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3화 (23/309)

00023 2.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

“기리인. 눈은 별로 좋지 않군?”

“아, 네...”

“야간 사격에서, 아무리 지금 바람이 불지 않는다지만 백 걸음 거리에서 스무 발을 모두 맞췄다. 이 정도면 궁술에 관련해서는 가르침은커녕, 이미 일가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나 칭찬같은거 잘 못한다!’ 이런 문자가 얼굴에 씌어있는 듯한 쑥쓰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얘기 하지 마라.”

찔끔. 참 쉽지 않은 사람이란 말야. 암튼 그런 얘기를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백 걸음을 다 걸어 과녁에 이르렀다. 낮보다는 약간 크고 약간 밝은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스무 발의 화살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당연하지. 마나를 밀어넣어서 겨냥했으니 빗나가기 쉽지 않았겠지.

‘띠링!’

<서브 퀘스트 성공 – 바크의 인정을 받아라>

<쉽게 좋은 말 안 해주기로 유명한 바크 선생이 당신의 활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백 보 사격에서 전부 명중시키세요 – 성공

이동 속사에서 전부 명중시키세요 – 성공

야간 사격에서 전부 명중시키세요 – 성공

세 서브 퀘스트 조건을 모두 달성시켰습니다.>

<보상 : 바크에게 받으세요.>

응? 바크 선생님에게 받으라고? 선생님은 내가 스무 발의 화살을 모두 뽑아 전통에 넣는 것을 기다려,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선생님의 집무실로 향했다.

몇 번 들어와 본 선생님의 집무실... 글쎄, 이걸 집무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 쪽 구석에는 침구류가 펼쳐져 있고 – 여기에서 자주 주무시나보다 – 그 옆에는 술병과 그릇들이 몇 개 널부러져 있다. 벽에는 옷들과 온갖 무기류들이 잔뜩 걸려 있고, 책상에는 책과 서류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나도 정리정돈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정도는 너무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방 한쪽으로 다가가더니, 목에서 열쇠꾸러미가 달린 사슬을 벗겨내고는 열쇠 하나를 찾아, 거기에 있던 어린아이 키만한 길이의 상자에 넣고 돌렸다. 찰칵. 상자를 연 바크 선생님은, 뭔가를 뒤적뒤적하더니, 곧 내 양 팔 너비 정도 되는 상자 하나와 둥글고 긴 원통 하나를 꺼냈다.

“네놈에게 주기가 조금 아깝지만, 명궁에게는 좋은 활이 필요하고, 한 달 만에 저 정도의 경기에 이르는 사람이라면 명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받아라.”

나는 선생님의 손에서 상자 두 개를 넘겨받았다.

“열어봐도 됩니까?”

“그럼 안 열어볼 작정이었냐.”

나는 두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먼저 상자를 열었다. 내 착각일까? 아니다. 상자 안에서 푸른 빛과 붉은 빛이 잠시 새어나왔다. 내가 상자를 완전히 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은 사라지고, 그 안에는 활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걸 활이라고 할 수 있나? 활은 기묘한 모양이었다. 가장 이상한 건 도르래가 있었다. 활에 웬 도르래가 두 개나 달려 있다! 대체 왜? 그리고 활에는 시위가 물려진 채였다. 저래도 괜찮은건가?

“이게... 뭡니까?”

“예전에 어느 제도의 장인이 시험적으로 만든 활이다. 설명하기 전에, 한 번 당겨 봐라.”

나는 그 말대로, 활을 꺼냈다. 활은 애초부터 준비 완료된 상태로 거기 들어있었던 것 같았다. 아까 쓰던 활보다 좀 묵직했다. 도르래 때문인가.

“그냥 빈 살을 쏜다고 생각하고 한 번 자세를 취해봐라.”

나는 그렇게 했다. 먼저 발을 바른 자세로 두고, 호흡을 고른 후, 손을 뻗어 시위를... 으윽?! 뭐 이렇게 힘들어!

“더 당겨라. 일정 부분을 지나면 더 쉬워질거다.”

시위를 두 개 정도 한꺼번에 당기는 것 같은 힘든 시기가 지나자, 확실히 보통 활보다 힘이 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른손 힘이 덜 들어가니 겨냥에 좀 더 신경쓸 수 있겠군.

