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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0화 (10/309)

00010 1. 모든 것을 잃은 소년 =========================

“알지? 원래는 이 구슬이 녹색인데, 소리를 담으면 파란색이 되는 걸. 어떤 소리가 담겨 있는지 내일 들려드릴 거니까, 내일 아침에 교무실로 와. 아버님 꼭 모시고.”

“어어...”

“아, 하나 더 얘기해 줄게. 혹시 서클 선배들 믿고 있는 거라면 애저녁에 포기해. 아카데미 교장님부터 우리 다른 선생님들까지 니네 서클을 박살내려고 동원된 거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요안나는 골목 바깥을 가리키며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들이 터덜터덜, 하늘이 무너진 것을 본 사람처럼 걸어가는 동안, 요안나 선생님은 그들의 등 뒤에 대고 “그러길래 적당히 했어야지.”라고 말하고는, 다시 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땅에 굴러서 묻은 먼지를 떨어내었다.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옷이 지저분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게 될 어머니가 걱정하시고 슬퍼하신다. 대충 옷가지를 바로잡은 나는 굴러다니던 가방을 주워든 후 요안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기리인.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네, 말씀하세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

“어떤 표정을...”

“한 가지 충고할게. 거울을 보면서 표정을 숨기는 연습을 좀 해보렴. 지금도 ‘들켰나’ 하는 표정 지으면서 그런 말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거든.”

뭐지. 이 사람. 얘기하는 게... 꼭 나 같다. 교실에서의 선생님은 그냥, 다정하고 친절한, 그리고 잘 웃으시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안에는 저런, 냉철한 부분이 있었구나. 선생님은 내 멍한 표정을 보더니 웃었다. 생긋, 이라는 말보다는 씩, 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미소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아까 구슬을 꺼냈던 가슴의 앞섶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로 가져왔다.

아.

훅 하고,

향기가, 나를 찔러왔다.

처음이었다. 동급생이나 선후배 여자들과 만나본 일은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 정도의, 성숙한 성인인 여성과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같은 나이대의 친구나 누나, 동생들에게서 나는 약간은 달콤한 냄새와는 달리,

선생님의 향기는,

자애롭고 다정한 그녀의 분위기도, 냉철한 속 분위기와도 달리,

너무나도, 고혹적이었다.

선생님은 내 입가를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내가 아까 대충 털었던 옷을 잡고 다시 입속으로 뭐라뭐라 읊더니 “정화(cleanse)”라고 말했다. 곧 옷에 묻어있던 핏자국이나 먼지들이 없어지며, 아침에 어머니께서 주셨던 상태 그대로 로브가 깨끗해졌다. 멍하니 나는 요안나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웬지 얼굴이 뜨겁다는 느낌에 고개를 홱 옆으로 돌렸다.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릴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이성이었다.

“바보들 세상에서 살기 지겹지?”

처음이었다.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선생님은 다 안다는 듯 후훗, 하고 웃었다.

“남들이 다 병신인 것 같고, 너를 좀 그만 괴롭혔으면 싶고, 수준 차이나서 같이 못 놀겠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에 욱하는 자신을 숨길 수가 없지? 그래서 두 대 맞을 거 세 대 맞고 그러지?”

“...너무 잘 아시네요.”

“나도 비슷한 경험이 없진 않거든.”

그렇게 말한 선생님은, 내 로브 옷깃을 마저 바로 해 주며 말했다.

“너 머리 좋잖아? 그것도 아주. 연기하는 법 정도는 쉽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연기해서 네가 주장하는 진실을 남들에게 믿게 만들어 봐. 누구는 그걸 가지고 ‘속인다’라고 하기도 하더라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사는 게 훨씬 편리해지더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보 흉내를 내라는 이야기는 아냐. 그러면 오히려 상대가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그저, 순간순간 아주 절실하게 필요한 때마다, 상대를 띄워올리고 너를 깎아내려. 기리인 너는 인상이 먹어주기 때문에 약간만 해도 상대가 이해해줄 거야. 연습해봐.”

요안나 선생님은 그리고는, 귀엽다는 듯,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때도 이미 내 키는 선생님보다 컸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님도, 쓰다듬을 당하는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정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 너의 감정을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의 감정을 건드릴 수도, 너의 감정을 잠시 숨기고 묻어둘 수도 있어야 해. 연습해 봐. 빠르게 터득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은 “내일 보자”고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저, 선생님, 손수건은...”

“아? 아. 가져. 기념이라고 생각하렴.”

그렇게 말하고, 요안나 선생님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어보이며 멀어져갔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선생님이 사라진 방향을 계속 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선생님의 손수건을 코로 가져가,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켰다. 마치 못 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과, 까닭모를 짜릿함이 뒤섞인, 너무도 자극적인 어른의 향기가 코로 빨려들어와 머리 한가운데를 번개치듯 자극하고 있었다.

