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87화 (287/296)

00285 대영주 회담 =========================

“내 아버지를 죽였소.”

룬팽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컸다. 집무실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룬팽 님. 최근 우리가 반역과 배신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브가 물었다.

“그렇소만.”

“…그런데 왜 그 사실을 솔직히 밝힌 거죠?”

“사실인 걸 어쩌겠소. 여기서 숨겨봐야 조금 조사해보면 다 나올 거 아니요? 거짓말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지.”

이번엔 로드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질투의 화신 같은 남자였습니다. 공을 연이어 세워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영향력이 커진 아들을 시기해 죽이려 했지. 먼저 치지 않았다면 당한 건 나였을 거요.”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인 상황에 의한 반역, 권력이나 재물을 바라고 한 반역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다음은…….”

로드의 시선이 치마르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긴장한 듯 허리를 쭉 폈다.

“치마르마. 카르프리에서 위치가 어떻게 되죠?”

“왕실이 사라진 이후 각 족장들이 영지민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다섯 족장 중 한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한 가지 질문입니다. 우리가 대영주 후보를 요청했을 당시, 왜 중간에 연락이 끊겼었습니까?”

선뜻 답하기 곤란한 부분을 후벼 파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비스라는 나라에 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흠, 그게 무슨 뜻이죠?”

“최근에 저희가 겪은 상황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습니다. 왕실을 잃어버리고 타국의 통치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중, 갑자기 새로운 나라가 본국을 무너뜨리고는 저희를 통치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그녀는 목이 타는 듯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카르프리와 어비스는 그동안 아무 접점이 없었습니다. 우릴 통치하겠다는 그 미지의 나라가 갑자기 각종 반란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기에, 과연 우리를 제대로 통치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압도적인 힘으로 간단히 반란을 제압하는 어비스의 모습을 보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치마르마 님.”

이브가 끼어들었다.

“카르프리가 우리의 힘에 의심을 품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우리 어비스가 힘이 없었더라면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란 말처럼 들립니다.”

치마르마의 눈썹이 살짝 떨렸지만, 곧 씩씩하게 대답했다.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저희는 살아남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미래를 맡길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미적지근한 처세에 대해 어떤 벌을 주시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입장을 밝힌 후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로드는 속으로 감탄했다. 남미의 여전사를 연상케 하는 겉모습과는 것과는 달리 사리분별에 능하고 말도 잘하는 똑똑이 스타일이었다. 지략등급 또한 C+니 군사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제격이었다. 아르곤과의 전쟁에서는 카르프리군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티아를 보좌하는 군사진의 한 사람으로서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 로드가 마침내 종료를 선언했다.

“두 사람 다 수고했습니다. 결과는 논의 후에 통보하도록 하지요. 오랜 여정에 피곤할 테니 이만 쉬러 가세요.”

“예. 폐하.”

“로즈안느, 안내해드려.”

“네에!”

룬팽과 치마르마가 집무실을 나갔다. 안내를 맡은 로즈안느도 로드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떤 것 같아?”

로드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이브와 비월은 곰곰이 고민하였고, 이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룬팽은 이미 한번 배신한 전적이 있는 만큼 위험한 사내라고 생각해요. 치마르마는 똑똑하기도 하고 처세를 아는 느낌이라 바로 기용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네요.”

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비월을 보았다.

“비월은 어때?”

“소녀 또한 인의를 저버린 룬팽은 완전히 신용하기 힘든 사람이라 생각하오나, 그것은 생존논리에 근거한 행동.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타인을 배신할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다소 의외였다. 인의를 중요시 하는 비월이 룬팽을 배신하지 않을 타입이라고 평가하다니.

“그리고 치마르마는 대영주로서 실력은 갖추고 있어 보입니다만,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사옵니다. 아직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 느낌은 아니었사옵니다.”

“……좋아.”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 로드는 결정을 내렸다.

