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91화 (291/296)

00289 대영주 회담 =========================

“다, 당신은……!”

“대영주 치마르마, 테러 혐의자로서 그대를 체포하옵니다.”

비월이었다.

그녀가 검을 내리자 자객이 치마르마의 머리를 밟고 바닥에 박게 했다. 자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그녀의 팔과 다리를 밧줄로 단단히 결박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속인거냐아아!”

“…먼저 속인 건 그쪽이잖아?”

대답은 뒤에서 들렸다. 치마르마가 돌아보자 골목에서 로드가 막 드레이크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니벨, 이브, 키리안도 말을 타고 도착했다.

치마르마의 동공이 초점을 찾지 못하고 마구 흔들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아까 그 테러는 조작된 거야.”

로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너 같은 반역자를 꾀어내기 위해서.”

“로드 폴렌티아아아……!”

치마르마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회담 ‘둘째 날’에 테러가 일어난다는 사실 뿐이었어. 그래서 이걸 최대한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가짜 테러를 꾸며 봤지. 넌 날짜가 기록된 서신을 받아보지 못했을 테니까.”

로드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폭발 테러. 꽤 그럴 듯 했지? 모든 대영주들을 혼란에 몰아 놓고 목숨이 오고가는 극한의 상황을 조장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객으로 위장한 암살단원들이 개별적으로 대영주들에게 접근하여 특정 행동을 취하도록 한다.”

로드가 그녀에게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치마르마의 얼굴이 바짝 말라붙었다.

“저항하거나, 어리둥절하거나, 못 본 척 하거나, 여러 경우가 있었지만 자객의 수신호에 응답하고 따른 대영주는 너 뿐이었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겠지. 심지어 도주 중에는 대놓고 상황에 대한 해명까지 요구했어. 이야, 이렇게까지 쉽게 걸려들 줄은 나도 몰랐다니까.”

치마르마가 ‘네노오옴!’하고 괴성을 질러대며 마구 몸부림쳤다.

지난 과오로 로드가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사람의 심리를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을 버릴 것. 그래서 로드는 처음부터 대영주 전원을 용의선상에 두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자신을 믿고 베틀린을 넘겨준 로즈안느, 언제나 용맹하게 최전선에 섰던 키리안,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뒤에서 떠밀어준 군사 티아까지 전부.

소중한 사람들을 의심하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군주 실격일지도 모른다. 충성을 바쳐온 가신들이 서운함을 넘어서 자신을 원망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했다. 모든 것은 내부의 가면을 끄집어내기 위해.

로드가 치마르마와 시선을 마주했다.

“날 힘들게 했겠다, 치마르마.”

“……!”

로드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치마르마 님.”

이번엔 이브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어째서 우리에게 테러를 하려고 한 거죠? 카르프리와 어비스는 피차 접점이 없었던 만큼, 원한도 없었을 텐데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치마르마가 냉소를 보였다.

“…접점이 없었다고? 그래, 너희 승자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었겠지.”

“……?”

“카사르군에 있었던 슈네처 님을 기억해?”

로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역시 슈네처와 얽힌 원한인가?’

카르프리인들과 딱 한번 싸운 적이 있었다.

슈네처는 카사르의 장군으로 참가하여 르네와 함께 비월이 지키는 퍼들스퀘어를 공략했었다. 그러나 전투 중 야습을 걸어온 비월에 의해 전사했다. 당연히 그의 프로필을 확인해 봤지만 치마르마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내 연인이다.”

‘……뭐?’

로드가 움찔했다. 정보에 따르면 슈네처는 틀림없이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치마르마라는 이름은 아니었다.

“네놈이 말했지, 로드 폴렌티아.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부 헛소리다! 네놈들은 우리를 짓밟아 뭉갠 후 온순한 양으로 만들기 위해 적당한 명목을 붙였을 뿐이야. 어떤 좋은 구실을 붙이더라도 네놈이 죽인 목숨의 죗값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눈이 시뻘게진 그녀가 포박에 몸부림치며 격렬하게 부르짖었다.

‘……똑같다.’

로드는 절로 가웨인의 증오어린 눈동자가 떠올랐다.

농축된 증오로 맞부딪쳐오는 모습이 똑같았다

나라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그런 거창한 대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개인의 원한이라는 속성. 그렇기 때문에 더 원색적이고, 추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프다.

“잠깐.”

비월이 가로막듯 로드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로드에게 향해있던 그녀의 증오어린 시선이 비월에게로 옮겨갔다.

“슈네처 님은 훌륭한 장군이셨사옵니다. 자신의 긍지를 스스로 짓밟고 타국의 장군이 되어 카르프리의 백성들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신 분이옵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소녀는 그 분을 가슴깊이 존경하고 있었사옵니다. 테러를 꾸몄던 당신의 행동이 오히려 그 분의 명예를 더럽히고, 생전 그분이 지키려 했던 백성들을 더욱 궁지에 빠트리고 있음을 왜 모르시는 것이옵니까?”

비월이 또박 또박 반박했지만 치마르마는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미 분노에 눈이 멀었다.

“네년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열이 머리끝까지 뻗치는구나! 명예? 백성? 이미 망한 나라에 그런 게 뭐가 중요하지? 내게 중요한 건 그 사람뿐이야! 그 사람밖에 없어! 그 사람만 보고 살았는데, 너희가 죽였어!”

결박당해있던 그녀의 목이 갑자기 길게 쑥 늘어났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복수심뿐이다!”

