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30화 (30/309)

00030 2.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

우리의 임무는 그 날 저녁부터 시작이었다. 상단 소속의 배 세 척이 부두에 정박되어 있고, 그 배에 앞서 내일 새벽부터 니아트 강을 떠내려가는 식으로 운반될 통나무들이 뗏목처럼 줄지어 묶여 있었다. 간혹 배나 저 통나무를 노리고 오는 도적이나 수적들, 그리고 아주 드물지만 북부군의 감시망을 뚫고 내려오는 마수들이 있기 때문에 상단 사람들이 밤마다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어제까지라면 그 불침번 보는 사람들 외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도 됐겠지만, 오늘은 짐을 모두 실은 상태에서 보초만 서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출발 전날을 배에서 보내게 됐다.

“우리 셋은 서로 같이 다니니까 대충 서로가 어떤지 알거든?”

상단의 기함 역할을 하는, 셋 중에 가장 큰 배의 갑판 위 선실에 둘러앉은 나와 에아임 형님, 톨라츠 아저씨, 그리고 에빌로 누나 – 자기도 나이가 얼마 많지 않으니 그냥 누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 는, 톨라츠 아저씨가 돌린 차를 홀짝였다. 에아임 형이 자연스럽게 모임의 리더격이 되었다. 원래 세 명 중 리더이기도 했고, 나도 형이 리더를 맡는 데 불만이 없었다.

“그럼 먼저 우리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해 줄게.”

에아임 형이 그렇게 말했다. 간만에 나온 내 속의 ‘냉정한 부분’이 ‘에아임에 대한 평가’를 1점 올렸다. ‘지휘체계의 확립’을 위해 나를 누르려고 하는 시도가 거의 없이, 진짜로 친구나 직장동료 쯤으로 받아들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나라는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나를 잘 써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이야기일테지.

그래서 나는 에아임 형의 진짜 정체는 귀족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톨라츠 아저씨는, 너도 보면 알겠지만 힘이 아주 좋아. 그래서 힘으로 하는 일들을 하지. 무기도 둔기를 쓰고, 큼지막한 방패도 갖고 있어.”

톨라츠 아저씨는 빙긋 웃어 보였다. 저 선한 인상이나, 지금도 차를 담았던 통을 솜씨좋게 갈무리해서 짐 속에 챙겨넣고 찻잔을 기울이는 저 섬세한 동작을 보면 이해가 안 가지만, 아저씨의 셔츠 윗 단추를 채우기 힘들 것 같은 무시무시해 보이는 저 근육들을 보면 이 선실의 문짝을 뜯어 방패로 쓰겠다고 해도 납득할 것 같다. 힘이 얼마일까.

‘정보 확인.’

이름          : 톨라츠 미트리클

나이          : 36

HP           : 5600/5600

힘            : 98

민첩          : 81

지력          : 78

마나친화력    : 72

매력          : 84

지구력        : 83

특수          : 부여된 재능 - 눈썰미

스킬          : 방패술 A-, 치유술 B+

응? 치유술? 부여된 재능? 아. 그래. 알았다. 아저씨는... 사제다. 트리클 사제다. 아저씨에게 물어볼 수는 없겠지. 시스템으로 알게 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에아임 형의 정체에 대한 내 의심과 추측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에빌로 씨는... 마법사야.”

그건 잘 알고 있다. 이 선실 천장에 라이트 마법을 붙인 게 누나였으니까. 누나는 찻잔을 감싸쥐고 차를 마시다가, 내 쪽을 보고 아주 살짝 웃었다. 나쁜 사람이나 차가운 사람은 아닌 거 같고, 그냥 좀 쉽게 친해지기 힘든 사람인 것 같다.

“기리인, 너도 마법사였다고 했지?”

“네. 지금은 쓰지 못하지만요.”

이제 두어 달 지났는데도, 아직도 내 속의 상실감은 온전하게 치유되지는 않았다. 그 반대급부랄지 몸이 건강해지기는 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온 세상을 내 것처럼 바라볼 수 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기 힘든 기억이다. 에빌로 누나라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누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정통마법을 어지간하게 다룰 수 있고, 심리 계통을 보조로 익혔어.”

조용조용한 누나의 목소리. 어지간하게라면 어느 정도일까.

‘정보 확인.’

이름          : 에빌로 레페프

나이          : 26

HP           : 1600/1600

힘            : 61

민첩          : 76

지력          : 93

마나친화력    : 89

매력          : 74

지구력        : 72

특수          :

스킬          : 정통마법 B, 심리마법 A

보조... 라고. 보조 좋아하시네. 심리마법의 등급이 더 높구만. 이 사람들 뭐야. 대체 정체가 뭐지. 나는 에아임 형을 바라보았다. 트리클의 사제, 마흔다섯이 되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 사제와, 정통마법보다 심리마법의 등급이 더 높은 마법사라니. 대체 이런 사람들이 리더로 인정하는 형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나는...”

