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88화 (288/296)

00286 대영주 회담 =========================

“테, 테러라고?”

“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로드가 애니록스로부터 건네받은 서신을 허겁지겁 펼쳐보았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가 반쯤 감겼다가, 이내 완전히 찡그려졌다.

“……이게 무슨 말이야? 대륙어는 아닌데.”

“특정 키워드를 알아야 해독할 수 있는 암호화 문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정보부에서 머리를 쥐어짜내 해석해봤죠.”

그럼 왜 준거야. 로드는 불평하듯 자그맣게 중얼거리며 서신을 책상위에 툭 올려놓았다.

“무슨 내용이었는데?”

“회담 둘째 날에 테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로드의 몸이 들썩였다.

“그게 정말이야? 이런 서신을 대체 어디서 구한거야?”

애니록스가 턱을 치며들며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간만에 로드로부터 받는 100%의 관심이 기분 좋았던 것이다.

“운이 좋았죠. 놈들의 까마귀를 잡았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는 스파이들과 정보부간의 가장 주요한 통신 수단이다. 언더하임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까마귀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이쪽의 주요 통신 수단이 까마귀라는 사실을 알고,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들도 까마귀를 올려 보냈을 것이다. 로드는 여기까지는 간단히 추론해낼 수 있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통신 수정구’가 일반인들은 쓰지 못하는 상당히 값비싼 마력무구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언더하임에서 사용하는 통신 수정구들은 모두 정보부에 등록되어 있다. 등록되지 않은 통신 마법이 언더하임 내에서 발동되면 정보부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까마귀나 전서구를 이용하면 이러한 감지를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같은 까마귀라도 품종이 달랐다. 정보부에서 통신용으로 사용하는 ‘작은 부리 까마귀’는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수종으로, 오로지 정보부 내에서만 교배시켜 사용한다. 순찰하던 정보부 요원이 하늘에 맴돌고 있는 일반 까마귀의 다리에 서신이 묶여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고는 사살했다는 것 같았다.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나본데, 날짜 말고 다른 내용은 없었어?”

“예, 없었습니다.”

“……흠.”

로드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으으, 골치야. 가웨인 사건이 터진지 얼마나 됐다고 또 테러야?”

“…동감입니다.”

“누구한테 보낸 걸까…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어?”

애니록스는 이미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해 놓은 듯 슬쩍 로드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현재 언더하임은 외부인에 대한 철저한 출입 통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지에는 회담과 관련된 외부인들밖에 없죠. 즉…….”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영주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넵, 일행들도 모두 대영주가 직접 차용한 자들이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정말 일이 꼬이는데.”

대영주 회담만 착실히 준비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내통자를 찾아내야했다. 그것도 왕실이 테러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

애니록스가 떠난 후, 로드는 이브를 불러서 이 문제에 대해 상담했다.

“하아, 곤란하네요.”

그녀가 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중요한 회담에 테러까 일어날 지도 모른다니…….”

그리고는 홍차가 든 찻잔을 로드의 앞에 슥 놓았다. 로드가 ‘고마워’라고 감사를 표한 후 찻잔을 받아들었다.

“떳떳하게 언더하임 정문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는 외부인이 보낸 서신이야. 테러 또한 외부인이 주도하고 내통자가 그들을 돕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치러지겠지.”

로드가 호호 바람을 불어가며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오! 절로 감탄이 나오는 맛이었다. 이브는 어비스 내에서 가장 바쁜 가신이면서도 본인이 집무실에 있을 때만큼은 메이드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만들어 내어주는 것을 고집하곤 했다. 그 덕분인지 그녀의 다도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 지금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그냥 고유능력으로 발현해야 되는 거 아닌가? 네이밍은 ‘다도의 여신’정도로.

로드가 차 한 잔에 그런 쓸데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사이 이브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가 아니라, 대영주들이 다른 경쟁자를 견제하려 벌이는 방해공작을 테러라고 표현한 걸 수도 있잖아요.”

“글쎄, 일리가 아예 없는 말은 아니지만…… 방해공작이라면 번거롭게 외부와 소통할 필요 없이 언더하임에 들어온 자기네들끼리 하면 되는 거잖아.”

