕실의 통치를 반대하는 반란군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소리치고 있었다. 도시의 남자들은 그들에 의해 강제로 반란군으로 징집되었다.
“왜, 왜 이러시오? 이것 놓으시오!”
“이 놈 보게! 밖에선 동지들과 사악한 어비스 놈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네놈은 집안에 처박혀 있겠다고?”
“나는 반란 같은걸 할 생각이 없단 말이오! 할 사람들끼리 열심히 하면 되잖아!”
“이 새끼가!”
빠악!
반란군들은 못가겠다고 버티는 남자를 넘어뜨리고는 무차별 구타를 가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달려와 그들을 뜯어 말렸다.
“오펙투스 시절에 마법의 혜택은 다 누려놓곤 지금 와서 나 몰라라 하겠다고?”
“남자들은 모두 끌고 와 무장시켜라! 여자들도 마력을 쓸 수 있는 자들이면 가리지 말고 차출해라!”
반란군들은 오즈를 장악하고는 영지민들을 징집시켜 병사들의 머릿수를 불리고 있었다.
성내는 한창 징집이 진행 중이었지만, 성벽에서는 반란군과 피닉스군과의 공성이 벌써 3일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반란군은 튼튼한 수도의 성문과 성벽을 방패삼아 피닉스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
그리고 성벽 위에서 전장을 굽어보는 여인이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후드 사이로 부드럽게 묶은 금발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드에 가려져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눈빛은 푸른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도사님.”
부관 마법사가 그녀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남문 쪽의 공세가 거세졌습니다. 지원군을…….”
“동문의 마법사 2소대를 남문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예!”
마도사 멜로디는 부관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 뒤 성문을 공격하고 있는 어비스군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하하하하! 잡혀버렸다!”
그녀의 옆에는 사슬에 포박당한 시끄러운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붙잡힌 게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 연신 웃어재끼고 있었다.
“…이자가 정말 ‘피닉스 다크파이어’가 맞는 겁니까?”
멜로디가 인상을 찌푸리며 부관에게 물었다.
“확실합니다, 마도사님.”
“그런데 어째서 어비스군은 물러나지 않죠? 사령관의 안위가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요?”
“그, 그건 저도 잘…….”
“하하하하하! 붙잡혀 버렸다!”
“…….”
보다 못한 마법사 하나가 입 닥치라는 의미에서 피닉스의 얼굴을 발로 깠다. 퍽! 소리가 가며 피닉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가 금방 오뚝이처럼 돌아와서는 다시 ‘하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아무래도 가짜인 것 같은데.”
“…저도 조금 의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도사님.”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붙잡은 것 같기는 했다. 성 앞에 주둔해 있는 어비스군을 상대로 야습을 감행하고 거짓 후퇴하니 피닉스가 말을 타고 끝까지 따라오는 것이었다. 결국 미리 쳐두었던 멜로디의 트랩에 걸려들었다.
적의 우두머리를 잡는 전공을 올렸으나 뭔가 이상했다. 피닉스군은 사령관이 잡혔음에도 다음날 태연히 공격을 감행했다. 그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을 하기도 했고, 마법으로 고문도 해보았지만 어비스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반란군들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하하하하하!”
항상 똑같은 높낮이의 피닉스의 웃음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있으려니 멜로디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이 괴인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결심하고 다가갔다.
“묻겠다. 포로. 그대가 정말로 피닉스인가?”
“하하하하! 물론이다! 내가 바로 어비스의 제 1의 조폭클랜인 황동파의 보스! 피닉스다! 하하하!”
멜로디가 슬며시 조소를 머금었다.
“그대들의 부하들은 충성심이 없는 모양이구나. 대장의 목숨이 걸려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해오다니.”
“하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냐? 한번 황동파는 영원한 황동파다!”
“그렇다면 어째서 보스인 그대를 구하지 않느냐?”
“뭐? 새로운 보스를 구했다고? 이런 고얀 놈들! 황동파의 보스는 나, 피닉스 다크파이어 뿐이다! 네 이년!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어디 소속의 누구냐?”