형은 들고 있던 차를 입 안에 털어넣은 후 말했다.

“나는 검사야. 갑옷을 입고 하는 중병기전, 갑옷 없이 속도로 승부하는 경병기전, 말에 타고 하는 마상전 모두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톨라츠 아저씨가 막아주고, 내가 치고, 에빌로가 보조 하는 식으로 한다. 그럼, 이제 기리인 너의 얘기를 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기리인 모스입니다. 나이는 새해에 열아홉이 됐고요. 아까 잠깐 들으셨겠지만, 두 달 전 거주구역에 일어난 대화재를 끄기 위해 억지로 제 서클보다 두 서클 위의 마법을 썼다가 회로 과부하가 걸려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 몸에 특이한 증상이 생겨, 원래 입학하기로 했던 제도의 그랜드 아카데미에서 증상을 한번 탐색해 보자고 연락이 와서 제도로 여행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두 달동안 몸을 단련하고, 활을 연습했습니다.”

활이라는 말에 에아임 형과 에빌로 누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톨라츠 아저씨는 의외로 약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활이라는 게 아주 마스터하기 어려운 무기야. 잘못 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 뒤에서 맞을 수도 있어. 어느 정도 잘 하지 않으면 동료로서는 좀 불안한데.”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그 때였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며, 누군가 우리가 들어있던 선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무슨 일이죠?”

“저, 잠시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마수? 크기는 얼마나 되나요?”

“아직 멀어서 잘은 안 보이는데, 곰 정도 되는 크기라고 합니다.”

아직 멀다고? 마침 잘 됐다. 나는 방 한 구석에 있는 내 상자로 달려가며 말했다.

“마침 잘 됐네요. 제 활을 좀 보여드리죠.”

나는 상자에서 활을 꺼냈다. 내 활을 본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활이라고? 무슨 그렇게 생긴 활이 다 있어?”

에아임 형의 반문. 이해해요, 형, 누나, 아저씨. 저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나는 바크 선생님이 주신 화살통을 열고, 미늘 화살촉을 세 개 꺼내 화살대 세 개에 돌려 끼웠다.

“화살촉을 그렇게 돌려서 끼운다고? 참 신기한 걸 많이 갖고 있네.”

그렇게 말하는 에아임 형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다소 의심이 서려 있었다. 왜일까. 내가, 모자라는 실력을 무기로 보충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지. 한참 그렇게 하는 동안, 톨라츠 아저씨는 내 몸통만한 방패와 내 팔 정도 되는 길이에 날과 가시가 잔뜩 달린 흉악한 메이스를 꺼내왔고, 에빌로 누나는 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마법봉을 꺼냈다. 에아임 형은 가벼운 몸놀림에도 자신이 있다고 했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롱소드 한 자루만 허리에 찬 채로 나섰다.

우리 넷은 그대로 선실을 나서 갑판 쪽으로 나섰다. 어느 쪽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우리 배의 좌현쪽, 그러니까 북부 백색 산맥에서 내려오는 호수를 둘러싼 횃불이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저기다!”

에아임 형이 먼 곳을 가리켰다. 횃불들 여럿에 둘러싸인 흰색의 마수 한 마리가 보였다.

“호오... 원래는 흰 곰이었나 보네요. 백색 산맥의 음한한 마나에 영향을 받아 변한 모양입니다.”

톨라츠 아저씨의 설명. 저런 것에도 해박한가 보다.

“그럼 대체 여기로 왜 오는 걸까?”

“글쎄요. 사람이 많으니까... 일수도 있죠.”

“이 짐 중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지도 모르고... 어? 이봐! 기리인! 어디 가?”

나는 메인 마스트로 가서 망루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오르려니 속도가 붙지 않았다. 한 칸씩 한 칸씩 오르는 내 발 아래 에아임 형이 달려와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여기서 저 마수를 맞추겠다고?”

“맞추기만 하나요? 한 방에 죽여야죠.”

“뭐? 야! 니가 치르낙 대왕 옆에 있었다뎐 명궁 온케오 님이라도 되냐?”

나는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며 말했다.

“형. 그 이후에 400년이 지났어요. 재료나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요. 온케오 님 만큼이 아니라도 쟤를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어렵지 않다고?”

“두 발만요. 화살 두 개만 가져나왔으니까 두 개만 기다려주세요.”