“…그, 그러네요.”

두 사람이 홍차를 즐기며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는데 집무실 문이 쾅 소리가 나며 열렸다.

“다들 안녕!”

유니벨이 손을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폐하! 그리고 여러분!”

웬일인지 하버트도 함께였다. 어비스에서 가장 시끄러운 두 사람이 나타난 이상 평화로운 티타임은 강제 종료였다.

“어, 팬더! 뭐 마시는 거야?”

“홍차야. 스모키 얼그레이.”

감히 너 같은 꼬맹이가 즐길 수 있는 차가 아니니 넘보지 마라. 라는 의미를 실어 로드는 대답했다. 그러나 유니벨은 로드의 찻잔에 흥미를 날려버린 채 이브에게 졸랐다.

“이브! 이브! 나는 코코아 만들어줘!”

“오호홋! 저는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이브가 선반에서 달그락 거리며 차 재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호 통재라, 어비스의 왕실총무를 당연하게 부려먹는 저 버릇없는 작태를 보라. 이러니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브는 지금까지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차를 끓여달라고 부탁하면 오히려 방긋 웃으며 기뻐하는 눈치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라니까.

로드가 또다시 차에 대한 망상을 하고 있을 때, 세 사람의 이야기 화제는 대영주 회담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아, 다들 그 회담 때문에 난리로군요!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올 것인가! 어떤 영지에 새로운 도로와 시설이 들어서고! 어떤 영지가 가장 많은 예산을 확보하게 될 것인가! 실로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버트, 네가 이런 정치 회담에도 관심 있는 줄은 몰랐는데.”

로드가 짐짓 놀란 투로 말했다.

“물론 관심 있습니다, 폐하! 과학도 결국은 돈이 있어야 하는 법! 투자 유치를 위해 대영주들을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회담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고객이 무엇이 필요한 지 알 수 있으니까요!”

“흥, 더러운 어른의 사정 따윈 아무래도 좋아.”

유니벨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로드를 보았다.

“아까 우리가 오기 전에 이브랑 무슨 이야기 한 거야?”

“…어? 그, 그야 회담에 대해서…….”

“회담이야기를 하는데 ‘테러’라는 말이 왜 나와?”

“……!”

아차, 들어 버렸나?

눈치 빠른 유니벨은 로드의 굳어지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읽어낸 듯 그녀의 표정 또한 덩달아 굳어졌다.

“오오오오! 테러! 테러라니! 이 무슨 놀라운……!”

“조용히 해.”

로드가 하버트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았다.

“야, 팬더! 애니 그 녀석이 기밀이라고 한 거랑 상관있는거지? 나도 말해줘.”

유니벨은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유니벨.”

“테러는 이제 지긋지긋해! 또 누가 다칠 수도 있는 거잖아? 그 꼴은 절대 못 봐. 어떻게든 막아내겠어.”

로드가 곤란한 표정으로 이브를 돌아보았다.

“이 두 사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테러라는 말을 들어버렸으니 전부 이야기해주고 입 다물게 하는 편이 낫겠죠.”

이브가 ‘그쵸?’ 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살짝 째려보자, 그들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는 수 없지. 머리가 많아지면 더 좋은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로드는 두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에이, 뭐야! 그런 거였어?”

유니벨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렸다.

“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내통자를 찾으면 해결되는 거잖아? 간단하지! 병사들 풀어서 대영주랑 밑에 애들 싹 다 붙잡아 와서 불게 만들자! 혁명단 애들이 그런 작업 잘하니까……!”

“…내통자를 찾으려고 죄 없는 사람들을 전부 고문하겠다고? 아주 감격스러워서 잘도 어비스에 충성을 바치겠다.”

로드의 비아냥거림에 유니벨이 토라진 듯 입술을 삐쭉였다.

“그렇담 드디어 제가 나설 때로군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던 하버트가 작은 상자 같은 물건을 꺼내 번쩍 들어올렸다.

“이것이 바로 하버트의 거짓말 탐지기 입니다!”

유니벨과 이브가 놀란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오, 거짓말 탐지? 신기하다! 마력 무구야?”

“그럴리가요! 엄연히 과학의 힘으로 제작된 아이템이지요!”

