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1. 모든 것을 잃은 소년 =========================
“서... 선생님...”
“세상에... 땀 봐. 집에 간 거 아니었니?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쉬었어. 고급, 치유(heal)! 고급, 기력 회복(rejuvenation)!”
5서클 마스터이지만 아직 익숙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5서클의 기력 회복을, 그것도 한 서클 올려 고급인 6서클로 익숙하게 선생님이 나에게 시전했다. 역시, 회복 마법이다. 지친 팔다리에 힘이 돌아오고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던 호흡이 순간에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부드러운 바람이 요안나 선생님을 거쳐 내 쪽으로 불어왔다. 아직은 겨울, 차가운 바람이 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야 나는 정신없이 뛰어오느라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디찬 북부의 칼바람이지만, 한참 뛰어오느라 달아올라 있던 내 피부에는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 쪽을 거쳐 온 그 바람은, 아까 선생님의 손수건을 보며 떠올렸던, 그 날의 선생님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때보다 더욱 성숙된 매력을 가진 향기.
“무슨 일이니 기리인?”
그 향기 때문일까. 잠시 멍해졌던 나는 선생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자. 선생님이 이걸 보고 뭐라고 하실지 모른다. 머리를 한 번 거세게 좌우로 흔든 후,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다행히, 손수건은 땀에 젖지는 않았다.
“이거...”
요안나 선생님의 눈빛이 잠시 빛난 것 같았다. 아니면, 그건 단순히 내 착각이었을까.
“이게 뭐니?”
“4년 전에 처음으로 저와 얘기했을 때, 기억하세요?”
“가만있자... 아마 네가 선배들한테 괴롭힘당했을 때 내가 구해줬던 거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그 날 저보고, ‘바보들 세상에서 사는 게 지겹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었어요.”
“그래, 그리고 내가 너에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감추고 연기하는 법에 대해 얘기해 줬던 기억이 나네.”
“그리고 선생님이 이 손수건을 제게 주셨었어요.”
선생님은 알겠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네?”
나는 살짝 당황해 버렸다. 이렇게 얘기하면 뭐라도 말씀하실 줄만 알았는데, 요안나 선생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4년 전 얘기잖아. 그 얘기를 왜 이제 와서 하는 거야? 아직도 니가 그 손수건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4년 지난 게 이 정도로 깨끗한 걸 보니 그동안 관리를 잘 해줬네. 그건 정말 고맙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채로 요안나 선생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에는 순수한 의문만이 담겨 있었다. 답을 재촉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나는, 다른 뭔가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대놓고, 물어봤다.
“이 손수건 말이에요...”
“응.”
“보통 손수건은 아니죠?”
“그럼.”
에?!
“비싼 거야.”
“그거 말구요...”
잠시 좌절하는 포즈를 취한 나를 두고 쿡쿡 웃던 요안나 선생님이, 웃음기를 약간 지우며 말했다.
“농담하지 말고. 이 손수건에 뭐가 있다는 거니?”
“모르겠어요.”
“...농담하지 말라니까.”
“농담 아니에요. 뭔가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있긴 있어요. 그런데 뭔지 모르겠어요. 매일 이 손수건을 봤는데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보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에요. 선생님. 이 손수건에 뭐 있죠?”
평소의 나 같지 않다, 고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계산하지 않고 앞뒤 재 보지 않고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말하다니. 아무리 회복 주문을 받았어도, 집에서 학교까지 뛰어왔다는 게 내 체력에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선생님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어쩌다보니...”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거지? 흐음...”
잠시 고민하던 요안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티팩트인 건 맞아.”
!
“근데 어떤 아티팩트인지는 얘기 안 해줄래.”
“네?”
“너도 어떻게 이게 아티팩트인지 알아봤는지 말 안 해줬잖아. 나도 얘기 안 해줄래.”
‘띠링!’
<퀘스트 성공>
<당신의 의지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의지력으로 학교까지 와, 요안나에게 진실에 대해 질문한 당신. 하지만 요안나에게서 진실을 절반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당신에게 절반의 연계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띠링!’