곳곳에서 헛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늘어난 목이 녹색의 매끄러운 비늘로 뒤덮였고 얼굴 또한 서서히 일그러지며 파충류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스스스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입고 있던 옷가지와 밧줄이 바닥에 투툭 떨어졌다.

끔찍한 외형의 뱀 머리가 비월을 향해 확 달려들었다. 비월은 다급히 고개를 꺾었고 그 옆으로 뱀의 몸체가 화살처럼 지나가 뒤쪽 건물을 박살내버렸다.

“……큿.”

비월이 검을 뽑아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반대쪽 벽을 뚫고 뱀의 머리가 쇄도했다. 쩍 벌어진 입 안으로 보이는 기다란 뱀 이빨에는 극독이 묻어 있었다.

“더 이상 테러 따위엔 안 당해!”

꽈꽈꽝! 비월을 덮치려던 뱀의 몸뚱이에 새빨간 탄환들이 부딪쳐 폭발을 일으켰다. 유니벨의 공격이었다.

쩌억!

이어서 폭발구름을 뚫고 측면으로 파고들어온 키리안의 배틀액스가 뱀의 몸통을 찍어 눌렀다.

“키이이이이익!”

어비스 영웅들의 협공에 뱀이 피를 흩뿌리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캭! 소리를 내며 입에서 극독 덩어리를 쏘아 보냈다.

“……큿!”

목표는 역시나 비월이었다. 그녀가 몸을 굴려서 피해냈고 건물 벽에 부딪친 산성액이 역한 녹색 연기를 일으키며 벽을 녹였다.

“네 상대는 이쪽이다!”

배틀액스를 박아 넣고 맨손으로 내려온 키리안이 허리춤의 검집을 붙들고 있었다. 철컥! 드러난 검날에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 충전검 아인하르트 ‘참격’.

콰콰콰콰콰콰콰!

검이 완전히 뽑히며 세 갈래의 푸른 검격이 지면을 타고 나아가 뱀의 몸을 뒤덮었다. 로드가 다급히 외쳤다.

“키리안! 죽이면 안 돼!”

“예, 물론입니다.”

그래도 힘 조절은 했는지, 평소의 검격보다는 화력이 약했다. 키리안이 바닥에 축 늘어진 뱀의 몸뚱이에서 배틀액스를 뽑아내고는 머리를 강하게 짓밟았다.

“이만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실까.”

그렇잖아도 마력이 다한 듯, 뱀의 비늘이 점점 줄어들더니 사람의 피부가 되었다.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암살단원들이 다시 그녀를 결박했고 이브가 상의를 벗어 몸을 가려주었다. 피를 쿨럭쿨럭 토하는 모습이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로드가 말했다.

“옥에 가둬놓고 치료해. 물어볼게 많으니까.”

정말로 물어볼게 많았다. 누구와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지. 서신을 주고받던 상대는 누구인지.

가웨인과 치마르마.

지금의 강대국 어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들 중, 원한을 품고 로드에게 다가온 자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움직였다는 점, 그리고 그 원한이 어떤 요인에 의해 증폭되기라도 한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점. 눈 앞에서 그 시선을 두 번이나 받아낸 로드는 두 테러가 비슷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로드 자신과 같은 감정 증폭의 고유 능력 같은 것을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상당한 큰 힌트였다. 뒤에서 치마르마에게 복수하라고 자극하고 부추긴 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식하게 됐다. 그 자가 그녀들의 마음의 상처를 후벼 파고 세월에 묻힌 증오심을 끄집어 내 활활 타오르게 했다면?

그렇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 자는 어비스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있으리라.

“크헉!”

그때 암살단원들에게 질질 끌려가던 치마르마가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얼굴에 핏줄이 뿌득뿌득 올라왔다. 로드는 그녀의 손바닥에 뭍은 초록빛 액체를 보았다.

‘……스스로 극독을 삼킨 건가!’

인간의 몸이 된 상태에서 소량도 아니고 저런 산성 독을 삼켰다면 식도와 내장이 녹아버릴 것이다.

격하게 몸부림치던 그녀는 이내 부르르 몸을 떨며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자결 했군요. 인간 상태로 돌아오자마자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키리안이 그녀의 맥을 짚어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로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에요. 폐하. 배신자를 알아냈고, 테러의 위험에서도 벗어났으니까요.”

이브가 재빨리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이크에 올라탔다.

“키리안.”

“예, 폐하.”

“당장 가서 카르프리의 수행인 전원을 왕궁으로 끌고 와.”

“명을 받듭니다.”

============================ 작품 후기 ============================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이하여 책장을 구매했답니다. 역시 자까하면 화려한 책장과 가득 꽂혀있는 책들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런데 왜 책장을 사놓고 조립을 못하니! (개똥손 + 설명서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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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sdlfh / 넹?? 우리 비월이 아주 칭찬해야 하는 상황인데!

로리콤MK / ㅋㅋㅋ 로즈찡은 무사합니다.

Schmerzs / 히익;

벌레 / 로즈마리는 무사합니다 ㅋㅋㅋ 암살단원이 까꿍 놀래켰음.

Gneji / 갓비월갓!

lTemL /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타국 출신이지만 효녀;

조이너 / ㅋㅋㅋㅋㅋ

ZzeRoN / 어떻게 1+1=3이 된다는 거죠? 저는 우매해서 이해할 수가 없네요. 부디 아주 자세히 가르쳐주시죠!

...(-1)... / 장포스님까지 ㅋㅋㅋㅋㅋㅋ 소환능력의 클라스가;

사탕수수158 / 네? (정색)

알테니아 / 흐뭇

빛과하늘 / 이거 놀라운 방법이군요; 합법 작가 감금 글 토해내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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