에아임 형은 짧게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두 발 만이다. 그 이후에는 내 지시를 따라야 해. 위기상황에서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같이 일할 수가 없다.”

“알겠어요, 형. 잘 보고 계세요.”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마불살을 쓰지 않을 수가 없군.

‘띠링!’

<서브 퀘스트 – 세 명의 인정>

<약간 무리하게 저격을 주장한 당신. 다행히 리더가 당신의 행위를 작전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 사람들과 여행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시스템으로서는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반드시 성공시킬 것을 권장합니다.>

<성공 시 – 보상금 10드로그, 백곰의 심장(R). 에아임 일행이 당신을 크게 신뢰합니다.>

<실패 시 – 에아임 일행의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집니다.>

망루에 다 올랐다. 나는 정위치에 서서 숨을 골랐다. 활은 예민하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꼭 맞혀야 한다는 부담감, 꼭 맞춰 보이겠다는 호승심, 이런 것들을 지워야 한다.

나는 오른손에 쥔 화살을 시위에 물리고, 릴리즈(release)를 손목에 찬다. 동시에 왼손 엄지로 활에 달린 버튼을 찾아 붉은 버튼을 눌렀다. 활이 가볍게 우웅 하고 진동했다. 나는 멀리 마수를 바라본다. 흰 곰을 거대화(enlarge)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생긴 그 마수는, 수많은 사람들의 횃불에 잠시 당황했는지, 잠시 대치 상태에 있다.

나는 시위를 당기기 시작한다. 활이 약간 휘어지며 빼애액 하는 목재와 금속의 비명을 지른다. 초반 아주 무거운 활은, 그러나 어느 지점을 지나자 상당히 가벼운 느낌마저 든다.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화살의 끝은 붉은 빛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빗나갈 가능성이 있다. 당긴 시위가 자동적으로 내 오른손 손바닥 안에 있던 릴리즈의 고리에 걸린다.

나는 마나를 불러일으킨다. 몸 안의 마법 회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밀어낸다. 내 오른손에 쥐어진 화살의 겉으로 마나가 덧씌워진다. 마치 마나로 만들어진 원통 안에 화살을 넣듯. 원통이 점점 길어진다. 다섯 걸음, 열 걸음, 스무 걸음... 조금 더, 조금 더 길게. 나는 원통의 끝 방향을 그 마수의 머리 쪽으로 향하게 한다. 바람도, 화살의 떨림이나 요동도 아무런 의미 없다. 이 압도적인 화살의 힘 앞에서는 말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볍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붙였다. 찰칵. 릴리즈의 고리가 내려가며, 아무런 진동 없이 시위가 놓아진다. 아무런 진동 없이, 소리 없이 화살이 스무 걸음 정도 앞으로 나가고, 그 순간.

“꽝!”

공기 중에서 갑자기 폭음이 나며, 배가 거세게 흔들린다. 화살은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날아간다. 그 화살의 뒤로 갑자기 거센 바람과 충격이 일며 강물이 마치 파도를 만난 양 출렁이기 시작한다. 아래에서 형과 아저씨와 누나가 “어엇!” 하는 비명을 지른다. 발로 꽉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나도 위험할 뻔 했다.

하지만 내 눈은 화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강물 위를 직선으로 꿰뚫는 화살, 그 은색 머리가 붉은 빛으로 빛나다가, 어느새 불꽃이 되고, 화살 전체가 화염의 창이 된다.

쐐애애애애애액. 화살이 날아가, 정확하게, 마수의 머리에 닿고,

그대로, 목 위가 사라진다.

숫자를 센다. 하나. 둘. 둘과 함께 퍼엉- 하는, 소리가 강을 넘어와 들려왔다. 후우. 처음부터 명중할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성공시키기 전에는 정말 긴장됐는데, 다행이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에아임 형, 에빌로 누나, 톨라츠 아저씨가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자주 받아본 눈빛이라 나는 그저, 약간은 머쓱하게, 웃어주었다. 아하하.

‘띠링!’

<퀘스트 성공 – 세 명의 인정>

<훌륭한 저격이었습니다. 당신이 날린 불화살은 마수의 머리 위를 완전히 태워 한 방에 숨을 끊었습니다. 불화살이 날아가던 그 장면은 모두의 머릿속에 오래 인상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보상으로 10드로그와 백곰의 심장(R)이 제공되었습니다.>

<숙소에 있는 당신의 배낭 속에 보상이 배달되었습니다.>

<물품의 정보는 물품 정보 확인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에아임 일행이 당신을 매우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 작품 후기 ============================

소년만화의 왕도 같은 장면이죠. 실력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제르디엘 님, 크리스펠로 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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