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4화 (4/309)

00004 1. 모든 것을 잃은 소년 =========================

내가 ‘그것’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졸업식 전날 새벽이었다. 자던 도중 나는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전에도 간혹 심한 두통을 겪은 적은 있었지만, 아무런 조짐도 없이 이 정도로 심한 두통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부모님들을 깨우기 싫어서였다. 안 그래도 불 근처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셨을 부모님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점차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대략 5분 정도가 지나자 머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문제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두통이 사라진 후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억!”

꽤 큰 비명이었던 모양이다. 부모님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 밖에서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가 났다.

“기리인? 왜 그러니?”

“아뇨...”

눈 앞에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라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가 나는 당혹해버리고 말았다. 입이 꽉 붙어버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커다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 턱을 꽉 누르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려고 애썼지만, 아예 입이 딱 붙여 열리지조차 않았다.

“어디 아픈 거니?”

어머니는 내가 또 잔병치레라도 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셨는지 걱정스럽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일단 이 상황 말고 어떻게든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입을 꽉 막고 있던 힘이 풀려버렸다. 나는 말한다는 행위가 약간 생경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느낌을 받으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냐?”

어이쿠. 아버지까지 깨셨네. 이러다가 아버지가 또 뭐라고 말할까봐, 그리고 그게 잔소리로 이어질까봐 얼른 말했다.

“비슷해요. 전 괜찮아요. 얼른 가서 주무세요, 아버지, 어머니.”

“그래. 너도 얼른 자렴. 시험은 끝났어도 학교는 가야지.”

발걸음 소리, 나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시 잠자리에 드는 소리가 나고서야,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 아카데미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마법사다. 마법사는 자연을 움직이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 마법사는, 마법적인 실력이 뛰어나건 그렇지 않건 특이한 현상이나 징표들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 족속들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을 잘 다루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런 마법사로서, 나는 아까 내 입을 꽉 다물게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현상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힘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상황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다. 내일 실험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한 번 시험은 해 봐야 한다’고,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 그런데...

그럼 대체 이건 뭐냐고...

내 눈 앞에는 반투명한 판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매 주 태양일마다 가는 트리클 성당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같은, 색깔이 있는 투명한 하늘색의 판이었다. 그 판의 주변에는 황금과 나무로 장식이 된 틀이 둘러져 있었다.

만질 수 있을까?

나는 손을 내저어보았다. 그런데 그 판은 마치 일루전(illusion) 마법인 듯, 내 손을 그냥 통과시키고 있었다. 그 판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주 또박또박하고 장식이 없이 딱딱한 글씨였다. 요즘 제도에서 넘어오는 서적들은 금속에 활자를 새겨 그걸 조립해서 찍어낸다고 한다. 그 서적들의 문자는 멋을 잔뜩 부린 옛날 손으로 베껴쓰는 서적들(마법서들 가운데는 생각보다 그런 서적이 많다)에 비해 딱딱하고 직선적이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떠 있는 글씨는 그런 서적들의 글씨조차도 비교하지 못할 만큼, 유려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다행히, 그 글씨들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제국 공용어였다.

<새 캐릭터>

<당신은 북부대요새 마법 아카데미를 2일 후 졸업하는 기리인 모스입니다. 몸이 아주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강철의 의지력과 아주 명석한 두뇌와 대마법사급의 마나친화력을 지닌 당신은 4년 내내 아카데미 수석을 놓치지 않은 인재입니다. 당신에 관한 소문이 제도에까지 퍼져, 당신은 졸업 후 제도의 그랜드 아카데미에 장학생 입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이 배우게 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뭐야. 내 소개를 누가...’

마법적인 장난이라면 악질적이다. 그래, 저 말들은 대략 사실이다. 남들 앞에서는 너무 띄우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웃어넘기겠지만, 만약 내가 내 소개를 객관적으로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객관적으로 – 적는다면 위에 저 문구처럼 적을 것이다.