“놓지는 마라. 이 활은 빈 살을 쏘면 활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서서히 시위에 걸린 힘을 뺐다.

“어떠냐?”

“복잡한데요? 무겁고. 그런데 시위를 당기는 힘이 전체적으로는 확실히 줄었네요. 처음에 시위를 당길 때 엄청 힘들어요. 보통 활 당길 때 힘든 거를 그 짧은 순간에 다 몰아서 하는 것처럼요. 근데 그 뒤로는 훨씬 수월해요. 힘이 덜 들어가니까 조준하는 것도 편할 것 같고요.”

“원래 그런 활이라고 들었다. 이 정도 크기로도 이거의 한배 반 정도 되는 롱 보우만큼의 사거리와 위력을 낼 수 있다고.”

나는 새삼 신기해하며 손에 든 활을 바라보았다. 석궁도 아닌 게, 석궁처럼 복잡한데... 그냥 괜히 복잡한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게 더 강하게 더 정확하게 화살을 날리기 위한 목적인, 그래. 기능미가 느껴졌다. 온 몸이 우락부락한 전마(戰馬)가 아니라, 오로지 빠름만을 추구하는 날렵하고 탄탄한 명마(名馬)를 볼 때 드는 느낌.

“그 통 안에 보면, 쏠 때 마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다. 얼음 마법의 효과와 화염 마법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시험해 보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이 활은 활시위를 놓을 때 약간만 흔들려도 많이 빗나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안에 보면 활시위를 놓을 때 많이 안 흔들리기 위해 시위를 놓는 릴리즈(release)도 들어 있다.”

“엄청 복잡하군요?”

“아직 안 끝났다. 그 활은 그대로 보관하는 거다. 활시위를 풀거나 하면 안 된다. 네가 직접 조절하거나 건드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이동할 때는 그 상자 안에 넣어서 들고 다녀라.”

헐...

“그럼 얘는 뭐 들고 구르거나 하면 안되겠네요?”

“그래. 이 활은 멀리서 저격용으로 쓸 때 쓰는 활이다. 고정된 자세에서 매우 강한 힘과 정확한 조준, 그리고 마법적인 부가 효과로 성능을 발휘하는 활이지. 최대한 당기지 않아도 조금만 당겨도 속도가 괜찮기 때문에, 네놈 팔만 버텨준다면 연사에도 유리하다.”

“아...”

문득 생각이 나서 나는 활을 바라보며 속으로 ‘정보 확인’을 외쳤다.

<물품 정보>

<컴파운드(compound) 보우 – 아티팩트. 랭크 : S>

<이 시대에 나올 수 없는 기술이 장인의 집념과 연구를 거쳐 나온 활입니다. 동 사이즈 활에 비해 4배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왼손 엄지손가락 부위에 버튼이 있는데, 24시간에 각각 한 번씩 3서클 프로스트 터치(frost touch) 마법과 3서클 플레임 스피어(flame spear) 마법을 화살에 걸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경고! 예비 부품이 없고 제작한 장인이 아니면 활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활을 다루는 데 극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세심하게 관리하기 바랍니다.>

S?! 처음 본다. A, B, C가 다인줄만 알았는데... A 위에 있는 거겠지? 컴파운드? 복합적이라고? 뒤섞였다고?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활을 보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 말 없이 다음 말을 이었다.

“만약 활이 망가지거나 하면, 제도에 있는 장인들의 거리로 가서 디오틀라라는 장인을 찾아라. 어떻게 이 활을 얻었냐고 물어보면 디혼이 줬다고 하면 될 거다. 그리고...”

바크 선생님이 전통을 향해 손짓했다. 나는 얼른, 조심스럽게 활을 케이스 안에 넣고 자물쇠를 잘 채운 후, 원통을 집어들려다가, 놓칠 뻔 했다. 왜 이리 무거워.

“원래 화살은 무거울수록 덜 흔들리고 정확히 날아가는 법이다. 좋은 궁수는 그 부담을 이겨낼 수 있어야만 한다.”

