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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3화 (13/309)

00013 1. 모든 것을 잃은 소년 =========================

얼른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나는, 아주 잠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눈길을 피하는 것일까. 부담스럽겠지. 직접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지. 그래서 마침 좋은 핑곗거리도 있겠다 보지 않는 척 하는 거겠지. 나는 아쉬움에 선생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눈길을 잡아채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스프리 선생님이 말했다.

“최우수 졸업생, 기리인 모스. 위 사람은 지난 4년간 제국 북부 마법 아카데미 재학생으로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여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에 최우수 졸업생으로 선정함.”

마나가 움직인다. 요안나 선생님이 들고 있던 물품 중 나뭇가지로 만든 목에 걸 만한 크기의 다발을 집어들고, 조용히 읇조린다.

“고급, 물체 창조, 꽃.”

관객들이 오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마법 아카데미의 전통이다. 우등 졸업자에게는 선생님들이 마법적인 효과를 부여하여 멋지게 꾸민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것. 학부모들에게는 큰 선전효과가 있고, 선생과 제자간의 유대관계에도 도움이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시간 지나면 사라질 꽃을 줌으로서 ‘너의 성과가 영원한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더 정진해라’ 하는 가르침을 주는 거다...라는 미담이 전해진다. 물론, 겨울에 꽃을 구하기 어려우니 마법으로 때운다는 게 더 가깝다는 게 아카데미 구성원들 사이의 정설이지만.

스프리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잠시 기리인 모스 군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 북부 아카데미, 아니 북부 영지가 낳은 최고의 인재 기리인군은, 4년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며, 졸업시험에서도 심사관들을 감복시키는 대단한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제도의 그랜드 아카데미에서 기리인군을 장학생으로 입학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나온다. 솔직히,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어제 그 일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금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았을 뿐.

철그렁, 철컹.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꽃이 생겨난 나무다발 목걸이가 건틀릿 낀 손에 의해 내 목에 걸렸다. 대공 전하께서 내 목에 그 목걸이를 씌워주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보다, 무지갯빛이 물결치는 꽃에 더 시선이 간다. 어제, 내가 리미에게 만들어준 바로 그 꽃이다.

“일어서게.”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서, 하지만 시선은 약간 낮추어 대공 전하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는다. 대공 전하는 그런 나에게 황송스럽게도 손을 내미셨다. 내가 약간은 차가운 건틀릿 위를 두 손으로 잡자 대공 전하께서 말씀하셨다.

“축하하네, 기리인군. 모스 부부의 아들이 북부에서 제일가는 보석이라고 하더니, 역시 그렇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내 일러 놨네. 자네에게 편의를 봐주라고 말이야. 자네의 성취는 곧 북부의 성취이니까 말일세. 안 그런가?”

“하해와 같은 대공 전하의 넓으신 배려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이 친구, 말도 청산유수로군.”

대공 전하께서는 고개를 돌려, 옆의 요안나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담임 선생인가?”

요안나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대공 전하. 불민하나마 제 지도를 받아온 학생이옵니다.”

“불민하다니. 이런 천재를 키워내는 선생 역시 범상한 인물일리 있나. 이름이... 요안나 선생이었던가?”

“그러하옵니다, 대공 전하.”

“기억하겠네.”

그러면서 내 어깨를 툭 툭, 두어 번 두들겨주시는 대공님. 솔직히 엄청 아팠지만 티낼수는 없어 이를 악물고 참았다. 고개를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 눈길이 요안나 선생님에게 닿았다.

선생님은 대공 전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내 쪽이 아니라.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아까도 그랬었지.

그런데, 왜 웃고 있는 거지? 별 의미 없다고? 나는 지금 가슴이 조각조각나 휑한데, 억지로 필사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당신은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다고?

나는 당신에게 그 정도밖에 아니었던 건가? 단 한 번도 눈길을 마주치지 않을 만큼? 따스한 눈길 한 번도 주기 껄끄러운, 그런 존재가 된 건가?

하.

그 뒤로 무난히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는 교실에 모여 마지막 종례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스럽게 서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 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었다. 그저 빈 주제 하나를 잡아서 떠들면 된다. 어렵지 않다. 나와 사귀었던 여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입을 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었지? 그건 분명, 진심이 우러난 미소였어. 이 자리가 즐겁다는. 그래, 대공 전하께서 당신을 기억해 준다니 좋았겠지. 성과를 인정받는 거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정도로,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이 아닌 건가? 어제 내 앞에서 흘린 눈물은, ‘죄를 받겠다’는 이야기는, 전부 거짓이었던 건가?

이런 온갖,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이, 어제 깨어져나가 비어있던 가슴 속을 채우며, 차가운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불꽃이 피었지만 가슴은 전혀 뜨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만 빼고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교탁에 자리잡은 선생님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자! 마지막 종례를 시작하겠어요!”

다시 박수와 환호성. 나만 빼고. 안다. 내 행동이 찌질하다는 걸.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표시하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라는 걸. 평소같으면 이러지 않을 텐데.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흘긋 보시더니, 아무런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가슴 속의 온도가 한층 더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불꽃의 크기는 더더욱 커졌다.