내 이름은 기리인 모스. 위에 말한 대로, 나는 매우 허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 니너아 모스는 북부 대요새의 금속 및 소물품 정비 기술자였고, 어머니 베니아는 그런 아버지를 보조해 물품에 마법적 회로를 새기거나 하는, 준 마법사였다.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세밀함과 동시에 불과 금속을 다루는 대장장이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두 분은 두 분의 유일한 아이인 내가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살고 심심찮으면 열이 나는 허약한 체질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시지 못하셨다. 이 북부 대요새에서 약한 사람, 그것도 약한 남자는 사회적으로 잘 용납되지 않으니까 더더욱.

균형을 강조하시는 트리클 신의 가호일까, 나는 머리가 아주아주 좋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소개이다. 돌이 되기 전에 단어가 아닌 웬만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고, 만 세 살이 될 즈음에 이미 사칙연산을 마스터했다. 부모님은 가끔씩 찾아오시는 부모님의 손님에게,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오게 한 다음 나에게 ‘어느 쪽 몇 페이지’라고 말해주게끔 하고, 내가 그 내용을 줄줄 읊는 것을 보고 손님들이 깜짝 놀라시는 걸 즐거워하시고는 하셨다.

아까 말했던 대로 이곳 북부에서 허약한 남자는 거의 대접받지 못한다. 하지만 허약한 ‘천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곱 살 때, 나는 요새 안의 아이들이 모두 다니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내 몸이 약해서, 남들보다 동작이 굼떠서, 남들보다 빠르게 멀리 움직이지 못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도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약한 몸을 마법으로 보조하고도 싶었다.

아버지는 약간 탐탁찮아 하셨지만, 준 마법사로서 언제나 진짜 마법사들에게 치이며 살아오신 어머니는 전적으로 지지하셨다. 동시에 두 분은 마법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셨다. 두 분 모두 일하시기 때문에 수입도 꽤 되고, 북부 대요새의 마법 아카데미는 군에 종사하는 마법사를 길러내는 군 시설로 취급받기 때문에 학비는 없었지만, 마법이라는 건 재료나 시약이 많이 들어가고, 그것들은 다 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무런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나도 몰랐지만 내 마나 친화력은 대마법사 수준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내 평가가 아니라 요안나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학교 선생님들의 평가였다. 나는 마법 아카데미에서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대개 귀족 가문이나 상인 가문에서 가문을 물려받지 않을 둘째 이하의 자식들 중 하나를 마법사로 키워낼 때, 그들은 어릴 적부터 온갖 마법적 처치와 교육을 통해 이미 뛰어난 마나친화력을 가지고 입학한다. 간혹 1서클을 뚫은 후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모든 것을 나는 내 머리와 마나친화력, 그리고 마나 회로를 몸에 뚫을 때 일어나는 통증을 참아내는 의지력으로 극복했다.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파서 아픔을 견디는 법에 익숙했던 점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덕에 나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전에 마법 회로 2서클을 완성했다. 중간고사에서 1서클을 완성하면 B평점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으니, 선생님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당연했다.

기말고사를 볼 때는 약간의 과부하를 감수하면 3서클 마법의 일부를 시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1학년을 마쳤을 때는 3서클이 완성되어 있었다. 2서클은 1서클의 배의 노력이, 그리고 3서클은 2서클의 배의 노력이 든다. 대마법사 운운하는 소리가 완전히 헛소리만은 아니었던 거다.

위에 적혀있는 대로,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객관적으로, 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5서클을 거의 마스터하고 6서클의 벽도 일부 돌파한, 마법에 있어서라면 북부 대요새에서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몇 없는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마법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장난을 친다면, 나를 놀리거나 비난했으면 했지, 저렇게 객관적인 소개는 하지 않을 거다.

