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86화 (286/296)

00284 대영주 회담 =========================

“아앗! 늦어서 죄송해요! 두 분!”

막 언더하임에 들어온 외부인들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중에, 로즈안느가 허겁지겁 그들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뒤에는 부관과 코퍼를 비롯한 병사 몇 명도 함께였다.

“안녕… 하세요! 하아, 하아.”

왕성에서 동문까지 뛰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였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엉키고 눈앞을 마구 침범해 다급한 손빗으로 슥슥 쓸어 넘겨 정리한 로즈안느가 예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은…?”

카르프리의 치마르마가 물었다.

“로즈안느라고 해요. 폐하의 명으로 두 분의 안내를 맡았습니다.”

“반갑다. 치마르마라고 한다.”

서슴없이 곧게 내민 그녀의 손을 로즈안느가 맞잡으며 헤헤 웃어보였다.

“오, 깜찍한 아가씨가 마중을 나왔군!”

룬팽도 성큼성큼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로즈안느가 그와도 악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나머지 일행 분들은 제 부하들의 인솔을 따라주세요. 숙소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그런데 성함이…….”

“이 몸은 룬팽이라고 하네.”

“아, 네에! 룬팽님은 다른 일행이 없으신 건가요?”

“나중에 도착할걸세. 일행이 느려 터져서 먼저 왔거든.”

“…? 그, 그렇군요. 그럼 두 분은 먼저 이쪽으로……”

쿵! 쿵! 치마르마가 거대 메뚜기를 탄 채로 다가오자 로즈안느가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시 내에서 그런 대형 탑승물은 타실 수 없으세요. 따로 맡기셔야…….”

“음, 어쩔수 없지.”

그녀는 순순히 메뚜기에서 내렸다.

“시오라!”

“……예.”

치마르마의 부름에 한 여인이 다가왔다. 곤충의 날개 같은 것이 등 뒤에 붙어있었는데, 이 날개로 팔을 포함한 상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저러면 팔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데려가.”

“…예.”

그녀가 몸을 감싼 날개를 살짝 퍼덕이자, 메뚜기가 움찔하며 반응을 보이더니 순종적으로 변해 그녀를 따라갔다.

“저 분은 누군가요?”

로즈안느가 신기한 광경이라도 본 듯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그냥 시녀다.”

치마르마는 왠지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어기, 그리고 룬팽님도…….”

“음?”

“애완동물들은 따로 맡기셔야…….”

“아, 이 녀석들 말인가?”

그렇잖아도 주위의 상인들이 늑대를 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룬팽이 팔을 척 뻗었다.

“저 남자를 따라가라!”

“컹! 컹!”

룬팽이 지시하지 늑대들이 코퍼에게 뛰어들었다.

“히익! 뭐, 뭐냐는!”

갑자기 야생 늑대가 다가오자 놀란 코퍼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습격당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늑대들은 온순한 양처럼 제자리에 앉아 헥헥거리며 코퍼를 보고 있었다.

“와아…… 말 엄청 잘 듣네요?”

로즈안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하하, 그럼! 이 몸은 이래봬도 동물을 다루는 드루이드라네. 그런데 아직 대영주 회담까지는 시간이 남았지 않은가?”

“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폐하께서는 우리를 일찍 부르…… 헉!”

우뚝 걸음을 멈춘 룬팽이 큼지막한 고목에 시선을 빼앗겼다.

“오오, 크고 우람한 나무로다!”

관광객 모드로 돌아선 룬팽이 자신이 발견한 거목으로 달려가 다시 한 번 감탄성을 흘렸다.

“…그, 그러네요. 룬팽 님. 그리고 그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로즈안느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룬팽이 서슴없이 나무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나무를 만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하!”

“꺄아아아아아악! 뭐, 뭐, 뭐하시는 거예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로즈안느가 황급히 등을 돌리며 소리쳤다.

“보다시피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네만!”

“…사, 사람들이 보잖아요!”

“미안하네. 그래도 이렇게 괜찮은 기둥을 보면 수컷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야 있나? 하하하!”

룬팽이 소변을 보고 있을 때 치마르마는 언더하임에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오오, 도시란 곳은 신기한 것 투성이구나!”

“멀리 가시면 안 돼요!”

거리를 걷던 치마르마가 집을 톡톡 두들겨 보았다.

“이건 돌이잖아? 로즈안느. 어비스에는 원래 저런 집모양의 돌이 많아?”