“…놀랍네요. 거짓말을 간파하는 물건이라니.”

그녀들은 거짓말을 밝혀내는 기계라는 개념 자체에 놀라고 있었지만, 로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원리를 물었다간 하루 종일 설교를 들을게 뻔하기에 로드가 하버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실험해볼까?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 지 알아 맞춰봐.”

“좋습니다! 폐하!”

하버트가 상자에 달린 안테나 같은 것을 쭉 뽑아내 로드 쪽으로 겨누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지직거리며 뭔가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시작하시지요! 폐하!”

“나는 하버트를 사랑한다.”

삐비빔. 삐빔. 삐비빔. 조잡한 효과음이 들리더니 기계에 초록 불빛이 들어왔다.

“오오! 진실을 말씀하셨군요! 역시 대단해! 과학은 위대하……!”

“…그냥 글러 먹었잖아!”

그제야 이브와 유니벨도 ‘그럼 그렇지.’하는 눈으로 하버트를 보았다. 거짓말을 탐지해낸다는 신기함에 잠시 하버트가 만든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모양이었다.

“엥? 왜들 그러시죠?”

하버트가 모두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정답대로 나왔잖습니까?”

“…….”

“폐하께서는 당연히 어비스 최고의 과학자인 이 하버트를 사랑하고 계시죠! 거짓말 탐지기는 속일 수 없습니다!”

“아오! 그럼 다시 해볼게.”

로드가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 하버트를 쥐어 패고 싶다.”

삐비빔 삐빔! 이번에도 초록불이 들어왔다.

“오오, 이번에도 정답!”

하버트가 번쩍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부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큼 엄히 매로 다스리려는 폐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그냥 막 같다 붙이는구만!”

“……폐하.”

이브가 하버트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것으로 입 다물게 하며 말했다.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면 그냥 회담을 나중으로 연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위험해요. 굳이 정해놓은 시일에 할 필요는…….”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중요한 회담을 테러 때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고, 무엇보다 난 내통자가 누군지 찾아내고 싶어. 테러 사실을 알아낸 건 엄청난 찬스야. 이걸 놓칠 수는 없다고.”

유니벨과 하버트가 바로 끼어들었다.

“흥, 그냥 다 끌어와서 때려 부수면 불게 되어 있어! 이래서 너무 나라가 좋아져도 문제라니까! 옛날 방식이 최고야!”

“개인에 따른 변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하버트의 거짓말 탐지기로……!”

“두 사람은 조용히 하세요.”

“…….”

결국 이 둘을 끌어들여 건진 수확은 없는 것 같았다. 로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선 정보부 요원들을 풀어서 각 대영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보자. 그리고 언더하임의 경비병력을 세 배로 늘려. 신분이 명확하지 않는 사람은 도시 내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

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눈빛에 결연함이 차올랐다.

“이 회담, 무조건 성공시킨다.”

============================ 작품 후기 ============================

근데 현실의 거짓말탐지기는 과학적 효과가 확실히 입증됐나요? (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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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sdlfh / 비월파의 세력이 너무 막강합니다! ㅋㅋㅋ

아스칼 / 운명! 우연! 필연!

로리콤MK / 엉앙 ㅠㅠㅠㅠ 베아야아아아!

민트레인 / 넵, 맞습니다!

니알라토텝 / 통치할 영토가 늘어난 만큼 신경쓸게 많아졌죠 ㅠㅠ

알테니아 / 으아아앙 비월이를 보여도 최면이 끝나지 않아!

T스톤 / 헉! 그 대사를 입에 담아선 안 돼!

Tntn12 / 감사합니다!

풍령화객 / ㅋㅋㅋㅋㅋㅋㅋ 치트 교도관; 그 어떤 국민도 순종적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ZzeRoN / ㅠㅠㅠ 저도 베아가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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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희동이는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희동이도 소드마스터 고길동 급으로 강한가요?

@벌레 / 다음편에 나올 예정입니다! 바니걸은 아직...

@이즈니임 / 베아를 찾으시는 분들이 유난히 많군요 ㅠㅠ

@빛과하늘 / 차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먹지만, 제게 로리를 맡겨주시면 쓰담쓰담 아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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