엄격 진지 근엄하게 말하는 바크 선생님 말에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원통을 세웠다. 윗뚜껑을 돌려 열자, 그 안에는 세 종류의 화살촉이 들어있었다. 양초 불빛을 받아 화살촉은 불그르스름하게, 하지만 그 아래에 섬뜩한 푸른 빛을 감춘 채 빛났다.

“뾰족한 화살촉은 ‘윌로우(willow)’라고 불린다. 그건 갑옷을 뚫기 위한 거다. 물론 빗겨맞으면 뚫리지 않지만, 아까 그 활로 전력으로 당기면 플레이트 메일도 뚫을 수 있다. 갈고리가 화살은 ‘미늘(barb)’이라고 불린다. 사냥할 때 박혀서 잘 빠지지 않게 만들어진 거다. 그리고 마지막, 다른 것보다 개수가 적은 넓직한 모양이 있을 것이다. 그건 멀리서 밧줄 같은 걸 끊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거다.”

가까이 다가온 바크 선생님이 ‘윌로우’ 하나를 집어들고, 나에게 뒤를 보여주셨다. 나선형의 홈이 파져 있었다.

“보통 화살촉은 화살에 접착제를 발라 고정한다. 하지만 이 화살촉은 이렇게 되어 있다. 아래의 화살대를 보면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나는 통을 살펴보고, 화살촉이 담긴 통이 뚜껑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닫고는 그 통을 들어올렸다. 그 아래에는 역시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묵직해 보이는 화살대가 잔뜩 들어 있었다. 화살대 앞에는 아까 화살촉 구멍에 맞을만한, 나선형 장식이 된 쇠가 하나씩 물려 있었다.

“저기에 돌려서 끼우면 된다. 저 화살대는 이 곳 북부의 백색산맥에서 나는 마수목(魔獸木)의 가지를 가공한 거라 매우 단단하고 무겁다. 만져 봐라.”

나는 화살대 하나를 빼서 휘둘러보았다. 휘유. 이 정도면 거의 쇳덩어리 급인걸? 쇠보다는 가볍지만, 쇳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화살대가 총 마흔 개 들어 있다. 화살촉을 필요할 때 끼워서 써라.”

‘정보 확인.’

<물품 정보>

<화살과 화살촉 – 랭크 : A>

<장인이 정성들여 가공한 마수목 화살대입니다. 화살깃은 폭풍 속을 뚫고 난다는 폭풍새의 깃털이라 바람에 매우 안정되어 있습니다. 금속 화살촉을 돌려서 끼울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시대를 한참 앞선 기술입니다. 화살촉은 미스릴이 20% 합금되어 있습니다.>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뭐? 미스릴?! 이 비싼 걸 화살촉에 넣었다고?

“그 화살촉은 매우 비싼 거다. 만들기도 어렵지만, 만들 때 미스릴을 좀 섞어넣었다고 한다. 물론 화살대도, 화살깃도 보통 녀석들은 아니다. 그러니...”

들고 있던 화살촉을 통 안에 넣고, 뚜껑을 잘 돌려 닫은 바크 선생님은 그걸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회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이 화살을 써라. 그리고 화살 회수에 신경쓰면 좋겠다.”

나는 그 묵직한 화살촉을 받아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하기 좀 그렇지만, 안 물어볼 수가 없는 질문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선생님. 왜 이런 귀한 걸 저에게 주세요?”

바크 선생님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눈빛이, 땅이나 바닥이 아닌, 저 먼 뭔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까 말한 대로, 명궁에게 명기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뭐라 머뭇머뭇대다가,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지금 선생님을 재촉하는 것은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기다린 끝에 선생님이 간신히 한 말은,

“나중에... 제도에 가거든, 디오틀라 씨에게 가서 물어보거라. 디혼이, 이 활과 화살을 주었다고.”

뿐이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여기서는 내가 물러나드리는 게 선생님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활 케이스를 등에 메고 전통을 허리의 벨트에 건 후, 선생님에게 목례하고 방을 나섰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조금 늦었습니다. 허덕허덕하네요.

크리스펠로 님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르디엘 님 // 호평 감사합니다. 연참은... 노력해보겠습니다...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감사히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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