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2.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
숨을 고른다. 천천히, 과녁을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긴다. 호흡은 천천히. 무리하게 힘을 주면, 그건 모두 겨냥에 영향을 미친다.
과녁과 나 사이에 놓인 풀들을 곁눈질한다. 바람이 제멋대로 불고 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바람이 왼쪽으로 불고 있지만, 서른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의 바람이 부딪혀 풀이 제멋대로 누워 있다. 나는 그 누운 풀을 보고, 활을 아주 약간, 위로 들어올린다. 머릿속으로는, 이 화살이 날아가 맞는 궤적이 그려진다. 이 궤적대로 활은 날아갈 것이다.
시위만 잘 놓는다면 말이다.
나는 서서히 숨을 들이쉰 후, 멈춘다. 시위는 놓는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서서히, 손가락의 힘을 뺀다. 아무런 외력 없이 저절로 풀리게끔. 시위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된다. 서서히, 서서히.
탕-!
마수의 힘줄을 꼬아서 만든, 북부군 저격궁병용 복합궁의 시위가 내 귓가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아직 왼손의 힘을 풀어서는 안 된다. 화살이 떠나가더라도 끝까지, 내가 생각한 궤적대로 화살이 날아갈 때까지 겨냥을 유지해야 한다.
화살이, 춤추며 날아간다. 진동하며, 비틀리고, 뒤틀린다. 바람에 밀렸다가, 다시 되밀려 돌아오지만, 내가 상정한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푹.
저 멀리, 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놓인, 짚으로 만들고 그 위에 천을 씌운 과녁에, 넓이가 두 뼘 정도 되는 빨간 동그라미 안에 화살이 쑥 빨려든다. 좋아. 내가 생각했던 궤적대로다. 나는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며, 왼손에 힘을 풀고 활을 내린다. 내 등 뒤에 서있던 바크 선생님을 돌아보자, 선생님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꿈틀거리는 입매로 말했다.
"스무 발. 모두 들어갔군. 활을 제대로 쏜 게 정말 한 달밖에 안 된게 맞냐?"
"그동안은 마법 배우기도 바빴는데 언제 활을 쏘겠어요.“
“거 참. 좋아. 이동 속사를 연습한다.”
거 참. 솔직히 칭찬 좀 할 것이지. 나는 속으로 히죽 웃으며, 바크 선생님을 따라 활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한 달 전 같은 칼바람이 더 이상 불지 않고, 쌓인 눈들이 조금씩 흐물흐물하게 변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녹으면 수레나 마차들도 다져진 길 이외에는 지날 수 없는 진창으로 변하지만, 아직 그 정도 날씨는 아니다. 하지만, 바람에는 분명 초록색의 조짐이 실려 날아오고 있었다.
땀이 기분좋게 식는 느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다. 예전에, 몸이 허약했을 때는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열이 나며 앓아누웠으니까. 하지만 지난 한 달간, 시스템의 말대로, 내 몸은 빠르게 건강해졌고, 강해졌다.
어느새 우리는 활 연습장 옆의, 속사 연습장에 도착했다. 내가 들고 있던 활에서 활시위를 풀어 조심스럽게 정리해 통 안에 넣고, 속사를 위한 약간 작은 활을 꺼내어 활시위를 걸고 장력을 조절하고 있는데, 불쑥 바크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부터는 진짜 화살로 연습한다.”
“정말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백 걸음 거리에서 스무 발을 모두 맞추는 사람에게 촉 없는 화살을 쥐어주는 건 모욕이다.”
그렇게 말한 바크 선생님은 약간은 짧은 속사용 화살 서른 발이 들어 있는 전통을 넘겨주시고는, 괜히 헛기침하며 저만치 떨어진 관찰용 탑으로 향했다. 나는 뒤에서, 소리나지 않게 조심하며, 피식 웃었다. 아저씨. 솔직하지 못하셔.