나는 눈 앞에 떠오른 것들을 바라보았다. 파란 색이 유리 같고, 그 둘레에 틀이 있으니, 꼭 스테인드글라스를 창문 같다. ‘창’이라고 불러야지. 그런데 이거... 설마 이대로 안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해야 이걸 치우지?

자세히 보니 창의 오른쪽 위에 빨간색 x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가? 그런데 이거 손으로 못 만졌는데... 나는 걱정하며, 손을 뻗어 x자를 찌르듯 건드렸다. 마치 수면을 만지는 것처럼 약간 반발력이 느껴지더니, 마치 창문이 닫히듯 스르륵 하고 내 눈 앞에 떠 있던 파란 ‘창’이 접혀지더니, 가운데에 물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사라진 창 아래에 원래부터 펼쳐져 있던 다른 창이 보였다.

<메인 퀘스트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

<이티클레 대륙에서 살아가게 된 당신.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살아가는 이 대륙에는 여러 신화와 전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4백년 전 제국을 건설한 치르낙 대왕 이후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륙에는 아직 전해지지 않은 신화와 전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진실은 아직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실은 묻혀진 지 몇천년이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숨겨진 진실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되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퀘스트 달성 조건 :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을 안다

퀘스트 진행 힌트 : 1. ???  2. ???  3. ???

퀘스트 보상 : ???

* 서브 퀘스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메인 퀘스트와 관계 없는 퀘스트들도 발생합니다.>

퀘스트(quest)? 탐구, 탐색? 추궁? 무엇을 쫓아야 하나. 저 ‘이티클레 대륙의 진실’을? 무슨 진실인데? 그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만신(萬神)의 창세와, 냉염전쟁(冷炎戰爭)과, 멸신전쟁(滅神戰爭), 그리고 치르낙 황가의 제국 건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가? 아... 머리아파. 이런 건 누구한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트리클 신을 모독한 결과가 되어서 신전에 불려가거나, 치르낙 초대 황제폐하를 모욕한 결과가 되어 황실모욕죄 같은 걸로 잡혀가기라도 하면 자신 뿐만 아니고 부모님까지 피해가 가는데. 추리라면 내 취미이고 특기이지만, 단서가 아무 것도 없는데...

아. 짜증난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이런 문제는 고민해봐야 답도 안 나온다. 나는 다소 거친 손길로 새로 뜬 ‘퀘스트’ 창 위의 X표를 거친 손길로 건드렸다. 그의 손길에 비해 창은 아까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사라졌다.

이제 눈에 보이는 광경은 이 현상이 일어나기 전과 거의 같았다. 단 하나, 시야의 오른쪽에 <퀘스트>, <정보> 등이 적힌 글자와 빨간색의 + 모양의 네모난 돌 모양, 아니, 코트 앞에 다는 버튼(button)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버튼이라고 불러야겠구나.

나는 시험삼아 방 안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겨 봤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도 같은 글자가 계속해서 보였다. 내가 머리를 움직이면 글자들이 느리게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내 시야 안에 못박혀 있는 것 같았다. 아악! 짜증난다! 나는 머리를 미친놈처럼 마구 흔들었지만, 그래도 똑같았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막막해서였다.

‘더 이상, 이 현상을 마법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런 효과를 갖는 마법은 없다. 물론 정신지배라면 가능하겠지만, 그건 8서클 마법인데, 그걸 쓸 수 있는 대마법사는 몇 명 없을 거야. 게다가 그걸 나한테 장난치기 위해서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간간이 이런 문제가 있을 때 깨어나곤 하는 ‘가장 냉정한 부분’의 분석을 들으며, 나는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이 상황을 탐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마법사니까. 궁금증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족속들이니까. 그래서 ‘유서 쓰려고 종이 꺼냈다가 수식 적고 있는’이라는 비아냥마저 있는 족속들이니까. (참고로, 실화다).

============================ 작품 후기 ============================

일단 초반에는 열심히 쓰겠습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로카다님// 첫 코멘 감사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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