“그, 그럴 리가요! 당연히 벽돌을 쌓아올려 만들었죠!”

“희한하구나. 오, 저것도 신기해. 메뚜기가 아니라 말이 사람을 끌고 다니다니!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네.”

“메뚜기가 끄는 쪽이 더 신기해요!”

치마르마는 도시에 처음 온 시골처녀처럼 쉴 새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뛰어다녔다.

“저 상인이 파는 건 뭐지?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먹는 건가?”

“오오, 저기 저 나무도 우람하지 않은가!”

“치마르마 님! 너무 멀리 가시면 안돼요! 룬팽 님! 왜 이렇게 나무에 집착하세…… 꺄아아악! 아까 싸셨잖아요!”

“핫하! 부끄럽지만 이 몸에게는 지병이 있지. 전립선 비…….”

“알고 싶지 않아요!”

*

로즈안느는 정신 산만한 두 사람을 힘겹게 이끌고 왕궁으로 들어왔다. 차라리 아이들을 돌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 두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흩어지는 바람에 통제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오오, 이 기둥! 아주 우람하지 않은가! 하하!”

왕궁에 들어온 룬팽이 기둥에 멈춰 섰다. 또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로즈안느가 빽 소리쳤다.

“제발! 폐하께서 기다리신단 말이에요! 늦었다구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돌아오는 길에…….”

“여긴 실내예요! 제발 체통을 지켜주…! 콜록! 콜록!”

너무 소리를 질렀더니 이제 그녀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공연하는 것 보다 더 목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로즈안느. 폐하께서는 어떤 분이시지?”

그나마 얌전히 옆에서 걷고 있는 치마르마가 넌지시 물었다. 그 물음이 반가웠던지, 처음으로 로즈안느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 폐하요? 무척 좋은 분이세요! 착하시고, 상냥하시고, 친절하시고, 깨어있으시고, 똑똑하시고, 다크서클이 귀엽고, 졸릴 때 살짝 미간을 찌푸리신 모습도 은근 섹시하…….”

“로즈안느는 폐하를 사모하고 있군.”

로즈안느가 걸음을 딱 멈추었다. 걸어가던 치마르마가 왜 그러냐며 돌아보자 로즈안느는 얼굴을 붉히며 비명 비슷한 것을 내질렀다.

“그, 그, 그런 거 아녜요!”

“아니긴, 폐하가 어떤 분인지 물어본 것인데 성적 매력을 줄줄 늘어놓고 있잖아.”

“저는 그저……!”

“그저?”

“…꺄아아악!”

로즈안느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를 비비꼬았다.

“……아, 아무튼 좋은 분이세요! 폐하께서도 두 분을 무척 반겨주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중간에 경비들이 다가와 무기를 수거했다. 검사 절차가 끝난후 로즈안느는 두 사람을 로드의 집무실까지 데리고 왔다. 로즈안느가 가볍게 노크했다.

“폐하, 로즈안느예요. 두 분을 모시고 왔어요.”

“응, 들어와.”

로드의 대답이 들렸다. 딸칵. 로즈안느가 문을 열어 주고는 두 사람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

그런데 방 안에선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중앙의 책상에는 로드가 있었고 옆에는 이브가 서 있었다. 그리고 집무실의 양 옆으로 검을 찬 비월과 부관 캠밸, 그리고 무장한 암살단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룬팽과 치마르마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하하, 미안합니다. 최근 우리 쪽 분위기가 살벌해서 이렇게 맞이하게 되었네요.”

로드가 자리를 권하며 자신도 소파 앞에 앉았다. 암살단원들이 샤샥 하면서 뒤에 따라붙었다.

‘…아, 부담스러워라.’

가웨인 사건 때문인지 가신들은 로드 혼자만 낯선 자들에게 대면시킬 수 없다며 성화를 부렸다. 원래 이브는 집무실이 아니라 왕좌가 있는 1층 강당에서 무장한 병사들과 가신들을 쭉 깔아놓고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합의한 게 이 정도였다.

두 사람이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는 사이, 로드는 티 나지 않도록 허공에 손짓하여 그들의 스테이터스를 몰래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룬팽이라 합니다.”

살벌한 분위기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룬팽은 금방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카르프리 영지의 치마르마입니다.”

반면 그녀는 아직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대영주 후보로군요.”

“예.”