전통을 허리에 찬 벨트에 걸고, 화살 세 개를 꺼내어 오른손에 쥔다. 조용히 숨을 고르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셋, 둘, 하나.
“삐익!”
호각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간다. 무릎 높이의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으며, 땅에 발이 닿기 전에 재빨리 손을 활로 가져가, 열 걸음 정도의 거리의 과녁들에 세 발 모두를 빠르게 날린다. 슉, 슉, 슉. 적중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리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반대쪽 발을 끌어당겨 발로 땅을 차며, 반대쪽으로 땅을 구른다. 내 오른손은 전통에서 화살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누르면서, 동시에 손가락으로 화살 하나를 끄집어낸다. 구르는 게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끄집어낸 화살을 활에 걸며 상체를 왼쪽으로 홱 틀어, 열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난 흰 색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명중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곧바로 나는 앞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달린다. 건물의 벽이다. 창문이 나 있다. 달려가면서 화살을 꺼내, 창문 안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다시 한번 굴러 건물 벽 아래에 쪼그리고 앉는다. 호흡을 두 번 하는 동안 선생님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 명!”
하이고. 나는 화살 세 개를 전통에서 꺼내는 동시에 허리를 튕겨 벌떡 일어서, 창문 안에 서 있는 세 개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세 발을 동시에. 눈으로 과녁을 보는 순간, 내 몸은 익숙하게 손가락을 약간씩 움직이며 궤도를 조정하고 있다. 시위를 단 한번 당겨 화살 세 발을 날려보내는 것과 동시에 나는 허리를 뒤로 젖혀 창문에서 물러난다. 창문 안에서 날아온 촉 없는 화살 두 발을 피하며, 나는 전통에서 다시 화살 한 발을 꺼내 시위를 당긴 채 창문 안을 바라본다. 세 명 모두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나는 다음으로 달려간다.
“속사!”
제기랄. 건물을 돌아가니 어느새 흰 과녁들이 잔뜩 서 있다. 속도를 줄일 틈이 없다. 오늘 여러 번 구르는구만. 나는 다시 전통에 손을 대며 앞으로 구른다. 허리를 펴는 순간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활을 앞으로 향한 채, 전통을 화살을 빼기 좋은 각도로 고정해 놓았다.
“개시!”
슉, 슉, 슉, 슉. 눈은 과녁을 확인하며 손은 짧게짧게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리고, 날리고, 또 날린다. 날아가는 화살을 확인할 틈이 없다. 몸은 화살을 날릴 방향으로 튼 채, 나는 계속 고개와 눈을 돌려 다음 목표를 확인하고, 화살을 날리고, 화살을 꺼낸다. 열, 슉. 열하나, 슉. 열둘, 슉. 열셋, 열넷, 열다섯.
삐삑-!
“그만!”
허억, 허억. 힘들다. 내가 숨을 헐떡이고 있노라니, 바크 선생님이 어느새 다가와서 말했다.
“많이 익숙해졌군. 속사에서 좀 템포를 더 끌어올리면 좋겠다. 그리고, 활을 조금 더 강한 걸로 사용하는 걸 고려해봐라. 나중에 되면 원래 쓰는 활로 속사도 가능할 거다. 오늘도 야간에 활쏘기 연습 할 거냐?”
내가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크 선생님은 별 말 없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돌아 걸어갔다. 허억, 허억. 아이고 힘들다.
‘띠링!’
<서브 퀘스트 갱신 – 바크의 인정을 받아라 2/3>
<백 보 사격에서 전부 적중시키세요 – 성공
이동 속사에서 전부 적중시키세요 – 성공
야간 사격에서 전부 적중시키세요 – 진행중>
<보상 – 당신의 활과 화살과 관련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라는게 뭘까.
‘띠링!’
<세 번째 물어봤고, 세 번째 대답합니다만, 어떤 일들은 가만히 일어나는 걸 지켜보는 게 더 흥미로울 때도 있습니다.