“룬팽이 위험한 사내인건 맞지만, 그런 불안감을 상쇄할 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하고 글레이시온 내에서도 영향력은 강해 보여. 그의 전력이라면 틀림없이 어비스군에 도움이 될 거야. 비월의 말처럼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도 생존을 위해서였으니까 섣불리 낙인을 찍어버리는 건 옳지 않겠지. 치마르마도 마찬가지, 아직 어떤 인물인지 판단이 서지는 않지만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알아보자고.”

“네, 폐하.”

로드는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각 영지에서 자발적으로 내놓은 인물들 치고 스테이터스가 출중한 인재들이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맞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대영주 회담이잖아?”

머릿속으로 대영주 리스트를 그려보던 로드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오펙투스와 카사르는 어쩌지?”

“저희 쪽 클랜장들이 관리자가 되어 통치하기로 했으니까, 그 분들이 참석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브가 말했다. 로드가 고민스러운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언더하임 사람들이고 대리 참석자니까 오펙투스와 카사르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는 못할 거야. 열정은 있을지 몰라도 탐욕이 없어.”

“…그렇기는 하네요. 그렇다면 대영주까지는 아니지만 각 나라에서 회담의 참석자를 한 명 보내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실력이 좋아서 나중에 반란 핸디캡이 풀리면 대영주를 시켜줄 수도 있는 거고…….”

“좋은 생각이야, 이브!”

이것으로 대영주 회담에 앞서 카사르, 오펙투스를 제외한 모든 영지의 대영주들이 결정되었다.

아로게쓰의 대영주 - 키리안.

알브헤임의 대영주 - 티아 그란디네.

게노세르크의 대영주 - 케이론.

베틀린의 대영주 - 로즈안느 페터 베틀린.

카르프리의 대영주 - 치마르마.

글레이시온의 대영주 - 룬팽 펜리스.

오펙투스 관리자 - 피에르.

카사르 관리자 - 바톨.

*

대영주 회담이 며칠 앞으로 훅 다가왔다. 로드와 대영주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였고, 영지의 향후 이익이 달린 일인 만큼 모두들 철저히 준비했다.

대영주들이 속속 언더하임으로 집결해왔다. 가장 먼저 언더하임에 도착한 사람은 반인만마의 수인족 케이론이었다. 이미 발트호른에서 철저히 준비를 마쳤는지, 로드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의 그의 표정에는 사뭇 여유가 있었다. 과연 연륜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최근의 카사르전에서 수인군의 대패로 베틀린군에 부담을 떠넘긴 적이 있었던 만큼, 로즈안느에게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변수가 될 것 같았다.

언더하임에서 머물던 로즈안느는 베틀린 특구에 돌아가서 준비하는 일 없이, 그녀의 일행들이 먼저 언더하임으로 들어왔다. 장로들은 ‘이제 로즈안느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그녀를 앉혀 놓고는 속성으로 협의와 토론의 정석들을 머릿속에 때려 박고 있었다.

키리안도 복귀했다. 이번 반란으로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등장한 그는 로드에게 회담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티아 또한 오즈의 안정화는 피닉스에게 맡긴 채, 알브헤임으로 돌아갔다가 일행들과 함께 언더하임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로드에게 알려왔다. 엘프들에게 억압받던 티아가 알브헤임의 대영주가 된 것은 상당히 뜻밖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알브헤임 점령 당시에 티아가 임시 영주로서 영지를 잘 이끈 것이 엘프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듯 했다.

카사르의 통치는 붉은 망치단의 클랜장 바톨이 맡았는데 회담의 참석자로는 아론다이트가 뽑혔다. 전 마스터 나이트라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 같지만… 로드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오펙투스의 통치는 검은 연금술 협회의 클랜장 피에르가 맡았으며, 회담 참석자로는 ‘엔즈’라는 이름의 중년 마법사가 선정되었다.

전 지역을 완전히 공평성대하게 다스릴 수는 없었기에, 로드는 일부로 대영주들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 경쟁을 통해 영지의 생산성과 나라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여도가 높은 영지일수록 더 잘사는 영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제 카사르 영지라고 무조건 강대하고 베틀린이라고 가난하라는 법은 없다. 어비스의 통합 영지 체계 내에서는 베틀린 특구가 충분히 카사르 영지 보다 잘 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이 이번 대영주 회담이다. 3일차까지 진행될 이 회담에 모두가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아으으! 힘들었어.”