<연계 퀘스트 – 진실의 온도는 차가울까, 뜨거울까 (2)>
<요안나에게 당신은 어떻게 손수건의 진실을 알았는지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요안나를 보낼 수는 없죠. 그렇게 되면 당신은 평생 이 손수건의 비밀을 궁금해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요안나를 흔들어 보세요. 그러면 요안나가 진실을 말해 줄 지도 모릅니다.>
<요안나의 방어를 흔들어 보세요.>
<실패 시, 더 이상 퀘스트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글자를 읽느라 당황해하는 걸 본 선생님은 잠시 당황하셨다. 그러더니, 말했다.
“음... 그렇게까지 궁금하니?”
에?
“사실 별 거 아닌데. 그래도 그냥 가르쳐 줄 수는 없지. 문제를 하나 낼게. 맞추면 가르쳐 주고, 못 맞추면 안 가르쳐 줄 거야. 기회는 한 번.”
아... 선생님은 내가 글자를 읽고 있던 걸 선생님이 설마 그렇게 나올까 하고 당황한 걸로 생각하셨나보다. 이거 의도한 바는 아닌데 잘 얻어걸린 거 같기도.
“자, 그럼 문제.
말 장사꾼 기리인은 네 마리의 말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데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기리인이 한 번에 데려갈 수 있는 말은 기리인이 탄 말까지 포함해 두 마리입니다. 다행히 이 마을이나 저 마을에 기리인이 없어도 말을 지켜 주기로 한 사람은 있어, 말이 도망가거나 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뭐야, 퍼즐이야?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흥미가 동하는 자신을 느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의 노예인가보다.
“말은 순서대로 A, B, C, D인데,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가는데 각각 1시간, 2시간, 4시간, 6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만약 빠른 말과 느린 말을 함께 타고 가면, 느린 말의 속도에 맞춰야 합니다. 기리인이 중간에서 쉬지 않는다고 할 때, 말을 전부 옮기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릴까요?”
이건 쉽지. 나는 쉬지 않고 대답했다.
“13시간이요.”
선생님은 내가 숨 쉴 틈도 없이 즉답을 하자 깜짝 놀랐다.
“맞췄어. 어떻게 그렇게 금방?”
“전에 비슷한 문제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게 3년 전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띠링!’
<퀘스트 성공>
<연계 퀘스트 – 진실의 온도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8)>
<축하합니다. 우연이든, 요안나의 변덕이든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진실에 가까이 갔습니다. 이제 요안나에게 이 손수건의 진실에 대해 물어보세요,>
“너무 쉽게 맞추니까 왠지 몰라도 손해보는 기분인데. 알았어. 말해줄게.”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 손수건은 아티팩트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손수건에는 마법 회로가 들어가 있어.”
“회로요? 그렇지만...”
좀 이상하다. 나는 4년 가까이 저 손수건에 거의 매일 보존과 정화 마법을 걸었다. 마력 동력원을 사용하는 골렘들의 회로가 아닌 이상, 빈 회로라면 내 마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어야 맞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걸 알아챘는지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응, 마법에 반응하는 회로가 아냐. 특정한 조건에 반응하는 회로야. 나도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어디서 얻은 거라서 정확한 건 몰라. 어떤 조건이 되면 이 손수건이 어떤 작용을 한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리고 그 조건이 거의 달성하기 어렵다고 들었어.”
“어디서 구하셨어요 이걸?”
“제도의 어느 행상에서. 아까 비싼 거라고 했잖아? 손수건 자체가 좋긴 한데, 마법 아티팩트 가격으로 산 건 아냐. 그 행상도 자기도 모르는 거라고, 구할 때 그냥 그렇게만 들었다고 그냥 손수건 가격으로 받았어.”
아니다.