두 사람도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대영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스테이터스 상으로 그 능력은 검증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대화를 통해 알아내야만 했다. 두 사람을 찬찬히 훑어본 로드가 먼저 룬팽에게 말을 걸었다.

“의외로군요, 룬팽. 난 당신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대와 같은 대단한 전사가 왜 진작 글레이시온을 이끌지 않았던 겁니까?”

무려 B급 무력형 영웅이다. 이 정도 실력자라면 카사르와의 전쟁에서 전사했거나, 아크가 활용했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여야 했다. 아크가 B급 영웅을 썩힐 리 없으니까. 횡재라는 생각보다는 경계심이 좀 더 들었다.

“실은 죄를 지어서 최근까지 얼음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빠져나오게 되었지요.”

“…사건? 그게 뭐죠?”

룬팽이 덤덤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글레이시온에서는 큰 죄를 지으면 사람을 얼음감옥에 냉동시켜 봉인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얼음감옥의 봉인은 일정 시간이 풀리지 않는 한 절대 풀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얼음감옥을 혹한이 가장 심한 오지에 가져다두며, 눈사태와 크레바스 등으로 지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누구도 감옥의 위치를 모르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봉인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히게 되는 것이다.

룬팽이 말한 ‘사건’은 글레이시온에 정체모를 외부인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외부인은 사람을 찾고 있는지 얼음감옥을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녔는데, 그로 인해 봉인이 해제된 감옥들 중 하나가 룬팽이 갇혀있던 감옥이었다는 것이다.

‘……설마.’

로드는 문이 번쩍 뜨였다.

“룬팽. 알란드의 왕이 얼음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습니까?”

룬팽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사르 왕의 명으로 그를 얼음감옥에 가두었다는 것 같더군요. 그 자도 이 몸과 같은 시일에 깨어났을 겁니다.”

“…혹시 당신을 해방시킨 자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십니까?”

이번엔 룬팽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 몸이 정신을 차릴 즈음엔 사라져있었습니다. 추정할 수 있는 건 얼음감옥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불의 힘을 다루는 자라는 것뿐입니다.”

“……음.”

생각지 못한 때에 올리버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얻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 외부인이라는 자가 올리버를 데려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올리버가 글레이시온에 갇혔다는 정보를 수집하고는 닥치는 대로 얼음감옥의 봉인을 해제했을 것이다.

로드가 올리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비월이 물음을 던졌다.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하시고 감옥에서 빠져나오셨사온데, 나라에서 저지하지 않았는지요?”

“흐흐, 70년 동안 냉동되어 있었고 이 몸을 가두었던 왕조는 이미 멸망한 지 오래이올시다. 그리고 원로들은 오히려 이 몸의 힘을 보고 가디언들의 대장 노릇을 맡기더군. 그러다가 이번에 대영주 노릇도 맡긴 거요.”

“잠깐만요.”

이번엔 이브가 손을 들며 말했다.

“어비스의 신관 이브입니다. 민감한 질문이겠지만, 이 자리는 대영주의 자격을 논하기 위한 일종의 청문회이니 이해해주시길.”

“물론이오.”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얼음감옥에 70년이나 갇힌 거죠?”

“아,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오.”

룬팽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내 아버지를 죽였소.”

============================ 작품 후기 ============================

썩시딩 유 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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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루나 / 감사합니다!

Tntn12 / 후후, 저는 언제나 정상입니다!

T스톤 / 하하하하.!

알테니아 / 비워링!

로리콤MK / 아, 군만두와 웰치스! 좋은 감금 연참 재료지!

wnsdlfh / 위태로운 유니벨 ㅠㅠ

ppk12 / 클로킹 쓰시는 그분?!

니알라토텝 / ...! 그런 로멘스 넘나 좋아요!

...(-1)... / ㅋㅋㅋㅋㅋㅋ 신캐들이 마이너스님께 잘못 보였군요. 둘리 소환각까지 보이다니..!

아스칼 / 마지막 시대 가려면 내년지나서 또 얼마나 써야할... ㅠㅠ

벌레 / 야생걸에게 바니걸의 문명을 보여주죠!

빛과하늘 / 네? 저 여전히 ㄹㄹㅋ 아닌데요? 계속 부인할 건데요?

아사헤윰 / 그쪽이 간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비스와 이야기가 실패하면 적으로 돌아가야 하는거니까요. 주도권은 어비스가 가지고 있습니다.

중복인거냐 / 넵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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