회담을 맞아 그나마 여유를 만끽하게 된 쪽은 순수 어비스 왕실 가신들이었다. 엠파이어에서 복귀한 유니벨이 로드의 집무실에 들려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수고 많았어, 유니벨. 엠파이어는?”

“주문한 대로 잘 태우고 왔지!”

그녀가 신이 나는 듯 말했다.

“…흠, 반발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흥, 그래도 뭐 어쩌겠어? 자업자득이지! 본래 왕에 대한 반란은 싹 처형해야 하는 건데 영지 하나 홀라당 태우는 걸로 끝내는 게 어디야?”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

그녀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쿡쿡 웃었다.

“엠파이어를 태운다고 했을 때 에이, 설마 진짜 하겠어? 하는 분위기였는데, 정말 불태워버리니까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라. 그때 그것들 표정을 너도 봤어야 했는데!”

“그럼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데?”

“가지각색이지. 카사르 제2의 영지인 레드킵으로 향한 사람들이 제일 많았고, 그냥 엠파이어 주위 마을에 자리 잡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

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하, 이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당연히 잘한 짓이지! 반역이야, 반역! 이런 중대한 문제를 물렁하게 넘어가버리면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구!”

“알고 있어.”

로드도 공포가 얼마나 통제를 쉽게 할 수 있는 일인지 최근 들어 배우고 있는 참이었다.

“그건 그렇고 유니벨, 베아한테는 가봤어?”

로드의 물음에 유니벨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응. 여기 오자마자 바로……. 리체, 괜찮은 거지?”

“괜찮을 거야. 틀림없이.”

베아트리체의 이야기가 나오지 갑자기 분위기가 다운되었다. 멍하니 있던 유니벨이 정적을 깨고 벌컥 화를 냈다.

“아으! 짜증나! 카사르 그것들 더 가혹하게 굴려야 했는데!”

“…복수도 선을 넘어선 안 돼. 그 굴레에 들어가 버리면 다음엔 네가 복수를 당하는 쪽이 된다고.”

“흥, 알고 있거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애니록스가 들어왔다.

“…폐하! 앗, 재정관님도 계셨습니까?”

“안녕, 변태 가르마.”

유니벨이 대강 손을 휙 흔들며 인사했다.

“폐하! 기밀입니다. 긴급히 보고드릴 일이…….”

그러면서 유니벨의 눈치를 슥 살피는 애니록스였다.

“아, 갈게! 가! 치사해서는!”

유니벨이 방문을 닫고 나가자 애니록스가 품에서 주섬주섬 서신을 하나 꺼내들었다.

“뭔데?”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테러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 작품 후기 ============================

수능 수고하셨습니다!!

-----------

Tntn12 / ㅋㅋㅋㅋㅋㅋㅋ옛말에 소변튼 친구야 말로 절친이라는 말이 있죠!

T스톤 / 아서스님 ㅠㅠ

프리워커 / 그의 소변 원리는 한 번에 모든 수량을 다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량을 남긴후 다시 또 아, 아닙니다.

알테니아 / 이제는 최면까지 걸려고 하시는 알테님 ㅋㅋㅋ

로리콤MK / 룬팽 : 생리현상이니 존중해주시죠!

Schmerzs / 냉동인간의 휴유증이었군요... 이렇게 스토리가 또 이어지는...!

llSongOfBladell / 프로스트모운!

...(-1)... / 하긴 둘리에 비하면 70년은 귀엽네요 ㅋㅋㅋ 그러고 보니 애정하시는 문짝이가 모욕을 ㅠㅠ

빛과하늘 / 저는 건.전.합니다!

물대포 / 냉동인간이네요. 다만 냉동의 휴유증으로 작은 질환을..(?)

------------

@벌레 / 놀라운 노출대결(?)이 되겠군요 ㅋㅋㅋ

@레이아니 / 오오, 오랜만에 찾아주셨군용! 쿠폰도 감사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