“4년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어요. 아카데미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테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았을 텐데, 한 명의 포기자 없이 끝까지 함께 해 준 여러분들에게, 아카데미 선생님을 대표하여 축하 인사를 보냅니다.”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다시 박수를 쳤다.

“동시에,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지엄한 제국법에 따라, 여러분 전원은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이 순간부터 성인으로 대우받게 될 거에요.”

다시 환호성과 박수. 뭐가 그렇게들 즐거울까.

“자, 조용. 성인이 된다는 건, 여러분들이 이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리고 여러분 중 대다수는 북부군 소속의 마법사가 될 거에요. 면담에서 자신의 성적과 진로에 대해서는 다들 들었죠?”

네에- 하는 대답소리.

“북부군 전투마법부에서 근무할 24명, 손 들어 보세요.”

선생님은 헤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손을 드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이 사람들은, 1주일 후, 그러니까 오는 21일 트리클의 날 오전 7시에 중앙광장에 집결하시면 됩니다. 아, 마법부대 부대장님이 이 말을 꼭 해 달라던데, 이 분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군인 신분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시간을 반드시 엄수하지 않으면 군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네요. 지금까지 늦을 정도로 간 큰 사람은 본 적 없어요, 이 선생님은. 알겠죠?”

약간은 기죽은듯한, 네에- 소리.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군수부 마법부여실에서 일할 5명, 소방대와 치안부 등으로 배치받게 될 4명. 이 분들은 각자 담당 부서를 말해줬을 거에요. 3일 후 아침 출근시간인 8시에 맞춰 각 부서로 출두하세요. 여러분들도 앞의 사람들이랑 마찬가지에요. 알겠죠?”

아까보다는 작은 네에- 소리가 들렸다. 출석부를 보지 않아도 반 전체의 이름과 사정을 알고 있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리미는 다른 진로를 택하기로 했다고 전해들었고, 그리고...”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

“기리인군.”

“네.”

예상하고 조용히 목을 가다듬고 있지 않았다면 목이 갈라지는 추태를 보일뻔 했다. 선생님은, 덤덤하게, 무표정하게 말했다.

“제도 그랜드 아카데미 입학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남의 일인데도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은 박수를 꽤 크게 쳐주셨다. 졸업식날이라, 관대해지셔서들 그런 걸까.

“기리인군의 학기는 4월에 시작해요. 대공가에서 곧 사람이 나온다고 했으니, 그 분과 협의하여 일정을 맞추면 돼요.”

그리고는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전체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명백히 차가운 태도에 나는 사고 자체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자, 여러분! 이제 모두 끝났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이 요안나 이스카 선생님의 제자에서, 동료 마법사가 된 거에요. 여러분의 성취 하나하나가 앞으로 이 선생님의 자랑거리가 될 거에요. 부디, 그 자랑거리를 망신거리로 바꾸는 사람이 없기를, 그리고 누구보다 큰 자랑거리가 되어주기를, 트리클 신께 빌게요. 그럼 이만!”

모두들 환호하고 박수치고 축하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려 교실 문을 나섰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선생님을 따라 교실문을 빠져나갔다.

마치 내가 따라나설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선생님은 나를 돌아보더니, 고갯짓으로 복도 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소란스러움에서 조금 멀어져, 어제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의 연구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든 일들이 어제 있었던 일이라니, 어제와 오늘이 이처럼 다른 기분일 수 있다니.

연구실 앞에서 멈춰선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평소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딱딱하고 차가운 무기질적인 눈빛이었다.

“기리인군.”

군. 순식간에 선생님과 나 사이의 장벽이 세워지는 느낌을 주는, 그런 단어다.

“선생님.”

“할 말이 있어서 따라온 거겠죠?”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나는 머리를 두어 번 가볍게 흔들고는, 말을 시작했다.

“어제...”

“어제?”

어제? 라고 반문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마저도 무기질적으로 딱딱하다. 차갑다. 그에 반발하듯, 내 가슴 속의 차가운 불꽃은 더 커진다.

“선생님한테는, 제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

무슨 말이냐, 고 묻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선생님을 향해 나는 어제처럼 내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쏟아부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쩌면 그렇게 웃으실 수 있죠? 왜 나 말고 모든 사람에게는 어제처럼 따뜻하신 거죠? 제 앞에서 흘리셨던 눈물은 무슨 뜻이었나요?”

요안나 선생님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무기질적이다.

“겨우 그런 질문을 하려고 온 건가요.”

“겨우, 라니요...”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기리인군. 내가 왜 당신을 더 특별히 여겨야 하죠? 어제 당신의 일방적인 고백이 있었으니, 내가 당신을 더 특별하게 여겨줘야 한다는 건가요?”

불꽃이, 사그라든다. 아니,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고,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어제 깨어진 가슴의 상처 주변을 불살라먹고 있다.

============================ 작품 후기 ============================

너무 처참한 성적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고구마스러웠나... 선작, 추천은 고사하고 코멘트도 이렇게 없을줄은.

일단은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선추코 주고 가시면 더 힘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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