“……오펙투스의 멜로디다.”
“그렇군! 역시 오리할콘파였나! 오리할콘파라면 이 피닉스를 붙잡을만하지! 역시 황동파의 라이벌이다! 인정하마!”
“…….”
왜 말이 통하지 않는 거지? 그녀는 잠시 머릿속으로 에덴의 여섯 가지 언어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피닉스가 구사하는 건 틀림없는 대륙 공통어였다.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피닉스의 말을 정정했다.
“오리할콘이 아니라 오펙투스다. 귀라도 먹은 것이냐?”
“뭐? 귀를 먹어? 이거 당돌한 아가씨로구만! 내 민감 포인트가 귀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긴 만나자마자 구속플레이부터 하는 것이 보통 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피닉스! 오늘 만큼은 기꺼이 유린당하는 기쁨을 누리겠노라!”
멜로디는 더러운 것이라도 본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죽은 변태 스승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로군요.”
멜로디가 부관을 돌아보며 결론지었다. 대화를 해도 돌아오는 건 동문서답과 성희롱이었다.
“그냥 확 떨어뜨려 버릴까요?”
“…마음 같아선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마, 마도사님! 큰일났습니다!”
심문 같지도 않은 심문이 끝나자 전령이 달려와 그녀에게 새로운 정보를 보고했다. 어비스의 증원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군요. 지휘관은 누구죠? 증원군의 규모는?”
“어비스의 군사 티아 그란디네입니다! 병력은 추정 4천입니다!”
“뭐라고요?”
멜로디의 안색이 굳었다. 고작 몇 백의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증원을 4천이나 보낸단 말인가?
‘……로드 폴렌티아.’
그녀가 이를 뿌득 갈아붙였다. 잠시 후, 외성을 통과하여 새까맣게 밀려오는 군사들이 보였다. 거리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도사님.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요. 맞서 싸웁시다.”
멜로디가 결단을 내리자, 부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졌다.
티아군은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피닉스군과는 달랐다. 그녀의 지휘에 맞추어 검보병들은 여러 개의 군세로 갈라져 동문과 남문을 동시 공략했으며, 엘프 궁병들은 범위마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일사분란하게 산개하여 자리를 잡은 뒤 성벽위의 마법사들을 노리고 화살을 날려 보냈다.
점점 오펙투스 측의 사상자들이 늘어났다. 궁병 열 명을 잡더라도 마법사 한 명을 잃으면 손해인 것이었으나 지금 상황은 궁병 한 명에 마법사 한 명이라는 정직한 수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로드 폴렌티아! 일부로 엘프 궁병대가 있는 티아 그란디네의 군대를 보냈구나!’
시간이 갈수록 마법사들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내게서 스승과 주군을 빼앗아 가더니, 이번에는 소중한 고향마저 빼앗으려는 것이냐!’
어떻게든 오즈를 지켜내고 싶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많은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었다. 한 조직의 장으로서 결단을 내려야했다.
“……부관.”
“예! 마도사님!”
“왕궁의 텔레포트 게이트 장치를 작용시켜 놓으세요. 오즈에서 벗어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결국 유일한 답은 후퇴하여 그녀와 손을 잡는 방법뿐이었다.
‘다만, 가기 전에…….’
그녀가 품속에서 푸른 마력이 감도는 단검을 슬며시 꺼내들었다.
‘어비스의 장군 하나는 여기서 치운다.’
그녀가 피닉스를 돌아보는 순간, 피닉스도 그녀를 딱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우리의 인연도 여기까지군! 훌륭한 구속 플레이였네! 다음에는 내가 직접 귀여워해주지!”
“…뭐?”
구속당한 채로 벌떡 일어난 피닉스가 냅다 정면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버렸다.
모두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 미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멜로디와 마법사들이 허겁지겁 뛰어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하하하하!”