저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라고, ‘냉정한 부분’이 말하고 있었다. 왠지 둘러대는 느낌 나지 않아? 라고.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요안나 선생님에게 ‘거짓말하시는 거죠?’라고 말할 배짱은 없었다.
‘띠링!’
<요안나에게 손수건의 진실에 대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진실에 대해 만족할 수 있습니까? 아직 완전한 진실이 아니기에, 진실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알 수 없습니다.>
<추가적인 단서가 나올 때까지 퀘스트를 보류합니다.>
아... 역시. 내 생각도 그래. 저 말이 전부 사실은 아닐 거야. 나중에, 제도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 다시 물어보자.
선생님은 4년 전 그날처럼, 내 옷깃을 정리해 주시고는, 손을 내 머리 위로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언제나처럼 나는 허리를 약간 숙여주었다. 안 그러면 손이 닿지를 않으니까.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뛰어온 거였어? 싱겁기는. 내일 졸업식날 끝나고 물어봐도 되잖아. 이러다 앓아눕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내일 수석으로 상 받아야 할 사람이.”
“치유마법 쓰고 오면 돼요.”
“하긴. 자, 이제 궁금한 거 풀렸지? 얼른 집으로 가. 춥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선생님은 내 인사도 기다리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그 때,
찬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강하지 않은 바람이 선생님이 서 있던 쪽에서 내 쪽으로 불어왔다.
아. 그 향기다. 과일의 향 같기도 하고, 꽃의 향기 같기도 한, 아니, 그 모든 것들과는 다른, 다른 어떤 향기와도 비슷하지 않은 향기.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그 날의 따뜻함을 기억나게 하는 그 향기.
약한 바람을 타고, 그 향기가 나에게 다가왔다. 은은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그 향기에 이끌려,
나는 손을 뻗어 선생님의 손목을 잡았다.
“선생님.”
요안나 선생님이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묶여있지 않고 풀려 있던 선생님의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이 선생님의 고갯짓을 따라 물결치며 움직인다. 선생님의 단아하면서 선해 보이는 눈이 동그래져 있다. 그 큰 눈이 나를 올려다본다.
선생님의 입이 오물거린다. 뭐라고 말하려고 하시는 것 같다.
그 전에, 내가 말한다.
“좋아해요.”
선생님의 눈이 더 커진다. 나는, 선생님의 손목을 손 안에 잡은 채, 내 한 걸음 앞에 선 선생님의 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계속 좋아했었어요. 그 날, 선생님이 저를 구해주셨던 날, 선생님은 일을 하셨던 건지 몰라도, 저에게는 세상에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안 날이었어요. 그 뒤로 선생님을 계속, 존경하고, 동경하고, 그러면서도 좋아했어요.”
놀란 눈의 선생님이 뭐라뭐라 말하기 전에, 선수를 친다.
“알아요. 선생님은 저를 그냥 귀여운 제자로만 본다는 걸. 저도 눈치는 있으니까요. 그 동안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했었어요. 아침에 머리나 얼굴을 더 신경쓰고 나가기도 하고, 계속 선생님 근처에 있으려고 선생님 일을 계속 도와드리기도 했었어요. 선생님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계속 어려운 문제들을 고민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선생님은 저를 귀엽게만 봐주셨어요.”
============================ 작품 후기 ============================
수치에 대해.
50점이면 간신히 사용가능한 수준은 됩니다. 지능의 경우 그보다 낮기도 합니다.
60점이면 그냥저냥 써먹을 정도는 됩니다.
70점이면 반에서 1등 정도 합니다.
80점이면 전교에서 1등 정도 합니다.
90점이면 시, 도에서 1등 정도 합니다.
90점부터는 1점씩 올라갈 때마다 점점 강도가 강해집니다.
100점이면, 대륙 전체에서 1~2등을 다투는 레벨입니다.
지능, 마나친화력, 매력이 100인 게 얼마나 사기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몸이라도 병약하지 않았으면...
중간에 나오는 퍼즐은, 레이튼 교수와 이상한 마을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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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주고 가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