치사해서 안 물어본다 임마.
<본 시스템을 치사하다고 부르는 건...>
아 좀. 농담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래 자꾸.
<이렇게 반응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점점,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다. 창들을 x자를 눌러 다 꺼버린 후, 나는 바크 선생님이 한참 걸어가 기사 아카데미 훈련장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활과 화살을 챙겨 아까 내가 훈련했던 백 보 연습장으로 이동했다.
과녁에 꼽힌 화살을 뽑은 후, 짚으로 만든 과녁을 하나 더 가져와 두 개를 연이어 세운다. 이후, 나는 아까 섰던 백 걸음 지점에 위치한 후, 과녁을 흘깃 바라보고... 다시 백 걸음 더 멀어진다. 이백 걸음. 이제는 내 키보다 큰 과녁이 아주 흐릿하게만 보인다.
나는, 다시 건물을 돌아본다. 바크 선생님이 혹시나 보고 계시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활시위를 건 후, 발을 고르고 선다. 심호흡을 하며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그리고 나는... 화살의 표면으로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해주지 못할 그 감각. 화살의 표면을 따라 마나가 흘러, 앞으로 쭉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날카롭게, 날카롭게. 점점 더 앞으로 뻗는다. 두 걸음, 세 걸음... 대략 열 걸음 정도의 길이가 되었을 때, 나는 시위를 당긴다. 활이 휘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뿌드드득. 많이 당길 필요는 없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과녁까지 안내하는 통로를 만들 듯 점점 길어진다. 대략 스무 걸음 정도로 마나의 통로가 길어졌을 때 나는 거칠게 시위를 놓았다.
텅!
원래같으면 시위를 거칠게 놓으면 겨냥이 흔들려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야 한다. 하지만 마나의 통로 안으로 안내된 화살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보여주는 떨림도 없이 곧바로 앞으로 쏘아졌다. 통로를 지나며 화살은 보통 화살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가속되었고, 아무리 강한 장궁(long bow)이라 해도 곡사로 쏘아야만 할 200걸음 거리의 과녁까지 공기를 찢는 바람소리를 내며 직선으로 날아간다. 화살이 지푸라기 과녁 두 개를 뚫어버릴 듯 파고 들어가며 지푸라기가 사방으로 날리는 모습이 보이고, 나는 속으로 하나를 센다. 직후. 퍼엉!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전해져온다. 좋아. 명중이다. 사실 못 맞추는 게 더 이상하지만. 나는 다음 화살을 꺼내어 들고, 다시 마나를 불어넣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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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의 산물이었다. 심지어 이 ‘시스템’조차 알지 못했던 기능이었다. 대공 전하께서 “다른 게 있을 수 있으니, 계속 탐구해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렇게 맞을 줄은 몰랐다.
모든 마법사는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여 마법을 펼친다. 그 마나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끌어들이는가가 마법사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나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 회로로 돌려, 마법을 펼친다.
나는 마법 회로도 모두 타 버렸고, 마나를 끌어모을 수 있는 힘도 모조리, 이게 중요하다. 모조리 잃어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나를 모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숨쉬는 공기를 따라 마나가 들어오고, 몸 안의 피와 물과 섞여 흐르며, 내뱉는 공기를 따라 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게 내가 마법사로서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유였다. 그리고 나를 향한 마법이 나에게 와서 힘을 잃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추측하고 있다. 마법은 마나를 이용하여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근처의 마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의 자연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마력 정지(hold magic) 마법이 내 주변에 항구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 작품 후기 ============================
으음... 문블님께서 '제목이 안티다, 전작보다 더'라는 의견을 주셨네요.
제 제목 짓는 센스가 그럼 그렇죠...ㅠㅠ;;;;
어떻게 제목을 바꾸면 좀 더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요?
코멘트로 의견 좀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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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정해 봤습니다. 더 좋은 의견 있으면 주세요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문블 님 코멘트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