추락하던 피닉스가 몸을 비틀며 묶인 양팔을 마구 흔들었다. 특정 동작을 반복하자 그의 재킷 어딘가에서 팟! 소리가 나며 조잡한 낙하산이 펼쳐졌다.
성벽위의 마법사 한 명이 재빨리 매직에로우를 쏘아 보내 낙하산에 큼지막한 구멍을 냈지만 피닉스는 양 발을 성벽에 붙이면서 감속하며 묶인 두 팔을 들어 재킷의 속면을 보이게 하여 성벽에 딱 붙였다. 그러자 스티커처럼 그의 재킷이 성벽에 달라붙어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하하하하! 시대가 발전하는 만큼 조폭들도 발전하는 법! 무구를 쓰는 건 그때뿐만이 아니라네, 마도사 코스프레 아가씨!”
“……뭐?”
멜로디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닉스의 신발 한 짝에 마력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피……!”
꽈아아아아앙! 멜로디와 마법사들이 있던 성벽을 큼지막한 폭발이 집어삼켜버렸다. 떨어지는 잔해를 맞으며 피닉스가 쾌활하게 웃어댔다.
“하하하하! 보스를 잡으려면 아지트에 들어가야 하는 법!”
“피닉스 큰형님이 저기 있다!”
“…그냥 저대로 못 본척하면 안 되나?”
“쯧, 나도 그러고 싶지만 살아버렸으니까 살려야지. 내려드려!”
“하하하하하!”
휘유우우우. 폭발 연기가 걷히며 멜로디의 모습이 나타났다. 입고 있던 로브가 찢어지고 그을렸지만 로브의 마력 방호 능력덕분에 그녀는 무사했다. 그러나 다른 부하들은 구하지 못했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크읍! 감히 날 능멸해!”
화르르르륵! 그녀가 한 손으로 거대한 화염구를 소환해 피닉스를 요격하려 했지만 그녀의 머리 쪽으로 쌩 하고 화살이 날아왔다. 그녀가 다급히 몸을 낮추었다.
“…큭!”
엘프 궁병대의 공격이 더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성벽에서 마법을 퍼붓던 마법사들이 줄어들며 엘프들이 일방적으로 화살을 날려대는 형국이었다.
“마도사 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텔레포트 마력진으로……!”
“알겠습니다.”
그녀가 손에 쥔 화염을 거두고 등을 돌렸다.
‘…악마와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을 없애겠다! 로드 폴렌티아!’
============================ 작품 후기 ============================
피닉스 당신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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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fkvldpf /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 멋지군요.
wnsdlfh / 그런 뜻도 있을수 있겠죠. 엠파이어 같은 대도시를 불태우는 짓거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ㅎㅎ; 그리고 유니벨이 영지민들의 배를 굶긴것은 아무래도 공포심보다는 반발심이 더 컸지 않았을까요?
빽상어 / 훔치는거 씁니다. 작중에서 키메라 컨트롤에 쓰던 총, 원래는 알란드의 기술이죠.
최카츄 / 로리콤 작가라뇨! ㅠㅠ 매도입니다!
하찮은세상 / 관대하죠.
로리콤MK / 그러네요. 그들에게 객관적인 시각이 있었더라면 가웨인이 죽었다는 사실에 바로 흥분해서 날뛰지 않았을테고 + 전력차를 감안해서 반란은 더 뒤로 미루거나 아르곤과 공조하는게 정답이었겠지요.
은아준 / 베아 죽었으면 바로 로드 흑화 테크트리 갔지요 ㅎㅎ; IF씬도 써보고 싶네요. 베아가 죽었으면 때몰살이었을 겁니다.
벌레 / 아론다이트 대타!
니알라토텝 / 오호, 그렇군요. 벤시에 대한 설정이 워낙 많아서..
이즈니임 / 저도 보고싶습니다 ㅠㅠㅠ 엉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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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편의점 점주...! 멋지십니다! 사실상 요즘엔 은퇴후 자영업은 기본이기 때문에 ㅠㅠ 화이팅!
@알테니아 / 토끼귀 비월이 보고 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