그 날, 그 향기의 주인은 내 마음 한 곳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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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선생님과 나는 특별한 공감을 나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외눈박이들 세상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두눈박이들. 선생님도 나를 약간은 특별하게 대해주셨다. 물론 나를 연애대상으로 생각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적어도 나를 지적으로 대등한 존재로 대해주셨다. 지적인 유희를 걸고, 추리를 주고 받았다. 요안나 선생님이 나에게 갖는 마음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를 제자들 가운데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손수건, 선생님과 처음 친하게 지냈던 그 날의 징표. 내가 선생님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 단순한 짝사랑만이 아닌 것처럼, 이것도 단순히 짝사랑하는 사람이 준 물건 같은 것이 아니다. 이 힘든, 스스로는 걸어가기조차 힘든 세상,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는커녕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좆같은 세상에서,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세상의 바보들을 더욱 우아하게 경멸하고 기만하는 방법을 일러준 이가 준, 징표 같은 것이었다.

그 날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지키고 싶어, 1서클을 완성한 그 날부터 나는 미숙하나마 보존 마법을 그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펼쳤다. 물론 이미 선생님의 손을 떠난 지 오래라 선생님의 향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손수건을 볼 때마다, 내 마음 한 구석은 왠지 모르게 따스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 손수건을 정보 확인하면 뭐라고 뜨려나.

‘정보 확인.’

<아이템 정보>

<손수건. 아티팩트. 내구도 : 1/1. 랭크 : B>

<요안나 이스카 소유였던 손수건. 지속적인 정화마법과 보존마법으로 당시의 상태를 상당히 유지하고 있다.>

<???가 ???되어 있다>

<효과 : ???>

뭐?! 아티팩트? 그냥 손수건이 아냐? 나는 놀라서 ???를 손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다시 ‘창’이 하나 떠올랐다.

<정보 확인 레벨이 낮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 뭐야. 헷갈린다. 혼란스러워지는 머리를 붙들고, 나는 ‘냉정한 부분’을 불러내 생각에 잠겼다. 이거 뭐야. 단순한 손수건이 아니었어? ‘???가 ???되어 있다’? 대체 뭐가? 그럼 이건 무슨 작용을 하는 거야? 뭐가 숨겨진 거지? 요안나 선생님은 대체 나에게 이걸 무슨 뜻으로 주신 거지? 랭크는 또 왜 B야?

‘띠링!’

<퀘스트 – 진실의 온도는 차가울까, 뜨거울까>

<요안나의 손수건. 당신에게는 마음의 항구 같은 것이었을 이 손수건은, 그러나 단순한 손수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것이 단순한 손수건이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효과가 무엇인지도, 그것을 요안나가 당신에게 왜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부글거리는 마음은 요안나에게 당장 달려가 물어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일부는 요안나가 자신이 알던 요안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요안나에게 달려가 진실을 확인할 용기가 있을까요?>

<요안나와 대면하여 손수건에 대해 물어본다.>

<성공 시 :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실패 시 : 페널티 – 없습니다>

창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손에 손수건을 움켜쥐고 집을 뛰쳐나갔다. ‘냉정한 부분’이 ‘생각은 하고 사냐?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다잖아.’라며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 부분이 아니라도, 나 스스로도 지금의 내 행동이 ‘기리인 모스 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만약 그런 자동인형 같은 사람이었으면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여자친구들을 사귀었겠는가. 하지만, 1학년 때 요안나 선생님에게 깨우침을 받은 후, 언제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계산해보며, 선생님의 말대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 감정은 잠시 뒤로 미뤄뒀던’ 내가, 이렇게 앞뒤 재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으면, 난 아마... 평생 왜 그랬을까, 그때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살아갈 거야.’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며, 나는 아까 터덜터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학교로 뛰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금방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팔다리는 납이 달린 듯 느릿느릿해지고,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중간쯤 왔을 때는 어느 골목길 이름모를 집 담벼락에 대고 점심으로 먹었던 감자와 빵쪼가리를 토해버리기도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억지로 억지로 메슥거리는 속을 눌러가며, 마법을 사용해 지쳐버린 팔다리에 힘을 주며, 발을 질질 끌면서 학교로 뛰었다. 등교도 힘들어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꼭 곤돌라를 타야 할 정도로 몸이 약한 내가 학교까지 간 건,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독하다

.

그렇게 여러 번 멈춰가며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날의 짧은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졸업식을 대비해 이미 아카데미 운동장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정문에는 <제국력 413년 북부 마법 아카데미 졸업식>이라는 문구가 멋들어지게 쓰인 판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잠시 정문 앞에 서서 무릎에 손을 올리고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컥컥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 기리인?”

트리클이시여. 요안나 선생님이다. 막 교문을 나서던 요안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 작품 후기 ============================

명절 동안은 하루에 한 편씩만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고 가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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